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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같은 여성결혼이민자

  • 등록일
    2010/02/28 13:54
  • 수정일
    2010/02/28 13:54

우리센터에 함께하고 있는 여성결혼이주민이 몇명이 있습니다.

그중 4월 같은 여자... 필리핀이 고향이고, 한국에 온지 13년이 된 메지아 글로리아지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가슴속에 묻은 아들과 지금 아래층 다솜공부방에 나오는 인철이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4월같이 항상 밝은 여성.... 푼수 같지만 4월 들판의 꽃들처럼 하늘의 햇살처럼 맑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큰 눈을 갖은 그 여성... 늘 센터에 나오면 먼저 나와 있는 여성....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아랫동네에 살아서 아침 일찍 센터로 출근할 때면 인철이가 지각했다고 가방을 메고 인철이와 함꼐 학교로 뛰어가는 여성입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던 여성.... 그래서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졌나 봅니다. 한 아이를 가슴속에 뭍어두어야 했던 여성.... 그래서 병을 앓았던 여성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순수한 여성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문화라고 이야기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원의 손길이 사회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 텔레비젼 방송에서 농촌의 여성결혼이주민이 나오는 공익광고도 보지만 이전에 온 여성은 정말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말을 가르쳐 줄 곳이 없어 혼자 동네아주머니들과 어울려 배워야 했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혼자 집안을 지키며 유일한 소통구인 자녀와 함께 외롭게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2006년 말에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지금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보다 일찍 센터에 나와 컴퓨터도 하고 그렇게 있습니다. 또 저희 사회적일자리사업에 참여도 같이 하였구요.... 마지막 산재를 당해 조금은 고생도 하였지만요.....

 

늘 아주머니들에게 배운 말로 누군가를 부를때면 너... 니가 불쑥 나오고.... 혼자 말하고 혼자 웃고.... 가난하지만 늘 배풀기를 좋아해  먹을 것을 많이 사옵니다. 먹을 것을 사와 센터 식구들에게 타박을 받습니다. 앞으로 먹을 것을 사오면 센터 출입금지라고 엄포도 놓지만.... 배풀기 좋아하는 습관 때문에 센터 식구들 모르게 모르게 먹을 것을 사와 나눠주다가 혼도 나고 구박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 글로리아씨는 아픔이 있습니다.

3년전 큰 아들을 가슴속에 뭍어야 했습니다.

인근 천변에 나가서 큰 아들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의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우울증 증세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온 이주여성 특히 저소득계층과 결혼한 여성은 늘 가부장제 권위적 가족관계라는 울타리에 갖혀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사람 또한 어려운데 문화가 다른 사람들의 이질감 그리고 소통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은 상상하기도 싫겠지요.

 

다문화사회라고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속에 빈곤으로 이주하여 유입한 이주여성의 시각은 없습니다.

한국사회 정주시키기 위한 귀화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문화라는 것은 철저히 자국민화라는 시혜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문화라를 외치지만 다문화라는 허울속에 이주여성의 존재감은 상실하고, 예산투여와 성과 위주의 정책들만이 난무합니다. 과연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서 문화공존을 위한 매개자로 그리고 활동가로 양성되는 곳이 있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손길을 내밀지만 손길을 내밀기에 우리 손길이 짧아서 그런지 손 잡아주기에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소소한 것에서 서로가 교감 것인데... 주변을 보면 사업이라는 울타리 장막에 이주민 지원단체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문턱을 낮추고 이주여성 그녀들이 함께 어울리고 방문하고 그녀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를 이야기할 수다방 그리고 함께 배우며 커갈 공간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추구하는 다문화 그건 예방 낭비의 전형적 틀입니다.

고민의 깊이.... 이주여성 그녀들과 살아갈 존중과 배려의 미덕은 없이 프로그램이라는 무수한 행사 치르기에 이주여성들은 대상자로 그 위치가 지여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녀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함께 즐거운 것을 만들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을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있겠지만 여전히 미비한 것 같습니다.

