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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미디어 전략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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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미디어 전략을 모색한다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미디어의 발전이 필요하다

오병일 / 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편집자주 : 그녀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방문은 지난 해 5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개최한 “‘다른’ 미디어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국제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한 것이었고, 이번 방문의 목적은 강연과 자신의 연구 활동을 위한 것이다. 공동체 미디어 활동가 도로시 키드를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오병일 :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도로시 :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미디어 연구(Media Studies)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오래동안 미디어 활동가로 일해왔다. 1970년대 초반에는 캐나다의 사회적 이슈를 비디오로 기록하는 작업을 했고, 90년대에는 주로 공동체 라디오 운동을 했다. 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AMARC)에서도 일했는데 여성 운동에 대한 프로그램을 교류하는 일이었다. 최근에는 미디어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병일 : 이번이 한국에 두 번째 방문인 것으로 안다. 그동안 한국의 미디어 운동에 대해서 많이 접하였을텐데, 해외의 미디어 운동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도로시 : 내가 받은 느낌은 매우 빨리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운동의 역사는 짧지만 세련되어 있고 기술적으로도 매우 앞서있다.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한국은 초고속 통신망이 집중되어 있고 값이 싼 장비들이 많아 제작 장비에 대한 접근도가 높다. 한국에서 좋은 작품들이 매우 많이 나오고 있다고 본다.

둘째는 한국의 사회운동이 매우 활발한데, 진보넷이나 독립 미디어가 생산한 작품을 통해 주요한 사회 운동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에 전념하는 독립 미디어 제작자의 비율이 아마도 세계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것 같다. 물론 이건 통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내 느낌일 뿐이다. 한국은 세계 다른 나라에게 가르칠 수 있는 점이 많다고 본다.

또 다른 면에서 한국은 매우 동질적 사회여서 그런지, 단체들 사이의 연대 관계가 밀접하다. 예를 들어, 미디어센터, 독립 영상 단체, 진보넷, 노동운동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일정하게 여성운동이나 이주노동자 운동과도 연결되어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사회 영역간의 분리가 주된 문제이다. 어쨌든 내가 한국의 미디어 운동에서 받은 느낌은 매우 긍정적이다.

오병일 : 부정적인 측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도로시 : 독립 미디어 운동이 사회 정의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활동을 유지하는 지속가능성을 갖기는 쉽지 않다. 돈을 구하기 힘들고, 그래서 정부나 영리적 기업에 의존하지 않기 힘들다. 물론 이것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겪는 어려움이다. 한국은 상업 영화 산업이 강한 편인데 그래서 영화 제작자들이 상업 영화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미디어 센터 역시 정부와 협력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할 것인가, 사회적 가치의 측면에서 급진적 입장을 견지할 것인가하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공통의 과제이지만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오병일 : 미디어 운동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느낌에는 한국에서는 지역 기반의 미디어 운동이 약한 것 같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는 공동체 라디오와 같은 운동이 활발한 것 같은데...

도로시 : 내 느낌에도 한국은 지역 기반이 약하고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인 것 같다. 나 역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사회의 발전 양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서울은 매우 빠르게 개발되었고, 남미의 다른 나라도 그렇기는 하지만 속도나 규모에서 서울과 같지는 않다. 남미에서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그들은 자신의 집을 스스로 지어야 한다. 국가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프라도 구축해야 하고, 물도 만들어야 하고, 이런 것들을 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한다. 많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이런 곳에 기반하고 있다.

지난 해에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아워미디어(OurMedia)’라는 회의를 했는데, 그때 우리가 방문한 라디오 방송국은 스쿼터(땅이나 건물을 점거하여 정착한 사람들)들의 공동체였다. 그들은 집단적 조직화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컴퓨터 센터를 만들고, 탁아소를 만들고,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었는데, 이들 모두는 공동체 인프라의 일부이다. 콜롬비아와 같이 내가 방문한 중앙 아메리카도 비슷하다.

오병일 : 당신이 자율(Autonomy) 운동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자율 미디어 운동의 개념에 대해 소개해달라.

도로시 : 자율(Automomy)는 그리스어에서 왔는데, 영어로는 ‘무엇으로부터 독립적인 것(to be independent of)’, 그리고 ‘자기 통제적인 것(to be self-directed)’을 의미한다. 내가 이해하는 자율 미디어(autonomous media)는 ‘민중 스스로가 통제하며, 기업이나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부터 독립적인 미디어(media that is self-directed by people themselves and distinct from financial backing of corporation and state.)’를 의미한다.

상업 미디어의 프로그램은 주로 무료이지만 시청자들을 광고로 이끈다. 그들은 주로 광고 판매에 기반한다. 자율 미디어는 민중의 투쟁과 인간 개발을 지원하는 것에 기반한다. 자율 미디어는 정부로부터도 독립적이다. 국영 방송국은 미디어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한다. 때때로 컨텐츠 측면에서 상업 미디어보다 낫지만 국영 미디어는 시스템을 위협하지도 않고 시스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다루지 않는다. 자율 미디어는 이런 것들과 구별된다. 그것은 민중들 스스로에 의해 통제된다.

