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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를 날카롭게 갈아서 뭐 할려고?

  • 등록일
    2005/05/22 21:31
  • 수정일
    2005/05/22 21:31
9개월째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설운송노조 한일분회. 19일 한일시멘트 본사 진입투쟁을 막기 위해 투입된 경찰의 날선 방패가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방패 갈아서 노동자의 목을 치겠다는 거냐.” 흥분한 노동자들이 규정위반임을 경고하고 지휘관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개의치 않는 듯 방패를 교체하는 시늉조차 내지 않았다. 자본가를 향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막아서는 경찰의 날선 방패, 그 너머 젊은 경찰들의 키득거림과 비웃음은 누구를 향하고 있나. 전투경찰 출신 한 노동자의 외침, “바로 전역 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너희들을 겨누는 것이다.” 이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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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제국주의론

  • 등록일
    2005/05/15 12:26
  • 수정일
    2005/05/15 12:26

    레닌의 저술 『제국주의론』(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은 1916년 초엽에 집필되었다.  그런데 사실 레닌의 이 저술은 그 전해에 저술되었으나 레닌의 책보다는 몇 개월 뒤에 출간된 역시 볼셰비키파의 지도자인 부하린(Bukharin)의 『제국주의와 세계경제』(Imperialism and World Economy)와 유사한 점이 많다.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일종의 금융자본의 정책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로 시야를 확대할 때 중요한 것은 모든 특정국가가 제국주의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 국가끼리 경쟁하는 점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그는 정책과 이데올로기로서 제국주의를 본후 발전의 특정단계 가운데 세계경제의 한 특징으로서 제국주의를 본다.

 

     레닌은 이것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여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한 단계로서 다룬다. 다른 이론가들이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한바 있는 정책들은 물론이고 독점의 대두와 금융자본의 발생등 다른 제 현상도 이 단계의 특징을 이룬다. 즉 모든 것이 제국주의라는 표지하에 포함되는 것이다.

레닌의 이 정의는 다소 혼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한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라는 보다 좁은 의미로 공통적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레닌의 팜플릿『제국주의론』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이론 자체의 발전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 이유는 이론적 내용에서 홉슨과 힐퍼딩과 부하린과 같은 다른 저자들로부터 주로 끌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지침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 저술에서 레닌이 취한 기본적인 연구방법은 집필 당시의 자본주의 발전의 일련의 경향을 부각시킨 다음, 각 경향을 실제적인 증거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르주아지들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부르주아지적인 자료를 그 증거로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일련의 경향으로 제시한 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생산과 자본의 집중은 매우 높은 단계로 발전하여 경제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독점을 창출한다. (2) 산업자본과 은행 자본의합병, 그리고 이러한 금융자본의 토대 위에서 금융과두체제의 형성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4) 세계를 자기들끼리 분할하는 국제적인 독점자본주의적 기업합동의 형성 .(5) 자본주의 초강대국간에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성된다.

 

     이 연구방법의 경우 문제점은 각 경향이 분리되어 묘사되고 그 경향들간의 상호연관성은 논쟁 가운데서 일시적 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론의 이론 정립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경향간의 상호 연관성이다. 즉 위에 열거한 일련의 경향이 동시에 일어난 우연의 문제에 불과한가 아니면 자체내에 내재하는 경향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본질적인 상호연관성이 존재하는가하는 점이다. 위에서 보듯 레닌은 제국주의를 독점자본주의의 단계라고 가능한 한 최대한 간략하게 정의하면서 자본주의의 여타의 제 경향은 독점의 발전 때문에 일어 난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이러한 경향들은 실제로 그 당시의 자본주의의 발전을 지배했을 것이고, 레닌에게 실제적인 문제는 이 상황 속에서 혁명정당을 구축하기 위한 정치전략적인 문제였다.

 

      레닌이 제시한 경향들은 그가 예상한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첫번째 경향인 자본집중의 문제는 훨씬 심화된 반면 마지막 경향인 세계의 영토적 분할은 탈식민지화로 실제적으로 역전되었다.

 

그렇다고 탈식민지화로 제국주의적 지배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변화된 상황을

파악하려면 레닌이 관찰한 제경향의 이면에 작용하는 과정들을 이해해야 한다.   레닌이 제시한 목록 가운데서 처음의 두 경향인 독점의 대두와 금융자본의 대두는 힐퍼딩의 견해를 크게 추종하고 있어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르크스가 예견한대로 점점더 소수의 단위에 생산이 집중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르텔의 경향을 강조한 것은 힐퍼딩과 강조점이 다르다.

 

그는 또한 은행의 독점적 발전과 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의 지배와 생산에는 전혀 능동적 역할을 하지 않는 화폐자본의 유휴소유자인 금리생활자의 기생적인 지배를 강조한다. 한편 그는 자본수출의 문제에서 자본수출의 필요성은 소수국가에서 자본주의가 너무 성숙하여 자국내의(농업의 후진단계와 대중의 빈곤상태로 인하여) 자본이 더 이상 '유리한' 투자분야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말은 문제가 있다. 농업의 후진단계와 대중의 빈곤 상태가  결코 이윤율 저하의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농업의 후진단계는 자본의 평균적인 유기적 구성을 감소 시키고 이윤율을 증가 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리어 홉슨에 의해 제시된 과소소비론적 분석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그는 자본수출이 후진지역의 발전을 가속화 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는 인도와 중국과 같은 후진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을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논리로도 읽힐 수 있음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마르크스의 견해의 반복이다.

 

*참고문헌: Anthony Brewer, Marxist Theories of Imperialism; A Critical Survey (염홍철 역)  (사계절, 1984)

자료제공: 장세용 박사, 프랑스근대사 전공, 영남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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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비옷만이라도…”

  • 등록일
    2005/05/11 08:16
  • 수정일
    2005/05/11 08:16

폭우가 쏟아지던 5일 오후 7시께 울산남부경찰서 앞.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SK(주) 70m 정유탑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농성단에게 비옷이라도 전해달라며 애원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고 이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글=마영선 기자(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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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철학적 실천과 유물변증법 구상(읽고 올린다.)