 

글로리아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사회의 배타성 그리고 관용과 배려는 여전히 적은 것 같습니다.

물질의 우위가 사람의 지위를 가늠하는 우리사회가 과연 미래지향적 사회인지... 한국이 경제성작에 비해 문화, 사회적 성숙이 여전히 미비함을 발견합니다. 

 

물질적인것도 경제적인 것도 아닌 가장 낮은 마음을 나누는 소소한 일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작지만 쉽게 할 수 있는 관심과 귀를 이주여성에게 귀기울이고,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그러면 메지아글로지아씨 같은 화사한 4월의 여자를 볼 수 있을 거에요. 저희는 메지아글로지아씨가 와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동화책을 읽으며, 웃고 있는 그녀.... 만득이라는 글 읽기 배우기를 하면서 만득이 욕하는 대목에 우리에게 욕을 하면서 깔깔 웃는 그녀.... 밝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들이 있어 행복하답니다. 배우고 나누고 함께할 수 있기에.... 늘 배움을 주고 늘 초심을 읽지 않게 해주는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수 많은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답니다.

 

4월 꽃의 화사한 만큼 저희 마음에도 글로리아지씨 같은 분이 있답니다.

 

얼마전 마음속에 품은 큰 아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잘 생겼지 하는 그녀의 말속에... 아이에 대한 어머니 사랑의 깊이를 느껴보았답니다. 모든 어머니의 모성처럼 마음속은 한결같지만 사진속 큰 아들 또한 아마도 하늘에게 엄마를 부르겠죠...... 글로리아지 가슴 깊은 곳 묻어 두었던 아이를 훔쳐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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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 한국 정주에 대한 짧은 단상....

  • 등록일
    2010/02/28 13:50
  • 수정일
    2010/02/28 13:50

단상 1. 이주여성의 삶과 미래.... 당당한 여성으로 거듭났으면.....

 

결혼이민자인 태국 이주여성 와라펀씨가 아침 일찍부터 센터에 찾아와 다솜 어린이방 아이들과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막내가 다녀서도 그렇지만 누구보다 아이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와라펀씨는 태국여성이지만 당당하고 똑 부러진 성격을 지닌 맑은 영혼을 지닌 태국이 고향이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주여성입니다. 

 

너무 똑부러져 우리도 당혹할때도 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입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근심이 많습니다. 태국과 다른 한국사회... 언어로 인한 고통과 사회적으로 이주여성이기에 부당함을 당해야 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

 

태국에서는 4년제 정규대학 회계학을 전공하고, 회계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다른 이주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빈곤의 굴레 벗어나고, 가족들의 행복한 삶에 자그마하게 보탬이 되고자 자신을 희생시킨 여성이기도 합니다.

 

한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다른 이주여성처럼 일을 하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고자 한국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이도 꿈에 지나지 않았음을 한국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 10년째 한국생활을 하면서 점점 그 깊이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다문화 그리고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지원과 한국사회 정주를 위한 노력을 하지만 1세대인 와라펀씨 같은 경우는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와라펀씨에게 지금과 같은 기회가 있었다면 지난 10년 어두운 터널에서 혼자 외롭게 갖혀 지내지 않고, 날개를 활짝피웠을 것인데.... 지금 뒤늦었지만 그 지난 세월이 너무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와라펀씨는 가족을 이끄는 가장이기도 합니다. 늘 태국인을 위해 헌신하며, 자원봉사, 상담활동, 통역 그리고 태국 여성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와라펀씨도 가난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짬짬이 나는 시간에도 아르바이트며, 시간제 일을 합니다.

 

아이들 생활과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서 와라펀씨가 돈을 모아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로 가계를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와라펀씨에게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희 센터에서 1년 2개월간 사회적일자리를 참여하였지만 이도 낮은 임금에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펼칠 기회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여성센터와 가족건강지원센터, 이주여성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지만 정작 와라펀씨가 갈 수 있는 것은 노동부에 구직등록을 하여 다른 비정규 여성보다 취업문이 좁습니다.

