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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6
    중국동포 이주노동자 황룡식 아저씨...
    간장 오타맨...
  2. 2008/11/16
    짜니야 생일 축하해!!!!
    간장 오타맨...
  3. 2008/11/16
    결혼이민자가족 사회통합지원 전국대회 참석기
    간장 오타맨...
  4. 2008/11/16
    무너져 내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간장 오타맨...
  5. 2008/11/16
    소소한 삶
    간장 오타맨...

중국동포 이주노동자 황룡식 아저씨...

  • 등록일
    2008/11/16 00:33
  • 수정일
    2008/11/16 00:33

이주노동자로 온 중국동포 황룡식 아저씨를 알게된 것은 2007년 10월 13일이다.
오산서울병원 원무과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 아저씨가 119에 실려와서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북 청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오산서울병원에 갔다.

아저씨를 보건복지부 의료지원을 받게하게 위하여 방문을 하였지만 올해 예산이 모두 고갈되어 병원입원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을 후 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간병인 아주머니 2분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을 때 중환자실에 들렸다.

추석에 중풍으로 쓰러져 다른 병원에 있다 반신마비로 거동을 할 수 없는 것을 119가 오산서울병원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아저씨 의료지원을 위하여 도립의료원, 서울의료원, 적십자병원, 원진녹색병원, 가리봉 외국인병원, 수원엠마우스, 안산빈센트, 화성시보건소, 중국대사관 등등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다 전화를 해보았다. 그렇지만 보건복지부 예산이 없어서, 아저씨를 돌볼 간병인이 없어서, 전문의가 없어서, 병실이 없어서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만 회답으로 듣게 되었다.

일단 10월 13일 오산서울병원에 있는 엠블런스를 타고 오산이주노동자센터내 쉼터로 옮겼다. 아저씨가 반신마비로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엠블런스에 있는 이동간이침대로 입구까지 옮기고, 몽골이주노동자 업어서 아저씨를 쉼터에 놓았다. 문제는 쉼터는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잠과 식사만을 제공받는 곳이었다. 그리고 아저씨를 돌보기 위해서는 일단 기저귀를 갈아주고 몸을 씻겨줄 사람이 필요하였다. 혼자 두면 혹시나 어찌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다행히도 먼저 방에 머물던 몽골이주노동자가 아저씨를 정성껏 돌보고 누구도 하기 어려운 기저귀를 갈아주고 방을 청소하였다. 

아저씨는 반신마비로 뇌신경이 이미 죽어있어 재생이 어렵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놓아서 병원 입원하는 것이 우선 요구되었다. 이에 다시금 인터넷을 뒤지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센터 해피빈 사이트에서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에서 이주노동자 의료지원사업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중앙회 기금을 받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아저씨를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냐는 전화와 의료기관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이런 후 엠마우스에 전화를 하였다. 아저씨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저씨가 한국외국인의료공제회(한국외국인건강협회와 동일한 단체) 의료카드를 만들어 10월 15일 경기도립의료원 수원병원 응급실에 들려 입원을 시켰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내가 연대보증을 섰다. 그러나 문제는 아저씨가 한국에서 밀린임금이 많이 있어 체불임금을 받아야 하며, 신속히 응급치료가 끝나면 중국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지금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저씨의 중국귀환을 위해 지금 알아보고 있다. 다행히도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었고, 부족한 나머지 치료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해야 한다. 

아저씨는 2005년도 건설현장에서 받지 못한 임금 650만원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결문을 받은 상태이고, 쪽지에 빼곡히 적은 날짜와 일한 일당들이 표시된 상태에서 받지 못한 금액이 대략 250만원과 100만원이 있다. 총합 1,000만원의 임금이 체불되어 있다. 

추측컨데 아저씨는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다가 중풍을 맞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치료비가 없자 버려진 것 같다. 119가 길거리에서 아저씨를 발견하고 오산서울병원으로 데려왔다고 이야기를 들은 정황을 보면 추측을 해본다. 