  • 등록일
    2005/05/10 18:10
  • 수정일
    2005/05/10 18:10
레닌의 철학적 실천과 유물변증법 구상 <목차> 1. 서론: 레닌에게 있어 정치와 철학의 관계 2. 초기 레닌: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으로 서의 유물변증법 구상을 항하여 3. [유물변증법과 경험비판론]에서의 레닌의 '철 학적 저술' 4. [철학노트]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준으로서의 변증법 5. [철학노트]와 '세계변혁을 위한 지렛대'로서 의 유물변증법 6. 결론 1. 서론: 레닌에게 있어 정치와 철학의 관계 레닌의 찬양자이든 그의 적대자이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닌이 프롤레타리아계급운동의 가장 탁월한 정치적 지도자, 전략-전술가였다는 점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자로서의 레닌 내지 레닌이 과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는지의 문제, 더 나아가 마르크주의 철학 발전의 레닌주의단계가 과연 설정될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 레닌이론을 이론적 논구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볼세비키정당 및 소비에트국가체제를 정당화하는 권력정치적 지배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문제삼는 부르주아학자들의 견해들을 일단 제처놓는다고 할지라도 - 마르크스주의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체로 서로 대립되는 두개의 입장이 제시되어왔다. 그 하나는 칼 코르쉬(Karl Korsch)나 안톤 판네괴크(Anton Pannekoek)와 같은 1930년대의 서구 급진좌파의 견해 및 이들의 레닌 평가를 대체로 수용하는 서구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로서, 이들은 대체로 레닌이 유물론의 수준을 마르크스에 의해 이미 극복되었던 18세기의 중간계급적 유물론 내지 부르주아 유물론 및 그것의 이론적 표현인 자연과학적 유물론의 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마르크스주의철학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후퇴시켰다고 평가한다. 이때 그들의 평가기준이 되는 레닌의 저서는 1908년에 집필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인데, 그들은 레닌이 그 저서에서 발전시킨 이른바 반영이론(Widerspiegelungstheorie) 내지 모사이론(Abbildstheorie)이 바로 그러한 유물론적 인식론을 대변한다고 본다. 단지 그들 간에 차이가 있다면, 예를 들어 판네괴크 같은 이는 레닌은 진정한 마르크시즘을 결코 알지 못했다. .... 레닌의 철학적 저술의 모든 페이지들이 그것을 입증한다고 혹평하고 있는 반면[주1], 알프레트 슈미트(Alfred Schmidt) 같은 이는 레닌이 이전에 발전시킨 자신의 관점을 이후의 {철학노트}(1914-15)에서는 몇가지 점에서 교정하였다고 약간 호의적으로 평가한다.[주2] 이와 가장 대조적인 레닌평가는 소련과 그 이전의 현존사회주의권 당이데올로그들이 대변한 공식견해로서 이들은 레닌을 한결같이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새로운 단계의 정초자로서 높게 찬양한다.[주3] 이때 이들은 반영이론이야말로 유물론적 세계인식의 논리적 귀결이며, 또한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반영이론을 철저히 발전시킴으로써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내린다.[주4] 레닌의 철학적 공헌을 둘러싼 이러한 그간의 논쟁에서는 특히 다음의 세가지 점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그간의 논쟁에서는 대체로 레닌이론을, 레닌이론에 대한 스탈린적 해석을 담고 있으며 그간의 소련 공산당의 공식이데올로기가 된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맥락에서 접근함으로써 레닌이론을 둘러싼 논쟁이 사실은 레닌 자신의 이론에 관한 논쟁이라기 보다는 레닌이론과는 구분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둘러싼 논쟁으로 치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레닌의 찬양자이든 비판자이든 그들 모두는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인식론으로서의 반영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레닌이 그 저술에서 발전시킨 반영이론이 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한 레닌의 공헌을 평가하는 일차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레닌의 (철학적) 저술들을 편견없이 다시 읽어보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레닌이 기본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것은 인식론으로서의 반영이론이 아니라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철학상의 두개의 근본입장이며, 그리고 인식론 내지 보다 정확하게는 세계인식과 세계변혁의 방법론은 반영이론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재정립되어야 할 (유물)변증법의 차원에서 실제로는 {철학노트}에서 문제되고 있는 점이 발견된다. 이 점은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인식론으로서의 반영이론을 발전시켰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 그간의 논쟁이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철학 발전에 대한 레닌 자신의 공헌을 둘러싼 논쟁이라기 보다는 그것과 동떨어진, 소련의 공식철학인 で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발전시킨 반영이론에 관한 논쟁이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점은 또한 で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한 레닌의 공헌을 둘러싼 논쟁이 인식론으로서의 반영이론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 그 논쟁은 - 비록 그것이 반영이론이 지닌 철학적 인식론으로서의 가치에 관한 논쟁으로서는 의미를 가질지 모르지만 - 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한 레닌 자신의 공헌에 관한 논쟁으로서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둘째, 레닌의 철학적 공헌을 둘러싼 논쟁이 레닌철학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발전시킨 반영이론을 둘러싼 논쟁으로 치환됨으로써 그간의 논쟁에서는 무엇보다도 레닌 자신이 철학에 부여한 의미 및 철학에 개입하는 레닌 자신의 전제들이 무시되고 있는 점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한 레닌의 공헌이 문제된다면, 철학에 부여한 다른 전제들이 아니라 바로 다름아닌 레닌 자신의 전제들을 문제삼는 속에서 그러한 전제부여가 과연 철학 자체에도 유의미한 것인지의 여부를 일차적으로 질문해야 하며, 나아가 그러한 전제들 속에서 행해진 레닌의 철학적 진술들이 그러한 전제들을 충족시키면서 철학의 전화 내지 새로운 전제를 지닌 철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지를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의 논쟁에서는 대체로 레닌이론을 고정적인 것, 불변의 것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으로 나타남으로써 레닌이론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발전해였는지가 제대로 포착되지 않고 있다. 그러한 결함은 레닌을 처음부터 무오류의 천재적 이론가-실천가로서 찬양한 그간의 소련-동구권의 글들 속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논자들의 평가 역시 그러한 결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레닌 이해는 그러나 레닌의 이론이 그의 실천과의 관련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교정되어갔고 때로는 후퇴를 경험하면서 심화-풍부화되어진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레닌이론을 신비화시키거나, 아니면 논자들 자신이 지닌 특정의 레닌상(像)에 따라 레닌의 글들을 자의적으로 인용하거나 재단토록 만들었다. 레닌의 철학적 공헌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이 주로 반영이론의 인식론적 가치와 그 계급적 성격을 중심으로 한,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소모적 논쟁으로 일관되어 온 반면, 그러한 논쟁의 한계를 돌파하고 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을 제공한 것은 루이 알뛰세르(Luois Althusser)와 도미니끄 르꼬르(Dominique Lecourt)의 레닌저술에 대한 이른바 징후적 독해이다.[주5] 이들은 - 비록 이들의 레닌해석에도 레닌이 적어도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전}을 쓴 이후부터, 또 그 저술을 쓰기 위해 {자본론}의 방법론을 철저히 연구한 이후부터 이미 유물변증법에 대한 자기 나름의 완성된 구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고 있고, 또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의 입장과 {철학노트}에서의 입장을 동일한 것으로 봄으로써 레닌의 철학(유물변증법) 구상의 발전 및 그러한 발전을 가져오게 한 조건들을 포착하지 못하는 결함이 나타나고 있지만 - 레닌의 저술들을 철학 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논리적-범주적 연관들에 관한 입장표명이라기 보다는 일차적으로는 레닌으로 하여금 철학적 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든 정치적-실천적 연관들을 징후적으로 독해하는 것을 통해 철학에 대한 레닌의 공헌을 포착할 것을 제창한다. 이들에 의하면 레닌이 실천적-정치적 연관 속에서, 즉 철학 외부에서 철학에 개입하고, 또 이를 통해 철학 자체를 전화하려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기존 철학의 철학적 실천과는 구분되는 철학의 새로운 실천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실제로 레닌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실제적 변혁을 추구한 혁명적 실천가, 전략-전술가였다. 이 점에서 그에게 의미를 지닌 이론이란 세계의 변혁에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이론이었으며, 그에게 있어 진리의 기준은 추상적 진리는 없으며,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다[주6] 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론에 대해 이론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세계의 실제적 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적 실천과 연관되는 이론, 즉 변혁적인 정치적 실천으로 전화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로서 의미를 부여했다. 더우기 레닌은 이론에 대해 (변혁을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관점에 선) 계급투쟁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분석, 즉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지향하는 이론, 다시 말해 단순히 맹목적으로 혁명적인 이론이 아니라 특정한 정세 속에서의 변혁적 실천의 조건과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포착하는 데에 기여하는 참으로 혁명적인 이론이 되기를 요구했다. 이 점은 그가 언젠가 で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추상적인 기초라고 부른 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한 그의 접근태도에도 해당되는데, 실제로 레닌은 유물변증법을 계급투쟁의 구체적 정세를 분석하고 구체적 정세 속에서의 정치적 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혁명적 정치의 현실적 개입을 위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레닌의 철학 구상을 본인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추상적인 이론적 기초로서 철학을 혁명적 정치이론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이라고 부르겠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구상은 철학을 자연, 인간사회 및 사유의 운동과 발전의 일반법칙들에 관한 과학[주7]으로 이해하는 엥겔스 및 엥겔스의 정의를 따르는 공식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철학이해 뿐만 아니라 정치, 그것도 변혁적 정치의 철학에의 개입을 거부하는 부르주아철학의 자기이해와도 - 그러나 레닌에게는 정치의 개입을 관념적으로 거부하는 철학적 실천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것으로 특정한 계급적-정치적 의미를 지닌 철학적 실천이다 -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위의 논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레닌의 철학적 저술이란 일차적으로 그가 철학에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본 계급투쟁의 특정한 정세에 대한 대응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는 그러한 형태의 철학에의 개입과 철학에 대한 정치적 논거의 제공만이 철학적으로도 의미있는 결론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 또 이를 통해 그는 무엇보다도 특정한 정세 속에서의 직접적인 정치적 효과를 산출하려고 하였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레닌의 철학에의 개입을, 철학에 개입하는 레닌 자신의 고유한 전제에 따라 이해하려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어떤 조건들이 실천적 정치가였던 레닌에게 철학적 문제설정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또 그의 철학적 문제설정이 과연 상황에 적합하게 제기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레닌이 철학에 개입할 때 구사한 철학적 전술이 무엇인가,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계급투쟁의 정세가 레닌으로 하여금 예를 들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무엇보다 철학의 근본입장을, {철학노트}에서는 무엇보다 변증법을 문제삼도록 만들었는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를 파악하는 기초 위에서 그의 철학에의 개입이 그가 목표한 철학의 전화, 즉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철학의 발전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의 철학적 - 논리적-범주적 - 논증연관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사실은 {철학노트}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연관에서 보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그의 철학적 구상의 발전과정 상에서 나온 하나의 과도기적 저작으로서 의의를 지니게 된다. 