 

여성결혼이민자 일자리를 늘린다고 정부는 발표하고, 다양한 사업에서 창업지원이다. 사업이다 이야기를 하지만 결혼한 이주여성에게는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센터에서 하는 취업이다. 교육프로그램이다 살펴보지만 이러한 사업은 생색내기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이주여성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우리의 눈높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센터에 있는 오목사님은 와라펀씨가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미래를 위해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으면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복지사 공부와 보육교사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였으면 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오목사님은 향후 이주민 자녀의 어머니로서 이주여성의 선배로서 언니로서 당당히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이 살아갈 수 있는 길잡이로, 안내자로, 교육자로 삶을 이끄는 당당한 여성으로 어머니로 거듭났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보다 자신을 가꾸는 이주여성으로 와라펀씨가 한국사회에서 당당한 여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단 와라펀만이 아닙니다. 모든 이주여성이 교육과 취업과 삶을 가꾸는 소중한 존재로 인식이 보편화 되기 위한 방향으로 다문화라는 키워드가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시혜가 아닌 동정이 아닌 우리와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고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반쪽짜리 이주여성이 아닌 당당한 여성, 어머니로 대우받았으면 합니다.

 

와라펀씨와 같은 이주여성이 가족이 전부가 아닌 일부고, 자신을 가꾸고, 자신을 위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당당한 여성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울타리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이주여성에게 한국사회는 하나의 장막입니다. 장막과 편견 그리고 배타성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국수주의로 자리매김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혜와 동정 포용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주여성이 당당한 여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자리 그리고 교육... 전문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니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와라펀씨가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이주여성을 위한 사회복지사, 아시아 문화를 위한 다문화 교육자,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사, 이주여성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가족 컨설턴트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교육이 이주여성들에게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더디더라도 저희는 조금 욕심을 내봅니다. 와라펀씨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물질적 지원은 어렵지만 정신적이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 또한 한걸음 뛰어보고자 합니다.

 

와파런 씨 같은 여성이 당당한 여성으로 그리고 이주여성의 눈으로 이주여성, 자녀, 가족들을 마음 따스히, 맑은 영혼으로 포용할 수 있는 여성으로 거듭나 한국사회에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와라펀씨만이 아니라 우리주변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당당한 여성으로 결혼이주민의 부조리한 한국사회에 대한 외침을 당당히 펼쳤으면 합니다.

 

부디 올해 와라펀씨가 사회복지 공부에 한걸음 전진해 갔으면 합니다. 아마도 이전에 베트남 이주여성이 잔띠짠(한국명 진성희)씨가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 진학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부디 용기로 다가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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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2. 빈곤화에 의한 이주와 이주여성 성폭력과 성산업 관음증에 사로잡힌 한국사회....

 
와라펀씨로 부터 태국이주여성이 사업장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저희보다 많이 접하였을 것입니다. 사업장에서 고용조건에 따른 체류비자를 빌미로 한국에서 20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비일비재 합니다.

 

이주여성 성폭력에 대한 우리는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있다.
체류비자가 있는 이주여성은 그나마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이주여성의 몫이기에 무척 난감하다. 그리고 두려움과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으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폭력의 무서움을 견디어야 한다. 미등록이주여성은 말할 수도 없다. 이런 위협이 가해지면 사업장을 무작정 나와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 이주여성은 무방비 사태에 놓여있다.
이제 조금씩 빈곤으로 인하여 아시아에서 이주한 이주여성에 대한 문제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여성결혼이민자 다문화라는 허상은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주라는 화두 내면에 있는 빈곤과 노동력에 의한 노동자의 이동, 그리고 늘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라는 화두, 아동권에 대한 우리의 이주에 대한 고민들이 하나둘 이야기 되어야 한다.

 

이주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 또한 이런 쓰라린 아픔을 지니고 있다. 조정래 대하소설의 아리랑에서 감골댁의 2째 딸 중국으로 이주한 수국이가 당해야 했던 괴로움이 남의 일이 아니다, 남성으로 부터 당해야 했던 성폭력의 무서움과 그 괴로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린 언젠가 잊어버렸다. 남의 일로 치환된다.

