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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봉 18억 포기한 괴짜강사 이범 2. 맑스주의적 해석 3. 억압! 4. '촛불'의 배후

  • 등록일
    2008/06/25 15:10
  • 수정일
    2010/09/13 21:19
[아주 특별한 인터뷰]연봉 18억 포기한 괴짜강사 이범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115&art_id=17523

2008 05/13 뉴스메이커 774호

“한국의 학교교육은 무책임 교육의 전형”

수년간 대한민국 최고 스타 강사로 명성을 떨쳤던 이범(39)씨. 2003년 연봉 18억 원을 포기하고 무료 강의를 시작해 학원가를 발칵 뒤집어놓은 학원가 이단아다.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은퇴했다고 하여 ‘학원가의 서태지’로 불리던 그는 지난 대선 때 정동영 후보의 TV 찬조연설을 하고, 총선 때 심상정 후보를 지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가 두 후보를 도운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교육정책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로 꼽는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 팽창의 틈새에서 큰돈을 벌던 그가 공교육을 바로잡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충분히 주목을 끄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교육의 현장에서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학교 교육은 무책임 교육의 전형’이라고 날을 세우는 이범씨를 만났다.


곰TV (www.gomtv.com)와 강남구청 인터넷 강의 사이트 (edu. ingang.go.kr) 에서 과학 강의를 하고 있는 이범씨를 만난 곳은 서울 대치동의 한 건물이다. 지인이 사용하는 사무실을 나눠 쓰고 있다는 그는 오후 2시를 훨씬 넘은 시각에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온・오프라인 교육업체인 ‘메가스터디’ 창립 멤버로 과학탐구과목 최다 수강생을 기록하며 한 해 18억 원을 손에 쥐었던 스타 강사는 예상보다 소박했다(그는 이외에도 수년간 강남 유일의 300석 강의실 마감, 오프라인 학원 동시 수강생 4500명 등록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 앞에서 명강의를 했던 저력 때문인지, 언변은 뛰어났고 논리적이었다.

그에게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그가 벌이는 무료 강의의 성과다. 그는 2004년 중순부터 EBS와 강남구청에서 무료 과학 강의를 시작한 데 이어 2007년 초부터는 곰TV에서도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애초 곰TV의 경우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우면 광고 유치 등으로 일정 시간이 흐르면 무료 강의 사업도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기대만큼의 성과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그래서 대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대학 광고 등이 자연스럽게 유치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은 실정이에요. 대안으로 강의의 폭을 유료와 무료로 확대하려고 해요. 강사 중 유료 강의를 원하는 분에게도 곰TV의 문을 열어놓으려고요. 그렇지 않으면 곰TV의 교육 분야는 계속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제 강의는 계속 무료로 진행돼요. EBS는 작년에 논술을 촬영했지만 올해는 아직 진행한 게 없어요. 추측이지만 대선 때 정동영 후보 TV 찬조연설을 한 게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제가 정 후보를 지지한 것은 아니에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자사고 100개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비판하려고 나선 거예요. 정 후보 측에도 그렇게 이야기했고요.”

반면 총선 때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심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교육정책이 자신의 뜻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경기 덕양 갑에서 출마한 심 후보는 덕양구를 ‘공교육 혁신특구’로 만들겠다며 자율형 공립학교를 근간으로 하는 일반계 고교의 혁신,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범씨는 “평소 좋은 교육의 지표로 세 가지를 꼽아왔는데, 책임 교육, 맞춤 교육, 창의적 교육이 그것”이라며 “이는 곧 핀란드식 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관련 내용은 박스 안 기사).

학원강사로 누구보다 잘나가던 그가 2003년 10월 돌연 학원가를 떠난 것은 ‘마음의 병’ 때문이다. 숱한 견제와 질시가 범람하고 인간이기보다는 매출을 올리는 도구로만 기능할 것을 요구받는 학원가 생리에 분노와 울화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밀었다는 것이다. 은퇴를 결심하고 나니 평화로움과 행복감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그가 인터넷 무료 강의를 생각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당 사업을 벌이려고 하던 찰라, EBS와 강남구청에서 거의 동시에 무료 강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서 그에게 강의 요청을 해왔다. 그는 관(官)의 안정적인 기반에서 폭넓게 지원받으며 무료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판단하고 개인적으로 온라인 무료 강의 사이트를 만들려던 계획을 잠시 미뤘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무료 강의만 하면 생계는 어떻게 이어갈까. 그는 “메가스터디를 그만둘 때 앞으로 수입이 없을 것을 예상해 건물을 하나 사뒀다”면서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와 교재 판매, 그리고 백화점 문화센터 강연을 통해 버는 돈이 있기 때문에 생계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가 전북대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전주에서 9년간 살았다. 경기과학고에 입학하기 위해 중학교 3학년 때 수원중학교로 전학한 그는 이듬해 경기과학고에 입학했다. 수재들만 모인 경기과학고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1학년 여름 무렵부터 한국과학기술대학(KAIST)에 조기 진학하라는 학교장의 압력으로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스타 강사로 메가스터디에서 강의하고 있는 모습(위), 강남구청에서 무료 강의를 하는 모습, 교육정책에 뜻이 맞은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와 함께(왼쪽부터).

“당시 과학고의 제 동급생은 2개 반에 모두 60명이었는데 1학년 여름부터 교장께서 한국과학기술대학의 학부과정에 과학고생들이 조기 진학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하지만 전 누나 두 분이 서울대에 다니고 계셨고, 저 역시 서울대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고에서 3학년까지 마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라고 하시더군요. 2학년 여름까지 담임선생님도 계속 닦달하는 바람에 심리적 타격이 컸어요. 게다가 당시 집안에도 어려운 일이 있었거든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1년간 혼자 버티면서 호주머니 속에 항상 신문사에 보낼 투서를 넣고 다녔어요. 결국 교장께서 포기하셨죠. 결과적으로 당시 동급생 60명 중 45명만 과기대에 진학했는데, 제 친구 4명은 일부러 오답을 표기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요.”

그는 고등학생 때의 경험이 이후 그의 인생에서 자신의 의지를 믿고 소신대로 밀어붙이는 삶의 태도의 디딤돌이 됐다고 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88년 서울대 동물학과(재학 중 분자생물학과로 바뀜)에 진학한 그는 사진 동아리에 가입하고 대학신문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학생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마르크시즘 등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시키려는 선배들과 다투고 신문사를 그만뒀을 정도다.

그러던 그가 사회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2학년 때 목격한 일이 계기였다. 대학신문을 그만둘 무렵인 1989년 서울 사당동 재개발 지역에 깡패를 동원한 철거단원이 식칼을 들고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사진 동아리 친구들과 그곳으로 달려갔다.

