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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6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위한 희망의 노래 공연을 돌아보며...
    간장 오타맨...
  2. 2008/11/16
    6명의 이주여성이 함께 일하며 살아가요,
    간장 오타맨...
  3. 2008/11/16
    컴퓨터에 찍힌 이주노동자 친구들 사진을 보며....
    간장 오타맨...
  4. 2008/11/16
    노동만화전시회를 진행합니다.
    간장 오타맨...
  5. 2008/11/16
    오산이주노동자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하다.
    간장 오타맨...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위한 희망의 노래 공연을 돌아보며...

  • 등록일
    2008/11/16 00:42
  • 수정일
    2008/11/16 00:42
** 한해가 저물어가고 올해 2007년도 초기에 잡았던 사업들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 앞서 기간 하였던 사업들을 돌아보며, 센터가 하고자 하였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업들 그리고 주체로 세우고자하였던 것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올린다.

한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을 돌아보면 2008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 그/녀들과 함께 꿈꾸고자 하는 우리들의 생각들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

 

○ 계획대비 성과 분석
 -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위한 희망의 노래 문화행사를 기회로 오산지역 시민들에게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함께 공유하는 문화공연을 기획하여 진행하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주로 지역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여 기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 차별적 인식에 대한 시선들을 걷어내는 함께 어울리는 한마당으로 진행하다. 또한 문화공연을 통하여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의 웃음, 슬픔, 아픔, 꿈을 함께 나누고 지역민들이게 친구요 이웃으로 자리매김 시키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다.  

 

 - 1부 “이주노동자 말하다”는 이주노동자들이 먼 타향에 왜 와서 노동하고 있지만 지역사회 차별인식에 대해 스스로가 말하고 함께 표현하는 자리였다. 다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면 많은 돈을 벌고, 고국에 돌아가서 잘 사는 사람, 아니면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기에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오산․화성․평택․용인 지역 지역민이 가기 꺼려하는 산업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지역민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고충을 당하고 있는 현실들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기 위한 자리로 진행하였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이주노동자과 다문화가족들의 작은 울림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지역민들에게 그/녀들이 갖고 있던 꿈과 희망 그리고 한국에서 차별과 편견의 현장을 영상으로 함께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 1부 행사를 통하여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족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 시선을 벗어나 우리 이웃이라는 다가가기 위한 기회를 지역사회에 알렸다. 

 

 - 2부 “이주노동자 어울리다” 마당에서는 고정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그릇된 시선을 벗어나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족, 지역민이 함께 어울리는 마당으로 진행하였다.
 지역에서 쉽게 접하고 어울리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의 문화를 그/녀들이 문화라는 끼 발산을 통하여 지역사회에 아시아의 문화를 그/녀들 스스로가 직접 문화공연이라는 형식을 빌려 마음껏 알리고 어울리는 자리였다.
 이 마당에서는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족 그리고 지역민이 서로의 문화를 교감하고 친구로 자리매김 시키는 장이였다. 그/녀들 또한 우리처럼 웃고, 울고, 아픈 우리와 같은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 주고, 하나되는 자리였다.

 

 - 3부 “이주노동자, 보여주다” 에서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들을 지원하는 문화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과 다문화가족이 만드는 자리였다.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많은 정책들이 수립되고, 지원의 손길이 있지만 정작 그/녀들을 보면 친구 하나 없는 우물 안에 가친 비련한 물고기로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이러한 그/녀들의 소망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유하고, 우리가 이후 만들어 갈 다문화사회의 방향들에 대하여 그/녀들 스스로가 문화라는 매개를 통하여 알리는 자리였다.
 나아가 그/녀들이 서로 연대하고 하나 되어 당당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으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작은 울림의 하모니로 진행하였다.

 

 - 전체 사업계획에 비해 행사를 치루기 위해 급급해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들이 주체로 참여하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문화공연을 통하여 향후 그/녀들이 직접 자신들을 표현하고, 알리고 만들어가는 문화공연으로 자리매김 시키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 향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의 문화행사가 그/녀들 아픔을 나누는 자리가 아닌 이웃으로 친구로서 다가서는 자리요, 지역 사회에 작게는 아시아 넓게는 세계를 알리는 문화적 공유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또한 보다 많은 지역민들이 그/녀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친구요 이웃으로 다가가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행사였다 자평해 본다.