지금도 미국 클럽, 어느 바에서 이주여성이 남성의 성노리개로 전락한 현실에 우리는 막연히 침묵하고 있다. 아니 한국에 있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 또한 그러하다.

 

가난하기에 돈을 벌어야 하기에 성산업으로 유입된 여성노동자.... 그녀들에게 다른 길은 없는지.... 아마도 사회적 윤리규범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이를 찾는 관음증에 걸린 남성이 존재하는 한 이 고리는 끊이질 않지만 이주여성이 이제 점차 성산업으로 유입된 여성의 자리를 치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주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은 부재하고, 이주여성 인권센터,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들이 있지만 접근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사회적 의제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 관음증에 굶주린 남성들이 존재하는 한 여성의 성폭력과 여성의 성산업 유입은 차단이 아닌 확대재생산 될 것이다.

 

이주와 여성의 성폭력과 관음증에 사로잡힌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개선노력과 사회적 의제화 그리고 이를 위한 실천방안들이 주요하게 모색되고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주여성 또한 겪고 있다. 단지 빈곤에 의한 이주가 그/녀들을 우리와 다른 이도 차별과 편견을 부추기고 있다.

 

시혜와 동정을 통한 포용이 아닌 우리가 힘껏 끌어않아야 하는 이주한 이브임을 우리는 상기하여야 한다.

이제 감추지 말고 여성의 성폭력과 이주여성의 성폭력을 맞선 연대와 지원이 본격화되고 이에 따른 활동들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외침에 우리도 귀기울이고, 연대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 그리고 치유가 아닌 범죄를 예단하여야 한다. 혼자 그 고통에 괴로움에 떨고 있는 이주여성 그/녀들을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한다.

 

빈곤에 의한 여성의 이주화, 이주여성, 성폭력, 소외, 차별이라는 단어들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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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공부방 책을 읽고....

  • 등록일
    2010/02/26 17:18
  • 수정일
    2010/02/26 17:18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이라는 책을 인터넷 한겨레에서 기사를 읽고, 황급히 책을 구입하였다.

 

 

산동네 = 달동네에 유년기를 살았기에 그 책에서 내 동심의 추억을 회상도 해보고 그 공부방이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을 발견하고 싶은 기대심리가 작동하여 책을 사서 하루만에읽었다.

 

그 이야기에서 잊혀지는 것들을 발견하고 산동네 풍경을 상상해 보다.

산동네의 골목길....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레잡기와 놀이를 하던 공간..... 지금은 다들 개발로 산동네들은 하나둘 헐리고 그 헐린터에 괴물같은 아파트가 들어서 천정부지가격을 자랑하는 곳으로 변해버린 곳..... 유년의 공간이 없어져 버린 삭막한 도시에 살아가는 지금.... 그 산동네에서 그리움을 떠올리고 유년시절 삶을 생각해 보았다.

 

산동네 개발인 된 사람에게는 유년시절 그 정겨운 골목길 풍경은 이제 고스란히 자신의기억에 묻어두어야 한다. 추억이라는 앨범에 넣어두어야 한다.

잊혀지는 이름 골목길.....

 

공부방이 있어 행복한 아이들....
공부방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도시빈민지역엔 공부방이 부족하다. 지금은 공부방들의 지난 노력으로 인하여 지역아동센터가 만들어지고 영육아보호법에 의하여 지역에 어린이 집이 생겨 아이들 식사와 공부 그리고 놀이를 할 수 있지만... 나의 유년시기는 이러한 공부, 식사, 놀이는 순전히 산동네 각자 아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유난히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집에서 호통을 치면 아이들과놀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갔던 시기.....