많은 수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병원비가 없어 병원에 볼모로 잡히거나 센터에서 연대보증을 세우고 치료를 받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안되는 분들은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아저씨는 현재 경기도립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다. 밀린체불임금, 그리고 중풍으로 인해 더이상 쓸 수 없는 반신 몸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한시라도 아저씨를 빨리 집으로 귀국시킬 방안이 마련시켜 줘야 한다. 아저씨를 중국의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또다시 전화기를 돌리며, 도와주신다는 분과 상의를 긴요히 해봐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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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니야 생일 축하해!!!!

  • 등록일
    2008/11/16 00:32
  • 수정일
    2008/11/16 00:32

짜니가 8살 생일을 맞아 부모님들이 생일 파티를 성대히 치뤘답니다.

짜니 엄마인 제니씨가 짜니 생일을 맞아 아침 8시부터 음식준비를 하여 필리핀 친구들 100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였답니다.

 

짜니엄마는 늘 오산화성지역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을 위하여 음식 파티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친구들 생일이면 어김없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합니다.

 

짜니 생일.... 1달전부터 짜니 생일파티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미명을 지르는 짜니 엄마 제니씨는 짜니를 위하여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짜니 엄마는 1991년 한국에 온 이주여성입니다.

 

유독 짜니 생일파티를 하는 것은 제니씨가 한국에 오기전 낳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동생인 짜니를 통해서 위안을 찾고자하는 것 같습니다. 

 

늘 큰아들 이야기만하면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제니씨의 심경은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늘 큰아들과 채팅과 전화수화기로 통화를 하며 아들에 대한 정과 그리움을 달래는 제니씨는 작은 아들인 짜니를 통해 아이에 대한 모정을 듬뿍 담아내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니씨를 볼때마다 저희도 한켠 마음이 흐뭇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제니씨가 마련한 음식을 갖고 필리핀 그리고 짜니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음식과 짜니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답니다.

 

행복함에 젖은 짜니는 엄마 앞에서는 영락없는 아이였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짜니 그리고 아빠인 마니가 사준 장난감을 만지며 즐거워하는 짜니의 모습에서 행복함을 엿봅니다.

 

제니씨는 그러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이를 낳고 6개월만에 생이별한 아이와 약속을 하나 하였답니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소원을 저희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제니는 한국에서 16년된 미등록이주노동자 랍니다.

그래서 아이와 만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을 필리핀대사관에 문의하였지만 어려운 현실입니다. 제니씨가 꼭 아들을 만나 손수 밥을 지어주고 옷도 사주고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의 현 출입국관계법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니씨가 16년간 보지 못한 아이와 꼭 만날 수 있도록 저희 또한 사방팔방 뛰면서 알아봐야 겠습니다.

 

짜니의 생일.... 가족의 행복함을 엿보는 날이었습니다. 짜니가 건강하게 초등학교에서 적응하며 행복한 가정으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짜니야 생일 축하해^^ 짜니야  Happy birthday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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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자가족 사회통합지원 전국대회 참석기

  • 등록일
    2008/11/16 00:31
  • 수정일
    2008/11/16 00:31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고 충북 청주시에서 주관하는 결혼이민자가족 사회통합지원 전국대회를 청주 라마다호텔에서 2007년 10월 11일부터 12일까지 진행한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결혼이민자가족 지원단체활동가들과 관련 공무원들이 참석하여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한 지원방안들을 모색하였습니다.

 