이 점은 레닌의 옹호자이거나 비판자들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레닌철학을 평가하는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벌인 그간의 논쟁이 레닌의 철학 구상의 발전을 옳게 반영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만든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적 기초에 대한 레닌의 인식 상의 발전과정, 즉 레닌의 이론적 발전과정이 추적되어야 함은 물론 그의 구체적 분석이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그의 철학구상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가가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레닌 철학의 기본적 관점들이 그가 그것을 명시적으로 철학적인 논증형식으로 제시하기 이전에 이미 그의 구체적인 정치분석에서 실행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철학 발전에 대한 레닌의 공헌에 대한 가장 깊이있고 체계적인 연구는, 본인의 견해로는, 안드레아스 아른트(Andreas Arndt)의 연구라고 생각된다.[주8] 이 글에서 본인은 주로 그의 연구성과를 요약하고 재정리하는 수준에서 레닌의 철학구상이 지닌 주요내용과 특징 및 그의 구상이 마르크스주의철학 발전에 지닌 의의를 규명해 보려고 한다. 2. 초기 레닌: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유물변증법 구상을 향하여 마르크스주의철학에 대한 레닌의 공헌을 문제삼을 때 일차적으로 중요한 점은 레닌이 혁명적 실천가로서 대중투쟁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그 경험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또 이를 통해 자신의 기존의 마르크스주의관을 교정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철학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이 지녀야할 타당한 규정들과 문제설정 및 절차방식들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초기에 이미 러시아혁명의 조건과 형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유물변증법을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으로서 발전시키는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또 이를 통해 이미 그 시기에, 비록 유물변증법에 대한 체계화된 개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천적 형태로 유물변증법의 타당한 논증연관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혁명운동에 몸을 담기 시작한 초창기의 레닌의 마르크시즘은 처음에는 주로 정치적 반동의 강화 , 자본주의의 예상을 넘는 발전 및 노동자투쟁의 고양이라는 조건 속에서 개량주의세력으로 전락한, 미하일로프스키(N. K. Michailowski) 등의 인민주의자들의 마르크스주의비판 및 마르크스의 이름을 빌려 자본주의발전을 위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한, 스트루브(Struve), 불가코프(Bulgakow) 등의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인민주의자들 및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레닌의 이러한 투쟁은 말할 필요도 없이 짜리즘체제 말기에 고양되기 시작한 노동자-농민대중의 혁명적 투쟁에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하고 마르크스주의를 노동운동과 융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다. 그런데 1890년대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에서 혁명적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로서 확고히 뿌리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1897년 당시 동시베리아에 유형되어 있던 레닌은 현시기에는 ...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실천적 행위가 가장 긴급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이론적 측면은 이미 첨예한 논쟁의 시기를 지났기 때문이다. ..... 사회민주주의자의 이론적 견지는 이제 그 주요하고 근본적인 특징에서 충분히 설명된 것으로 보인다[주9]고 당시의 상황을 평가내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당시 레닌의 마르크주의관은 - 비록 이 시기에 레닌은 구체적 분석을 중시하고 역사유물론을 방법론으로 파악하려는 관점을 발전시키고 있는 점에서[주10] 그 당시의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관을 일정하게 넘어서고 있었지만 - 카우츠키주의로 대변되는 제2인터내셔날 마르크스주의와 그 러시아적 대변자라 할 수 있는 플레하노프의 마르크스주의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반영하여 이 당시 그의 마르크스주의관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을 생산관계로 환원시키고 이를 다시 생산력발전 수준으로 환원시키는 생산력주의적 환원론과 이에 기초하여 사회발전을 규정하는 법칙으로서의 경제법칙과 자연사적 과정으로서의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강조하는 생산력주의적 결정론으로 특징지워진다.[주11] 또한 이러한 역사발전관의 논리적 귀결로서 레닌 역시 러시아 민주주의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후원으로 한정시킨 플레하노프의 러시아혁명관을 기본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닌의 마르크스주의관은 1905년의 혁명 전후의 고양된 대중투쟁과 특히 예상을 뛰어넘어 노동자계급의 지도하에 통일적 행동을 추할 능력을 보이기 시작한 농민투쟁의 경험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질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레닌은 민주주의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자생성에 의식성을 결합시키는 전위당 개념을 발전시키며, 민주주의혁명의 새로운 형태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혁명적-민주적 독재를 통한 민주주의혁명의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성장-전화론[주12]을 제창한다. 이를 통해 레닌은 민주주의혁명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할의 가능성을 무시하며 자생적 경제투쟁을 계급투쟁의 유일한 형태로 보면서 생산제력의 발전 -> 자생적 투쟁의 고양 ->사회주의로의 자동적 이행을 내세우는 베른슈타인 류의 수정주의 및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경제주의적 역사발전관 및 생산력이론에 호소하면서 역사발전과정을 점진적이고 균등하게 상승하는 직선으로 간주하는 속류적인 진화론적-점진주의적 역사발전관과 결별한다.[주13] 이를 통해 그가 수용한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와 그 러시아적 대변자인 플레하노프의 이론적 틀과 단절하기 시작하면서 레닌은 또한 그것에 상응하는 유물변증법의 개념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는데, 무엇보다도 사회발전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의 요구는 그로 하여금 변증법을 역사과정에 대한 추상적인 발전법칙의 기본원리로서가 아니라 구체적 진리의 파악, 즉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주제화하도록 만든다. 이로부터 레닌이 문제삼는 것은 구체적 상황에 적합한 혁명적 정치의 수준에서 이론과 실천을 매개시키는 것인데, 이 문제를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모든 질문은 결함을 지닌 원형 속에서 운동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생활의 전체는 끝없는 고리들의 계열로 이루어지는 사슬이기 때문이다. 정치가의 전(全) 기술은 가장 약하게 손으로 처낼 수 있지만, 주어진 순간에 가장 중요하며 이 사슬고리를 소지한 자에게 전 사슬의 소유를 가장 잘 보장하는, 그 사슬고리를 발견하여 확실하게 움켜쥐는 데에 있다.[주14] 이와같이 개개의 구체적 상황에 적합한 혁명적 정치의 주요사슬고리를 규정하는 것, 다시말해 끝없는 고리로서 나타나는 객관적인 매개연관 속에서 그 당시의 주요사슬고리가 되는 결정관계를 포착함으로써 연관의 파악이 동시에 혁명적 행위의 (집중적) 투입점을 명백히 만드는 것이야말로 레닌의 모든 분석과 논증의 최종목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당내부 투쟁의 발전을 부정의 부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서술함으로써 변증법을 당내부의 모순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플레하노프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변증법은 ....불가피한 전환들을 연구하고 발전을 그 전체적인 구체성 속에서 상세하게 연구하는 기초 위에서 그 전환의 불가피성을 입증하는 것이다っ[주15]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 속에서 변증법을 연관과 발전의 구체적 분석의 방법으로 발전시키려는 레닌의 유물변증법 구상의 기본적인 발전경향성이 나타난다. 또한 이 시기에 레닌은 일반적인 사회적 발전경향이라는 추상적 수준에서 러시아혁명의 과제를 규정하는 플레하노프 류의 사회구조와 발전에 대한 단선적인 결정론과 결별하면서 모순들을 시간적 선후관계에서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의 모순들의 관계(배치,응축 등) 속에서 포착하고 (기본모순으로서의) 생산제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해결방향은 오직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 속에서만 결정된다는 관념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사회발전관은 사회발전이란 생산제력의 발전에 의해 그 기본적인 경향과 방향이 규정되지만 사회구조 내부에서 계급투쟁은 다른 제모순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산력발전 수준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신의 고유성을 지니고 운동하면서 기본모순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주16] 이에 상응하여 레닌은 구체적 분석의 절차로서 혁명의 일반성격으로부터 구체적 모순들을 도출하는 플레하노프적 절차를 전도시켜 역으로 개별적이고 특수적인 것, 즉 구체적인 관계들로부터 혁명의 일반성격을 규정하는 절차를 옹호하는데[주17], 이로써 모든 모순들의 특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전체의 구조와 그 전체의 발전을 포착하려는 레닌의 구체적 분석의 기본관점이 확정된다. 이와 동시에 레닌에게서는 혁명적 정치란 이론적으로 미리 확정할 수 없는 정세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 분석에서 이론과 실천을 매개하고 실천을 분석되어야 할 객관적 상황의 구성요소로서 포함시키는 구체적 분석의 방법론으로서의 유물변증법, 즉 생산제력 등을 통한 행위의 결정 뿐만 아니라 객관적 상황의 구성요소로서 그것들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며 운동하는 계급투쟁을 동시에 고려하는 구체적 분석의 방법론으로서 유물변증법이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유물론을 의지와 의식에 대해 독립적으로 지니고 진행되는 객관적 과정에 대한 승인이라고 이해하면서도 객관적 과정의 전개에 혁명적 실천이 지닌 의의를 포착할 때에만 유물론은 객관주의를 내세우는 기회주의자들의 관점과는 구분되는 혁명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이 된다고 파악한다.[주18] 이와같이 레닌의 1905년 전후의 분석에는 변증법을 모순들의 특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전체의 구조와 그 전체의 발전을 포착하는 방법론으로서, 그리고 실천을 객관적 상황의 구성요소로서 이론적 분석에 포함시켜 혁명적 정치의 기초인 계급투쟁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가능케하는 방법론으로서 파악하려는, 레닌의 유물변증법에 대한 기본관점이 이미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서면, 실천은 분석의 기초이고 목표이자 분석되어야할 상황의 구성요소 그 자체가 되며 상황은 계급투쟁의 전개양상에 따라 기본모순을 해결하거나 그 해결로 이끄는 여러 가능성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혁명적 정치의 관점에 선 분석의 과제는 개개의 변혁적 행위의 결절점(結節点)을 파악하고 전체 사슬을 소유토록 만드는 주요사슬고리을 포착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레닌은 이러한 관점에 선 분석을 그의 구체적 분석 속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철학적으로 사유된 유물변증법 개념을 아직 소지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유물변증법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문제는 1914/15년의 [철학노트]의 주제가 된다. 3.