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대략 일기장이라고 해야 할 듯

5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5/14
    요즘의 일상.
    이스
  2. 2010/01/11
    2010/01/11
    이스
  3. 2009/12/27
    이젠 진짜 연말이다.
    이스
  4. 2009/11/01
    2009년 11월 1일
    이스
  5. 2009/07/10
    2009/07/10(1)
    이스
  6. 2009/07/06
    또 다시 사건 나는 건가?
    이스
  7. 2009/05/11
    빈곤과 불평등에 맞서는 2009 학생포럼 - 대학, 비정규노동을 말하다
    이스
  8. 2009/02/27
    돌아다니다가
    이스
  9. 2008/10/23
    2008 노동사회포럼 - 대학, 비정규 노동자를 만나다
    이스
  10. 2008/06/02
    노무현이 이명박이고 이명박이 노무현이다!
    이스

요즘의 일상.

1.선거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상대로 한 '비정규직 없는 학교 만들기' 정책 협약식.

 

어찌 보면 참으로 얄팍한 수단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되는데, 그 진보 교육감이 진보적일까 과연 싶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미리 명분 만들고 발목 잡아두겠다는 속셈.

 

그놈의 진보 교육감이라는 사람이 나중에 딴소리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 상대로 교섭 요구 지속한다는 전제 조건.

 

사실 매우 골치아프긴 한데 현장의 힘 없이 진행될 상층부 사업인지라.

 

추진하면서도 사실 마음 한 구석은 조금 쓰다.

 

지자체 선거. 질의서 다 날리고, 요구 투쟁 조직하겠지만.

 

미약한 조직 상황에서는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 힘. 힘. 힘. 결국은 쪽수. 결국은 힘.

 

 

2. 투쟁.

 

해고, 징계.

 

아시아나격납고의 집단해고. 신목고등학교의 집단 징계.  솔바람어린이집의 집단해고. 충무아트홀의 표적 해고.

 

현장의 단결. 현장의 힘으로 사측을 뚫을 수 있는 힘이란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

 

반면에 그것이 불가능한 중소영세사업장의 투쟁이란, 얼마나 답답한 것인가.

 

힘으로. 힘으로. 결국 힘으로 이길 수 밖에 없는데.

 

그 힘이라는 게 만들어지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이란.

 

결국 해답은 조직화, 의식화. 끝없는 과정일 뿐이라는 너무나 정답 밖에 없는 그런 것.

 

 

3. 노조법 개악, 민주노조 사수.

 

우리는 너무나 짧은 시야를 보고 있고.

 

당장 눈 앞에 닥쳐와서도 우리의 힘을 핑계로, 우리의 미약함을 핑계로.

 

그렇게 물러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과연 하나의 조직인가.

 

현장을 조직하는 지역지부, 산별을 총괄하는 산별노조, 모든 노동자 운동의 구심으로서의 총연맹.

 

하나로 힘을 모아 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을 조직하고, 자본이 설정한 한계를 깨어나가야 하는데.

 

정해진 금 안에서만 놀아야 하고, 그렇게 놀지 않으려면 위축이 되는 지금이.

 

이대로라면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것은 너무나 요원해지는 게 아닐까.

 

민주노총 소속이라고 민주노조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것처럼.

 

자본이 설정한 한계를 깨지 못하는 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은 고사하고

 

민주노조, 민주노총 조차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이 설정한 한계를 깨고 나가자는 결의를 하나로, 하나로 모아가야 하는데.

 

다 각자 살 길에 바빠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4, 독서.

 

책을 요즘 전혀 손도 대지 않다가 밥과 장미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동아리 선배이자 나름 친해진 형이 저술한 책이다.

 

내 인터뷰도 들어 있고, 현장 노동자 인터뷰도 다 있다.

 

현장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결코 즐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현장의 삶을 온전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나는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부침과 고통을 받아 안으면서 조심스럽게 읽어나가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금융 자본을 통제하는 민중의 투쟁.