첫날 환영행사와 내외빈의 대회사 축사로 진행하였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결혼이민자가족들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고, 향후 여성가족부에서 결혼이주민에 대한 지원방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 참석을 하여 결혼이민자가족들에 대한 지원의 확대방안과 농촌을 중심으로한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부처간의 사업의 통폐합을 통한 안정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한 지원방안이 다문화가족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행사장에 참석하면서 들더군요. 여성의 이주화에 대한 방안에 대한 고민보다는 여성결혼이주민에 대한 한국생활적응과 지원방안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한 방안을 나열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현장에서 그리고 지자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은 확인할 수 있지만 여성의 이주화에 대한 접근을 통한 이주여성의 문제로서 시야를 확대하여야 하지만 현재 그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이주화는 한국사회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이주여성들은 홍콩, 싱가포르로 여성가정부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아시아의 관심 그리고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들이 매년 필리핀 위민포럼에서 주요한 화두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시야를 넓혀 이주여성 그리고 젠더적 관점에서 여성의 이주화라는 관점에서 여성결혼이민자에 접근과 여성가족부에서의 여성에 대한 이주문제를 대두하여 그 안의 범주로 여성결혼이민자의 문제를 하나의 주제로 설정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이주여성의 문제는 우리가 않고 가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E-6비자로 입국하는 공연자, 클럽가수, 덴서 등은 저희가 위치한 오산주변지역의 본격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달에 한번 E-6비자를 받고 입국한 필리핀 이주여성의 경우 업주의 성행위 강요가 무서워 저희 센터로 피신하여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데 향후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 더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쉽게 돈을 벌수 있다는 유혹으로 간혹 결혼이주민의 경우 이혼으로 어려움에 처해진 경제상황을 송탄과 지역 유흥가에 취업하여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도 종종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성이기에 당해할 차별과 폭력은 내재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이주여성에 대한 접근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 이에 저희는 이주여성의 관점과 여성의 이주화에 대한 주제를 갖고 여성가족부가 이주여성이라는 포괄적 접근속에서 결혼이주민에 대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주여성에 대하여 다루어야 할 주제들은 짧게 나열해 보면 첫번째, 차별받지 않을 여성으로서의 인권, 둘째 이주여성의 노동실태, 셋째,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 넷째, 결혼이주민에 대한 지원, 다섯째, 자녀에 대한 양육 및 권리 등 나열하면 많지만 성폭력과 차별에 쉽게 노출된 이주여성에 대한 관심과 인권에 대한 권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주여성의 문제.... 이제는 하나둘 우리가 주제화시키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아내, 어머니로서의 가부장적 가족구성원내의 여성이 아닌 주체적 여성으로 이주여성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대회에서 아쉬운 것은 결혼이민자가족이라는 화두에서 여성을 가부장적 가족구성원내의 여성으로서 협소화 시키지 않았나 판단됩니다.

 

그리고 현재 붉어지고 있는 지자체 주도의 농촌총각 결혼보내기, 여성결혼이민자 이혼, 여성결혼이민자의 가족내 갈등, 양육의 문제 등 파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접근보다는 지원사업과 모델화 사업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여성결혼이민자센터와 다르게 이주노동운동을 하였던 단체들은 대부분 여성결혼이주민들의 이혼으로 인한 어려움과 가정내 성폭력, 다문화가족의 빈곤화 문제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빛보다는 그늘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작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도 안타까움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함께 교류하고, 경쟁적 활동이 아닌 민간차원의 네트워크활성화를 하였으면 하지만 그런 계기는 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 지역내 여성결혼이주민센터를 하기 위한 경쟁들이 보이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 지역 또한 저희가 먼저하였지만 시와 관계가 좋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시에서는 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구현하거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하여 지원하고자 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결혼이주민을 위한 사업을 집행함에 있어 준비와 기간의 필요한 조건들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사회복지사와 재정만으로 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이주여성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관련법이 준거한 공인단체, 그리고 최소 3년 이상된 가족상담 및 성폭력 상담원이 필요하지만 예산과 시설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같은 센터가 다 잘 할 수 있냐 그것도 아닙니다.

 

민간단체들 간의 정보교류와 활동에 대한 중복이 아닌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역할분배를 통한 활동의 극대화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건은 지원이라는 미명하에 단체간의 출혈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사업을 집행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체가 아닌 주체인 이주여성, 여성결혼이민자, 다문화가족 구성원들입니다. 그/녀들에 대한 문제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최소한 민간단체들의 네트워크가 지역과 권역별 이루어질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다양한 풀뿌리들이 모여 이주여성에 대한 여성의 이주화에 대한 대안과 구성원을 만들기 위한 활동들이 이루어졌으면 바램만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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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 내리고 싶을 때가 있다.