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의 레닌의 '철학적 전술' 1905년 혁명 전후의 시기는 레닌에게 있어 중대한 이론적 도약이 이루어진 시기로서 이 시기에 이르러 레닌은 이론적으로는 이미 제2인터내셔널 및 플레하노프 류의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있었으며, 유물변증법을 역사발전의 가장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칙에 관한 교의가 아니라 역사과정에 대한 혁명적 정치의 개입을 위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의 방법론으로 발전시키려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레닌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술로서 평가되고 있는 1908년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레닌은 부르주아 유물론과 프롤레타리아 유물론 모두를 포함하여 유물론 일반이 관념론과 구분되는 경계선이 무엇인가를 명백히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변증법은 유물론과 관념론과의 경계선을 긋는 데에 불가피한 한에서, 즉 그 경계선을 긋는 데에 있어서도 부르주아유물론의 관점만으로서는 부족한 한에서, 그리하여 유물론이 불가지론과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는 한계 내에서만 주제화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레닌의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레닌이 이 저술 속에서 이른바 레닌주의적 반영이론을 정초지웠다는 것이거나 또는 역으로 레닌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레닌이 그 저술 속에서 반영이론을 정초지움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인식론 수준을 마르크스 이전의 단계로 떨어뜨렸다는 것이 아니라, 왜 레닌이 이 저술 속에서 (이미 그 이전의 분석 속에서 그 파악의 기본관점이 제시되고 있는) 유물변증법의 타당한 규정들과 문제설정 및 절차방식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논의의 지형을 변경시키고 문제제기의 수준을 낮추어 관념론과 구분되는 유물론 일반의 타당한 규정들 및 관념론과 유물론의 구분이 지닌 철학적-정치적 의의를 밝히는 데에 논의를 한정시키고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저술이 철학적 저술 그 자체라기 보다는, 레닌의 다른 모든 저술들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그 내용과 논증방식을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근거지우고 있는 정치적 저술이라는 점, 그리고 그 당시의 계급투쟁의 특수한 정세가 레닌으로 하여금 철학에의 개입을 요구했고, 또 철학에 개입하는 그의 정치적 전술, 즉 철학적 전술이 유물변증법이 아니라 유물론을 주제화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레닌은 무엇보다도 1905년 혁명 이후 정치적 반동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조건 속에서 한편으로는 혁명적-민주적 전통으로부터 이탈하여 짜리즘과 결탁한 자유주의자들이 짜리즘의 이데올로기인 신비주의, 신앙주의에 투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념론적 성격의 다양한 부르주아철학이 마르크스주의를 마하주의(Machism)적으로 오염시킴으로써 이미 노동운동의 국제적 조류의 일부가 된 이론적 절충주의가 당 내부의 볼세비키진영으로까지 침투해 오는 상황에 처하여 철학에의 개입이 で민주주의혁명기의 노동자당의 혁명적 전술 구사에도 불가피하게 요구된다는 인식 하에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집필한다. 그리하여 레닌은 이 저술 속에서 관념론과 유물론과의 경계선을 명백히 그음으로써 일체의 관념론적 조류에 대해 선전을 포고한다. 또한 레닌은 민주주의혁명기에 요구되는 계급동맹의 관점에서 유물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의 혁명적 농민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된 체르니세프스키 (N. G.Tschernyschewski) 등의 농민적 유물론 및 소시민적 유물론이 함께 유물론으로서 지니는 공통점을 강조하며, 자연과학자 등을 본성적인 유물론자로 파악함으로써 이들을 철학적으로는 유물론 진영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혁명 진영으로 적극적으로 견인한다. 또한 레닌은 논쟁의 영역을 유물론과 관념론의 구분이라는 근본문제에 제한하면서도 유물론적 입장을 근거지우는 데에 불가피한 한에서 유물론을 변증법적으로 근거지움으로써 철학적으로는 유물변증법의 도움이 없다면 유물론이 관념론을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때에만 민주주의혁명 역시 철저히 수행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레닌은 당내부에 침투한 관념론의 조류와 관련하여서는 철학논쟁이 당내부의 분파투쟁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논쟁을 엄격히 철학내적인 것으로 제한함으로써 철학적 입장의 차이가 민주주의혁명기에 요구되는 당의 정치적 통일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저술에서 레닌이 반영, 모사 등의 개념을 - 비록 레닌의 글 중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 인식론으로서의 반영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물론과 관념론의 경계선을 명백히 긋기 위해 인식의 전제로서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의 인정, 즉 의식과 물질의 대립이라는 한계 내에서의 물질적인 것의 일차성의 인정 및 인식의 객관성 확보를 요구하는 범주로서, 그리고 실천이라는 범주 역시 물질과 의식의 대립이라는 한계 내에서 물질과 의식을 매개하는 진정한 지점 내지 그 한계 내에서 유물론적인 근본입장을 옹호하는 범주로서 도입하고 있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하여 레닌은 이 저술에서 다른 한편으로 물론 물질과 의식의 대립은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 이 경우 무엇이 일차적이고 무엇이 이차적인가라는 인식론 상의 근본문제의 범위 내에서만 -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이 대립이 상대적인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것은 논쟁의 의지가 없다[주19]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적은 유물론적인 근본입장을 견지하면서 더욱 발전시켜야 할 유물변증법적 관점에서는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객관적 연관에 대한 인식과정 속에 규정함으로써 위의 대립이 변증법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제출하는 것인데, 이는 나중에 레닌의 {철학노트}의 주제가 된다. 이러한 파악과는 달리 레닌이 이 저술 속에서 자기완결적인 철학적 반영이론을 발전시켰다는 견해[주20]는 모든 유물론의 공통점을 강조함으로써 관념론과 대결한다는 레닌의 철학적 개입의 정치적 전술, 즉 그의 철학적 전술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거나 이해할 능력이 없는 데에서 나온 견해에 불과하다. 그러나 레닌에게 있어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살아있는 영혼은 마르크스주의를 무엇보다 실천을 안내하는 살아있는 과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점에서 얼핏보면 비변증법적인 것으로 보이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의 그의 논술은 실제로는 구체적 상황에 적합하게 이론적 대결을 행한다는 변증법적인 문제접근의 전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실은 또한 레닌의 저술들이 지닌 전제 및 철학적 논의에 개입하는 레닌의 정치적 전술을 이해하려 함이 없이 내려진 이제까지의 평가들이 역으로 얼마만큼 비변증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었던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4. [철학노트]에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준으로서의 변증법 구체적 상황에 적합한 혁명적 정치를 규정해 내는 일은 레닌의 모든 이론적 분석의 유일한 목표점이다. 그리하여 레닌에게 있어 계급투쟁의 실천은 그의 근본적인 토대를 이루면서 그의 구체적 분석이 집중되는 분석의 결절점을 이루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객관적 과정에 대한 혁명적 정치의 개입을 위한 그의 구체적 분석 속에서 (1)실천을 분석의 토대이자 목표로 간주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기하며, (2) 근본모순에 의해 결정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직접 도출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니며 운동하는 , 하나의 사회적 전체 내에 존재하는 구체적 모순들로부터 출발하고, 또 그럼으로써 구체적 상황을 단선적으로 결정되는 발전이나 관계로 보지않고 모순들의 복합적인 전체로서 파악하며, (3)그러한 모순들 속에서 계급투쟁 자체가 피결정요인으로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각 단계의 모순들의 특수한 배치와 결합을 규정하는 계급모순의 발전을 포착하며, (4) 이 토대 위에서 제모순들의 결절점이 되는 모순[주21]을 포착하고 그 모순의 해결을 위해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혁명적 정치의 전략적-전술적 목표를 실현한다는 관점을 발전시키고 실행한다. 이와 동시에 레닌에게는 적어도 1913년 이후부터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수정주의는 물론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와 경계지우는 이론적 기준의 문제가 주요한 문제로서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는 이제 민주주의혁명을 넘어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정에 오르기 시작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정세 속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좌익적 기회주의と를 포함하여 우익적인 이론적-실천적 기회주의와 명백히 구분하는 것이 혁명의 성패를 가름하는 긴급한 문제로서 레닌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레닌은 1917년에 이르면 계급투쟁의 승인을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승인으로까지 확장시키는 것と을 절충주의-기회주의와 구분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적 기준으로서 제시하기에 이르며,[주22] 그 철학적 기준과 관련하여 변증법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한다. 변증법에 대한 레닌의 이러한 관심은 레닌이 무엇보다도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를 그 근본적인 철학적 기초에서까지 극복하는 것이 주요과제로서 떠오르는 상황 속에서 유물론의 관점만으로서는 제2인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객관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1913년에 쓴 [마르크스주의의 세가지 원천과 세가지 구성요소]에서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절충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세계관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자기완결성을 주장한다.[주23] 그리고 당시 출판된, 1844-1883년 간의 마르크스-엥겔스 서신교환을 모은 서한집에 대한 평가 속에서 레닌은 (유물)변증법을 이론적-실천적 활동의 모든 영역에 적용한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결정적인 공헌이라고 주장함으로써[주24] 유물론과 관념론의 구분으로부터 유물변증법으로 강조점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이렇게 변화된 관점을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와 단절을 수행한 결정적인 문헌들인 [제민족의 자기결정권에 관하여], [칼 마르크스], [제국주의], [국가와 혁명] 등에서 끌어들이고 더욱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레닌은 특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유물변증법 철학이 지닌 의의를 규명한 최초의 글이라고 할 수 있는 논문 [칼 마르크스](1914. 4.-7.)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과 전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의 (공통점이 아니라)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있으며,[주25] 변증법은 인식론을 포함한다고 봄으로써 [주26] 인식론을 유물론적인 근본입장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변증법의 문제로서 보는 관점을 이제 분명히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레닌은 변증법의 4대요소로서 단선적이 아니라 나선적 발전운동으로서의 부정의 부정, 비약적-혁명적 발전(양질전화의 법칙), 모순을 통한 내적 발전, 개개 현상들의 모든 측면들의 상호의존성과 분리불가능한 긴밀한 연관성을 들고 있다.[주27] 이러한 변증법 파악은 그러나 부정의 부정을 그 근본적인 규정성으로서 지닌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운동과 발전의 법칙으로서 변증법을 파악하는 엥겔스의 정의를 무반성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변증법 파악은 모든 기성적인 것들의 역사적 상대성과 혁명적 변혁의 필연성을 확신시키는 데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서는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연관들의 운동에 대한 추상의 성격을 지니므로 실제로는 하나의 거창한 역사발전관 내지 세계관(Weltanschauung) 이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증법관은 구체적 인식과 변혁에는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으며, 또 이로 인해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얼핏보면 보다 구체적인 결론들을 가능케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유행철학들의 침투를 방지하는 데에 지극히 무력했던 것이다 - 레닌은 부정의 부정이 아니라 모순적인 총체성의 구조를 출발점으로 삼은 변증법의 16가지 요소들에 대한 언급에 이르러서야[주28] 비로소 이러한 변증법관과 완전히 단절한다 - . 