 

동네 이웃들이 정겹게 살아가던 곳
고르게 가난한 시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지만 지금의 삭막함보다는 덜 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나눔이 일상화 되던 곳..... 겨울철 연탄 100장이 들어올때 흐뭇함을 느끼고, 봉지 쌀을 사고 올라와 연탄불에 밥을 해먹던 곳, 가족들이 쌀집에서 운영하던 통닭집에서 통닭을 사다 가족회식을 하던 기억, 친척이 사준 곤로가 들어와 밤잠을 설치던 기억,,,,, 서울 하늘에 별이 제일 가까이 보였던 곳.... 여름 하늘 동네 할머니들과 공동주택 마당에 앉아 귀신이야기를 들으며 무서움에 떨던 기억.... 늘 시끄럽지만 가난이라는 굴레로 사랑 싸움이 이집 저집에서 벌어지던 곳.... 이런 기억들을 회상해 보았다.

 

그런 곳에 그나마 공부방이 있어 졍겨웠을 것이다. 혼자 밥상에서 밥을 먹고 부모가 늦게 귀가하여 기다리다 방에서 곤히 잠을 자던 기억들..... 기다려도 기다려도 부모가 오지 않아 울기도 하고 덩그란히 골목길 나무 가로등에서 부모를 기다리던 기억..... 그나마 부산 감천동에는 이런 공부방이 있어 부럽다.

 

우리 산동네에도 이런 공부방이 있었으면 하는데.... 우리 산동네에는 없었다.
그래서 감천동 공부방아이들의 일상을 보면서 부러움이 많이 든다. 소소한 기적들이 있지만 우리 동네에도 공부방은 없었지만 가난한 이웃들이 있어 행복하였다.

 

주인집을 빼면 5평의 부엌딸린 집에서 9집이 벽을 맞닿아 살던곳.... 옆집의 싸움소리로 밤잡을 설치는가 하면 생일날이면 작은 음식이지만 나눔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이웃이 있어 기댈 수 있던 곳.... 가난보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땀흘리며일하던 이들이 살던 곳..... 그곳이 산동네이다. 가로 등이 켜지면 산동네는 생기가 돈다. 옆집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던 공간..... 산동네에서 후배 친구들과 힘자랑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가는 다방구, 땅따먹기, 망까기, 자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곳..... 공터는 없었지만 골목길이 술레잡기의 공간이 되고,,,,, 겨울철이면 너나 할 것없이 비탈진 길에 사람이 미끌어 질 까바 연탄재를 깔아 놓던 마음이 가난하고 찌들었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

 

동질감을 느낄 수 있던 곳..... 친구가 되어준 멋진 대학생 누나 형들이 있던 그곳이 부럽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악동들의 모습에서 유년 그런 것쯤은 다 동일하게 겪었지 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추억을 하나둘 끄집어 보았다.

 

시골이지만 문방구에서 하도 공책과 물총이 탐나 친구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공책과 물총을 훔쳤던 기억,,,, 두려움과 흐뭇함이 동시에 배었던 것.... 시골 슈퍼에서 하도 과자가 먹고 싶어 훔쳤다 들켜 어머니에게 작대기로 곡이 나오도록 맞았던 기억.... 그런 기억들이 난다.(산동네에 산 것은 중학교를 서울로 오면서 이다. 그래서 유년시절 시골과 산동네는 비슷할 것이다. 시골 집도 산동네이니까... 서울 산동네를 왔을때....

 

참 이웃이 정겨워 좋았다. 아침 텐뿌라 아저씨가 있어 도시락 반찬을 매일 텐뿌라로 해결하던 기억.... 김치가 없어 옆집에 김치동냥을 해도 정겹게 김치는 내어주던 이웃집 새댁 아주머니.... 늘 용기를 주시던 우리 공동주택분들이 있어서 참 행복했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고스란히 나의 몫......

난곡동, 옥수동, 기자촌, 돈암동에서 살았던 기억이 참 정겨웠고, 참 행복하였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인 것 같다.

선생님 따스함이 산동네를 참 흐뭇하게 감싸고 있음을 느껴보았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따스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책이다. 행복함.... 그 산동네 유년으로 돌아가보는 가슴 찡한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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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도현] 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 등록일
    2010/02/26 15:09
  • 수정일
    2010/02/26 15:09

시집을 샀다.