“인생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깨달은 날이었어요. 가만히 있느냐, 맞서 싸우느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함께 간 국사학과 친구 두 명은 철거단원들이 휘두른 칼에 찔려 병원에 실려갔어요. 더 기막혔던 일은 경찰관이 오긴 왔는데 철거단원들과 몇 마디만 나눈 후 돌아간 점이었어요. 전 몸에 문신까지 한 깡패들과 경찰관이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했고 그 사진은 한겨레신문에 실렸어요. 이 일은 제게 학생 운동권에서 하는 이야기가 뭔지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부여했어요.”

3학년이 되면서 그는 서울대 84, 85학번이 운영하는 세미나에 참가했다. 마르크시즘 서적을 오역까지 찾아내며 엄밀히 연구하는 학회였다. 잇따라 3학년 2학기부터는 서울대 자연대의 ‘학회연합’에서 활동했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세미나팀들에 대한 지원 조직이다. 주로 강연회 개최나 커리큘럼을 정리해 제공했다. 이 같은 활동은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이어지는데,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을 공부한 그는 학부생들이 만든 계간지 ‘학회평론’의 편집자문위원으로 3년간 일했다.

그러나 이때도 운동권의 주류 이념인 주체사상이나 레닌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주체사상은 국가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라고 판단했고, 레닌주의 역시 민주주의자라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이념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전 학생운동에 반 발 정도 디딜까 말까한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그때 이미 운동권이 망할 것이라고 판단했죠. 비이성적으로 뭔가를 추종하려는 경향이 강했으니까요. 소련이 무너졌을 때 전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류의 사회주의는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거든요.”

오히려 그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환경생태운동이었다. 생물학과 교수인 아버지가 읽는 환경 관련 잡지를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본 영향이 컸다. 그 잡지에는 백로가 농약을 먹고 죽은 사진 등 환경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서울대 내에 환경생태운동 동아리를 만들려고 준비했던 그는 동아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당시만 해도 환경이나 생태운동은 운동권에서 백안시되었기 때문에 동조하는 학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적록연대’(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쓴 사람이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사교육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석사과정 1학년 때다. 당시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던 그에게 연구실 선배가 양재동에서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과학 과목 강사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 당시 ‘경인학원’이라는 이름의 이 학원 원장이 현재 메가스터디 대표이사인 손주은씨다. 3개월에 걸쳐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문제집 한 권을 모두 강의해주는 게 그의 일이었다. 수강생 중에는 국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재벌그룹 회장의 손자도 있었다. 한 번 갈 때마다 당시로서는 큰돈인 10만 원씩 받은 그는 학원가에 상당한 규모의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후 박사 과정에 올라가면서 역시 아르바이트로 분당의 한 학원에서 강의를 했고 박사 과정을 수료하던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단과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여름방학 중에 가르친 학생만 300명에 이르렀고 수강료 총액은 3000만 원이었다. 단과 강사는 수강료 총액의 50%를 받기 때문에 그가 여름방학이라는 짧은 기간 중 벌어들인 돈만 해도 1500만 원이었다. 분당에서 유명강사가 된 그는 손주은씨의 주선으로 손씨가 강의하는 대치동 강남대일학원으로 이적하면서 스타 강사로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1999년 여름방학 강좌에서 한 반에 250명씩 4개 반을 마감해 1000명을 가르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가 연봉 10억 원을 훌쩍 넘긴 시점도 이때다. 대치동뿐 아니라 청담동, 서초동, 분당 등지에서도 강의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검은 구멍에서 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2000년 7월, 손주은・조진만씨와 힘을 합해 ‘메가스터디’를 창립했다. 2003년 메가스터디를 그만두고 EBS와 강남구청에서 무료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는 보유하고 있던 메가스터디 주식 22만 주 중 5만 주를 당시 장외거래가의 3분의 1 가격에 내놓아야 했다. 메가스터디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코스닥에 등록됐다(당시 그는 5만 주를 9억 원에 넘겼다. 지금 현재 5만 주의 가격은 180억 원에 이른다).

그는 지난해부터 글로벌정치경제학연구소 설립을 준비 중이다. 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변동을 연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학・사회학・정치학 등의 구분 없이 학문을 연구하는 소장학자들이 주멤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100억 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0교시수업, 학생 기본권 침해”

한국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보수나 진보나 할 것 없이 교육 문제를 자율이냐 규제냐의 틀 속에서만 보는 게 문제다. 여기서 실종된 게 국가의 책임이라는 의제다. 교육은 국민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를 지게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국가가 져야 한다. 국가의 책임은 크게 봐서 두 가지다. 우선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0교시 수업 등 학생의 기본권은 무수히 침해당하고 있다. 또 하나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은 최저 학력이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시험 봐서 등수 매기고 때 되면 학년 올려보내고 이게 전부다. 책임 안 지는 게 고질적으로 체질화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분수의 개념도 모르고 중학교에 올라가거나 영어 L과 R 발음도 구분하지 못하고 때 되면 학년 올라가는 학생이 많다. 하지만 교육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제일 잘하는 데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에 대한 이해 수준을 철저히 점검해 가르친다. 최저 학력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애들은 결국 교육 여건이 안 좋은 저소득층이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절반이 대학 서열화에서 비롯된 입시경쟁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학교 교육의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현 정부가 펼치는 교육정책의 핵심 낱말은 자율성과 다양성이다. 자율성을 내세운 대표적인 정책이 대학과 자사고가 학생 선발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고, 다양성을 앞세운 대표적 정책이 자사고를 100개 만든다는 고교 다양화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가 옹호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학교)의 자율과 다양성이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참여 주체인 교사와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정책은 찾기 힘들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늘린다는 것은 중학생들을 성적 위주의 입시경쟁으로 내몰고, 고질적인 야간 타율학습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사고 설립은 고교 서열화를 불러오고 사교육시장을 더 팽창하게 만들 것이다.”

좋은 교육은 어떤 것인가.
“심상정 후보를 도우면서 좋은 교육에 대한 지표 세 가지를 갖게 됐다. 책임교육과 맞춤교육, 창의적 교육이다. 책임교육은 앞서 말한 국가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숙제만 학생 개개인에 따라 맞춤형으로 차별적으로 내줘도 변화를 얻을 수 있다. 오해받기 쉬운 게 맞춤교육인데, 수준별 이동 수업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논란에 두 가지 공백이 있다. 수준별 이동 수업에서 학생의 선택이 가능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열반의 또 다른 형태라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학교가 학생들을 수준에 따라 나누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한 가지는 교육과정이 획일화돼 있다는 점이다. 과목이나 깊이, 속도를 다양하게 마련해 학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획일화되고 속도도 같은 상태에서 수준별 이동 수업만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영국의 일부 학교에서도 수준별 이동 수업을 하지만 학습 수준이 떨어지는 반의 경우 학생 수를 더 적게 배정하고, 우수 교원을 투입한다.”