 

하지만 결국, 현장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일 수 밖에 없는 것을.

 

그러나 현장을 조직하면서 이념과 운동이 없이 조직한다는 것은 정말로 더 큰 공염불인 것을.

 

이념이 실종된 운동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이론서도 서서히 손에 들어야 하겠다.

 

매일 법만 보고 살 수는 없다.

 

 

5. 솔로?

 

20대 때는 연애하냐라는 질문이 웃으면서 "아, 나도 여자가 그리워" 따위 시시껄렁한 농담거리였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보고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사귀는 아가씨는 있냐.

 

그런데 매우 진지하기 그지 없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일장 훈계를 늘어놓는 아저씨도 있다.

 

어느덧 그런 것들 하나 하나가 진지해져야 하는 나이인가보다.

 

만인을 위한 투쟁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마지막에는 혼자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 사회 속에서 사실 결혼? 뭐 그런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는 건 이 나이를 넘어서면 어려워진다는 그런 거지.

 

물론 그런 것 자체가 사실 누구에게나 기적같은 일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사실 그런 데 어느 정도 마음이 쓰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쓰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나한테는 사치일 것 같아서.

 

그 주제에 술만 처먹으면 왜 여러 사람 민폐나 끼치는지 원......

 

학교에는 이제 그만 가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11

벌써 7개월째를 맞는 어느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투쟁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그 동지는 정말 힘들어 했었다.

 

그 동지는 정말 지긋지긋한 곳에서 외롭게 해고 당했고, 정말 지긋지긋한 곳을 돌아가기 위해 싸웠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든 투쟁의 조직은 잘 되기 힘들었고.

 

투쟁 계획을 내는 것도 버거웠고, 그 동지는 아팠다. 된다는 희망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좀 쉴 때라고 입 밖에 누군가 내기는 쉽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에 어느 샌가 그 동지는 스스로 그 투쟁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 없이.

 

힘겨워 하면서 그렇게 꾸역꾸역 투쟁은 진행되어 왔다.

 

 

 

 

오늘 그 동지는 이제 더 이상 투쟁을 진행하기 보다는 쉬고 싶다고 말했고.

 

그 자리에 있던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같이 먹는데 밥이 밥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밥을 잘 안 먹은 것도 아니다.

 

그 집 음식이 그렇게까지 맛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짜,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밥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약속이 없어서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그 동지는 술을 마실 몸 상태는 아니었고 나도 술은 그닥 먹고 싶지 않았다.

 

난 실컷 잡담을 하면서 억지로 웃었고, 딴에는 대단히 재밌는 얘기를 하면서 웃기려고 했다.

 

 

 

그 동지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항상 옆에서 함께 했던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게 미안했다고.

 

나이가 훨씬 많은 자신이, 나를 배려하지 못한 게 미안했다고.

 

 

 

난 그냥 듣고 있다가 또다시 농으로 풀었다.

 

그 동지는 말하면서 울었지만 내가 농이라도 하면서 풀지 않으면.

 

내가 울 것 같았다.

 

몸 관리 잘 하라고, 푹 쉬라고 말했지만.

 

물론 오늘이 끝이 아니겠지만.

 

그 동지나 나나 마음으로는 이제는 끝을 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흘러나온 지금.

 

이젠 더 이상 그 동지를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잡는다는 게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한 것이다.

 

 

 

사람이 하는 운동이고 사람이 하는 투쟁인데,

 

물론 그녀가 힘겨운 건 정권과 자본의, 참으로 개같은 놈들 때문의 개같은 폭력때문이 원인이지만.

 

희망을 갖지 못한 채 7개월간 자신의 투쟁의 의미만으로 그렇게 싸워온 동지의 어깨에는

 

물론 그 동지의 모든 투쟁에 함께 했고 조직하고 기획하고 집행했던 나보다도.