  • 등록일
    2008/11/16 00:30
  • 수정일
    2008/11/16 00:30

가식을 버리고 가슴 무너져 그냥 땅바닥에 주저 앉고 싶었다.
살다보면 때론 희열로 때론 어려움으로 높이 올라갔다 바닥으로 내려앉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도 시간이 순응하면 평상시로 되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냥 땅바닥에 무너져 내리고 싶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이란 따스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건만 그렇지 못한 현실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냥 무너져 내리는 가슴앓이 없이 그냥 주저않조 싶다. 살아온 날은 비록 적지만 희망이라는 것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지금 현실... 내가 마주하는 모습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라 여기는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가난이 가져다줄 풍요한 마음을 믿고 살아왔지만 이는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 거짓문구 시의 속임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발견하였다.

가난을 어떤 것을 비유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 난 정작 가난이라는 것이 단지 부족한 것으로만 인식하고 살아갔다. 가난이 가져다주는 환경과 비참함을 외면한채....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것이 원죄인지.... 이들의 삶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마음이 도저히 잡히지 않아서 몇일을 그냥 허성세월을 보냈다.

눈으로 목도한 현실.... 협력기관이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아이는 그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살아가고 있음이 참으로 놀라웠다. 나와 매일 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약을 뿌리고 나오는 동안 내 주변의 이웃에게 난 과연 무엇을 해주었으며, 과연 마음으로 다가갔는지에 대해 계속해 물음을 던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 방안을 보는 순간... 차마 말을 이을 수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방을 나오고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는 아이.... 그 공간에서 컴퓨터를 태연히 하고 있는 그 아이를 보면서 현실이 아니기를 빌었다. 옷더미 그리고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옷을 들자마자 후두둑 떨어지는 광경.... 아이를 데리고 나와 그냥 말없이 주변에 있는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를 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였다. 왜 이렇게 사냐고... 방안이 이게 뭐냐고... 아이는 그냥 말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다. 난 무엇때문에 사나.... 도저히 일이 잡히질 않아 며칠 술을 먹었다.

살아온 날이 언 30년하고도 반이 지났건만 가난을 어려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편한 것이라 여겼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고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가난하면 마음이 풍요로우면 된다는 말은 다 거짓임을 이제야 느꼈다. 가난하면 생활도 가난해지고 마음도 가난해 진다는 사실.... 매사에 용기도 그리고 희망도 꿈도 다 가난이라는 놈에게 잠식당한다는 사실... 가난이 되물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눈을 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공부방 대표는 이 광경을 한두번 지켜 본것이 아니라고 그냥 덤덤이 옷가지를 줍고 빨래들을 봉지에 담아 가지고 와서 세탁을 하고, 방안에 바퀴벌레 약을 치고 나오신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한마디를 하신다. 야 임마... 청소를 하면서 살아야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어 다음부터 청소 잘해 옷가지는 옷장에 넣고... 약 치고 청소해... 그리고 오전에 나왔다. 며칠전 일이지만.... 그 모습을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목도한 분은 태연히 그 아이들을 보고 이야기하기 보다 가난이 죄지 한숨을 쉰다. 이보다 더한 곳도 많다고 이것은 약과라고 말씀하시면서 한숨만 내쉰다.

며칠 이 광경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싶었다. 내가 그러한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질문도 해보았다. 그러나 난 아는게 하나도 없다. 같이 얼굴을 마주치면서 생활을 해온지 몇달이 지났건만 마음도 써주지 못하고 이 아이들의 환경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였음이 부끄럽다. 얼굴을 들 수 없다. 땅바닥에 펄떡 주저앉아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주의 반을 보냈다. 가난이라는 것이 이러한 어려움을 동반한 것임을 생각해보았다. 돈이 없는 것이 가난이 아님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이 그리고 무한정 지지와 격려지 못한다는 이 처럼 힘들고, 어려움일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술에 취해 며칠을 그냥 허성세월 보냈다. 도저히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그냥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생활을 일구어가는 일이다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다 안것도 아니다. 그 광경.... 아이에게 왜 너는 피부가 늘 좋지 않냐고 무심코 말하였던 것이 이제서야 후회스럽다. 변선생님의 따스한 눈물이 왜 그렇게 흘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알았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그러나 이들이 보는 가난을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목도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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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