●약력
・1969년 서울 출생
・경기과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자연대 분자생물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박사과정 수료(과학사・과학철학 전공)
・메가스터디 창립, 기획이사 겸 강사
・강남구청 인터넷 강의 과학탐구영역 대표 강사, EBS 강사, 곰TV 강사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hyang.com>


















맑스주의적 해석이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41> 프랑스 혁명과 세계사 ②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2008-05-16 오전 8:15:54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515150311

고전적 해석이 된 맑스주의적 해석

프랑스혁명이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혁명 100주년이 되는 1889년부터이다. 이 해에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 프랑스혁명사 강좌가 개설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1875년에 수립되었으나 보수세력의 저항으로 힘든 시절을 겪어온 프랑스 제3공화정이 이때 와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프랑스 혁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혁명시기의 공화주의적 전통을 제3공화국과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이 강좌의 책임을 맡은 인물이 알퐁스 올라르(1849-1928)이다. 그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역사가로서 그가 맡은 일은 혁명 해석을 통해 민주적 공화주의를 고취함으로써 제3공화정을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혁명 이전 구체제의 전제를 비난하고 1789년의 폭력혁명을 정당화했다. 또 1791년의 입헌군주제 헌법은 과소평가한 대신, 1792년에 국민공회가 공화정을 수립한 것은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는 그것을 혁명의 절정으로 보았으며 그 독재적 성격은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의 자리는 그가 물러난 후에도 프랑스 혁명사 연구와 관련해 가장 큰 권위를 누리게 되었다.

1차대전이 끝난 후 알베르 마티에즈(1874-1932)가 올라르의 뒤를 이었는데 그는 아예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여 맑스주의에 헌신했으며 그의 후계자들도 모두 이를 본받았다. 그는 특히 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에 고무되어 공포정치를 주도한 로베스삐에르를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가 아니라 독재를 통해 프랑스를 구하려 한 애국적인 인물로 전력을 다해 옹호했다. 그가 파리 노동자들이 대중적으로 원하는 바를 실현시키려 한 민주적인 정치가라는 것이다.

마티에즈를 이은 사람이 조르주 르페브르(Georges Lefébvre1874-1959)로 그는 폭 넓은 연구로 맑스주의적 해석을 완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시대의 탁월한 연구자로서만이 아니라 혁명사를 연구한 모든 세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한 연구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혁명가들이 추구하려 한 것을 자신의 생각과 동일시했고 따라서 혁명에 반대하거나 그에 비판적인 해석들은 싫어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상당히 실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르페브르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 알베르 소불(1914-1982)과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미셀 보벨(1933-)이다. 이렇게 70년대까지 약 80년 동안 혁명사 해석을 주도한 사람들은 다 맑스주의자들이다. 프랑스 혁명이 주로 귀족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투쟁으로 해석되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리하여 맑스주의적 해석은 1970년대까지도 프랑스혁명사에 대한 표준적인, 그래서 '고전적' 해석의 위치를 차지했다. 이것을 자코뱅-맑스주의적 해석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이 해석이 과격파인 자코뱅파의 입장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가 이렇게 정통적 지위를 차지하자 그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그에 대한 도전이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맑스주의 해석은 과연 무엇일까?

맑스주의적 해석이란

맑스주의적 해석은 프랑스 혁명을 앞에서 말한 대로 새로 흥기한 부르주아 계급과 전통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귀족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본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의 흥기가 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르페브르는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을 중시했고, 나중에 소불은 도시 소시민들의 민중혁명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부르주아 혁명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수 세기 동안 성장하여 18세기에 오면 경제력이나 개인적 능력,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귀족계급보다 우월한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이들은 토지가 아니라 동산적(動産的)이며 상업적인 새로운 형태의 재산에 기초해 있었고 또 계몽사상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이 만든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의해 지지되고 있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목적은 시민적 평등이다.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의 특권을 없애고, 모든 사람이 같은 법의 지배를 받고, 같은 기준에 따른 세금을 내고, 같은 공직 취임의 기회를 갖고, 같은 조건으로 재산을 소유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1788년 군주제의 약화는 부르주아계급에게 그들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세력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농민과, 도시의 소시민 대중들이 그것이다. 1788-9년의 경제위기로 고통을 받은 농민들은 혁명 초기에 광범한 농촌지역에서 소요를 일으키며 봉건적인 영주권에 강력히 저항함으로써 혁명을 진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상큘로트 (Sans-culotte)라고 불린 도시의 소시민들은 혁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들고 일어나 혁명을 급진화시켰고 마침내 공화국을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때로는 반자본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봉건제의 파괴라는 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1789년의 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과거의 특권을 대표하는 귀족계급을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것은 봉건제의 폐지(1789년 8월 4일)를 통해 과거의 특권적인 질서를 전복하고, 프랑스인권선언(1789년 8월 26일)을 통해 시민의 자유와 평등, 인민주권,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 법 앞에서의 시민의 평등, 언론과 출판의 자유, 사유재산의 신성성 등을 선언했다. 또 헌법(1791년 9월)을 만들었고, 입헌군주제를 넘어 민주적인 공화제(1792년 9월)까지 달성했다. 국민공회가 집권했던 공화국 시기가 혁명의 절정기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은 모든 인류의 이름으로 혁명을 주장하고 선전했으나 실제로 그들의 목표는 좁게 제한되어 있었다. 재산 있는 자의 지배라는 자유주의적 태도가 그것이다. 따라서 구질서와 항상 타협하려 했고 대중의 진정하게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열망을 좌절시키려 했다(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아주 간단히 구분하면 자유주의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성인남자에게만 참정권을 주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남자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이다).

그들의 계급이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로베스삐에르를 실각시킨 1794년 7월의 테르미도르 반동이다. 1799년에 나폴레옹이 저지른 군사쿠데타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혁명은 세계사를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또 근대세계로 넘어가게 만든 결정적인 단계이다. 그리고 혁명이 만들어낸 자유와 평등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이념이 되어 전 세계를 일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프랑스혁명을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으로 만든 것은 맑스에 의하면 그 속도와 폭력성, 완전성이다. 가장 성공한 혁명이라는 말이다.