 

더 큰 책임감이 돌덩이처럼 얹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정말 힘들었고, 그 마음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는가.

 

 

 

물론 그 동지가 인간적으로 훌륭하다거나, 모범적인 활동가였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까지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고 조용히 살았던 사람이 노동운동이라는 새로운 길을 봤을 때.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구나.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멸시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꿈을 꿀 수 있구나.

 

내 투쟁이 정말 이렇게 의미있는 일이었구나 라고.

 

그렇게 느꼈던 마음이 있기에 그녀는 계속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에 데려다 주고 홀로 걸어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내가 무엇을 했나 싶은 생각과 함께 그 사람의 힘겨움을 뭘 이해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속이 답답하고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머리 속에 무슨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서 끊임없이 담배만 피워대며 길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 동지를 만나서도 웃을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겨워 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만날 때 나는 웃을 것이다.

 

 

 

 

 

 

 

정말 힘든 몸과 마음, 그리고 상처를 껴안고.

 

이제껏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동지가 있어서 많이 배웠고 우리의 투쟁이 그래도 아름다웠습니다.

 

후회는 없는데 아쉬움은 계속 남는다고 말했었지요.

 

그토록 서러움과 아쉬움 속에서 싸워왔던 날들이었습니다.

 

더 많이 힘이 되어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활동가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정말 많이 미안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동지.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젠 진짜 연말이다.

서른이 되기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번 연말에는 진지하게 내 인생을 한 번 돌이켜보고 생각 한 번 해 봐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사실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그냥 한 번 연말 기분 내면서 잡설이나 휘갈겨 써 보는 것 이다.

 

일단 지금 나는 서른이 다 됐고, 직업은 노조 상근자에다가, 맡은 일의 경우 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지부 생활 1년 6개월이 넘어갔는데 이것 저것 배운 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배운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기 그지 없지만 그나마라도 좀 나아진 게 있지 않을까?

 

단지 실무나 조직이나 운동의 현실 등에 대해서 배운 것 이상으로 그건 좋은 재산일 게다.

 

2009년 한 해.

 

스스로의 무능과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하며 살아온 한 해였던 것 같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진 모습으로 활동할 수 있겠지. 그나마의 낙관이다.

 

 

 

 

올해 가장 반성이 되는 건 사람이다.

 

생각보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그들에게 그닥 좋은 사람이 되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 그지 없다.

 

오래된 관계, 어려운 관계 할 것 없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텐데.

 

내가 별로 좋은 놈이 못 되다 보니까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못 된다.

 

마음 써주지 못하는 것, 마음이 쓰이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있거나.

 

아니면 까딱 잘못해서 실수하거나. 그게 내가 지금껏 관계에서 맺어온 모습인 것 같다.

 

맡아서 싸우고 있는 사업장이나, 해고자 동지에게도 좀 더 인간적이면서도 투쟁에 대해서 원칙적이고, 힘있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참 다양한 관계에서 다양한 접근을 못하다 보니 항상 부족함이 생긴다.

 

아니면 내 사려가 부족해서 던가, 어쨌든 내가 맺는 인간관계라고 하는 게 사실 긴밀한 관계가 별로 없다.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게 나였다.

 

내년에는 좀 그런 면을 보완해 가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어쨌든 지금처럼 표면적인 관계를 넘어서려는 내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전망을 서서히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당분간은 쭉 이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더 많이 경험과 실력을 쌓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당분간은 생각보다 길고, 적어도 2010년은 넘어가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뭐랄까, 평생동안 노조 상근 간부로만 일하면서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바닥에서 자신의 캐릭터성 하나 없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되지도 않는 날백수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다.

 

구체적인 전망은 아직 하나도 그려진 게 없지만, 뭔가 다른 걸 그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항상 현장진출이라는 것에 대해서 마음 한 구석의 고민이 있었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항상 새로운 관계를 맺고 내가 그 관계를 헤쳐나왔던 과정을 볼 때 영 스스로도 미덥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현장에 간다는 건 단지 돈 벌러 가는 것 밖에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고민.