그러나 레닌은 이와 동시에 전술에 관한 장에서 하나의 근본모순이 단지 복잡화된(kompliziert)된 구조로서의 총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제모순들의 복잡한(komplex) 구조로서의 총체성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고, 단지 운동의 원천으로서의 모순에 대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전체 속에서 작동하는 여러 힘들과 경향들의 충돌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단순히 운동 그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운동과정을 만들어내는 개개 현상들의 모든 측면들의 연관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주29] 이로써 레닌은 - 1914년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가 인수한 전래의 변증법관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 변증법을 혁명적 마르크시즘의 가장 추상적인 이론적 기초로서 파악하려는 과정에서 변증법의 실천적 의의를 혁명적 계급투쟁의 전술을 정초지우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위한 방법으로서 파악하는 관점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한 변증법은(전체를 단지 운동하는 총체성으로서 전제하면서 가장 일반적인 운동의 법칙을 제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총체성의 관계들을 그 복잡성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구체적 운동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새로운 유물변증법 구상은 마르크스에 의해 그 정초가 마련되었지만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에서 그 발전이 봉쇄된, 제2인터내셔녈의 철학과는 구분되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철학으로 유물변증법을 구상하는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철학노트]와 '세계변혁을 위한 지렛대'로서의 유물변증법 모든 철학적 규정들을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이론 및 실천과 불가분적으로 연결지움으로써 유물변증법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토대가 되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철학으로서 재구성하려는 작업은 레닌에게 있어 1914/15년의 {철학노트}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된다. 이것은 전쟁발발과 망명 때문에 직접적인 실천으로부터 격리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제2인터내셔널이 붕괴하고 제2인터마르크시즘의 개량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진척된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추상적인 토대에서도 그들과 결별할 필요성에 레닌이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적 내용의 다양한 서적들과 논설들에 대한 적요, 단편 및 메모들이 들어 있는 {철학노트}에서 행한 레닌의 작업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레닌은 헤겔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최초에는 전도, 핵심, 외피, 신비화와 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비유적 언급들을 문제설정으로받아들여 헤겔이론의 유물론적인 핵심을 포착하고 그 핵심을 발견하고, 파악하고,(구출해내며), 뽑아내는 것을[주30] 자신의 과제로서 제시한다. 그런데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가장 초창기에 쓴 논문 중의 하나인 [인민의 벗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는가?](1894)에서 이미 마르크스주의는 헤겔변증법과 상관없고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다라고 지적했지만,[주31] 철학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이 시기의 그의 유물변증법 구상은 아직 불충분하고 반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그 결함의 지양과정은 헤겔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구체화된다. 실제로 레닌이 최초로 제기한 합리적 핵심의 추출과정은 나중에 헤겔변증법의 파괴과정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유는 연구의 결과 헤겔변증법의 훼손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유물변증법은 완전히 새로운 체계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레닌이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레닌은 순수한 직접성에서 출발하여 절대자로 나아가는 헤겔의 목적론적이고, 기원과 종말을 지니며, 주체를 지닌 순수사유의 변증법을 대신하여 관계의 모순에서 출발하여 발전 속에 있는 모순들의 복합체로서의 주어진 전체의 인식과 변혁을 지향하는 구체적 분석의 방법론으로서 비목적론적이고, 기원과 종말이 없으며, 모순의 자기운동으로서의 주체없는 관계들의 변증법 구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헤겔을 독해하면서 레닌은 현실을 순수사유의 규정들로부터 이끌어내는 헤겔의 주장을 거부하고 인식의 객관성을 처음부터 실천의 관점에서 주제화하며 객관적 과정을 파악하는 전제로서 총체성 내지 연관성 및 자기운동으로서의 운동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와 동시에 레닌은 헤겔논리학의 출발점인 무전제성 및 순수한 직접성이라는 전제를 폐기하면서 방법론적인 파악의 전제는 물질의 소여성 뿐만 아니라 그 자체 모순적인 전체로서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연관이며 변증법적이란 그 통일성에서의 대립적인 것의 파악이라고 규정한다. 이를 통해 레닌은 보편적인 매개와 이 속에서의 보편적인 모순의 구조를 강조하면서 먼저 발전과정 속에서의 매개의 구조와 이 구조의 자기발전과정을, 주관적인 것으로서 주체의 규정 하에 있는 것도, 순수한 객관성으로서 있는 것도 아닌 인식과정 속에서의 그 반영의 문제로서 제기한다. 이때 레닌은 보편적인 매개구조를 규정하는 중심범주로서 모순범주를 제시하는데, 모순범주에 의한 매개는 존재와 물질 및 의식과 이념의 관계에도 해당되며 관념적인 것의 실제적인 것으로의 전화 역시 배제하지 않는다. 그런데 헤겔은 직접성(순수존재, 절대적 동일성)에서 출발하여 매개성, 즉 양자의 통일상태에 있는 대립관계로 이행하기 때문에 순수사유의 작용으로부터 사유규정들만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전제하지 않는 순수사유의 무전제성을 전제하는 직접성이라는 범주를 삭제할 경우, 이제 모순과 대립물의 통일만이 자기 운동의 원천이자 모든 과정의 동력으로서 남게되며 외부로부터의 신이라든가 주관 따위에 의한, 모든 방식의 운동의 동인들이 배제되기에 이른다. 이로써 레닌은 헤겔변증법의 목적론적이고 관념론적인 전제들과 결별하면서 모든 사유와 행위들이 하나의 객관적인 과정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유물론적으로 정식화한다. 이와 동시에 레닌은 직접성이 곧바로 이행하여 나타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모순인 구분(Unterschied)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근거로 나아가는(zugrundegehen) 과정에서 모순규정들의 상호 겹쳐짐을 통해 동일한 모순구조의 복잡화라는 의미에서의 그 모순의 복잡화된 구조로서 나타나는 바의 헤겔의 총체성개념, 즉 단순한, 어디에서나 기저에 놓인 원리로서의 한 모순에 기초한 총체성이라는 사변적인 총체성개념을 폐기한다. 그 대신에 레닌은 한 구조 내에서의 질적으로 상이한 모순들의 동시성, 즉 지양할 수 없는 특수한, 그 속에서 질적으로 구분되는 상이한 모순들의 복잡한 구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관계를 유물변증법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헤겔에 있어서는 단순한, 어디에서나 기저에 놓인 원리로서의 한 모순의 작동에 의해 과정의 통일성이 확보되고 있다면, 레닌에게서는 이제 그러한 의미의 과정의 통일성은 파괴되고 폐기될 수 없는 특수적인 것으로서의 모순들과 헤겔적 의미의 과정의 통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연관들에 대한 인식이 문제가 된다 - 그러나 독해를 착수할 때의 레닌은 유물변증법의 이러한 모순범주에 대해한 명백한 구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레닌이 헤겔논리학을 독해하기 이전에 이미 유물변증법의 명백한 구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알뛰세르의 평가[주32]는 잘못된 것으로, 오히려 레닌은 독해과정에서 그러한 구상을 명백히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강물의 흐름과 그 강물 속의 물방울들. 개개 물방울들의 위치, 한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들에 대해 지닌 관계와 연관, 그 물방울의 흐름의 방향, 속도, 위로, 아래로의 직선적, 곡선적, 원환적 ... 운동. 운동의 개개의 측면들, 개개의 물방울들 ( = 사물들), 개개의 흐름들 등의 파악으로서의 개념[주33]이라는 생생한 묘사를 통해 유물변증법이 전제하는 총체성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러한 총체성 개념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직접성이 매개성으로 이행함으로써 비로소 개별자가 도래한다는 식으로 항상 개별자를 일반성 속으로 용해하는 헤겔 류의 총체성 개념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총체성 개념에서는 특수성과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개별자들이 전체를 파악하는 출발점이 되며, 모순이 복잡한 전체의 편성과 발전의 원리로서 작동하면서 모든 개별자들이 자신의 보편적인 매개를 통해 모순적으로 구조화되고 이 구조화된 모순들의 체계로서의 전체가 발전한다고 인식된다. 또한 레닌은 객관과정의 반영의 문제와 관련하여 법칙개념이란 인간을 통한, 세계과정의 통일성, 연관, 상호의존 및 총체성의 인식[주34]이라고 규정하며, 본질적 현상이자 보편의 운동 속에서의 본질적인 것의 반영인 법칙의 객관성 뿐만 아니라 그 반영적 성격을 지적함으로써 법칙개념을 객관성 파악의 방법론적 규정들의 문제설정 속에서 주제화한다. 그런데 현상은 법칙보다 더 풍부하다.[주35] 그리고 본질은 현상들과 존재성에 앞서지 않는다. 이로써 레닌은 엥겔스, 플레하노프가 실험한 스피노자적인 구상, 즉 가장 앞선 본질적 관계로서의 실체 개념을 폐기하며, 실체에 대해 자연과 물질에 대한 인간 인식과정의 본질적인 한 단계로서 의의를 부여한다.[주36] 또한 레닌은 인과성(Kausalität)을 보편적인 연관의 부분적인 측면으로 이해하는데, 이때 인과성이란 단선적 인과성이 아니라 그것과는 구분되는 변증법적으로 파악된 인과성을 의미한다 - 이를 알뛰세르는 나중에 구조화된 인과성이라고 명명한다 - . 그리고 반영관계란 모든 물들이 다른 모든 것들과 관계하고 이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즉 서로 반영하며 그 속에서 전체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규정되는데, 의식에 의한 존재의 반영은 모든 물들, 현상들 및 과정들의 다른 모든 것들에서의 보편적 반영의 특수사례라고 지적된다. 나아가 레닌은 인식을 실천과정으로서, 그리고 헤겔의 절대이념론을 변증법적 방법론의 문제로 파악하면서 유한한 주체가 객관적 과정에 대해 지닌 관계, 전체 과정에서의 주체의 위치, 그리고 인식의 모순적인 과정과 세계의 변혁, 즉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다룬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인식의 모든 계기들(첫걸음, 단계, 과정)은 ... 주관으로부터 객관에로의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때 인식은 실천에 준하여 검증되고 그러한 검증을 거쳐 진리(=절대이념)에 이르게 된다[주37]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레닌은 주체를 통한 세계의 전유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순수사유라는 전제를 비판함으로써 헤겔에게서 발견되는 실천에 대한 이론의 우위와 결별하고 있으며, 실천이란 순수사유의 행위가 아니라 인식의 진리여부에 대한 기준이자 인식의 토대가 되는 유한한 주체의 유한한 실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목적설정적 행위라는 객관적 과정의 두가지 형식을 구분하는[주38] 동시에 의식은 객관적 세계를 단지 반영할 뿐 아니라 그것을 창출하기도 한다[주39]고 지적한다. 이 점에서 이론은 수동적인 반영인 동시에 객관적으로 가능한 변혁의 예견이다. 그리하여 레닌은 실천 속의 인식과정 및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의식의 자연규정성, 발전의 논리파악, 미래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예견기능,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활동, 인식의 기준이자 목표로서 세계변혁의 문제, 반영과 예견에 기초한 무엇을 할 것인가의 인식, 변혁적 실천을 통해 객관세계를 창출하는 요소로서의 인식, 연관들의 파악과 서술의 모든 단계에서 고려되어야 실천과 그 파악이 실천 속에서 검증되어야 할 인식, 이론으로부터 실천으로의 비약 및 (이론적) 인식에 대한 실천의 우위 등과 관련시켜 논의한다. 그런데 사회적 실천 속에서 목적설정을 실현하는 일은 진실로 존재하는 객관성[주40], 즉 자연과정과 실천과정의 모순적인 통일인 사회적 과정을 창출하는데, 이로써 목적론적인 과정이 객관적인 비목적론적 과정으로서의 사회적 과정의 한 요소로서 용해된다. (2){철학노트}에서 헤겔 {논리학}을 독해하면서 레닌은 {자본론}에 관하여 무수히 언급하고 있는데,[주41] 여기서 레닌은 자본론의 방법론적 구조를 자신의 유물변증법 개념의 최우선적인 이론적 준거점으로서, 나아가 유물변증법이 이제까지의 철학에 대해서 뿐 아니라 유물변증법 탄생의 모태가 되었던 헤겔변증법과 결별하는 결정적인 근거점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레닌은 {자본론]의 논리와 관련하여 {자본론}에서는 유물론의 논리학, 변증법, 그리고 인식론(...)이 모두 하나의 과학에 의해 응용되고 있으며, 그러한 유물론은 헤겔로부터 가치있는 모든 것을 수용하여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주42]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자본론}에서는 변증법 일반의 서술 (및 탐구)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고 말하면서,[주43]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먼저 부르주아 (상품)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통상적이며,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대량적이며, 가장 일상적이며, 수백만번 관찰되는 관계(Verhältnis), 즉 상품교환을 다루고 있다.