맑스주의 역사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혁명을 자신과 일체화하는 경향이다. 특히 르페브르가 그런데 그의 논조는 마치 자신이 혁명을 대변하는 듯한 웅변조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역사적 객관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 우연히 진보 신당 민생 상담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엉뚱한 댓글을 하나 달았다.
(이 글 맨 마지막에 굼벵이 댓글 있음.)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civil&no=744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civil&no=759

남대문서장 현행법위반 확인 및 추후대책 요청(5/27일밤 시청앞 진압)

글쓴이 - 물은아래로흐른다
글쓴 날짜 - 2008-05-28 06:58:10

법을 공부한 적도 없는 일반 시민입니다만 최근 경찰의 폭력,유혈 진압을 보다 못해 팔자에 없는 집시법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올려봤더니 댓글로 경찰학과 졸업하셨다는 분이 위법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확인 해 주시고 연행되신 분들이 적절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 집시법 제19조(경찰관의 출입)
①경찰관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에게 알리고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장소에 정복(正服)을 입고 출입할 수 있다. 다만, 옥내집회 장소에 출입하는 것은 직무 집행을 위하여 긴급한 경우에만 할 수 있다.

②집회나 시위의 주최자, 질서유지인 또는 장소관리자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찰관의 직무집행에 협조하여야 한다.

# 5월 27일 청계광장에서 남대문서 형사가 시민들 얼굴을 촬영하다가 적발되어 곤혹을 겪자 남대문서 서장이 직접 출두 해서 '우리 직원'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네이버, 다음 등에도 같은 사건에 대해 서장이 관할서 직원을 데려오기 위해 청계광장에 직접 나온 사진과 기사가 많습니다.)--> 집시법에 따라 '신고'된 '적법집회'인 장소인 청계광장에 '집회 주체자에게 알리지 않고' , '정복'을 입지 않고 출입 한것은 <<집시법 19조 1항 위반>>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지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 집회 주최측에서 문제삼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해당 단체 사이트에도 같은 내용 올려보겠습니다.

* 집시법 시행령 제17조(집회 또는 시위의 자진 해산의 요청 등) 법 제20조에 따라 집회 또는 시위를 해산시키려는 때에는 관할 경찰관서장 또는 관할 경찰관서장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경찰공무원은 다음 각 호의 순서에 따라야 한다. 다만, 법 제20조제1항제1호・제2호 또는 제4호에 해당하는 집회・시위의 경우와 주최자・주관자・연락책임자 및 질서유지인이 집회 또는 시위 장소에 없는 경우에는 종결 선언의 요청을 생략할 수 있다.
1. 종결 선언의 요청 - 주최자에게 집회 또는 시위의 종결 선언을 요청하되, 주최자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주관자・연락책임자 또는 질서유지인을 통하여 종결 선언을 요청할 수 있다.
2. 자진 해산의 요청 - 제1호의 종결 선언 요청에 따르지 아니하거나 종결 선언에도 불구하고 집회 또는 시위의 참가자들이 집회 또는 시위를 계속하는 경우에는 직접 참가자들에 대하여 자진 해산할 것을 요청한다.
3. 해산명령 및 직접 해산 - 제2호에 따른 자진 해산 요청에 따르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세 번 이상 자진 해산할 것을 명령하고, 참가자들이 해산명령에도 불구하고 해산하지 아니하면 직접 해산시킬 수 있다.

# 서울 시청앞 해산 과정에서 남대문서장이 미란다 원칙과 기자들 소개 후 진압 '작전'이 있을 것이라 경고(?)하였습니다. 프라자 호텔 앞에서 경찰병력에 포위되어 있던 시민들이 경찰 간부에게 '스스로 해산' 할 것임을 통보하였습니다.
시행령 17조 1항의 '종결 선언'이 이미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경찰 간부에게 자진해산을 통보한 분을 '질서유지인'으로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17조 3항에 따른 '직접 해산'이 불필요한 상황에서 강제 폭력 진압을 시도하다가 시민들이 비폭력 무저항 연행에 협조한 상황이므로 << 시행령 17조 1항 및 2항 위반>>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자진 해산'을 공언한 시민을 강제 연행했으니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법을 전혀 모르는 시민이 확인해 주십사 글 올려봅니다. (물론 시행령 제 17조에 관한 부분은 시청앞에서 연행되신 분들이 문제 삼으셔야 할 테지만 말입니다..) 변호인단 조직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보신당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을 위한 정당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우람
2008-05-28 09:23:29

법은 수학의 공식과는 다릅니다. 법은 상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국민의 권리를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막아보려는 것이 현재의 경찰청인 것 같습니다.

법 조항만 들이대서 불법이다 뭐다 하는 것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Re: 불법????
김우람, 2008-05-28 09:25:47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법해석으로, 촛불 시위 참가자들이 불법??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촛불시위는 역사적인 의의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법 조항만으로 불법이다 아니다를 따지지 마십시오.









문맥 파악에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은아래로흐른다, 2008-05-28 16:05:52

'글좀 제대로 읽으시죠' 라던가 '상황파악 정확히 하십시오' 라는 식의 제목이 아닌,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완곡한" 제목으로 말씀드리는 이유는 불필요한 언쟁에 힘을빼 촛불을 들 팔이 피곤하지 않길 바라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지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의 발로입니다.
'촛불시위는 역사적인 의의를 담고 있습니다'고 말씀하셨는데
현 상황이 21년전 6월과 흡사하다는 저의 현실인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현재의 법 조항만으로 불법이다 아니다를 따지지 마십시오'라 하시는군요.
고등학교때 사회책 부록에 있던 헌법을 지금 다시 보게될 줄 몰랐습니다.
[헌법 제21조
]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촛불의 물결은 국민적 저항권의 표현이며 헌법적 권리입니다. 가장 중요한게 우린 지난 21년간 위헌임이 명백한, '허가'를 받은 후에서야 집회가 가능한 집시법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눈뜨고 있으니 말 다했죠.
제가 말하는 핵심은 이렇습니다.
국민이 헌법적 권리 주장을 합니다.
(A) 공안당국의 탄압은 집시법을 들고 나옵니다. 하위법으로 상위법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a) 위헌인 집시법의 내용조차 경찰은 지키지 않고 위법으로 국민을 연행해갑니다. (a파괴)
그들이 내세우는 집시법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을 명백히 함으로써 자승자박임을 알리면 촛불이 보다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뿐 현실인식이 비슷한 시민동지분께 이만 설명을 마치며, 저의 목표와 님의 목표가 어느정도 다른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올때까지 함께 힘 냈으면 좋겠습니다.










Re: 자꾸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얘기하는데..