 

○ 호응도
 -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족, 오산지역시민, 학생들이 참여하여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삶에 대하여 느끼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다. 
 오산지역시민, 학생들이 생소한 아시아 문화를 접하였지만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족이 준비한 문화공연을 보면서 그/녀들에게 가졌던 기간 편견과 차별이라는 벽을 허물고 서로가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며, 그/녀들의 공연 모습 속에서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족에 대한 친근함을 함께 느끼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펼치는 마술, 각 나라별 노래와 춤을 보면서 지구촌 친구이며, 이웃이라는 사실을 세삼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이번 문화행사는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족들 또한 서로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호응도가 높은 행사였다라고 자평을 해본다.. 기간 서로가 다른 나라이기에 이주노동자이며, 다문화가족이지만 언어와 문화라는 장벽에 의해 서로간의 소통과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문화공연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서로가 친구이며, 동료임을 각인시켜주는 계기였다.

 

 - 4시간이라는 긴 공연이었지만 다채로운 아시아 각 나라별 문화와 공연을 접하면서 시간의 지루함은 문화공연이 진행되면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이해하고 어울리는 호응도는 높은 공연이었다. 
 처음 접하는 인도네시아 전통노래에서 인도네시아 인들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필리핀 밴드와 가수의 공연에서는 필리핀인의 자유분방함을 네팔 전통춤 공연에서는 히말라야 정기를 오산지역시민과 학생들에게 마음껏 알려주는 행사였다. 행사를 통하여 지역주민과 학생들 또한 그/녀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호응하고 함께 어울리는 하모니를 발산하는 공연이었다. 향후 이러한 공연들이 지역에서 보다 다양하게 개최가 되어 문화가 갖고 있는 힘으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벽을 서서히 허물어 나가며 함게 호흡하는 행사였다. 

 

-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지구촌 공동체가 하나임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에서 기간 그/녀들이 가졌던 어려움이 그날 하루만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다채롭게 접할 수 있었던 문화공연이었다. 그/녀들이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친구로 다가가고 서로 웃고, 환호하는 모습에서 그/녀들의 존재감이 새롭게 조망되고 함께 뛰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공연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의적 판단으로 관객들이 호응도가 높았다 자평을 해본다. 

 

○ 개선 및 요망사항
 -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위한 희망의 노래를 진행하면서 여전히 그/녀들에 대한 인식이 지역사회에서 미비함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앞으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지역차원에서의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며, 각 학교에서는 다문화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을 통한 저변 인식을 확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위한 문화 향유 기회를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전히 문화를 향유하고 알리는데 있어서 미진한 측면이 많다. 이에 공공영역에서 문화공연의 활성화를 통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에 대한 문화 활동을 촉진시키고 지역민들에게 보다 많은 다문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기 위한 공공문화영역의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 문화활동과 프로그램을 다양화하여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이 대상자가 아닌 주체로 참여하여 스스로가 자국의 문화를 알리고 지역사회에 다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학교교육에 있어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들이 배치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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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이주여성이 함께 일하며 살아가요,

  • 등록일
    2008/11/16 00:41
  • 수정일
    2008/11/16 00:41

 

필리핀, 태국 이주여성이 함께 나눔과 상생을 위한 녹색가게와 외국인 서포터즈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와라펀은 현재는 태국국적이며, 한국인으로 귀화를 하여 국적 취득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입니다. 결혼한지는 6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태국이주노동자 여성결혼이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외국인 서포터즈로 태국이주노동자 상담활동과 여성결혼이주민자 통역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화성, 평택, 용인지역에 많은 태국이 고향인 여성결혼이주민과 태국에서 이주해온 이주노동자 그/녀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한국의 법체계를 잘 몰라서 상담을 진행하는데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와라펀씨가 있어서 많은 태국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신청하거나 산재, 사업장이동, 여성결혼이주민들의 어려움들을 해소해 주고 있습니다,

글로리아씨는 고향이 필리핀이며, 결혼하지 10년된 여성입니다.  

