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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Joshua Lee]시험을 치르고 나서
    Joshua Lee

[Joshua Lee]시험을 치르고 나서

  • 등록일
    2012/12/14 15:00
  • 수정일
    2013/02/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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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말고사가 끝났다. 시험기간동안 얘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공부법을 보며 많은 한탄을 했다. 많은 얘들이 단 일 등이라도 올리려고 공부하는 모습, 그리고 시험을 치를 과목을 외우고 있는 모습... 시험이 끝나 한가할 때 이 모습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외움으로써 성적을 잘 치르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왜 한탄했는가? 물론 외움으로써 하는 공부는 그 즉시는 성적이 오르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나서 외운 내용은 머리 속에서 그 동안 기억했던 많은 양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의 공부는 성적을 위한 것이지 지식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조건적 암기법은 각 학문에 어울리는 교육법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학문도 암기법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가 다른 학문들에는 지식이 없어 각 학문의 공부법을 모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회, 정치,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떠한 학문들보다 인문학에는 암기법이 치명적이라고 여긴다. 인문학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학문이다. 정치같은 경우를 보자. 정치는 개인이 갖고 있는 정치성향, 가치관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다르게 서술된다. 정치는 누구든 주관적이다고 여길테니 예시를 들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인문학 중 가장 객관적이라는 역사마저도 그 사람의 가치관, 역사관에 따라 다르게 서술된다. 역사가 주관이 들어간다고?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그 사람은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강하게 만들고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를 세계 열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그 나라의 한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2)그 사람은 우리나라에 그 나라의 힘을 앞세워 많은 이권을 챙겨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는 그 나라의 식민지로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한 청년은 그 사람을 암살했다.

 

 독자의 눈이 예리하다면 (1)번과 (2)번의 '그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것을, '한 청년'은 안중근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는 객관적이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인문학 중 가장 객관적이라는 역사도 주관이 들어간다. 이처럼 인문학은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수 밖에 없는 학문이다.

 이러한 인문학을 하나의 책만 가지고 왜 가르치는 걸까? 그렇다. 단 하나의 가치관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금괴틀에 찍힌 금들처럼 학교에서 똑같은 가치관을 갖도록 보이지 않게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인문학을 그 어떠한 학문보다 암기법이 치명적이라고 여기는 이유이다. 암기법은 당장은 효과있겠지만 학습에 흥미를 떨어뜨리며 학문의 목적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일등이라도 성적을 올리려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왜 한탄했는가? 교육은 공존과 인성을 가르쳐야지 경쟁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든 모두 소중하며 공존해야한다는 인식을 교육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머리를 짓밟으며 자신의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이 교육으로 얻는 것이 결국 무엇일까?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목적을 향해선 수단간 방법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하늘 위에서 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뿐이지 하늘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머리를 짓밟으며 전진한다면 몇몇 힘이 강한 자, 머리 좋은 자들만이 저 하늘 위로 올라갈 수 있을 뿐 우리 모두가 나아갈 수 없다. 서로 손에 손을 잡으며 하늘로 나아가간다면 우리 모두가 저 하늘 위로 나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홀로 하늘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모두 함께 하늘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그것은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