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간장 오타맨...

160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9/23
    [시/도종환] 꽃밭
    간장 오타맨...
  2. 2011/09/23
    완연한 가을입니다.
    간장 오타맨...
  3. 2011/08/29
    베트남 이주노동자 으엉외 2인(덩, 히우) 사업장 변경 요청 건
    간장 오타맨...
  4. 2011/07/01
    쉼터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
    간장 오타맨...
  5. 2011/06/28
    오늘 일상을 보내며....
    간장 오타맨...

[시/도종환] 꽃밭

  • 등록일
    2011/09/23 19:02
  • 수정일
    2011/09/23 19:02

꽃밭

 

                                                                                       도종환

 

내가 분꽃씨 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내 발걸음마다 채송화가 기우뚱거리며 따라왔고
무엇을 잡으려고 푸른 단풍잎 같은 손가락을
햇살 속에 내밀 때면
분꽃이 입을 열어 나팔소리를 들려주었다

왜 내가 처음 본 것이 검푸른 바다 빛이거나
짐승의 윤기 흐르는 잔등이 아니라
과꽃이 진보라 빛 향기를 흔드는 꽃밭이었을까

민들레 만하던 내가 달리아처럼 자라서
장뜰을 떠나온 뒤에도 꽃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나운 짐승처럼 도시의 골목을 치달려갈 때면
거칠어지지 말라고 꽃들은 다가와 발목을 붙잡는다
슬픔 속에 잠겨 젖은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꽃잎의 손수건을 내민다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
거기 꽃밭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지금도 내 옷 소매에 소박한 향기가 묻어 있는 것이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완연한 가을입니다.

  • 등록일
    2011/09/23 18:38
  • 수정일
    2011/09/23 18:38
완연한 가을입니다.
여름의 무더위 시셈으로 더위에 허덕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스산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을이 다가왔나봅니다.
절기가 말해주듯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도 가을에게 계절을 넘겨주는 순리가 있는데... 우리내 삶은 그렇지 않고, 속이고 거짓으로 치장한 위선자들이 많아 자연의 순리는 어디에도 찾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제위기라는 언론의 보도 미국은 벌써 더블딥이라는 소리 유럽 국가의 재정악화로 인한 부채에 따른 금융위기라는 소식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 대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와 함께 임시국회 소식들이 언론에 타전되고 있습니다.
국가를 책임지는 이들의 행태에서 분노를 느낀지 이미 오래전이지만 치졸한 정쟁으로 국가의 운영을 책임질 국회의원들이 마치 국가가 자신들의 것인냥 착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았음을 느껴봅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리 처럼 거짓없이 순리에 따라 주고 받고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존재할 수 없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이란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여 유전자의 변형을 막아온 존재이니.... 이기적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문에서도 영국의 동물학자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하여 종교계의 창조론을 반박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가 창조하였던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없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무수한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만물들이 어우러진 삶이겠지요. 지구과학을 보더라도 인간이 지구에 정착한 시기는 얼마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도 지구에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시간은 아주 미세하겠죠.

오늘 하루 사무실에서 저를 기다리는 이주노동자를 보았습니다.
경제위기 그리고 국회의원들과 다르게 자신의 땀과 노동으로 열심히 근면성실하게 일하여 자신들의 가족을 부양하고 이런 단위들이 모여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근현대사를 갖고 있지만 경제력 향상이고, 부의 축적에 의거한 물질욕으로 이러한 삶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도시에선 이웃사촌이란 말은 꺼내지도 못하는 삭막한 광풍의 도시위에 살고 있습니다.

살갑던 삶은 과거의 빛바랜 추억으로 뭍혀져 있습니다.

이제 낮고, 작게, 부드럽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리고 함께 어깨걸고 가는 삶을 상상해 봅니다.  너와 나 우리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가 세상을 밝게 빛추었으면 좋겠습니다.

길 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는 그런 냉랭한 모습을 보니 참 씁쓸한 생각이 들더군요. 어린 시절 살갑게 동네 개똥이네, 순이네, 철수네 등등 살갑게 부르며... 야단도 받고 칭찬도 받고 어울렁더울렁 살갑게 살았는데.....

이주노동자들과 작지만 살갑게 더불어 살아갑니다. 주고 받고 서로 나누는 삶.... 이러한 삶이 자신은 물론 주변을 풍요롭게하는데... 우리는 미처 앞만보고 달려가는 삶에서 주변을 잃어버립니다.

제 혼자만 잘났다고 주변을 배제하고 높이 치솟고자 한 삶은 고독을 수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높이 올라가지 않더라고 낮게 작고 느리게 가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함께 어울리는 삶을...

저희는 이번주 이런 살갑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희망의 노래 꽃다지가 마련해준 공연을 갖고 다솜공동체 이야기를 위한 한마당 행사를 합니다.

