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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공산주의가 땡길 때도 있다

녀석과 나는 15년 친구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녀석과 나는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2를 하면서 친해졌다. 학교가 끝나면 줄창 오락실로 향했고 주말에도 만나서 놀았다. 주말에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목욕탕에 같이 가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갈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서울로 가기 전까지는 아마도 거의 매주마다 일요일은 녀석과 내가 목욕탕을 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군대를 간 이후 백일휴가 때 이외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제대하고 난 이후에 연락을 했다. 역시나 우리는 목욕을 함께 했고 맥주를 한 잔 하러 갔다.

 

매일 마다 새벽 3시에 일하러 가고 오후에는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 일을 하는 녀석은 맥주라도 한 잔 들어가기 전에는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일하다가 휴가를 냈을 때 바닷가에 놀러가서 수영 강사를 하던 아가씨들이 꼬였었다는 둥, 초등교육 시절부터 역시나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놈이 요즘은 완전 개판이 됐다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역시 맥주가 들어가니까 달라졌다.

 

역시 우리의 이야기는 취업이었다. 녀석과 녀석 주변도 역시 일자리가 없었다. 눈높이를 낮춘다는 개념도 성립되지 않았다. 2년제를 취업자리 때문에 일부러 졸업하지 않고 있는 녀석에게서 처음으로 고단함이 풍겨나왔다. 도대체 왜 요즘 세상은 할 일도 만들어주지 않는 건지를 의문하는 녀석의 의문은 정당했다. 잘 사는 사람들은 가면 갈 수록 잘 살게 되는데 왜 내 주변은 가면 갈수록 못 살게 되는지를 말하는 녀석의 분노는 정당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이 안 되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서 쓰게 웃는 녀석의 웃음이 씁쓸했다. 녀석이 말했다.

 

"차라리 요즘엔 공산주의가 땡길 때도 있다. 공동분배 하는 거. 적어도 이렇게 생존이 보장이 안 되지는 않을 거 아니냐. 물론 문제야 있겠지만......"

 

:::붙임:::

 

학생운동이건 사회운동이건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이 26년을 자본주의 천하에서 살아온 청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전적으로 이 사회를 사람이 못 살 곳으로 만들어 놓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책임이다. 공산주의라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배워 온 젊은이가 갑자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좌파가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역사는 점점 더 진보해왔지만, 세상은 요 10년 간 정말 끈질기게 나빠져왔다.

 

:::붙임 2:::

 

지각이 있고 정신이 박힌 청년이라면 신자유주의 천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깃발 하나를 세우는 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다. 더럽게 잘 살아서 미래의 엘리트로써 평생을 살아갈 젊은이들이 아닌, 신자유주의 세상에 살아가는 자체를 힘겨워하는 청년들이 지켜보고 모여들 깃발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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