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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이성의 중간....

  • 등록일
    2004/09/27 17:21
  • 수정일
    2004/09/27 17:21

주인장님의 글을 보고 잡생각이 들어 글을 날려봅니다.
 
난 감성과 이성의 중간으로 중용을 늘 선호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중용의 덕이란 허구임을 어느순간에서야 알았다.(사람이 좋다라는 말 착하다는 말은 일상적 용어로는 좋아보이나 인간의 살기가 느껴지는 운동판에서는 이 말 자체가 욕이라는 걸 알고 난 후 난 착하다 좋다라는 말을 듣기를 거부한다. 왜냐 난 그들의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내가 착한지 좋은지 나와의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나를  규정하는 말 자체가 싫으며, 착하다는 말 자체가 할말이 없어서 부쳐주는 말장난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기에 가능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핸 자긍심을 갖고 살아간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횡설수설하지만 이러한 행위 자체 또한
 내가 살아가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기에 누구에게 판단을 받고 싶지 않다. 나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 판단을 받아야 한다면 받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를 판단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건 내가 정치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감성에 치우쳐 많은 사람들과 함께가고자한데서 기인한다. 늘 나에게 조여오는 것은 사람들을 챙기기 보다는 기계적으로 인간을 대하고 이를 통해 일정정도 성과를 내고, 그 인간이 망가지던 아니면 운동판을 떠나던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들.... 이를 거부하기 위해 흑과 백의 이분법이 아닌 둘의 조화인 회색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 회색이 탈이 었었나 보다 내 주변의 인간들이 하나둘 떠나고 급기야 학교를 정리할 때는 그 인간들에게 일종의 배신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지껄이를 당했다. 처음엔 황당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못남을 탓하며, 그때의 행동에 대해 가슴쓰림이 든다.

이때 이후 난 어떻게 살든 오기로 운동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철저히 개인적 원한과 개인적 분노가 함축된채 운동이라는 행위를 지향하고 있다.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분노라는 것 자체 또한 나의 잠재된 힘이자 버팀목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기로 운동을 지향해왔다. 판단의 올바름을 떠나서 말이다.
 
난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살아가지 않았다라는 것 자체가 아니다. 늘 이 운동지형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일상의 정치적 판단이라 생각되어진다. 모르지만 알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것일 수 있으며, 정치적인 것 자체가 포괄적 성격보다는 일상적 소소한 행위 그자체를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운동을 지향하기전 난 한 개인이다. 감성과 이성이 혼재된 성격의 사람이다. 그러나 난 감성쪽에 방향을 많이 두었다. 왜냐하면 난 기계적인 이성적 성격의 선배들과는 다른 감성과 이성을 혼재한 인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책겨주고, 방황하거나 고뇌하는 친구와 후배들의 벗이되고,같이 앞을 향해나가는 길벗이고 싶었다.(난 선배들의 기계적 사고와 행동 또  권위적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복종을 강조하는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올바름을 떠나 후배들을 이끌어주지 못하면서 자신의 판단에만 촛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하는 작태에 대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오를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난  후배들이 운동에 있어 자신들은 부격한자라고 낙인 받고 떠나는 후배 동기들을  볼때면 가슴을 방망이로 맞은듯한 심한 자괘감에 빠질때가 많았다. 난 그때 다짐하였다.


난 그런 선배가 되지 않으리라.... 시간이 지나 내개 학교수임자가 되었을때  난 그러지 않고자 하였지만, 그런 문화에 이미 젖어든 후배들은 나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내가 사업에 있어 추진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었으나 나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조직이란 테두리라는 바운더리에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거부감과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반감.... 난 주로 학습 세미나를 위주로 후배들과의 시간을 갖고자 하였으나 후배들은 투쟁의 거리를 요구하였다.


혁명적 실천 없이는 혁명적 이론이 없다는 말에 대한 직설적 표현이었던  것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나에 대한 판단은 내가 내릴 수는 없지만, 나름데로 난 학교에 있어 운동이란 동지애적 평등성과 권위적 위계 질서에 대한 일정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마지막으로 내가 속한 조직을 내 스스로 정리하고 난 후 무엇을 해야할 지 방황을 하였다. 나의 무능을 탓하며....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무능하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학교를 나온후 난 후배나 동기 선배와의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 그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난 그들의 배신을 용서해 줄 마음 또한 아직 없는 것 같다. 평생 그들과의 만남은 없을 것이란 약속을 지금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지 모른다.(나는 독선적이고 개인적으로 소심남이라  한번 결단하면 좀처럼 결단을 풀지 않는다. 남들은 오기와 아집이 세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처럼 고쳐지지는 않는다. 나의 잘못된 습성이다. 늘 의식하며 고치고자 하지만 기간 세월 정형화된 틀로서 고착되어 쉽게 바뀌지 않아 문제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뇌리를 강타하고 있다.)
 
학교때 나를 정리한 후....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 판의 생리를 알아나가면서 더욱더 인간에 대한 태도에  있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가 생기면 이전의 배신감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 같이 하는 이들에게 잘해주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들에게 무엇도 해주지 못한 나를 발견하곤, 지금 늘 미안함 마음이 든다.(습관과 습성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지만 나의 이후 살아가면서 변화된 내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듯이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무르익지 않은 인식의 한계를 느끼며 이전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반성의 계기가 된 사건은 인천에서 짧은 1년간의 공장생활에서 난  허상이라는 물화된 세계관을 갖고 살아갔음을 알았다. 똑똑한 것보다 성실한 것이 중요하는 것을 알았다.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고, 행동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작지만 크나큰 진리를 배웠다. 중요한 것은 많이 알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삶에 찌들어 힘들어 떠나보내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나가는 나이에 접어들고 나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를 알게 되었다. 나의 독선적 고집과 판단에 대한 오기가  내 주변의 좋은 벗들과 후배들을 떠나보내게 되었음을 알고나서는 후회를 하게 되었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려 보낸 후였다.
 
잘못된 판단으로 이런 결과를 도래시키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책감에 대한 보상일거라는 판단을 갖고 지금 하루하루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
 
주인장 횡설수설 글을 써보았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라는 화두 어린 질문,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들.... 다 잡생각입니다. 주인장님이 서있는 자리 그 자체가 정치적 판단을 행하고 있으며, 늘 주인장님 삶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저는 정치적인 것 자체는 크지 않다고 봅니다. 어떻게 어느 곳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모두 조급성에서 나오게 되는 강박관념들 입니다.
 
이후 나의 변한 모습에 대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듭니다.
 
주인장님의 글을 읽다가 횡설수설 글을 써보았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P.S 비가 내리기 마음도 차분해지군요. 오늘 대포집에서 막걸리에 파전이나 먹어야 겠습니다. 나를 볼 수 있는 내공이 언제 생길지.... 평생가도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노파심과 조바심이 듭니다. 성격이 워낙 못난 놈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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