더불어 가는 삶이 무엇인지.... 이 행사를 통하여 느끼고 나누고 배우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철수의 집 나뭇잎 편지를 올려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베트남 이주노동자 으엉외 2인(덩, 히우) 사업장 변경 요청 건

  • 등록일
    2011/08/29 18:40
  • 수정일
    2011/08/29 18:41

베트남 이주노동자 으엉외 2인(덩, 히우) 사업장 변경 요청 건

 

­ Hoang Tri Dung(덩)

­ Tran Trung Uong(으엉)  

­ Nguyen Tien Hieu(히우)

 

베트남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할 당시 3개월 수습기간을 두고 3개월간 87만원의 임금을 지급받기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고용허가제 농축산업비자(E­9­4)비자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동 소재 봄이농장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2011년 5월 24일 입국한 으엉은 6월 임금 62만원, 7월 임금 72만원을 지급받았고, 히우는 6월 임금 67만원, 7월 임금 37만원, 덩은 6월 임금 79만원, 7월임금 72만원을 지급 받았습니다.

 

식사는 제공하지 않고 직접 해먹고, 기숙사비는 임금에서 공제하기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위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에 농축산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들어왔습니다. 농업특례적용이라해도 한국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으로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임금을 받았지만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한 꿈을 갖고 근로를 하였습니다. 한국어도 익숙하지 않지만 수습 3개월 기간동안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공정 근로계약으로 봄이 농장에서 근로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념으로 농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업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히우는 7월 농장주가 15일 일을 시키지 않아 임금에서도 확인되었듯이 37만원의 임금을 지급받았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기숙사비 공제는 어쩔 수 없다지만 컨테이너 물세, 전기세, 가스비를 임금에서 공제하였습니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도 지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농장주의 부당한 처우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렇듯 최소 3개월 수습기간 임금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을 받으며, 한 달에 일요일 2번의 휴식과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이는 농장주가 이주노동자 채용의 의무를 저버린 처사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을 익히는데 수습과정과 시간이 걸립니다. 말 이 통하지 않아 때론 화도 나겠지만 낮선 한국이라는 먼 타향에서 오직 돈을 벌어 가족생계에 보탬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이주노동을 위해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족처럼 대해 주지는 못하지만 노예적 노동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 것은 이주노동자 처우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업주의 책임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회사는 이주노동자 처우와 부당한 대우를 넘어서 회사 농장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베트남 이주노동자 3인이 밉게 보였는지 농장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사업장 낙서 및 비닐하우스 찍어지는 사건)을 베트남 3인 이주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며, 급기야 8월 6일 인근 모현경찰서에 신고를 하여 경찰조사를 받게하였습니다. 어떠한 증거도 없이 불만이 있겠다 싶어 사건의 당사자로 베트남이주노동자를 지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8월 6일부터 14일 동안 베트남 이주노동자 3인이 범인으로 의심한 것인지 일도 시키지 않고 기숙사에만 있게 하였습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3인은 한국에 온지 2개월 조금 넘긴 시점에 사업장의 이러한 행위로 마음에 씻기 어려운 크나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도 않은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 파출소 조사 받았습니다. 이 마음의 상처를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까요. 한국어를 모른다고 해서 이렇게 부당하게 이주노동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농장에서 어떻게 이주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런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여전히 한국사회 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존재로 낙인 되거나 말을 모른다고 무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서슴없이 자행되는 것이 정말 부끄럽게 다가옵니다.

 

하지도 않은 사건을 했다고 사업주로부터 신고를 받고 경찰서에 조사를 받았고, 이도 모자라 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손해배상을 사업주가 물고, 일을 주지 않고, 피해보상금 100만원을 주면 사업장변경 신청서 사인을 해주겠다는 농장 사모님의 처사에서 농축산업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애환과 서글픈 현실을 발견하고 같은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여전히 우리안의 차별의식과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천대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생각됩니다.

 

8월 6일 식자재가 없어서 사장님 사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였는데 가지 못하게 하였지만 시장에 갔습니다. 그 당시 식사를 해먹었기 때문에 시장을 가야했습니다. 한 달에 2번 일요일 쉬기에 그날 장을 보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벌로 8월 14일까지 회사에서 사장님이 일거리를 주지 않고, 기숙사에서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2달이 조금 지났지만 사장님에게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죄도 짖지 않았는데 파출소에 사장님 신고로 들어가 조사를 받았고, 일을 못해서 사장님에게 맞기도 하였고, 하지도 않는 일로 인해 농장주로부터 피해보상금을 배상하라는 요구를 하였습니다.(사업주는 낙서와 농장비닐하우스 파손을 이야기하였지만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글씨를 쓸 줄 모릅니다. 사업주가 주장하는 낙서도 하지도 못하였습니다.)