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관계 속에서 ( 부르주아사회의 이 세포 속에서) 근대사회의 모든 모순들 (내지 모든 모순들의 맹아)를 발굴한다. 그 다음의 서술은 우리에게 이 모순들과 이 사회의 발전 (...)을 그 개별부분들의 총합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있다[주44]고 지적한다. 이로써 레닌은 출발점은 이미 항상 전제되어 있는 (그 전체의 가장 단순하고 일상적인) 관계라는 것과 자기운동의 추동력으로서의 그 관계의 모순이 다른 관계들(의 모순) 및 전체의 연관과 발전에 대해 맺는 관련성이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레닌은 인식이란 한꺼번에 그리고 완전히 모사할 수 없는 과정 속의 특수한 연관들인 객관적 과정의 논리를 파악해 내는 일이므로 일반적인 논리적-인식이론적 규정들의 제시는 주체를 통한 객관적 과정의 전유라는 형태에서의 철학의 과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상품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발견하고, 연역적이고 귀납적인 -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 (가치형태에 대한) 이중적 분석[주45]을 통해 모순의 발전과 관계들을 추적하면서 사실을 통해서,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검증하는 작업이 ..... 분석의 모든 단계에서 행해지고 있다っ[주46]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위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레닌이 주관으로부터 객관으로의 운동, 의식의 실천적 과정 및 세계변혁의 관점이 유물변증법을 논리적-범주적 연관에서 파악하는 전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레닌이 요구한 변증법, 논리, 인식론의 합치란 인식과정 외부의 순수한 객관변증법도, 변증법 외부의 인식이론도, 그리고 소련 공식철학이 주장한 객관변증법(자연변증법, 사적 유물론)과 주관변증법(논리학, 방법론) 및 반영이론으로서의 인식론의 모순적 통일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식과 변혁의 방법론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이란 객관변증법을 탐구하고 변화시키는 인식의 실천적 과정의 논리적-범주적 일반화이다. (3) 객관적 과정의 인식과 변혁의 방법론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의 제개념 및 범주들의 연관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작업은, 비록 완결되지는 못했지만 - 그 이유로서 혁명이 임박해지는 정세 속에서 레닌이 더 이상 철학적 연구를 행할 수 없었던 사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그것을 향한 시도가 {철학노트}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위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그 구상이 가장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변증법의 문제에 관하여]를 중심으로 레닌의 유물변증법 구상을 일정하게 재구성하여 정리해보자. -. 물질의 우위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의식의 반영적 성격 규정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주체를 통한 세계의 전유라는 관점에서의 존재와 의식의 관계가 이제 레닌의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이로써 자신의 실제적인 전제들 속에 놓여 있는 주체라는 관점에서 의식과 존재의 관계가 문제되기 때문에 비록 존재에 의한 의식의 피규정성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이제 존재와 의식의 협소한 대립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며, 문제가 되는 것은 근본입장이 아니라 인식의 실천적 과정이다. 이 인식의 실천적 과정에서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의 규정 역시 그대로 간직되지만, 이제 그것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경계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분영역과 부분과정에 대한 논리적 규정이 지닌 객관적 의의 및 총연관과 총체성의 발전의 인식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 규정들의 상호이행성을 제시하는 것으로서의 논리적-인식론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때 で철학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은 구체적 파악에로의 지향성을 지닌 객관적 연관들에 대한 인식과 서술의 논리적 형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은 인식의 법칙(이자 객관적 세계의 법칙)이며,[주47] 변증법적 인식의 가장 일반적인 논리적 전제는 발전 속에 있는 객관적 구조로서의 관계들이다. 따라서 변증법적 논리는 순수존재 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 즉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으로서의 모순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때 인식에 있어 본질적인 의의를 지닌 모순은 일차적으로 존재와 의식의 모순 내지 인식의 전제들에 대한 주체의 모순인데, 이 관계는 그 논리적 구조 상으로 보면 객관적인 총과정 속에서의 개별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객관적 과정과 실천에 대해 지닌 철학의 모순은 총체성의 모든 요소들의 상호반영, 전체구조 속에서의 상호작용적 규정을 전제로 하는 속에서 철학 내부에 반영되어야 하고, 또 그럼으로써 철학은 객관적 과정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실천에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식과정의 가장 객관적인 전제는 객관적 세계 및 인식의 법칙 자체들이며, 철학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은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들의 기초 위에서 객관적 연관의 전유에 관한 논리적-인식이론적 규정들을 주제화하는 것이다. -. 통일적인 것의 분열과 그 모순적인 구성부분들의 인식은 ... 변증법의 ... 본질이다.[주48] 따라서 변증법적 인식의 출발점은 순수존재나 직접적인 존재라는 동일성이 아니고 관계, 관계들 속의 관계들이다. 이로써 모순의 법칙, 즉 대립적인 것의 통일은 유물변증법의 기본범주가 된다. 관계로부터의 출발은 가장 일반적인 문장의 구조에도 일치하는데, 예를 들어 이반은 이반이다와 같은 문장은 동의어의 반복, 동일성(A=A)의 형식논리적 법칙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레닌이 파악하는 바의 변증법은 무엇보다 관계의 논리학 내지 관계의 변증법이다. 서로 연관되면서 서로 매개하는 대립적인 것들의 관계인 모순은 보편적이다. 합목적적인 행위로서의 실천은 자연적 과정과의 모순이며, 인식의 실천적 과정은 이론과 실천, 존재와 의식 간의 모순을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의식이나 이론의 실천과의 관계도 모순이며, 그 자체 속에 가장 견고한 대립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립물의 동일성(아마도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은 자연의 모든 현상들과 진행들 속에서 모순적인, 서로 배제하는 대립적인 경향들의 인정(발굴)을 의미한다.( 이 속에는 정신과 사회의 대립도 포함된다.)[주49] 모순은 과정의 자기운동성의 추진력이며, 과정이 자기운동을 지니게되는 논리적 소재이다. 인식의 전제로서 관계로부터 출발할 때에만 순수사유의 무전제성이라는 관념론적인 전제는 폐기되며 객관적 과정에 대한 목적론적인 주체구조가 말살된다. 자기운동 속에 있고 자연발생적인 운동 속에 있으며 살아있는 생명력을 지닌 세계의 모든 진행들에 대한 인식의 조건은 대립물의 통일로서의 이 진행에 대한 인식이다.. 발전은 대립물의 통일이다.っ[주50] 자기운동은 운동의 추진력이며, 그 원천이며, 어둠 속의 그 동기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원천은 신, 주체 등과 같은 외부로 옮겨진다.)[주51] 그리하여 모순은 신은 물론 인간적 주체, 과정의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같은 과정에 대한 모든 목적론적인 전제들을 배제하며, 주체의 구조를 지닌 단순하고 기저에 놓여있는 하나의 모순에 의한 과정의 통일이라는 의미의 통일을 가져오지 않는다. 또한 자기운동 속에 있는 과정이 결코 정지에 이를 수 없다면, 이 과정은 기원과 종말이 없는 비목적론적인 자기운동이다. 모순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갱신한다. 그리하여 대립물의 통일(일치, 동일, 작용의 균형)은 조건적, 일시적, 과도적, 상대적이다. 서로 배제하는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 운동이 절대적인 것과 같이, 절대적이다.[주52] 그러나 투쟁의 절대성이 연관의 해체, 즉 전체가 연관을 맺음이 없이 고립적 부분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주53] 나아가 모순을 통한 운동과 관련하여 주관주의(회의론, 궤변론 등)와 변증법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객관적) 변증법에 있어서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의 구분 역시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객관적 변증법에서는 상대적인 것 속에 절대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주관주의와 궤변론에서는 상대적인 것은 단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을 배제한다.[주54] -. 대립물의 투쟁으로서의 발전(Entwicklung)을 파악하는 방식에는 발전을 감소와 증대, 반복으로 보는 비변증법적인 진화론과 혁명적 발전을 가져오는 대립물의 통일로 보는 변증법적인 발전관이 있다. 첫번째의 것은 죽은 것이고, 색깔이 없고, 메마른 것이다. 두번째의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단지 두번째 것만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자기운동의 열쇠를, 즉 도약, 점진적인 것의 중단, 대립적인 것으로의 전화, 낡은 것의 소멸과 새로운 것의 성립의 열쇠를 제공한다.[주55] 여기서 레닌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발전의 형태규정과 발전의 법칙이다. 이 규정들은 대립물의 통일로서의 모순의 자기운동으로부터 도출되는 규정들인데, 레닌은 헤겔논리학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발전의 법칙으로서 한 규정의 다른 규정으로의 이행, 새로운 측면을 포함한 과정의 무한성,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 양으로부터 질로의 이행 및 그 역 및 부정의 부정 등을 들고 있다.[주56] 이 규정들은 기본적으로 엥겔스가 말한 변증법의 기본법칙에 해당된다. 그러나 레닌이 엥겔스를 뛰어넘는 지점은 그 법칙들을 모순범주와 관련시켜 그것으로부터 도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닌은 이미 논문 [칼 마르크스]에서 발전의 규정들을 위에서 말한 발전법칙들만이 아니라 총체성의 연관과 편성의 규정들과도 관련시켰다. 다시 말해 레닌에게 있어서는 발전의 규정들과 관련하여 총체성과 발전의 관점을 통일시키는 것이 문제된다. 또한 레닌은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에 대한 초고]에서 발전의 원리(Prinzip der Entwiclkung)와 통일의 원리(Prinzip der Einheit)를 지적하면서... 발전의 일반원리는 세계, 자연, 운동, 물질 등의 통일의 원리와 통합되고, 결합되고 합쳐져야 한다[주57]고 말하고 있는데, 이 언급은 더 구체화되어야 할 방법론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때 통일의 원리란 서로 연관되어 있는 제 개별과정, 제부분과정들의 복잡한 구조의 전체를 가르키며, 전체의 운동은 하나의 운동이라는 추상적인 일선적 운동이 아니라 부분으로 나누어진 복잡한 전체의 운동이다. 따라서 이 총체성은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이 관계는 자신의 폐기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출발하여 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물변증법에서 말하는 で발전의 규정들と은 で한と 과정의 통일로서의 운동이 아니라 전체들의 요소들, 부분과정으로 구분되는 전체속에서의 운동에 관계되는 것이다. 발전규정에는 우선적으로 で시간적と 발전에 관계되는 규정들과 우선적으로 で전체의 편성(요소들의 배치, 배열 등)と에 관계되는 두가지의 종류의 발전규정 계열이 존재하는데, 양자는 그러나 서로 고립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양 과정은 처음부터 어떤 직접성을 전제로 하는 것도, 운동의 발전으로부터 분리된 보편적 동시성 속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도 아니며, 한 요소들, 부분과정의 운동만이 아니라 구분되어진 전체의 운동 역시 그 이전의 발전의 산물이자 계속적으로 변화-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변화-발전하는 이 전체의 운동은 특수한 편성구조를 지니지만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개체들과 부분들의 운동 및 제계기들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어떤 고정불변의 결정관계를 지닌 구조의 운동으로 표시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레닌이 말한 で통일의 원리と를 で제요소들의 배열-배치의 원리と 내지 で편성의 원리と(Gliederungsprinzip)로서 고쳐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で편성의 원리と와 で발전의 원리と의 통일은 で과정 속의 총체성と, で발전 속에 있는 전체と 내지 で복잡하게 편성된 전체의 운동(발전)と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で대립물의 통일과 투쟁と이라는 유물변증법의 기본범주는 で연관と과 で발전と의 계기에 의해 で주어진 전체と와 관련하여서는 で발전 속에 있는 전체と 내지 で복잡하게 편성된 전체의 운동(발전)と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되어진다. -. で발전 속에 있는 전체と는 폐기될 수 없고, 일반적인 것의 운동에 남김없이 흡수되거나 해소되지 않는, 자기의 고유성을 지닌 개별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편성과 발전이 파악되어야 하므로, 개별적인 것(개별자)과 일반적인 것(일반자)과의 관계가 우선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개별자와 일반자와의 관계는 대립물의 통일, 즉 모순이다. 