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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칼럼] 노동의 추억

  • 등록일
    2010/03/16 16:27
  • 수정일
    2010/03/16 16:27

노동의 추억

“군대 삼 년을 마치면 / 십 년은 군대시절 얘기를 한다 / 몇 달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왔다면 / 허구헌 날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얘기다 / 생각해 보라 그런데 / 우리에게 노동의 추억이 있는가 / 십 년 아니 삼십 년 노동을 해도 / 누가 그것을 그리운 추억이라 하는가 / 밥과 희망이며 목숨의 진한 흔적들이 / 어째서 아련히 돌아 보이는 추억의 누더기도 못되는가

백무산 시인은 「노동의 추억」이란 시에서 노동이 우리 삶에서 왜 자랑하고 싶은 추억이 되지 못하는지를 이렇게 아프게 묻고 있다. 어째서 노동이 묻어버리고 싶은 아픔이 되고, 비굴한 치부가 되고 원한이 되는지 묻고 있다. 백무산 시인의 말대로 거기서 밥이 나오는 게 노동이고, 거기서 삶의 희망을 만나야 하는 게 노동이다. 노동도 군대의 추억이나 여행체험처럼 힘들었지만 한 인간이 성숙으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일하지 않고 치부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문제이지 노동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은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는 법이다. 문제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회구조와 노동 그 자체를 천시하는 태도에 있다. 그것을 바로잡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자 몸부림쳐 온 것이 노동운동이다.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은 농촌노동력이 도시의 공업지대로 이동하고 농업노동자들이 임금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주거환경과 작업환경은 열악하고 열두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허덕이며 어린이들까지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1870년대와 1880년대 미국에서는 철도종업원과 탄광의 광부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켜 무장충돌로 비화하기도 했다. 이때 미국노동자들이 요구한 핵심 중의 하나가 하루 여덟 시간 노동이었다.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벌어진 파업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 노동운동사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데 이 시카고 파업을 기려 5월 1일을 메이데이 May Day로 선포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하루 여덟 시간 근무도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싸워서 얻어 낸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결권, 교섭권, 저항권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의의 기본 원칙인 자유ㆍ보통ㆍ평등선거권, 여성의 권리, 사상과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도 노동자들이 한 세기 이상 싸우면서 얻어낸 것들이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그냥 주어진 것은 없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갈수록 빈부격차와 불평등과 양극화의 골을 깊게 하고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정과 비정규직 양산 등 사회불안과 생존위기를 심화시켜 간다면 노동운동은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의 지배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낳고 노동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소외를 부추기며, 국가의 장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의 흐름이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도 불사하려 한다면 노동의 저항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등을 지키려 할 것이다. 분배와 복지와 평등을 위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동운동이 백무산 시인이 말한 대로 어째서 ‘성숙의 기쁨’과 ‘전진하는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못 되겠는가. 오늘이 메이데이다. 노동의 추억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가장 값진 추억이어야 한다.    


2006년 04월 30일  중부매일 칼럼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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