김우람, 2008-05-28 22:43:45

법 조항같은 논리적 명제에는 과거/현재/미래가 없습니다. 즉, 현실의 역동성을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해석은 닫혀진 조건 안에서 옳고/그름을 따지는 것입니다. 어떤 법조항으로 어떻게 조건 짓느냐는 권력의 뜻에 의해 좌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선이 악이되고, 악이 선이 되는 것입니다. 
닫힌 법해석을 넘어서려면 역사적 의의를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헌법 위에 역사가 있습니다.







글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항복입니다..

물은아래로흐른다, 2008-05-29 03:33:12

개그콘서트의 달인이라는 코너가 생각납니다.(TV만 보니 휘둘린다고 꼬투리 잡으실 수도 있겠군요. 시사프로 서너개, 뉴스, 코미디프로 하나 봅니다..일주일에..박식하신 분이 호통치니 별걸 다 걱정해야하고....)

역사와 법률의 관계, 논리학에 대해 잘 알아?
아뇨..
모르면 말을 하지마..

닫힌 조건이니 열린 조건이니 명제니 그런거 잘 모릅니다.

무식한 중에 어렴풋이 아는게 겨우,
현정권의 정책과 방향이 시대와 국민(시민이니 대중이니..또 뭐니 하며 개념정의 하실텐데 저는 그런 구분 할줄 모릅니다)이 원하는 것과 다르니 저항인지 반항인지 그런걸 하고 있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정도만 비스므리하게 알고 있습니다.

법을 들고나와 우릴 탄압하는 그들이, 그들이 내세운 법조차 지키지 않는 정당하지 못한 권력이므로
우리 스스로 더욱 당당히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뿐인데,
역사니 역동성이니 조건이 어떻고 뭘 담아내고.. 박학다식으로 몰아치시니 항복합니다.
법학은 커녕 인문학 쥐뿔도 모르는데 괜히 말 섞었다가 이름만 겨우 들어본 철학자 사상가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호통치실테니 항복합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는 이렇게 안녕이군요..
건승하시고 계몽해야 할 다른 무지한 민중에게도 많이 가르쳐주시길..







Re: 지금 국민들의 분노가 정책때문이라고요?

김우람, 2008-05-29 14:36:10

지금 열리는 촛불집회는 국민들이 의사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정부에서 들어주지 않으니 길거리로 몰린 것이지, 현정권의 정책과 그것의 방향때문에 국민들이 분노???

 현정권의 정책과 방향?? 뭡니까 이게? 차라리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할 때는 어떠한 이념적인 말조차도 하지 마십시요. 그래야만 당신의 무식함이 되려 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죄다 늘어놓은 이념적인 말때문에 당신의 무식함이 단순함과 무지함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념적인 단어를 빼고 욕을 했다면 훈계로 받아들이겠으나, 그렇지 못하겠음!! 네, 저는 당신의 항복으로 승리했습니다.








굼벵이

2008-05-29 15:39:51

누가 그러더군요, 운동권들의 가장 큰 문제가 계몽주의적 오만함이라고......
그게 무슨 말일까 혼자서 돌대가리 굴려보고 있는데, 김우람 님 답급을 읽으니 조금은 알 듯한 느낌이 드네요,
감사해야 할지 -.-;

운동권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억압이란, 사실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줏어들은 기억이 있는데요, 좋은 의도이건 나쁜 의도이건
사람들은 항상 남들을 어떤 형태로든 억압하려 한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부모님들, '나쁜 짓 하면 지옥 간다'고 겁주는 종교 집단들, 법과 돈을 무기로 권력을 행사하는 가진자들, ......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억압들에 익숙해져 버린 나를 발견하고는 가끔씩 놀라곤합니다.
물론, 내가 무의식중에 남들을 억압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까지 더러워집니다.

사람들은, 억압받고 억압하는 굴레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억압이 뭔지, 어떻게 남들을 억압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다르게 보게 하는 억압'에 이미 익숙하고 그것을 사용까지 할 줄 아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란 뭘까요?
사람마다 저마다의 입장이 있고, 따라서 각기 다른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과 진실은 말 부터 다르게 생겼으므로 뜻도 분명 다르겠지만, 제게는 딱히 저 둘을 구분할 능력이 없으므로 섞어서 쓰겠습니다.
따라서, 억압이란 '사실 (혹은 진실)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억압은 좋은 것이 아닌데, 김우람 님 또한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김우람 님이 아무리 많이 알고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 정의에 따르면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참고로, 여기서 '좋다'라는 말은 철학자들이 풀이하는 어려운 개념 (모르니 묻지 마시길 -.-)이 아닌 ,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바로 그 '좋다'라는 말입니다.








김우람
2008-05-29 18:16:38
제가 볼때 굼벵이 님은 누구나 가진 기본적인 욕구를 선/악으로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인위적인 산물일 뿐입니다. 즉, 선과 악의 구분이 있기 전에 기본적인 욕구가 먼저 있습니다. 즉, 누구나가 권력을 누리고 싶은 탐욕스런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그러나 많은 이념에선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굼벵이 님이 말씀하신 의식 상태와 무의식의 상태를 구분하여 억압에 대해 죄책감을 말씀하신 것이 전형적인 예이죠.

누구나 가진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현망한 해결이란,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해소시켜주는 의사 소통 구조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을 질타하는데 정책만 놓고 나쁘다고 볼 수 있나요? 국민들에게 값싼 고기를 주겠다는데 뭐가 나쁜가요. 오히려 고마워해야할 일 아닌가요? 광우병때문에 꺼린다면 먹지 않으면 되잖아요. 틀린 말인가요?

제가 볼때는, 정책의 문제가 아닙니다. 안전성도 아닙니다. 이 정책에는 특정 계층에만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방법만이 내포되 있어 문제되는 것입니다. 돈 있는 자는 자유스런 선택권이 보장되나 돈 없는 자는 선택의 자유가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정책말입니다.

그러나까 우리의 분노는 다양한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의사 소통 구조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운동권이나 계몽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참고로 김이태 연구원이 왜 스스로 사이비 과학자라고 불렀을까요? 과학자임을 포기하고 사이비가 되라는 사회 구조를 살펴보고 욕해야지, 그냥 '명박이 out' 외쳐봤자, 절대 나아지는게 없습니다.