그것도 무려 21권이나 충동구매로 샀다.

카드를 긁었다.하지만 택배로 배달된 소포를 뜯고 열어보니 책들이 가지런히 있었는 것을 간만에 느껴보니 책으로 인한 기쁨이 밀려왔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없이 살다. 예쁘게 포장된 책을 보니 마냥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이전에도 책을 사는 기쁨 읽을 것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이 압박을 빼고 책 표지만 봐도 즐겁다.
그래서 가장 가벼운 책 한권 안도현 시집의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집을 집어 들었다.
목차를 보고 간략히 쓴 글을 보면서 눈에 들어오는 제목과 싯구가 눈에 들어와 이 공간에 올려본다.

이발관 그림을 그리다.
 

                                                                                       안도현


지붕이야 새로 어엉을 얹지 않더라도
왼쪽으로 빼딱하게 어깨 기울어진 슬레이트면 어떠리

먼산 휜 눈 쌓일 때
앞 개울가에 푸른 풀 우북하게 자라는 마을에
나도 내 집 한 채 그려넣을 수 있다면

서울 사는 친구를 기다리며
내가 기르던 가치를 하늘에다 풀어놓고
나 이발관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누우리
시골 이발관 주인은
하늘의 구름을 불러모아 비누 거품을 만들겠지

이 세상의 멱살을 잡고 가는 시간 같은 거
내 몸 속을 쿨럭, 쿨럭 거리며 흐르는 강물 같은 거
빨래줄에 나란히 펼쳐 널어놓고
무시로 바람이 혓바닥으로 핥아먹게 내버려두리

내일은 사과나무한테 가서
사과를 땅에 좀 받아 내려놓아야지, 생각하다 보면
면도는 곧 끝날 테고

나 산모롱이를 오래오래 바라보리
문득 기적 소리가 들리겠지
그러면 풍경 속에 간이역을 하나 그려넣은 다음에
기차를 거기 잠시 세워두리

내가 머리를 다 말리기도 전에
기차는 떠나야 한다며 뿡뿡 울며 보챌지도 몰라
그러면 까짓것 보내주지 뭐
기차야, 영가 어슬렁거리는 밤길은
좀 천천히 다려야 한다, 타이르면서

내 친구는 풀숲을 더듬거리며 오리
길을 왜 사람이 없냐고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이라도 그려보라 하겠지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예끼, 짐짓 모른 채 능을 걸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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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희성] 나도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 등록일
    2010/02/26 14:48
  • 수정일
    2010/02/26 14:48

자유인님의 [단식3일차 ] 에 관련된 글.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이진명시인의 시를 읽으며

                                                    정 희 성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모래처럼
외로운지를 알았다
나의 불온성에 비추어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망가지는 것들이 한때는
새것이었음을

하지만 나에게 무슨 영광이 있었던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으나
사람들은 내가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세상은 그렇게 일목요연한 게 아니라고

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무엇일 거라고
결코 상상해서는 안된다고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이념을 내려놓으라고
그런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기에

나는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알면서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더 외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정희성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2008년)

*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고백처럼 이렇게 말하게 될 때의 심정은 어떨까요. 시대에 대해 또는 세상에 대해 고분고분하지 않고 불온하게 대들곤 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정신도 몸도 많이 망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요. 이 시속에서 말하는 이는 자신이 모래알처럼 외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의 편견과 질책과 비난 그런 것들과 맞서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망가지기도 했을 테고, 타협하거나 비겁하게 뒷걸음질 치다가 망가지기도 했을 겁니다. 모든 새 것이 서서히 망가져 온 과정이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힘 때문에 망가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는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우깁니다. 내 속에는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내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어서 더 외로운 것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살아오면서 많이 망가진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 정도라면 좀 망가졌다 해도 아직은 괜찮습니다.  

* 정희성은 1945년에 태어나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답청』,『저문 강에 삽을 씻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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