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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샀다.
그것도 무려 21권이나 충동구매로 샀다.
카드를 긁었다.하지만 택배로 배달된 소포를 뜯고 열어보니 책들이 가지런히 있었는 것을 간만에 느껴보니 책으로 인한 기쁨이 밀려왔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없이 살다. 예쁘게 포장된 책을 보니 마냥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이전에도 책을 사는 기쁨 읽을 것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이 압박을 빼고 책 표지만 봐도 즐겁다.
그래서 가장 가벼운 책 한권 안도현 시집의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집을 집어 들었다.
목차를 보고 간략히 쓴 글을 보면서 눈에 들어오는 제목과 싯구가 눈에 들어와 이 공간에 올려본다.
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안도현
지붕이야 새로 어엉을 얹지 않더라도
왼쪽으로 빼딱하게 어깨 기울어진 슬레이트면 어떠리
먼산 휜 눈 쌓일 때
앞 개울가에 푸른 풀 우북하게 자라는 마을에
나도 내 집 한 채 그려넣을 수 있다면
서울 사는 친구를 기다리며
내가 기르던 가치를 하늘에다 풀어놓고
나 이발관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누우리
시골 이발관 주인은
하늘의 구름을 불러모아 비누 거품을 만들겠지
이 세상의 멱살을 잡고 가는 시간 같은 거
내 몸 속을 쿨럭, 쿨럭 거리며 흐르는 강물 같은 거
빨래줄에 나란히 펼쳐 널어놓고
무시로 바람이 혓바닥으로 핥아먹게 내버려두리
내일은 사과나무한테 가서
사과를 땅에 좀 받아 내려놓아야지, 생각하다 보면
면도는 곧 끝날 테고
나 산모롱이를 오래오래 바라보리
문득 기적 소리가 들리겠지
그러면 풍경 속에 간이역을 하나 그려넣은 다음에
기차를 거기 잠시 세워두리
내가 머리를 다 말리기도 전에
기차는 떠나야 한다며 뿡뿡 울며 보챌지도 몰라
그러면 까짓것 보내주지 뭐
기차야, 영가 어슬렁거리는 밤길은
좀 천천히 다려야 한다, 타이르면서
내 친구는 풀숲을 더듬거리며 오리
길을 왜 사람이 없냐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이라도 그려보라 하겠지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예끼, 짐짓 모른 채 능을 걸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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