글로리아씨는 막내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정신적 충격이커서 약간의 우울증증세를 보였습니다. 이전 활달한 성격으로 필리핀에서는 베이비시터를 하며, 영육아를 돌보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이 죽기전까지는 동네 분들과 어울리는 멋진 아주머니였지만 아들의 사망의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그래도 매사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늘 남에게 얻는게 있으면 배품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저희가 지역에 있는 요양기관에서 자문을 얻어 글로리아씨가 일을 하면 약간의 우울증세가 호전되며, 차차 대인관계가 나아질 것이라 조언을 들었습니다. 이에 저희 녹색가게에서 일하며, 아주머니들과 수다도 떨며, 함께 일을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큰 아들 인철이 또한 저희 협력기관이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에서 방과후 지도를 받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답니다.

요근래 함께 일하는 녹색가게 동료인 선배 아주머니로 부터 많은 이쁨을 받고 있답니다.

 

푸타맛씨는 고향이 태국입니다. 남편과 이혼을 하였습니다.

저희센터에 찾아와 비자연장을 위하여 법무부 혼인파탄사유서를 작성하여 이혼사유가 남편에게 있음을 상담을 통하여 저희가 공증을 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으며, 아이를 키울 능력과 경제력이 없어 현재 아들을 태국 외가집에 보냈습니다.  

오른쪽 손 장애가 있어 많은 일을 하지 못하지만 새롭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시작하는 다솜어린이방 도우미로 일하고 있습니다. 와라펀씨가 추천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외국인서포터즈로 함께 일하고 있답니다.

****참고로 결혼이민자여성(F-2-1-국민의 배우자)은 일반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에 참여를 할 수 없어 주요하게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만이 참여합니다. 국민의 배우자는 한국인으로 인정을 하지 않아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에 참여를 할 수 없고, 현재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부처연계형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 서포터즈사업만이 사회적일자리사업이지만 여성결혼이주민(F-2-1, F-5영주권자)만이 참여할 수 있답니다.*****

 

사라 또한 고향이 필리인입니다. 

한국에 결혼으로 입국한지는 6년이 되었으며, 영찬이라는 5살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센터에 필리핀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을 10년간 지원활동을 한 존스갈랑이 와 있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전남 보성에서 있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무작정 상경.... 오산에 일을하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사라씨가 돈을 벌어 자그마한 전세금의 보금자리를 5년내에 마련한다는 소원을 간직한 꿈만은 우리내 아주머니입니다. 아이 또한 똘똘하게 키울려고 잔업이 없는 저희 녹색가게에 취직시켜 달라고 몇번을 졸라서 이번 새로 추가배정받은 7인에 포함되어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라씨의 꿈이 열매를 맺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세핀씨는 고향이 필리핀입니다. 한국에 결혼으로 입국한지는 10년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정답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한번의 유산 그리고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자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 자녀가 없습니다.

아이를 볼때면 늘 부럽다고 시셈하는 조세핀씨......

너무 부지런하여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돈을 법니다.

활달한 성격으로 주위를 리드하고, 서슴없이 나가서 끼를 발휘하는 조세핀씨.... 사라씨와 함께 녹색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답니다.

늘 일도 잘하고 말도 많은 조세핀씨가 있어 녹색가게 동료 아주머니들이 즐거워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니씨가 저희센터와 함께 녹색가게 헌옷 판매일을 하고 있답니다,