 

그리고 돈만 벌려면 내가 뭐하려고 힘든 일을 하면서 돈을 벌까. 편한 일 하면서 돈 벌 생각이나 하면 되지, 뭐 그런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물론 현장에 가서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만.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하나의 실험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내년 한 해로 정리될 만한 고민은 아니고 고민보다는 실천이겠지만, 어쨌든 생각은 계속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다.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겠다.

 

이제까지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큰 변화던 작은 변화던 새로운 방식의 삶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게 뭐가 될 지는 모르겠다.

 

 

 

 

이젠 40살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물론 딱 잘라서 난 이때 뭐가 되어 있을거야 같은 게 아니라.(그런 건 애시당초 생각할 수 없고)

 

대략적인 목표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야 될 때라는 게다.

 

어쩌면 벌써 그런 생각을 가졌어야 하는데 말 그대로 혹자가 표현하듯 "쫓기면서" 살아서 그런지

 

그런건 별로 생각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 걸 잘 고민해 봐야 하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년 11월 1일

나는 적잖이 은근히 감상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일해야 하고 일을 하고 있었지만 괜스레 씁쓸한 생각만 든다.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까지 어찌 살아왔나를 되돌아 보면 참으로 씁쓸한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더 잘 살아야 할 터인데.

 

긍정적인 생각만 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인가.

 

도대체 그 정체는 무엇인가. 그럴 만한 일이 없었는데. 왜 이런 마음인 것인가.

 

무슨 날이건 간에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만한 준비가 있어야 되나 보다. 내 준비건 남의 준비 건 간에.

 

나는 남을 위해 행복하게 할 준비를 별로 안 하고 살아서 그런지 오늘이 그런가 싶구나.

 

부디 오늘 이후는 행복한 하루, 잘 풀리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이리 답답한 마음은 그만이었으면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10

남이 만들어 준 판을 가지고, 그 판에 머물러서 그 판 대로만 활동하고 있는 한 활동의 미래는 없다.

 

또한 그 판이 영원히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면 그 판을 어떻게든 더 나아가기 위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1년 간 내가 해 온 활동들은?

 

현장에만 매몰되었던 것인가?

 

실제로 지부의 전망이라는 커다란 과제는 남의 활동으로 돌리고 있지 않았던가?

 

투쟁 한 두개 잘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 중요한 판에서 채용 상근자들은 사실은 없는 것과 그다지 진배 없었다.

 

이것 저것 일을 더 하겠다고 해 왔던 건 그런 말을 하기 위한 신뢰를 만들어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신뢰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만 생기는 게 아닌 걸 지금은 똑똑히 알겠다.

 

나 혼자 살기에도 정신없어서 하루 하루를 그냥 보내고 있는 지금 무슨 전망을 논할 수가 있는 걸까.

 

아마 함께 하는 누군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무에만 치여 있다간 결국 나중엔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러다가 서서히 망가질 거라는 말이 대단히 뼈아프게 들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또 다시 사건 나는 건가?

 

총학생회장, 정치대 학생회장과 함께 연행되었다. 집시법 위반이 혐의인데, 몇 년 전 처럼 국가보안법으로 엮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 당시 2명의 동지가 불시에 연행되었고 나를 포함한 3인의 동지들이 수배 비슷한 상태에서 학교에 갇혀 살았다. 그 때 상황과 너무 똑같아서 매우 답답한 마음이다.

이 미친 정권에서 살기 너무 힘들다. 개같은 대한민국,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생겼다.

 

 

또 대공분실로 연행, 이명박 퇴진은 필연이다.


2009/07/06 05:21



 

5일 오후 6시40분 경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과 정치대 학생회장이 비슷한 시각 동떨어진 장소에서 거의 동시에 연행되었다. 몇 시간 뒤 건국대 생활도서관 대표 학생도 연행되었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들이 연락해 온 장소는 홍제동 대공분실.