바르게살기를원하지

2008-05-29 19:24:25

김우람님, 님의 혼자 생각은 의사소통인것 같습니다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의사소통보다는 정책이 더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쇠고기 수입개방, 대운하, 의보민영화, 도시가스민영화등등...
쇠고기수입개방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정말 답답하군요.
값싼 쇠고기를 주기위해 개방하는 것이니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하지 않느냐, 광우병 때문이라면 먹지 않으면 될것이 아니냐고 주장하시는데
정부는 결코 값싼 쇠고기를 주기 위해 개방하는 것이 아니고 FTA체결을 위해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준 것이고 고마울 것이 하나도 없지요. 없는게 아니라 수입되는 쇠고기의 100%를 청와대로 보내고 싶죠.
그리고 쇠고기가 수입되면 먹지 않으려고 해도 여러가지 경로로 먹을수밖에 없는 실정임을 진정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단지 고깃덩어리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으로 만드는 여러가지 수십가지 수백가지의 물질이 더 걱정인 것이지요.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김우람

2008-05-29 19:41:15

결국 돈으로 다 해결되는거 아닌가요? 민영화되면 전기세 오르고, 물값오르고 ....그러니 돈 없는 사람은 살기 어렵다.

돈을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 한쪽에만 이득을 가져다주는 정책은 손해를 보는 사람에게 욕구를 불만으로 표출하게 만든다. 그러니 의사 소통 구조를 점검하여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그러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외치자. 촛불을 들고.....

아주 상식적이지 않습니까? 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너무 이념적입니다. 굳이 미국을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어렵게 접근하지 맙시다.










굼벵이

2008-05-31 13:54:16

답변 감사합니다.
김우람 님과 대화를 하기에는, 제가 생각이 너무 부족하네요, 3박 4일 짜리 특강을 김우람 님한테서 직접 듣는다 하더라도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김우람 님의 논지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나아지는 것이 없다'라는 말씀에 대해서 토를 하나 달겠습니다.
사회 구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는, 아니 진지하게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저에게, 스스로의 의식 구조를 바꾸는 것부터가 버거운 일입니다. 너무나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단순한 의식 구조부터 바꾸지 않는 한, 정말로 나아지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시궁창 속에 스스로를 내던져둔 채, 계속해서 그럴듯한 핑계거리만 찾고 있습니다. 핑계거리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항상 바뀝니다.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고, 걸핏하면 재벌, 정치인, 교육, 국가보안법, 거기에 친일파까지 모두 다 동원해서 욕하기만 바쁘네요, 그 시간에 스스로를, 가정을, 국가를 진정으로 나아지게 만드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만 계속해서 되뇝니다. 사실은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이미 형성된 의식구조를 바꾼다는 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네요, 그 의식이 비록 나를 옭아매고 있다 하더라도.), TV 연속극에 쇼 프로그램을 전전하고, 인터넷으로 예쁘고 섹시한 것 (상품이므로 '것'이라 불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들에 탐닉하는 동안, 한 쪽에 붙어 있던 '살아 있는 의식'이 시궁창 썩은 내에 코와 귀를 틀어막고 숨막혀 하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나이만 먹어갑니다. 생각은 바닥인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이만 먹어갑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나은' 나를, 대한민국을, 지구를 볼 수 있을까요?
노력하는 거겠지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겠다던 사람처럼, 끝까지, 끝까지 노력해야겠지요?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Celebrate what 's right with the world.
I won't see it until I believe it.
Perception controls our reality.
When the vision is clear, then passion and creativity will come.
When you celebrate what's right, you find the energy to fix what's wrong.
Be not the best in the world.
Be the best for the world.

언제나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스스로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리네요, 한계인가......

답변 해주시면 고맙겠지만, 이미 생각할 거리는 충분히 받은 것 같다는 게으름이 제 머릿속에서 벌써부터 거부 반응을 일으키네요, 이놈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답은 벌써 알고 있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작은 것부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되는 것을.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죽겠다고 게으름 피우는 빌어먹을 '의식'이가 알아주는 건 오직 행동 뿐이거늘. 할 수 있을까? 왜 두려워 하는 걸까? 그저 귀찮은 걸까? 아니다. 스스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가 두려운거다. 시궁창 속에 쳐박혀 눈, 코, 귀 틀어막고 인상 찌푸리면서도 그 속에서 나올 생각을 못하는 못난 녀석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고 인정하기가 싫고, 남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볼까봐 눈치 보는 거다. 그 속에 쳐박혀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 누군가 꺼내 주길 바라면서.

참, 못났다.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세상에서 최고'가 아닌, '모두를 위한 최선'이 될 것인가. '세상에서 최고'였던 적도 한 번 없는 주제에......

When you celebrate what's right, you find the energy to fix what's wrong.
옳지 않은 것들을 고치기 위한 힘은,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서 나온다.

제 멋대로 한 의역이지만, '행동'없이 '말'로만 살아온 저에게는 저 문장이 마치 쇠망치처럼 느껴지네요, 가슴을 짓누르는 듯 하면서도, 이미 굳어서 말라 비틀어져버린 내 주변의 시궁창 웅덩이를 저 쇠망치로 조금씩 깨 부술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문장입니다.

쓰다보니 (늘 그렇지만), 자아비판에 자문자답까지 하고 있네요,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비판없이 더 나은 나를 기대할수는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우람 님의 논지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답을 이 공간을 통해, 김우람 님을 지렛대 삼아 구하려 한 건지도...... '생각할 거리'를 주신 김우람 님께 감사드립니다.






¶. 이런 저런 비디오를 모아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모두 내려받아 저장할 수 있습니다.

¶. 한겨레 창간 20돌 - 이 영희 인터뷰 (476 MB, FLV)
http://www.driveway.com/a4x5j1q9l0
* 링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저 주소를 복사한 다음 인터넷 브라우저 새 창을 열고 주소줄에 붙여넣고 '엔터'를 치면 해당 페이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원본 파일(640*480)을 변환(432*320)해서 두 개로 갈라놓은 http://drop.io/leeha01/asset/leeyounghee01-mp4 (81MB), http://drop.io/leeha02/asset/leeyounghee02-mp4 (74MB)를 내려받거나 플래쉬 파일을 해당 페이지에서 바로 볼 수도 있습니다.

¶. [공개 강좌] 김수행 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 경제, 세계 경제 알기
* 강좌 소개 http://blog.jinbo.net/save_nature/?pid=1566
* 출처 및 링크 -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http://www.democracy.or.kr

김수행 교수의 동영상 강좌를 내 컴퓨터에 저장하기.
제1강.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구조 (강의 시간 - 2시간 21분)
Safari, Firefox, Internet Exploer, Maxthon2, Opera 등의 웹 브라우저 주소창에 아래의 동영상 파일 링크를 붙여넣고 엔터를 치면, 강좌 동영상 파일을 내 컴퓨터에 저장 할 수 있습니다. Maxthon2의 경우, [도구] - [Maxthon 다운로더] - [새 작업 추가]에 아래의 링크를 불여넣으면 강좌 파일을 내려받습니다.