제니씨는 비자가 없어 저희가 사회적일자리사업으로 지원을 해주지 못하고 돈을 주지만, 한국에 온지 16년이된 모든 일에 척척인 만능엔터테이너먼트입니다. 영어강사활동도 개인적으로 많이 해주었고, 필리핀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통역, 일 등 모든면에서 어디에도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생도 많이 하였고, 힘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늘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작게하고 있는 녹색가게 옷판매 헌옷 옷 구매를 담당하여 판매를 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6명의 여성들과 저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저희가 일을 시키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저희가 힘이 나며, 보이지 않게 세세히 배려해주는 모습에서 녹색가게와 외국인 서포터즈 사업이 하나둘 영글어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많은 수의 여성결혼이주민이 일자리를 갖고자 노력하지만 취직하기는 어려운 조건입니다. 취약계층사업으로 이주여성들이 여성결혼이주민을 돕기위한 바우처사업이나 또는 사회적일자리사업으로 취업의 기회와 문을 열어주어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사회적통합 활동에 적극적 주체로 참여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참고로 베트남 여성결혼이주민이 일을 하고 싶지만 취직을 하기가 다른 조건에 비해 어렵습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을 도와주고 싶지만 사회적 조건이 아직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 못합니다. 저희 또한 안타까움만을 가지고 있답니다.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국민의 배우자라하여도 취업의 문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완화되어 여성결혼이주민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참여를 위한 일자리제공사업들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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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찍힌 이주노동자 친구들 사진을 보며....

  • 등록일
    2008/11/16 00:40
  • 수정일
    2008/11/16 00:40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억될 만한 사건들도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정리한 사진들을 모아 놓고 컴퓨터 파일들을 모아서 슬라이드 쇼로 보았다.
소소하게 지나갔던 것들이 한장의 사진으로 기억되어 그날의 일들을 되새기 한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사진들도 있고, 내가 옆에서 보고 느꼈던 사진, 그리고 지금은 함께하지 않은 이주노동자 친구들 사진이 열거되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던 작년의 사진속에 꼭 기억되는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함께하여서 즐거웠지만 함께 늘 같이 못함을 알면서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면서 붙잡고자 하였던 이주노동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잘하지 못하는 한국말이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거나 함께하여서 좋았다는 말을 하는 이주노동자 친구들.... 늘 고민하지만 고국에 돌아가면 막막하다는 그/녀들....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삶을 거부하였던 그/녀들.... 이들이 있어 좋았고, 슬펐던 기억,,,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간임을 자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투쟁이라는 것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던 그/녀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흔적이라는 이름을 빌어 내가 여기 존재하고 센터에서 새롭게 일을 하는데 자긍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늘 이주노동자 친구들은 고민한다.
고국에 돌아갈까 더 머물까? 그렇지만 센터를 믿고 남아주어 함께하면서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던 친구들... 각자의 마음 속에는 머뭇거림과 고뇌가 배여 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에게 조금만 조금만 있어 달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우리 힘은 턱없이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많은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돌아갔다. 또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한국땅에서 노동자 삶이 단지 지난 시절의 추억의 사진이 아닌 현실이고, 이 시기에 느꼈고, 고뇌하였던 삶이 인생과 삶의 좌우명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즐거웠고 행복하였던 디카의 앨범사진첩처럼 즐비한 컴퓨터 그림파일들이 정겹게 눈에 다가온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녀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는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든 그/녀들의 삶에서 난 우리가 찍은 사진 모습속에서 위안을 삼거나 힘을 얻는다.

늘 해맑은 그/녀들 그렇지만 정부는 그냥 내벼려 두지 않았다. 순박한 그/녀들을 두렵고 무서웠던 단어인 투쟁이라는 단어를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우리의 연이 닿았지만.... 앞으로 그/녀들의 고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를 바램만 해본다. 

 

참으로 정겹게 사진속에 내가 알고 느꼈던 친구들의 환한 웃음이 들어왔다.

친구들 고국에서도 잘 지내고 있죠.... 고뇌없이.... 불안함 없이.... 우리 언제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 만날 수 있을까?

보고 싶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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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만화전시회를 진행합니다.

  • 등록일
    2008/11/16 00:39
  • 수정일
    2008/11/16 00:39

여성결혼이주민 들꽃 만화교실 강의를 해주시는 노동만화네트워크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포스터를 저희 사무실에 예쁘게 부쳐주셨습니다.

 

시간이 되면 저희 여성결혼이주민도 노동만화네트워크 전시회에 참석하여 자리를 빚내주고자 합니다.