이 특수적 모순의 운동과 관련하여 먼저 다음의 세가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논리적 운동은, 헤겔의 절대적 방법과는 달리, 자기 자신 속에서의 일반성의 구분으로서의 で일반자로부터 개별자로と가 아니라 역으로 で개별자로부터 일반자로と의 운동형태를 띠면서 전개되며, で다양성と이란, 라이프니치 철학에 대한 논평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주58] 전제되어 있으며 상호연관 속에 있는 모순들의 독자성이 지닌 특수성을 의미한다. 둘째, 엥겔스가 말한, で양질전화의 법칙と, で부정의 부정と과 같은 변증법의 기본법칙들은 본질적으로 で발전의 원리と에 관계되는 것인 반면 개별자와 일반자의 관계는 무엇보다 주어진 전체의 요소들 간의 상호관계의 발견에 관계되므로, 그 관계가 발견되어야 비로소 발전이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で 편성의 원리と에 속한다. 그러나 이 관계는 과정 속에서 변경될 수 있으며, 나아가 で주어진 한 전체と에서는 종속적이고 보다 덜 발전된 관계가 で주어진 다른 전체と에서는 규정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셋째, 주어진 전체에서의 개별자와 일반자의 관계에 있어 일차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관계는, 레닌이 {자본론}의 방법과 관련하여 말한 바와 같이, 주어진 전체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통상적이며 가장 대량적인 관계이다. 그런데 개별자와 일반자와의 관계에 관련하여 예를 들어 ぢ ... 임의의 문장: で나무는 초록이다と, で이반은 사람이다と, で슈츠카는 개이다と 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여기에는 - 헤겔이 천재적으로 말한 바와 같이 - 이미 변증법이 존재한다.っ[주59] 즉 ぢ개별자는 일반자이다. ... 따라서 대립물들 (개별자가 일반자와 대립해 있는 것)은 동일하다. 개별자는 다름아닌 바로 일반자로 이끄는 연관 속에 존재하고 있다.っ[주60] 역으로 ぢ일반자도 오직 개별자 속에서, 개별자를 통하여 존재한다. 모든 개별자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일반자가 된다. 모든 일반자는 개별자의 한 부분, 한 측면 또는 본질이다. 모든 일반자는 오직 근사적으로만 모든 개별적 대상들을 포함한다. 모든 개별자들은 불충분하게만 일반자로 이행한다. 등등.っ[주61] 이 관계는 개별자가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양자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개별자들에 대해 일반적인 규정들을 내린다고 해서 개별자를 지양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 폐기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시 말해 개별자는 자기의 구체적인 존재에서는 폐기될 수 없는, 비동일적인 개별자의 で나머지と로서 존재하는 반면 일반자는 개별자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니며 오직 개별자 속에서, 그리고 개별자를 통하여 존재한다. 그리고 개별자와 일반자와의 모순 속에서 , 그 모순의 운동 속에서 で동일성と은 상대적이고, で비동일성と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で물と, 즉 개별자의 내적 모순은 무엇보다 먼저 전체와의 관련에서 나오는 자기규정성과 이를 통해 폐기되지 않는 자기규정성과의 모순이다(예를 들면 상품의 가치와 사용가치의 모순). 그리하여 개별자들의 다른 모든 것들의 관계 속에서 개별자 속의 모순은 다른 모순으로 해소되지 않는, 폐기되지 않는 특수적 모순이며, 이 모순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결정되고 결정당하지만 - 알뛰세르의 표현을 빈다면 で중복결정と되지만 - 완전히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모순은 그 물을 폐기될 수 없는 특수자로 만드는 동시에 이 특수성을 통해 개별자를 자기와 동일한 다른 개별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과 보편적으로 관계시킨다. 이로 인해 ぢ모든 개별자들은 수많은 이행들을 통하여 다른 종류의 개별자들(물들, 현상들 및 과정들)과 결부된다.っ[주62] 개별자들은 질적통일체로서 자기의 구체적인 존재성을 지닌 개별자이다. 이 점에서 헤겔변증법과 마찬가지로 유물변증법 역시 무엇보다 で질의 변증법と인 바, 양적 변화가 비변증법적 변화를 의미한다면 변증법적 발전은 보다 높은 발전과 그 형태 속에서의 과정의 질을 표현한다. 그러나 변증법적 발전의 선상에서 질적 개별자들은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 양적으로도 파악된다. 그리하여 개별자는 전체와의 관계에서 폐기될 수 없는 비동일적인 것이자 동일적인 특수자이며, で일반자와 특수자와의 통일と이 곧 논리적-범주적으로 모든 개별자들 상호 간의 관계의 총체성, 즉 모든 요소들의 보편적인 상호반영으로서의 총체성이다. 개별자와 일반자 간의 상호관계로부터의 출발은 연관의 점차적인 파악을 가능케 한다. 그런데 ぢ이미 여기서 우리는 자연 등에서 で필연성と과 で객관적 연관と과 같은 개념의 요소들, 맹아들을 발견한다. で우연적인 것と과 で필연적인 것と, で현상と과 で본질と은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で이반은 사람이다と, で슈츠카는 개이다と, で이것은 나뭇잎이다と 등으로 말할 때, 우리는 일련의 특징들을 우연적인 것으로부터 배제하고 본질적인 것과 현출하는 것을 분리시키며 하나의 것을 다른 것과 대립시키기 때문이다.っ[주63] 이 점에서 で우연と과 で필연と, で현상と과 で본질と 등은 で편성의 원리と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개별자의 일반자로의 전화, 우연적인 것의 필연적인 것으로의 전화, 이행들 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 지금까지 출발의 전제인 관계와 관계 속의 인식에 대해서 논하였다면, 이와 아울러 で인식과정으로의 이행と 자체도 주제화해야 한다. 인식과정은 で분석と과 で종합と의 통일로 나타난다. 이때 분석의 계기가 전체의 구분 및 내적 모순의 인식에 우선권을 준다면, 종합은 과정의 총체성의 인식에 우선권을 준다. 그런데 분석과 종합의 통일의 필연성은 논리적-범주적으로 인식과정이 지닌 기본적으로 모순적인 성격과 아울러 객관적 과정이 지닌 모순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분석과 종합의 통일에 의해 발굴되는 총체성은 두개의 요소, 즉 먼저 で편성의 원리들と과 그 다음 で발전의 원리들と을 포함하는데, 이를 통해 방법론적으로 분리되었던 양 원리들이 과정의 총체성을 서술하기 위하여 다시 통일된다. 그런데 레닌은 분석과 종합이라는 인식과정의 이중적 국면을 , {자본론}의 논리와 관련하여 で탐구의 방식と과 で서술의 방식と을 명백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이 で변증법의 16개 요소들と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객관적 연관의 발굴국면, 즉 그 주요방향이 で현상으로부터 본질로と, で덜 깊은 본질로부터 더 깊은 본질로と, 그리고 で병렬로부터 인과성으로と, で연관과 상호의존의 한 형태로부터 보다 깊고 보다 일반적인 다른 형태로と인 모순적 접근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주64] で{자본론}의 논리と에 대해서는 총체성의 사유적 재생산은 역으로 で본질로부터 현상으로と, 즉 で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と 운동한다고 말하고 있다. 연관을 발견하고 그 기본적인 결정자들로부터 출발하여 총과정을 사유적으로 재생산하는 이러한 인식과정의 이중적 과정은 유물변증법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에서의 인식과정의 실천구조를 표현한다. 그리하여 실천은 객관적 진리로의 이행 내지 과정 서술의 매개고리이므로, 이론과 실천의 이러한 관계는 연관들의 파악과 서술의 모든 단계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실천 속에서 규정들이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한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인식과정의 첫 단계에서 두번째국면으로 이행할 때에만 주제화될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이며, 오히려 이 규정은 철학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을 논리적-범주적 연관의 형태로 서술할 수 있는 전제이다. 다시 말해 이 변증법은 인식의 실제적인 전제들을 포함시키고 주제화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논리학이다. 이를 통해 철학의 자립화에 대한 모든 명제들은 이 변증법에 의해 허물어지는 동시에 인식과 세계변혁의 변증법적 방법으로서의 그 통일성이 확보된다. (4)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노트}에 나타난 레닌의 유물변증법 구상을일정하게 재구성하는 형태로 정리해 보았는데, 그 구상이 지닌 주요측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모든 논리적-범주적 규정들은 주체로부터 객체로의 운동 속에서 전개되는데, 이 운동은 인식의 실천과정과 그 사회적 전제들을 통해 매개되는, 주체에 의한 인식의 전제들, 즉 총과정에서 차지하는 주체, 의식 및 이론의 위치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이 관계와 인식과정은 그 자체로서 모순적이기 때문에 그 논리적 연관에 있어 모순의 범주에 의해 규정된다. 이와같이 모순은 이로부터 다른 모든 규정들이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중심범주이다. 모순은 발전의 추진력인 동시에 일반자 속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개별자 속의 모순, 즉 폐기될 수 없는 특수적 모순이며, 과정의 형이상학적 통일을 배제한다. 출발범주로서의 모순범주는 그 자체 속에 이미 편성과 발전의 규정들을 내포하며, 이 범주로부터 출발하여 개별적인 것, 부분적인 것들의 운동 및 일반자로서의 전체의 편성 및 발전이 파악된다. 이는 분석과 종합의 통일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한 이를 통해 발전 속에 있는 모든 요소들의 관계들의 총체성이 파악되고 인식 속에서 객관적 과정이 사유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 총체성으로서 규정된 관계는 그리하여 で현상으로부터 본질로と와 で본질로부터 현상으로と와 같은 인식의 이중적 운동의 출발점이다. 최초의 국면에서는 분석의 계기가 우세한데, 이를 통해 범주들, 개념들, 법칙들의 발견이 총체성의 구조와 그 운동의 발견으로 이끄는 하나의 연관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 국면에서는 종합의 계기가 우세해지면서 총체성의 구조와 운동에 대한 분석이 총체성의 구조와 운동의 연관 그 자체에 대한 서술로 이어진다. 이때 인식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이론과 실천의 관계가 고려되고 모든 규정들은 실천 속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레닌이 (비록 완결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 기본범주들과 그 체계적 연관을 제시하려고 시도한, 이 새로운 유형의 유물변증법은 새로운 규정들과 새로운 내용을 지닌 변증법으로서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가 근거한 헤겔변증법 및 헤겔적 변증법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이 점을 안드레아스 아른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주65] 헤겔변증법 레닌의 유물변증법 이론과 실천은 순수사유 속에서동일한 원천을 지닌다:순수사유 에 의한 이론의 우위 관계로서의 이론과 실천, 이론과 실천의 모순의 한 측면으로서의 이론, 인식의 기초로서의 실천 과정의 출발점으로서의 순수한직접성(동일성) 관계: 출발점이자 인식의 전제 동일성으로부터의 모순의 발전, 일반자로부터 나오는 개별자의 발전 개별자로부터 출발한 대립적인 것의 통일로서의 관계(이 관계가 곧 일반자임) 모순:일반자 속에서의 모순 모순:개별적인 물과 관계 속에의 모순 일반자 속에서의 개별자의 동일 성, 개별자의 일반자로의 회귀 개별자와 일반자의 비동일성: 일반자는 오직 개별자 속에서, 그리고 개별자를 통해서만 존재 단순한, 모든 곳의 기저에 놓인하나의 모순: 동일한 모순구조의반복(복잡화) 특수적이며, 전체 속에서 상호결정적인 모순들: 폐기도리 수 없는, 특수적인 그리고 상호 결정관계로서 발전 속에 있는 모순들 간의 보편적인 고나계(발전 속에 있는 모순들의 복합체로서의 총체성) 과정의 통일성 속에서의 모순의 해소와 근거로서의 자기입증과정 개개의 특수적 모순으로서의 모순의 보편성 과정의 통일성 속에서의 모순의 해소와 근거로서의 자기입증과정 대립물의 통일이 상대적, 그 で투쟁と이 절대적 총과정의 목적론적 구조 총과정의 비목적론적 구조(그 구조의 일부로서의 부분적인 목적론적 과정) 6. 결론 레닌의 유물변증법 개념은 で주어진 전체と(총체성)로서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그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관인, 엥겔스가 규정한 바와 같은 で자연, 인간사회 및 사유의 운동 및 발전의 일반법칙에 관한 과학と도 아니며, 목적론적이고 기원과 종말을 지니고 있으며, 주체를 지니고 있고 で투쟁의 측면と을 で통일의 측면と의 한 계기로 포착하는 헤겔적 의미의 변증법도 아니다. 또한 그의 변증법은 조화, 조절, 비변증법적인 진화 등을 중심범주로 삼음으로써 관계 속의 모순을 은폐하는 현상옹호론적이거나 절충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도 완전히 구분되는, 모순, 끝없는 모순의 구조와 운동, 질적으로 구분되는 모순들의 복잡한 구조와 운동을 파악하는 방법론이다. 또한 이 변증법은 계급투쟁으로서의 혁명적 실천의 관점에서 변혁적 실천 그 자체를 객관적 과정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포함하며 모순들의 복잡한 전체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을 지향하고 객관적으로 가능한 바를 예견하여 주요사슬고리의 포착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이다. 물론 그의 유물변증법 구상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분산된 채로 산재해 있으며, 나아가 중도에서 중단되어 미완성된 형태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레닌의 유물변증법 구상은 대체로 모순의 일반성을 특수자로부터 규정한다는 선에 머물러 있고, 무엇보다 모순들의 다양한 형태들의 구분 및 그러한 상이한 모순들 간의 연관에 대한 규명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물론 레닌은 で주요모순と에 대해 언급했고, 1920년에는 부하린이 쓴 [이행기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ぢ적대와 모순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속에서 전자는 소멸하지만 후자는 계속 성립한다っ[주66]고 지적함으로써 で적대적 모순と과 で비적대적 모순と을 구분하는 관점을 제공했다. 