강좌 파일 (FLV 포맷) 내려받기
1강 첫 번째 비디오 (1시간 22분 4초, 290MB)
http://flvg.pandora.tv/flv/_user/f/r/friday1519/07/20080530141417573ouvj2b4xldt70.flv
1강 두 번째 비디오 (58분 58초, 213MB)
http://flvg.pandora.tv/flv/_user/f/r/friday1519/38/20080530143316187z7pj6tnweodsv.flv
내려받은 다음, 파일 확장자를 FLV에서 MP4로 바꾸면 아이팟 등의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에서도 재생할 수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의 첫 번째 강좌 파일 두 개는, 비디오 코덱이 H.264 / AVC, 오디오 코덱은 MPEG-4 Audio / AAC이기 때문에, 복잡한 파일 변환 과정없이 확장자만 바꿔줘도 컴퓨터에서 정상적인 MP4 iPod Video 포맷 (H.264)으로 인식합니다. 보통, FLV파일의 비디오 코덱 (Video Codec)은 Sorenson Spark (Flash7), On2 VP6 (Flash8)이기 때문에, 확장자만 바꾼다고 파일 포맷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만, 이 경우는 예외입니다.

강좌 파일 (MP4 포맷) 내려받기
1강 첫 번째 비디오 (1시간 22분 4초, 290MB)
http://www.driveway.com/r7k2e2c3q0
1강 두 번째 비디오 (58분 58초, 213MB)
http://www.driveway.com/k2i6v6m4j6


¶.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길거리 강좌 --- 첫 번째 비디오
9분45초, FLV
YouTube에서 보기 http://www.youtube.com/v/k8uYquJGrvc&hl=en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길거리 강좌 --- 두 번째 비디오
8분48초, FLV
YouTube에서 보기 http://www.youtube.com/v/pgELx45xy54&hl=en


¶. KBS 환경스페셜 - 위험한 연금술 - 유전자 조작 식품 (443 MB, avi)
http://www.driveway.com/d7t7f3v7e6


¶. 6.10 촛불 집회에서 안 치환의 노래 공연 '자유' (31 MB, MP4, 한겨레 특집 방송)
http://www.driveway.com/x8k4r3w3z5



¶. '촛불'의 근원적인 힘, 진정한 배후 세력은 '우리 문화'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분석하느라 바쁜데요, 그 가운데 두 개를 골라봤습니다.

¶.여성 본능과 시민의 발랄함 승리하다
[촛불혁명] 어떤 프랑스 68세대 "그런데 당신들의 문화주권은?"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093


¶.푸는 文化와 갚는 文化

— 怨恨 —

2008/03/21 11:19:47

李御寧

前 文化觀光部 長官 / 中央日報 顧問

“怨恨이 맺힌다.”라는 말을 잘 쓴다. 옛날 군가에도 “원한이며, 피에 맺힌”이라는 歌辭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쓰는 말인데도 ‘怨’과 ‘恨’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困難할 때가 많다. 그러나 怨과 恨을 區別하는 아주 간단한 方法이 있다. 몇 가지 말을 만들어보면 된다. 怨讐라는 말은 있어도 恨讐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怨讐는 ‘갚는다’고 하고 恨은 ‘푼다’고 한다.

日本과 韓國의 文化的 차이도 이 怨과 恨을 놓고 보면 분명해진다. 日本의 近代文學의 象徵이라고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文學의 전통적 특성은 그 유명한 『주신구라(忠臣藏)』처럼 怨讐 갚는 이야기라고 한 적이 있다. 현실 속이든 이야기 속이든 世界 어느 나라에도 일본처럼 復讐劇이 많은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갚는 文化이다. 怨讐도 갚고, 恩惠도 갚는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할 때 ‘스미마센’이라고 한다. ‘스미마센’은 아직 갚아야 할 것이 덜 끝났다는 뜻이다.
17세기 때는 通信使로 日本에 갔던 南龍翼은 이러한 日本人들의 기질을 보고 “실낱같은 恩惠도 골수에 새기고 털 끝만한 怨望도 갚고야 마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韓國의 문화는 푸는 文化이다 恨만 푸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심심한 것까지 풀어 심심풀이라고 한다. 남들이 싸워도 풀어버리라고 하고 죽은 사람들도 恨을 남기지 말라고 푸닥거리를 한다. 푸닥거리는 푸는 거리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때 일본 사람은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한다. ‘기오쓰게데’라는 말이 그렇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은 싸움을 하려고 머리띠를 매어 어깨띠를 죈다.

경제 대국이 되어 여유가 생겼다는 오늘에도 日本에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말은 ‘시메루(죄다)’라는 낱말이다. 고속도로에 붙여놓은 구호판에는 “自動車 문을 꼭 닫고 안전띠를 죄고 마음을 죄라”라고 쓰여 있다. 우리는 원고를 마감한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시메기리[締切り]라고 한다. 죄어서 잘라버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무슨 일에 도전할 때 몸을 푼다고 말한다. 싸울 때도 조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웃통을 풀어 젖힌다. 풀지 않으면 힘이 안 나는 사람들이다. 시험 치러 가는 아이를 붙잡고 하는 소리도 정반대이다. 日本 사람들은 ‘간바테(눈을 부릅뜨고 정신 차리라는 뜻)’이지만 韓國의 부모들은 놀랍게도 “야, 마음 푹 놓고 쳐라.”라고 말한다. 마음을 놓으라는 말을 漢字로 直譯하면 放心이 아닌가.
怨은 갚으면 그만이지만 恨은 풀면 創造的인 것이 된다. 春香이의 경우 변사또에 대한 感情은 怨이고, 離別한 이도령에 대한 感情은 恨이다. 얼마나 다른가 『春香傳』이 만약 怨의 文學이었다면 변사또에게 복수하는 드라마로 변하여 일본의 『주신구라』 같은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변사또를 백 번 죽여도 原審은 없어질지 모르나 그리운 이도령을 만나지 못하는 恨은 그냥 남는다. 그러나 『春香傳』은 怨이 아니라 恨으로 향한 文學이었기에 끝내 님과 다시 만나 離別의 恨을 푼다. 그래서 貞敬夫人이 되어 百年偕老를 하는 것이다. 怨讐 갚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핏방울이 튄다. 그러나 恨을 푸는 이야기는 신이 난다. 눈물은 나도 핏방울은 없다. 怨讐를 갚고 나면 맥이 풀어지지만 恨을 풀고 나면 힘이 솟는다. 푸는 데서 나오는 힘, 그것이 바로 ‘신바람’이다.