 

8월부터 매주 꾸준히 내려와 강의를 해주시는 노동만화네트워크에 고마운 마음과 전시회가 잘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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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이주노동자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하다.

  • 등록일
    2008/11/16 00:38
  • 수정일
    2008/11/16 00:38
RTV 미디어로 여는세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주노동자 인터넷라디오방송 인터뷰를 위해 2차 방문을 하였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터뷰를 한 후 내가 라디오방송에 대한 향후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늘 가졌던 생각들.... 잘 정리되지 않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보는 한국사회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적 인식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돈을 벌러온 사람이라는 낙인.... 그리고 떠나야 할 사람으로 간주하는 이주노동자 그/녀들에 대한 낮선 시선들.... 많은 희비가 교차하였다. 그러나 나는 정작 알고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삶의 단면 뿐이다. 늘 자신의 권리를 위해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과 왜 이토록 어리숙하게 부당함에 맞서지 못하냐는 불만만 늘어놓았다.

정작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속 깊이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된 시선을 바라보지 못하고 낮선 나의 시선으로만 이주노동자 그/녀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들었다.

왜 한국에 왔는지.... 그리고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또한 자명하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열사의 땅을 떠날때와 동일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선을 경제발전이라는 현실에서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우리 또한 몇십년전만 해도 동일한 이주노동자 였으며, 나라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사회적 부조리가 무마되었던 시대를 겪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서 국익이 모든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이다. 이주노동자의 각 나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떠밀려 떠나오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품고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을 이주노동자 그/녀들... 꿈은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현장에 들어갔을 때 산산히 부서진다. 낮선 언어 그리고 낮선 환경에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낮선 문화에 적응하기도 전에 차별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다.

처음 배운 언어가 욕이라는 말에 말문을 잇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처음 배운 말을 웃으면서 말하는 이주노동자 그/녀들.... 그 당시의 심정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처음배운 말이 욕이였다는 그/녀들 말에서 한국사회 낮선시선과 그릇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 그/녀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은 정말 낮설기 그지 없다. 지하철을 타면 히잡을 쓴 인도네시아 여성들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낮선이 대하는 시선... 그리고 말을 걸기 보다는 무섭다는 인식으로 다다간다. 이주노동자 그/녀들 또한 뜨거운 심장이 있고, 깊고 넓은 가슴이 있으며, 정에 목말라 있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한국의 낮선시선을 이기기 위해 자국에서 하지도 않았던 담배/ 술을 접한다. 고독은 견딜 수 있고,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그릇된 시선과 작업장에서의 부당한 말들은 이주노동자 그/녀들 스스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아픔이다. 아픔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그렇지 않은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충격으로 인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우리의 낮선시선 그 따가운 시선으로 말미암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의 어려운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벌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오로지 돈 때문에 온다는 그릇된 시선....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번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른다.

10년이 넘은 이주노동자들.... 8촌이 이주노동자 한 사람이 번 돈으로 먹고, 교육을 받고 살아간다. 교육을 시키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잇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 미래를 품고 온 이주노동자들 이들에게 하나 같이 공통 분모는 행복한 삶을 꿈꾸고 왔다. 그리고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하여 왔다. 그런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 마치 한국에서 벌어가는 돈이 일확천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이주노동자 자국의 경제적 상황은 어려움 그 자체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현실.... 일을 찾아 머나먼 타국을 배외하는 이주노동자 그/녀들.... 비단 한국만이겠는가?  
부모님이 돌아가도 전화수화기나 핸드폰을 들고 떨리듯 대성통곡하는 그/녀들의 심정.... 비행기로 하루면 가는 거리를 황급히 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왜 한국에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더이상 이주노동자는 낮선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다.
옆에 있는 혹은 앞으로 보게될 이주노동자들에게 눈웃음이라도 건네 주었으면 좋겠다.

이주노동자방송인터뷰를 하면서 잡스러운 생각들이 밀려왔다.
부디 함께 알고 지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어려운 조건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부당함 그리고 산업재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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