자율 미디어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전문적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진보넷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보 운동에 대한 관심이나 협력적으로 일하는 방식 등이 전문성만큼 중요할 것이다. 상업 미디어나 국영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그들의 전문적 역량에 의해서 평가된다.

오병일 : 자율 미디어가 주류 미디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도로시 : 나는 자율 미디어가 세 가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우선 자율 미디어는 자신의 미디어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더 좋은 질의 작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며,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관점을 가지고 주류 미디어를 압박하는 것이다. 항상 상업 미디어와 국영 미디어에 비판적이어야 하고, 그 내에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자율(autonomy)’이 ‘분리(separate)’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하는 ‘관점’일 뿐이다. 우리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과 함께, 주류 미디어가 더 많은 공공채널(Public Access Channel)을 제공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또한 상업 미디어가 덜 선정적이 되도록, 덜 국가주의적이 되도록 비판해야 한다. 국영 미디어도 더 많은 대화와 시민들의 토론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시민사회 내에서 토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토론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간은 이미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하고 있는 사회 운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오병일 : 상업 미디어에 공공 채널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소유권 문제도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도로시 : 동의한다. 나 역시 우리가 상업 미디어의 소유권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모니터 그룹과 같이 다른 단체도 이런 제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서 문제제기해야 한다. 즉, 상업 미디어가 공중에의 접근을 무료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중파를 사용하고 있으며,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결국 세금을 낸 시민들의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보조금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연구하고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거대 미디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되돌려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 한국의 통신 관련법은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누구도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정해진 시스템일 뿐이다. 상업 미디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매우 무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오병일 : 자율 미디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역 공동체가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어 혁명을 지원했던 베네주엘라 사례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연대를 이끌어냈던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사례는 어떠한가?

도로시 : 베네주엘라의 경우 완전히 자율 미디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차베스 정부가 지역 공동체 미디어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도 차베스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닌데, 차베스 정부는 아직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많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내가 베네주엘라에 가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알고 있다. 어떤 자율주의자들은 베네주엘라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역 공동체 미디어가 차베스 당의 연장이라고 본다.

사파티스타는 자율 미디어의 사례에 가깝다고 본다. 사파티스타는 몇 가지 점에서 뛰어났다. 하나는 주류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반대 캠페인에 많은 사회단체들이 조직되었는데, 사파티스타는 그 네트워크를 투쟁에 잘 활용하였다. 그러나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의 미디어 발전은 매우 불균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디어는 치아파스의 공공 회의, 작은 모임들, 그리고 라디오 등이다.

오병일 : 자율 미디어의 다른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도로시 : 좋은 사례는 아르헨티나이다. 지난 2-3년간 자율 미디어의 발전이 있었다. 노동자의 투쟁과 공장 점거, 이웃 지역의 투쟁에 대한 지원 등이 있었고, 아르헨티나의 독립 미디어가 그들과 많은 일을 함께 했다. 진보넷 역시 자율 미디어의 사례이다. (웃음) 왜냐하면 상업 미디어나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니까. 사실 이런 사례들은 매우 많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율 미디어에 대한 나의 사고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단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로부터 나온 것이다.

오병일 : 인디미디어센터(IMC)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성공과 한계는 무엇인가?

도로시 : IMC 이전에 서구에서는 고립된 공동체 라디오, 고립된 영상 활동가, 고립된 뉴스 저널리스트 등으로 존재했다. IMC는 이러한 서로 다른 독립 미디어가 하나의 기반에 모일 수 있도록 하였다. IMC는 서로 다른 사회운동을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130여개의 IMC 사이트가 있고,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훨씬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있다. 나는 IMC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버넌스(정책 결정 및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고, 서구의 젊은 남성이 지배하는 구조라는 점점 커가는 문제가 존재한다. IMC가 해결해야할 문제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인데, 재정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원활동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 시간을 낼 수 있는가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나는 자원활동 구조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북미 사람들은 라디오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치아파스같은 다른 저개발 지역에서는 인터넷은 라디오만큼 중요하지 않다. 각 지역의 역사적 맥락의 중요성을 종종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IMC의 문제는 일부는 사회적인, 일부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본다.

오병일 : 최근 한국에는 저작권 문제가 뜨거운데, 독립 미디어 제작자는 저작권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도로시 :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는 못한다. 두 가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공정 이용의 개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그 영역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미국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보상받고 있지 못한데, 우리는 그들의 투쟁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작가로서 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내 저작물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 나는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기를 원한다. 반면, 나는 내 저작물에 대해 정당한 지불을 받을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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