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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독백

  • 등록일
    2004/08/11 23:39
  • 수정일
    2004/08/11 23:39

밤은 고요의 바다이다.

 

밤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둠뒤의 불안감이 휘돌지만 불빛 아래에서는 고요를 우리에게 준다.

 

난 이러한 밤을 좋아한다. 낮의 시끌벅절함보다는 잔잔한 소리를 우리에게 주기에 난 이러한 밤에 많은 상념에 휩싸인다. 인터넷음악사이트에서 나오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자주가는 인터넷 사이트 글귀에 주목하기도 하고, 상념에 젖어 과거 회상에 잡겨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게 밤은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의 공간이며, 과거의 나를 발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간혹 다른사람들이 있어 밤의 고요함을 방해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밤에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면서 밤이 주는 두 얼굴에서 나의 마음의 거울을 비춰본다.



달 빛 밝은 밤은 검은 거리에서 희미한 달 빛 안개에 젖어보고, 흐른 밤에는 깜깜한 어둠의 두려움에 가슴을 졸여보기고 한다. 특히 희미한 달빛의 안개에 젖어오는 그런 날이면 난 술이아른 매개체르 그리워하거나 술에 나를 의지한다. 그런날 난 희미한 가로등 빛이 내리는 곳에 가서 술취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서울 가로등이 없어지고 네온사인이 온 도시를 휘감는 그런 도시지만 내가 살고있는 곳은 가로등 희미한 불빛이 사푼히 내려앉은 광경을 느낄 수 있다.

 

밤은 나에게 또다른 상상의 공간이다.

밤은 모두가 잠든 고요의 바다. 그 고요의 바다에서 난 남들이 잠든 시간 혼자 세상의 불을 지핀다. 불을 지피면서 짧지만 그래도 살아온 날들을 회상해 본다.

 

과거와의 대화 그건 나의 또다른 발견이기도 하다. 늘 순간에 충실하고자한 나는 나라는 존재자체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때가 많다. 사람들에 휩쓸리고 시간에 흐름에 순응하면서 나라는 존재는 세상과 타협을 하면서 이승의 버거운 삶을 하루하루 지탱해 나가고 있다. 존재로서 삶을 향유하는 것인지 유희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나라는 존재의 발견에서 난 절망을 느낀다.

그 많았던 꿈과 희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엿장수에게 팔아먹지도 않았는데 시간의 흐름에 순종한 댓가로 난 꿈과 희망을 송두리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난 새가슴이다. 용기도 당당함도 없이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나의 독설에 난 나를 훈육시켜간다. 마치 진리인양....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독설에서 훈육되어져가는 시대.... 지금 이 시대가 그러하지 않을까?

 

순간에 충실하고자 순간의 희열에 열광하며, 우린 또다른 파시스트 제국주의가의 길들여진 병정으로 전락되어진 것은 아닌가? 목적없이 의지없이 주장없이 다들 자신의 삶에 길들여진다. 삶이라는 테두리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직장이라는 훈련원에서 우린 인간이 아닌 기계임을 강요받고 있다.

 

집단이라는 이름에 개인이 묻혀야 하고, 개인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존재한다. 난 이를 거부한다. 그렇지만 나도 나의 도그마에 빠진 어항의 물고기이다.

 

나의 주장은 있으나 남의 주장에 대한 배려는 없다. 자신의 사상은 존재하나 남의 사상에 대한 존재를 거부한다. 거부는 연대가 아닌 단절로 이어진다. 우린 토막난 단절속에 고립되고 파편화되어져 간다. 일률적으로 그리고 그 단절은 또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독설과 오만을 낳고 과하면 편견을 파생시킨다. 이것이 우리 운동권이 처한 조건이다. 나의 주장은 있으나 상호합의는 없는 이상한 논의구조에서 우린 구조화되어져 간다. 어항의 물고기 비상을 꿈꾸지만 주인이 먹이와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죽고만다. 우린 이런 필연적 진리에 대해 잘 알면서도 순응에 대한 반평향에 길들여져 왔다. 늘 반대를 위한 반대.... 거부를 위한 거부에 우린 익숙해져 왔다.

 

나를 깨버리고 싶다. 그러나 난 사회적 관계에서 형성된 또다른 존재(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라고 하였던가...).... 내가 혼자 순응을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일이다.

 

싸움은 있으돼 논쟁이 없고, 사상은 있으되 이념이 없는 이세기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이 밤 고민하게 된다. 나에 대한 독설을 지껄여 보았다.

 

밤은 무수한 잡념을 제조하는 공장이다. 나도 무수한 단어의 조각들을 나의 기분에 맞추어 끄집어 놓아 이 공간에 퍼즐마추기를 해보았다. 이 말은 내가 느낀 오늘의 풍경이다. 난 거부를 위한 거부자가 되기는 싫다 그러나 형태가 없는 것에 대한 논의 이것은 합의 도출이 아닌 또다른 헤깔림을 늘어놓은 독설은 아닐까? 오늘 잡념에 대한 단어들을 이 공간에 다 털어놓았다. 마음은 시원하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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