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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30주년 앞두고 기념행사 이어져

  • 등록일
    2005/04/06 23:14
  • 수정일
    2005/04/06 23:14
박정희, 유신정권 유지위해 8명 사법살인으로 처형, 유가족 '재심' 요구 취재부 유신시대의 사법살인으로 기억되는 '인혁당 사건'(아래설명 참조)이 올해로 발생 30주년을 맞는다. 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식이 열린다. 대구경북 2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9 통일열사 30주기 추모제' 준비위원회(상임대표 함종호)도 오는 4월 6일부터 나흘동안 30주기 추모제를 연다. 6일 인혁당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이어 7일 저녁 7시 곽병원 문화강당에서 인혁당 사건 관련자를 구명하기 위한 모임도 갖는다. 이날 모임에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당했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의 증언과 강연회를 갖는다.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사진전(4.6-8.대구2.28기념공원)도 열리며 4월 8일에는 경북대 총학생회 주최로 ‘30주기’ 전야제가 열린다. 특히, 경북대 총학생회는 전야제에 앞서 8일 오후에 대구백화점 앞에서 경북대까지 ‘3보1배’를 하기로 했다. 이는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한 죄스러움을 나타내는 의미다. 인혁당 추모행사가 대구를 중심으로 열리는 것은 사형이 집행된 8명 가운데 5명이 이 지역 출신이나 지역에서 활동한 연고가 있기 때문이다. 판화가 이철수씨는 18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여는 '이철수 판화전-작은 것들'을 통해 인혁당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품을 선 보인다. 이씨는 24일 뜻깊은 작품 공개를 계획하고 있는데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8명을 기리는 판화 작업이다. 이씨는 그후 7일부터 30일까지 미국 시애틀 데이비슨 갤러리로 날아가 민들레 꽃씨처럼 한국 판화의 멋을 미 대륙에 퍼뜨릴 예정이다. 한편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도 현재 촬영중인 <친절한 금자씨> 이후 작품으로 인혁당사건의 영화화를 위한 자료수집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혁당 사건 '인혁당'은 인민혁명당의 줄임말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이 사건은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과 1974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나뉜다. 1964년 중앙정보부는 “57명의 일당이 북괴 중앙당의 지령을 받아 한일회담 반대 학생 시위를 유발해 4.19같은 혁명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현 정구너을 타도하고자 인혁당을 구성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1차 인혁당 사건이다. 당 시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증거가 없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표까지 제출하자 당직(숙직)검사가 대신 기소했을 뿐 아니라, 사건 관련자들이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13명만 유죄가 선고되고 형량도 최고 3년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 10년이 지난 1974년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또 다시 조작된다. 1974년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전국민주학생총연맹)의 배후인 인혁당을 재건하려 했다며 22명을 체포해 긴급조치와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8명에 대해 국방부 비상보통군법회의와 2심에서 사형을 선고, 이듬 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다음 날 4월 9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이들에 대해 사형을 집행했다. 재심의 기회도 없이 대법원 판결이 난 지 불과 20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이 사건은, 국내외 법조계로부터 ‘사법사상 암흑의 날’, ‘사법살인’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통해서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고문과 증거조작, 공판조서 허위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해 조작됐음을 밝혔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시한 이 때 끝나면서 ‘사건조작’과 관련한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유가족들과 법조계, 인권단체는 이 사건에 대한 ‘재심’과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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