 

 

홍제동 대공분실은 87년 박종철 열사를 고문으로 죽게 한 대공3계가 89년 이전한 악명 높은 곳이다. 07년 남영동 대공분실이 없어지면서 보안3계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잠원동과 더불어 홍제동은 공안기관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95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성신여대 총학생회장, 94년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을 포함한 고대, 성균관대 대학생 11명을 구속 수사한 곳이다. 02년 공안기관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민족민주 혁명당’ 사건을 담당하기도 했다. 최근엔 08년 촛불 문화제에서 공연을 한 가극단 미래 대표가 이적단체 혐의로 조사를 받은 곳이다. 가극단 미래 기획실장과 음악감독의 인준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충성 서약식’ 07년 극단 대표가 친구 누나 결혼식에서 부른 ‘지침서’란 노래가 북에서 지령을 받은 지침의 노래로 둔갑되었다.

 

홍제동 대공분실은 건국대 학생들과 악연이 깊다. 02년 건대학생들은 깡패 400여명이 동원된 안암동 재개발지역 철거 폭력사건에서 부상당한 철거민들을 등에 업고 빠져나와 병원에 입원시켰다. 당시 화염병을 직격으로 맞아 철거민이 온 몸에 화상을 입었고 건국대 한 학생은 낫에 발등을 찍힌 주민을 업고 탈출했다. 1년 뒤인 2003년 ‘홍제동’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자신의 소속을 밝힌 사람들에 의해 그 건대 학생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6년 뒤인 09년 홍제동 공안분실 망령이 건국대를 또 덮쳤다.

 

경찰은 7월10일까지 공안사범 100인 검거 작전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현재 검찰청장 천성관 내정자는 98년 울산 영남위원회 조작사건의 지휘자, 용산 폭력 참사 은폐 조사 담당자, PD 수첩 과잉 조사 책임자인 공안검찰의 대부이다. 이명박 정권의 이 같은 공안 정국 조성 기조에 비춰보면 이번 건대 대표자 연행 또한 반이명박 죽이기의 한 흐름이다.

 

25일 김하얀 (전)홍익대 총학생회장 연행, 29일 시국선언 전교조 위원장 포함 17명 연행, 29일 민주노동당 중구위원회 부위원장, 사무국장 연행 30일 민주노동당 김정동 비정규직국장 연행 및 구속, 5일 건대 대표자 3인 연행

 

경찰의 공안 사범 검거 100일 작전 발표 후 MB 폭탄이 쉴 틈 없이 터지고 있다. 가끔 그래도 대통령인데 사과하고 개과천선하면 한 번 더 믿어 줄까? 하는 약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이었는지 지금 똑똑히 알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온라인에 글 쓰는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엄습한다. MB 퇴진은 이제 필연이다. MB의 진심어린 사과를 포기했다면, 아니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내각 총사퇴가 되도 믿을 수 없다면 이제 남은 것은 MB 퇴진 운동뿐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온라인에 글쓰기든, 서명이든, 집회든, 국회 투쟁이든 모든 말이다. MB 정권은 장난이 아니다. 오늘 집에서 사무실에서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내일은 대공분실에 갇히는 구속자가 될 수 있는 MB 시대다.

  MB 시대 초등학생도, 국회의원도 모두 연행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빈곤과 불평등에 맞서는 2009 학생포럼 - 대학, 비정규노동을 말하다

관심있는 많은 동지들의 참가를 바랍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돌아다니다가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 김남주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 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 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 금방 이겨 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 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 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 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승리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 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 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 ----------------------------------------- 좋은 시는 퍼 오는 습관이 있다. 나는 아직 이 시에 나오는 주인공 정도로까지 살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서 끝까지 투쟁하는 것이, 혁명의 시기가 아니라 야만의 시기가 다가오는 지금 더욱 절실한 무언가리라고 생각한다. 야만의 시기, 단 한 줄기 희망을 갖고 투쟁할 수 있는 용기를 내 스스로에게 심어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 노동사회포럼 - 대학, 비정규 노동자를 만나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이 왔으면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이 이명박이고 이명박이 노무현이다!

