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속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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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소개해준 위의 글을 읽고 공감하며 떠오른 나의 할머니..

 

나의 할머니도 5년여를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처음의 증세는 식사량이 많아지는 정도였는데,

평생 욕한마디 못하시던 양반이 어느 날엔 먹을 것을 주지않는다며 욕을 한바가지로 엄마에게 쏟아내셨다..

앙상하게 말라가는 몸과 반비례하여 기운은 어디에서 그렇게 솟구치시는지 바닥재를 뜯어내고 시멘트 바닥을 긁어내고 내가 처음 돈벌어 산 무거운 장롱을 분해하셨다..

그리고는 시도때도 없이 감행하시는 가출...

한 번 가출하실 때마다 십년감수하는 것같다는 아빠의 말씀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나날이 수심이 짙어지고 주름골이 패이는 엄마, 아빠의 얼굴이 증명하고 있었다.

 

나의 부모는 지극정성 효자, 효부로 칭송받을 정도는 아니셨으나

천상 맏아들, 맏며느리라는 정도의 칭찬은 받을 정도는 되시는 분들이셨다..

 

그럼에도

어느 날엔 1층 현관문이 잠겨 있었고

또 어느 날엔  2층의 중간 현관문이 닫혀 있었고

그리고 또 어느 날엔 모든 창문이 열리지 않도록 못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엔.....

할머니의 방문에 열쇠가 채워져 있었다.

 

화를 내는 내게 엄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2층 창문에서 주차장 지붕으로 뛰어내려 가출을 하신 걸 온 식구들이 하루 종일 찾아 헤매다 집 앞에 있던 산속에서 한밤중에야 찾았다"고..

 

가끔 목욕을 시켜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나에게 "처녀~ 고마워.. 고마워.. 마음씨도 곱네.. 고마워.." 라고 되뇌시고는 가끔은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며 배시시 웃기도 하셨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 집에 피운 쑥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집에 가는 게 두려웠었다. 목욕시켜 드릴 때마다 점점 살이 빠지고 이제 더이상 빠질 살도 없어 쪼글아든 할머니의 몸을 보는 것이 두려웠었다. 그러나  엄마는 한마디 불평없이 식당을 운영하시면서도 할머니를 돌보셨다.

"지금까지 모시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다른 방도를 찾을 수는 없다. 그냥 이게 내 복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셨다.

 

그런 나의 엄마, 아빠도 끝내는 할머니 방에 열쇠를 채우셔야 했다.

또 가끔은 대소변 보신 것을 눈치 못채고 방치하기도 했고

평생을 곱게 쪽진 머리를 하시던 양반의 머리를 짧게 자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댁과 가까이에 살던 나의 형제들은 가슴아프지만 어쩔 수없이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먼 곳에 살던 나만.. 영문 모르고 화를 냈었다.

 

할머니에게 욕설을 듣기도 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할머니 수발을 들던 여동생이 전화로 할머니의 부음을 전하며 소리 죽여 울 때, 차마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슬픔을 삼킬 때,

멀리 산다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불효가 서러워서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서 목놓아 울었다. 함께 한 고통이 없었기에 나는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찍기 전에야 온갖 아양을 떨지만 찍고 나면 어느 놈이나 다 지들 먹고 사는데만 혈안이 되더라. 투표는 해서 뭐하냐? 우리 위하는 놈은 없다. 난 안할란다." 세상이 두 쪽 나도 투표는 해야 한다고 꼭두새벽부터 나를 깨우고 "1번을 찍어야 한다"며 투표소에서까지 다짐을 받으시려던 할머니께서 온전한 정신이실 때 치른 마지막 선거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곤 정말 투표장에 가지 않으셨다. 어쩌면 투표하지 않겠다는 할머니의 선택은 할머니가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투표한 방식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할머니..

저는요.. 그래도 투표할래요..

지금은 하는 거랑 안하는 거랑 별차이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주 먼 훗날

이런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뭔가 다른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고..

그렇게 믿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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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9 02:34 2010/05/19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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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10/05/19 11:48 URL EDIT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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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첼라 2010/05/19 12:29 URL EDIT REPLY
오랜만이예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그립기도 하다지요..
나는 언제 떠나보나.. 부럽기도 하지만.. 힘든 객지생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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