 

현재 사업주로부터 배상금을 내지 않으면 베트남으로 쫓겨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불안함과 사업주로부터 정신적 피해를 입은 베트남 이주노동자 3인에 대해서 용인고용지원센터에서 3인에 대해서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와 최저임금법 위반등 조사를 통하여 사업장변경을 해줄 것을 요청 드립니다.

 

조사를 통하여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직권조사를 통해 이주노동자 구제신청(사업장 변경)을 해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2011. 08. 29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쉼터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

  • 등록일
    2011/07/01 21:27
  • 수정일
    2011/07/01 21:27
쉼터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가득이나 더운 날씨에 사업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원하는 회사가 없어 오늘 다들 기운이 빠져서 들어왔다.

자 신이 원하는 사업장을 찾기 위해 천안, 인천, 서울, 수원, 의정부를 동분서주하지만 원하는 사업장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대다수의 이주노동자 고용사업장들이 영세사업장이고, 열악한 환경의 노동조건이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업장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친구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첫째, 위험한 프레스, 도금, 화학도료 공장에 다니지 않는다.
둘째, 야간노동은 하지 않는다, 돈이 적더라도 주간 근무를 하고 싶다.(오후 10시까지 잔업은 감달할 수 있다.)
셋째, 컨테이너 기숙사가 아닌 원룸 또는 콘크리트 구조물 기숙사에 자국 음식을 해먹을 수 있어야 한다.(관리비를 제공해도 좋다, 열악한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았으면 한다.),
넷째, 일요일 휴무이어야 한다.

위와 같은 조건을 내걸고 사업장을 찾고 있다.
월급은 적어도 좋다. 어차피 이주노동자들 대다수가 최저임금법에 최저임금을 적용받으니 높은 임금보다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개된 일터들 대다수가 주야 2교대이다보니 사업장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은 개별 계약노동을 해야함으로 자신의 조건을 내걸거나 주장을 하면 하나 같이 사업주들이 다른 회사를 알아보란다.

그래서 사업장 변경자인 이주노동자들은 3개월의 구직기간 동안 자신의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달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다음달 조건을 하나둘 낮추며, 사업장 변경 기간 제한으로 피치 못하게 시간에 쫓겨 회사를 구하게 된다.

그 리고 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사업장에서 고용보험을 가입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최소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 산재, 건강보험(국민연금 제외 대상 국가들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 법적으로 국민연금 적용제외국도 철회되었으면 한다.)의무 가입이 법적으로 보장받았으면 한다.

오늘 더운 날씨에 밖에서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센터와 사업장을 방문하며, 힘든 하루를 보낸 이주노동자들 신세한 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넋두리만 들은 하루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늘 일상을 보내며....

  • 등록일
    2011/06/28 19:34
  • 수정일
    2011/06/28 19:35

이번주 내내 영상활동가 부고 소식으로 머리가 어수선하다.

함께 알고, 오산센터에 내려오라고 하여 제작년부터 작년 10월까지 오산에 있던 영상활동가 숲속 홍길동 형의 죽음이 충격이다.

 

4월 11일 일괄적으로 보낸 메일.... 돈이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노동자교육센터에서 영상활동으로 취직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어려움이 큰 것 같다.

 

4월 11일 메일을 보고 돈을 보내주지 못한 것이 지금 마음에 죄로 남는다.

차비가 없거나 담배값이 없을때 비록 적은 비용이지만 알고 지낸 기간 형에게 빌려주거나 자의든 타의든 송금해 준  돈이 얼추 300만원 이상이 된다.

 

그래서 올해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돈을 송금해주지 못하였다.

2달하고도 며칠이 지난 지금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경제적 고립감이 극단의 선택을 하였던 것 같다.

그나마 노트북과 캠코더가 있었다면 형은 자유롭게 투쟁의 현장을 누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활동의 무기인 카메라와 노트북이 형의 전부였는데... 하는 지난 푸념만 해본다.

저렴한 비용으로라도 사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센터장과 어려 동지들이 외롭지 않게...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해주고 있어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오늘 형이 맡기고간 짐들을 하나둘 정리해 본다.

가방에 한아름 든 6mm 테이프를 보면서 형이 다녔던 투쟁의 공간을 회상해 본다,.

작은 글씨로 년도별 글을 쓴 테이프가 형이 투쟁의 현장을 누비고 활동하였음을 말없이 입증하고 있다.

옷가지는 추려서 다른 이들에게 주기 위해 녹색가게로 옮길 예정이다.

 

숲속 홍길동의 흔적이 담긴 테이프와 옷가지를 정리하며.....

그래도 여러사람들이 그 가는 길 흥건한 잔치를 벌여주고 있어... 마음은 한결 가볍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