  • 등록일
    2008/11/16 00:29
  • 수정일
    2008/11/16 00:29

누군가 대학교를 떠나올때 학교벽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면 학교생활을 잘했던 이라 난 생각한다.
나도 대학교를 졸업(졸업하지는 못했지만...)식때  혼자 학교를 돌아보며 내가 올라갔던 나무... 그리고 벽보나 대자보를 붙이던 장소를 돌아보며 이제 이 공간이 나의 삶의 공간이 아님을 느낄때 울컷 쏟아낸 눈물 흘린 기억이 난다.

잔디밭에 술을 주어야 한다며 잔디밭에서 술을 연신먹었던 기억... 선배와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과 늘 함께하였던 기억... 지금은 다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 나에겐 그들이 동지였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내가 함께하였던 술만큼 그 이야기 만큼 함께 세상을 향해 무언가 해보자 외치면서 함께 한 시기를 같이 동고동락했던 이들이기에... 오늘 따라 그립다.

늘 불안한 삶속에서 늘 도망치고 싶어도 내 스스로한 약속에 발목을 잡혀 현재 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거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삶.... 내깐에는 최선을 다한 삶이였다 생각해보지만 지나온 날을 보면 부끄러움 투성이들이다. 그래도 그 당시 무엇이 그리 자신감이 넘쳤는지... 개끼도 많이 부려보았고, 하고싶은 것은 다해보았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지금 내가 다른이들에게 비친 모습은 비록 초라한 소소한 삶....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의 이상을 위해 살아간다. 그 삶이 소소하다. 때론 힘들때도 있지만 그 삶을 난 만족하며 사랑한다. 다른 이들은 다들 왜 이렇게 사냐고 뭍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그 일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가? 남들보다 조금은 돈이 없어 불편하지만 내 마음은 돈보다 값진 것들로 채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며, 듣거나 이해해주는 이 얼마나 있는가? 자본의 사회에서 돈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는 것 처럼 여겨지는 지금이지만 난 그러한 물질욕보다 값진 것들을 하루하루 얻고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삶은 거창하지도 않다. 다만 내 이상이 거창할 뿐이다. 

돈키호테 같은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돈키호테 완 또다른 세상이다. 이 세상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노동자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술한잔 기울이고 투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얼마나 되는가? 다람쥐 책바퀴 돌듯이 일상화된 삶에서 기계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획일화된 생활을 하는 것보다. 때론 힘들지만 그러한 삶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난 만족한다. 그리고 그 삶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힘든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은 힘들지만 마음은 부자인 그/녀들.... 그 삶에서 그/녀들은 투쟁이라는 단어를 배웠고, 자본가들의 악랄함을 몸소 체험하였던 사람들.... 현실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녀들이지만 그녀들에게도 희망, 꿈, 사랑이라는 단어는 존재한다. 다만, 주어진 삶이 그/녀들을 내몰지만 않았다면 그/녀들은 그 삶 속에서 그냥 다른 이들과 동일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험난한 길에서 만난 동지들과 투쟁이라는 낮선 단어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노동자 민중을 배워나간다. 왜 진작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지와 해방술잔 기울이며 함께 신명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어 함께하니 좋다.

난 소소하지만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전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난 이 삶이 좋다.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힘들면 힘들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는 삶.... 때론 비판도 하고 비난도 하지만 동지라는 이름으로 서로 보듬어 않아주는 삶... 그래서 좋다. 그래서 소소한 삶이지만 아직도 내가 꿈꾸는 자리에 머물고 있다.

이 꿈이 계속되고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나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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