過去淸算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일제 植民地 때의 親日派도 우물쭈물 넘어갔고 李承晩 때 不正選擧를 한 사람들도 흐지부지 끝냈다. 그러니 이번만은 과거를 단절하고 깨끗이 청소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보복은 淸算보다 더 두려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을 우리는 프랑스 市民革命 때의 로베스피에르에게서 배웠고 蘇聯의 프롤레타리아 革命 때의 스탈린에게서 배웠다. 무수한 숙청이 남긴 것은 피가 피를 부르는 惡循環이었다.

伯夷 叔齊라고 하면 털끝 만한 타협도 마다한 首陽山 고사리로 이름 높은 선비지만 『論語』에 적힌 대로 그는 秋毫의 惡도 容恕하지 않았으나 舊惡을 論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怨은 過去를 향해 있지만 恨은 未來를 향해 있다.
우리 민족의 마음에 쌓여 있는 과거에 대한 怨이 아니라 못다 한 恨들이다. 그래서 恨을 풀 때 강해지고 創造的이 된다. 신바람 나게 일하고 신바람 나게 사는 것, 이것이 새로운 한국의 새 엔진이다.

獨裁 때문에 하지 못한 恨이 있으면 이제는 民主化의 實踐으로 그 恨을 풀어 自由의 所重함을 못 보게 해야 한다. 過去를 아무리 단죄해도 民主化가 成功하지 않으면 恨은 계속 쌓이고 마음속에 응어리진다.


사람의 한가운데에서 빛나기

民主主義에는 ‘主’자가 두 개씩이나 들어 있다. 언뜻 보면 王 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王 字 위에 점하나를 찍어 놓은 것이니 오히려 王 字보다도 한 단계 높은 글자로 보인다. 그러나 主 자는 王 자와는 아무 關係가 없는 象形文字라고 한다. 한곳에서 타오르고 있는 등심의 불꽃 모양을 본뜬 글자라는 것이다. 어째서 불타는 심지가 주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는가? 많은 漢字들이 그렇지만 主 자 역시 그 글자 뒤에 숨은 意味의 鑛脈을 캐 들어가면 다이아몬드같이 눈부신 보석이 나타난다.

등잔이든 촛불이든 심지가 있어야 불꽃이 타오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심지는 언제나 불꽃의 중심에 있으며 한곳에, 움직이지 않고 固定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희한하게도 이 主 자가 붙은 形聲文字들은 모두 한곳에 固着하여 움직이지 않는 모양을 나타낸다. 기둥 柱(주) 자만해도 그렇다. 만약 기둥이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면 어떻게 되겠는가. 창도 지붕도 다 갈 수 있지만 기둥만은 건드릴 수가 없다. 그것은 불꽃의 심지처럼 집의 중심. 그 고정된 자리에 붙박여 있는 主이다.

신나게 달리는 말과 자동차라 할지라도 이 主 자가 붙으면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만다. 駐車場이라고 할 때의 駐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인들 例外이겠는가. 밖에서 떠돌던 사람들도 이 駐 자를 만나게 되면 한 곳에서 정착해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住居라고 할 때의 住 자이다.

이렇게 主 자의 뜻을 풀이하고 보면 정말 主人이라는 말이 자랑스럽게 보인다. 民主의 主 자는 온 나라를 비추는 등불의 심지이고 기둥이고 삶의 住居인 것이다. 그것은 確固不動한 中心 속에서 存在하고 있는 힘이다. 아무리 못나고 힘이 없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자기 몸의 주인이다. 그것이 바로 主體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초라한 집이라고 해도 그 중심에는 누구도 그 자리를 侵犯할 수 없는 그 집 主人이 있다. 그것이 戶主이다. 마찬가지로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그 나라의 運命을 결정하는 줏대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主權이다. 이렇게 主人․主體․줏대․主權과 같이 주 자가 붙은 말들은 個人이나 家庭이나 國家나 그 중심에서 타오르고 있는 소중한 불 심지인 것이다. 그 불꽃이 한곳에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다니거나 꺾이거나 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나그네라는 말은 이 主人과 正反對되는 말이다. 나그네는 ‘나간 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집을 나간 사람, 마을 밖으로 나간 사람이 바로 나그네인 셈이다. 木月의 그 유명한 「나그네」라는 詩를 보더라도 나그네의 특징은 한곳에 붙박여 타고 있는 그 불꽃이 아니라 길을 따라 구름에 달 가듯이 끝없이 流動한다. 그러니까 나그네는 主人과 달리 언제나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다. 路傍이란 말처럼 언제나 그는 길이든 집이든 傍觀者의 자리에 있다.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고 깊이 개입하여 책임을 지는 법도 없다. 나그네는 외롭지만 동시에 自由로운 存在이다.

현대의 文明人들을 네오노매드(neonomad)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매드는 遊牧民이니까 우리말로 飜譯하자면 新遊牧民이라는 뜻이다. 企業人들을 보더레스(borderless) 경제로 國境이 없는 多國籍 企業에 종사하는 일이 많고 通信衛星 시대의 텔레비전은 國境을 넘어 남의 나라 안방을 자유롭게 들락거린다. 藝術에는 國境이 없다는 말은 일찍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예술인들은 정신적인 보헤미안들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게 없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전부가 나그네라는 이야기도 있다. 왜냐하면 그 화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전연 자기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할 말로 보기 싫으면 끄면 된다. 싸우고 사랑하고 굶주리고 별의별 드라마가 생겨도 텔레비전의 시청자들은 그 현실에 대하여 傍觀者나 다름없다. 하룻밤 자고 내일 떠나면 되는 사람처럼 그 프로그램 시간만 지나면 자기는 그 현장에 있지 않는다. 映像時代란 다름 아닌 傍觀者들의 나그네 時代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등장하게 될 假想現實(virtual reality) 속에서는 보기만 하는 화면이 현실과 똑같이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몸으로 끌어안을 수도 있는 映像이어서 現實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에서 단지 자기가 곧 떠나 다른 空間으로 이동해야 하는 나그네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방 한가운데 자리한 등불인가. 하늘을 떠다니며 변해 가는 달인가, 中人인가, 나그네인가. 다만 불안한 것은 主人은 漢字 말인데 나그네는 토박이말이라는 점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나그네에 대응하는 말을 무엇이라고 했었는지, 그것이 왜 漢字 말에 먹히고 말았는지, 네오노매드의 時代에서 생각해 본다.

출처 --- 전국한자교육추진연합회
http://www.hanja-edu.com/bbs/view.php?id=magazine_articl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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