1. 노무현이 그립습니다?

 

노빠들이 설치는 건지 아니면 대중들이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대중 이데올로기로서 그대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아고라만 봐도 벌써 이런 내용의 글이 검색 수위를 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 당신이 그립습니다?

 

사람들은 노무현 시대가 끝나고 이명박이 되면서 독재 시대가 다시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생각에 정권의 유지를 위해 시민을 구타하는 사태는 전두환 이후 최초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더 웃긴다. 그럼 예전에 평택 군사기지 문제나 이랜드 노동자들 문제라던가 아니면 노무현 때 협상을 대강 완료한 한미FTA 투쟁 그 때 시민들을 개 패듯이 패고 끌어내거나, 연행했던 건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아, 걔네는 운동권이잖아?"

 

그렇다! 이 사람들의 뇌 속에 운동권은 시민이 아니다. 그러니까 노무현은 시민이 아닌 운동권을 패고 연행한 것이니까 독재가 아니고 이명박은 시민을 패고 연행하니까 독재다? 물론 이는 사실관계에도 어긋나는 짓이다. 노무현이 팼던 것이 진짜 운동권만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이것이 대중들의 대가리에 든 생각이다.

 

 

2. 노무현과 이명박, 그들의 차이는 오직 기만과 억압의 차이일 뿐

 

그리고 쟁점이 광우병 쇠고기로 휘발되지 않고 이명박 퇴진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노무현의 "귀환" 을 연상하는 듯한 글들이 마구 올라오고 대중적 이데올로기 속에 작용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 범해왔던 속칭 "개혁정권" 이 범했던 신자유주의적 죄과를 완전히 가려버리는 것이다. 정치의 스킬 처럼, 정책의 이름만 달랑 바꾸고 천천히 진행하고 이슈 파이팅 잘 하면 된다는 식으로, 사람들은 또 다시 속는 것이다.

 

이명박이 진행하려 했던 공기업 민영화, 물론 노무현은 하지 않았다. 왜 하지 않았냐고? 이미 김대중이 한 번 시도하려 하였으나 그 당시 강경했던 공공 3사 파업(철도, 가스, 발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과 더불어서 소요 사태가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이 문제는 굉장히 뜨거운 감자가 되었지만, 노무현은 민영화를 한다기 보다는 공사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단지 "민영화" 를 하여서 사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기업" 으로서 자본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교통비는 이전에 비교해서 2배 가까이 올랐고, 공기업 노동자들은 하청으로 밀려나고 구조조정(해고)을 당했다.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에 다름 아니었으며 조삼모사 식의 정치였지만 바로 여기에 대중들이 속았다.

 

더군다나 한미 FTA나 평택 군사기지화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 노무현이 쇠고기 협상 때 20개월 미만 소만 수입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국민의 건강을 챙긴 대통령으로 갑자기 거듭나고 있는 이 웃기지도 않은 꼴은 반드시 타개되어야 한다. 문제는 쇠고기 그 자체에도 있지만 한미FTA 그 자체도 문제가 있다. 20개월 미만 소만 수입한다고 해서 광우병 잠재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지만 한미 FTA를 통해서 축산농가를 위시한 산업들이 미국 농기업 시스템에 실로 완전하게 잠식되었을 때가 더 위험한 것이다. 지금도 이미 미국식 농업 쫓아가기 바쁜 상황에서 육골분 사료를 위시해서 미국에서 생산된 사료를 안 먹인다고 장담하기는 힘든데, 한미 FTA는 이러한 상황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한우라고 해서 결코 안전하지 않다.

 

더군다나 한미 FTA는 크게는 금융시장의 개방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데, 이는 정확하게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확대와 명확하게 연결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문제다. 즉 쇠고기만이 아니라 한미 FTA 그 자체가 문제이고 이를 추진한 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이다.

 

또한 평택 사태를 보자. 이 당시 노무현은 자주국방을 운운하면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말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었지만 이는 실상 완전한 거짓말이다. 용산 미군기지니 어디니 하는 육군부대 철수를 주장하는 듯한 액션을 취하면서 벌였던 이 일은 노무현이 미국에 주장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 자체가 미국의 뜻이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이 먼저 그렇게 해달라고 한 거고 노무현은 시키는 대로 하면서 국민들에게 자주국방이 어쩌고 사기친 것이다.

 

이를 증거하듯이 노무현은 평택에 미군기지를 확장하기 위해서 거기 살던 농민들을 경찰 폭력을 동원해서 내쫓았고, 평택의 미군기지는 이제 육군 부대가 아니라 공군과 해군을 중심으로 한 공격부대의 성격을 가지게 되도록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종속을 강화하는 것이고 동시에 노무현의 자주국방이 완전한 거짓말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공격 군사기지 지역이 가장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국민의 전쟁으로부터의 안전을 그대로 미국에 팔아먹은 짓거리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비정규 악법의 경우 비정규직이라는 직군을 온존화 시켜버리고 시민의 일터를 차별과 착취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대표적인 악법이다. 기간제 법은 기업이 노동자들을 2년에 한 번 씩 해고로 돌려막게 만들었고 파견법의 경우 파견 직종을 100개 가까이 늘려버렸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것이냐고? 대학생들의 청년실업이 더 심각해진다는 뜻이다. 이태백과 사오정이 더 심해진다는 뜻이다. 5% 미만의 엘리트들 말고는 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것이 노무현이 한 짓이다. 한나라당 혼자서, 이명박이 한 짓이 아니라 바로 노무현이 저질러놓은 짓거리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과의 차이는, 노무현은 거짓말을 잘 했고 이명박은 자기네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줄 알고 거짓말 안하고 밀어붙인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명박이 좀 더 머리가 나빠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지만 실제 이들이 하려고 했던 짓은 별반 차이가 없다.

 

 

3.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그러나 대중운동 속에서 이를 파헤쳐야 한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는 속칭 어느 정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 싸움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다. 바로 지금과 같은 노빠들의 행태나 야 3당의 촛불시위 참여 등의 짓거리 등이 바로 그들의 새로운 복권을 가져올 수 있는 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같은 어처구니없는 이데올로기 상황 속에서 노무현을 위시한 "개혁주의자" 들의 정치적 복권을 철저하게 막아내야 한다.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의 정치적 복권을 막아내는 것 만이 아니라 이명박이 표상이 되었던 신자유주의의 흐름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역행하는 정치적 흐름을 조직해야 한다. 단지 집회에 참가한다고 해서 다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무현이 과거에 저질러놨던 짓거리들에 더불어서 이명박이 하는 짓거리는 실은 모두 같은 것이다! 노무현이 이명박이고 이명박이 곧 노무현이다! 이명박의 정책기조 전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하는 지금, 바로 지금부터 강고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대중운동 속에서, 인터넷 속에서, 현재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급진화 시켜내고 신자유주의적 흐름들 하나 하나를 파헤쳐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노빠들로 상징되는 개혁주의자들, 지금 비롯 촛불시위 속에 함께 섞여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그들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이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없는 근본적인 대책을 선전 선동함으로써 이니셔티브를 가져와야 한다. 물사유화 절대 반대! 한미 FTA 폐기! 비정규직 철폐! 교육시장화 폐기! 이 상황에서 일부라도 전진하지 못한다면 단 한치도 이룰 수 없는 요구들을 조직하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