이 점에서 그의 유물변증법 개념은 모순의 주요측면과 부차적 측면, 기본모순 - 이 개념은 그러나 본인의 견해로는 그 개념에 붙어있는 헤겔적 의미를 완전히 벗겨낼 때에만 유의미한 개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 , 주요모순과 부차적 모순들,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 계급적 모순과 비계급적 모순들, 모순의 불균등적 발전과 で모순의 과잉결정と과 같은 제모순들의 관계 등에 관한 규정들에 의해 더욱 풍부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유물변증법 구상은 그 이후, 비록 제범주들의 논리적-범주적 연관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모택동(毛澤東)에 의해서 풍부해지고 실행되었으며,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알뛰세르에 의해 재해석되고 발전되었다. 그렇지만 유물변증법을 で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지향하는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と으로서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레닌에 의해 처음 명시적으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그러한 형태의 유물변증법이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규정들과 그 규정들의 논리적-범주적 연관을 최초로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럼으로써 앞으로 더욱 발전되어야 할 で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철학と의 견고한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 그렇기 때문에 그간 소련에서 공식적으로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 , 레닌의 철학은 で마르크스주의철학 발전의 새로운 단계と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인 그의 철학이론은, 그것이 혁명적 정치이론의 방법론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혁명적 정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다시 말해 혁명적 정치의 이름으로 혁명적 정치를 고갈시킨 で현존사회주의의권と에서 그의 철학이 형해화되고 전혀 다른 의미를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철학은 대중의 혁명적 실천이 생동하는 조건 속에서는 재발견되고 풍부해지고 세계 변혁의 지렛대と로서 대중의 이론적 무기가 될 것이지만, 그러한 실천이 봉쇄되어 있는 조건 속에서는 で잊혀진 이론, 과거의 이론이 되고 하나의 억설로서 추억될 것이다. 레닌의 철학이론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혁명적 정치의 운명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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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사망사건으로 얼룩진 ‘전국철거민연합’ 10년… 왜 그들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 등록일
    2005/05/07 15:21
  • 수정일
    2005/05/07 15:21
폭력과 사망사건으로 얼룩진 ‘전국철거민연합’ 10년… 왜 그들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내려 3215번 지선버스를 타면 10분이 채 못 돼 서울 전농 SK아파트에 닿는다.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20m쯤 걷다 왼쪽으로 마주치는 가파른 계단을 기준으로 위쪽 201~203동은 임대아파트, 아래쪽 101~116동은 분양아파트다. 젊은 사람들이 돈 벌러 떠나 텅 빈 대낮의 임대아파트는 코흘리개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오가는 노인들의 헛기침 소리만 들릴 뿐 평온했다. ‘주거권’ 아닌 ‘계급적’시각에서 접근 8년 전 이곳에서 전국을 발칵 뒤집었던 철거민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1997년 7월25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 전농4재개발구역’ 철거민들은 악명 높았던 철거용역업체 ‘적준’과 마지막 대결을 벌였다. 이날 오후 6시께 주민들이 “적준의 침탈을 막기 위해 만든” 고공 망루 ‘골리앗’에 불이 붙었다. 박씨 등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주민 10명이 열기를 이기지 못해 10m 아래 바닥으로 뛰어내렸을 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바닥에 부딪쳐 ‘뇌사’ 상태에 빠진 박씨는 이튿날 숨을 거뒀다. 201동을 빙 돌아 후문으로 향하니 “여기 자본의 수탈, 관료들의 억압에 온몸으로 맞선 당당한 여인이 있었습니다”라고 쓰인 추모비가 남아 당시의 급박했던 사정을 전한다. 지난 4월16일 새벽, 경기 오산시 수청동 세교택지개발지구 안에 있는 4층짜리 우성그린빌라 옥상에 또 하나의 ‘골리앗’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어, 저게 뭐지?” 철거민들에게 허를 찔린 철거용역들은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옥상 진입을 시도했다. 화염병과 골프공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철거작업을 벌이던 이아무개(26)씨가 화염병을 맞고 불에 타 숨졌다. 전국철거민연합 간부 성아무개(39)씨가 “내가 화염병을 던졌다”며 자수해 살인 혐의로 4월26일 구속됐지만, 모두 집주인으로 알려진 철거민 8가구 10여명은 농성을 풀지 않고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1987년 이후 도시 철거민의 가열찬 투쟁 속에는 늘 전국철거민연합(이하 전철연·옛 서울시철거민협의회)이 있었다. 이들은 “철거민은 곧 노동자”라는 명제 아래 철거민 문제를 단순한 도시빈민의 ‘주거권’ 문제로 보지 않고, ‘계급적’인 시각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이들의 요구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철거 뒤 주민들이 자유롭게 들어가 살 수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수준의 싼 집과, 그 집을 지을 때까지 주민들이 임시로 들어가 살 수 있는 ‘가이주단지 제공’ 등이다. 남경남 전철연 의장은 “철거민 운동은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주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며 “희생 속에서 운동이 발전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철연쪽은 그동안 “우리와 함께 투쟁해 50곳이 넘는 지역에서 공증된 문서로 요구사항을 관철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민중진영 내부나 다른 철거민 단체들은 “전철연의 과격한 구호가 단지 구호로만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22일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전철협)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철연과 같은 폭력적인 투쟁방식은 더 이상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호승 전철협 지도위원은 “폭력적인 투쟁방식으로 철거용역 회사에 돌아가는 용역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며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든다”고 말했다. 80년대 논리와 관성 바꾸지 않았다 폭력 대결도 불사하는 전철연의 투쟁 방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지도부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현재 전철연은 남경남(51) 의장, 고천만(47·구속) 부의장, 양해동(59) 집행위원장 등 3명의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전철연에 몸담았던 철거민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들은 모두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철거운동에 뛰어든 지역 철대위원장 출신으로, 전철연의 전신인 서울시철거민협의회의 전성기를 이끈 철거운동 1세대와 김수현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기획운영실장 등 이른바 ‘학출’(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에게 교육을 받고 10년 넘게 전철연을 이끌어왔다. 1세대 운동가들은 운동을 접었거나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전국연합’(주거연합) 등 다른 운동단체나 학계로 진출했다. 남경남 의장은 경기 수지 풍덕지구 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출신으로 1991년 철거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경기도철거민협의회 의장으로 발돋움한 뒤, 1994년 만들어진 전철연 의장이 됐다. 부의장 고천만씨는 경기 용인구갈 세입자대책위원장 출신으로 남경남씨와 함께 경철협 부의장을 지냈다.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해동(그는 몸이 아파 활동을 잠시 중단한 상태다)씨는 서울 청량리1동 철거민 출신으로 1989년 길거리에서 서울시철거민협의회 유인물 한장을 우연히 집어들면서 빈민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한다. 그는 청계천 노점상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후보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2번이나 출마한 양연수씨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전국빈민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나란히 1999년 경기 수원 권선4지구 사제총 사용 사건과 구리 최촌마을 화염병 투척 사건 등으로 한두 차례씩 옥고를 치렀다. 이들을 잘 아는 옛 동지들은 “전철연의 전신인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 이끌던 1세대 활동가들이 빠져나간 뒤 아직도 80년대 운동 논리와 관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운동의 주체세력이 바뀌면서 서철협을 이끌었던 활동가들에게 교육받았던 논리와 투쟁 방법을 발전적으로 해체해 재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2002년 8~9월 <말>의 보도로 전철연 중앙이 지역 철거민대책위원회(이하 철대위)를 장악하기 위해 저지른 ‘악행’이 폭로되고, 돈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또는 ‘확인하기 힘든’) 추문들이 겹치면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전철연은 그야말로 수많은 사건·사고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들만 꼽아도 △1996년 신연숙씨 골리앗 추락 사망 △1997년 민병일씨 폭행 사망·박순덕씨 골리앗 추락 사망 △1999년 수원 권선4지구 사제총 사용 △2000년 민주당 화염방사기 난입 △2003년 서울 상도동 컨테이너 추락 △2004년 고양파출소 화염병 투척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투쟁중 숨진 35명, 전철연과 직·간접적 연관 한국도시연구소가 1998년 펴낸 <철거민이 본 철거>를 보면 1998년 현재까지 철거투쟁 과정에서 숨진 철거민은 모두 29명이고, 전철연은 이후 7년 동안 숨진 ‘열사’가 모두 6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철거투쟁으로 숨진 35명 대부분이 전철연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철거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감옥에 갔는데도, 전철연은 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을까. 경기 수원 권선3지구 철거대책위원장 홍경희(40)씨는 “전철연 같은 철거민 조직 말고는 철거민들이 기댈 데가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집회 때마다 앞장서 시위를 주도하는 전철연의 대표 ‘투사’다. 그는 1988년 울릉도에서 푸른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온 ‘섬처녀’다. 울릉도 처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도시는 ‘이촌향도’ 마지막 세대인 홍씨를 반겨주지 않았다. 16년 전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딸 셋을 낳아 기르는 10년 동안 “이삿짐을 채 풀지도 못한 채” 수십번도 넘게 곳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1996년 수원 권선동에서 보증금 100만원, 월세 15만원짜리 방에 살고 있을 무렵 “주변이 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갈 데가 없었다”는 홍씨는 자연스럽게 전철연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실천은 성과를 낳았다. 3개월 투쟁 끝에 8년째 살고 있는 지금의 가이주단지에 입주할 때는 감격에 겨워 엉엉 울었다. 그는 “다른 지역 철거민들의 고통을 보면, 꼭 내 일 같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홍씨처럼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최국자(45·여)씨는 “이제는 전철연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경기 의왕시 내손택지개발지구 철거민인 최씨는 2000년 6월9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 소형 화염방사기를 들고 난입 농성을 벌여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아무리 투쟁을 해도 세상에서 관심을 안 가져주니까 항의집회를 하자는 것인 줄 알았죠. 그런데 현장에서 화염방사기가 나오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최씨는 “1999년 12월 한겨울에 강제철거가 됐는데도 관심 있게 지켜보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전철연에 많이 의지를 했었다”며 “생업을 포기하고 투쟁에 나서는 과정에서 수천만원씩 빚만 졌다”고 말했다. 최씨의 남편(42)은 최씨의 구속에 항의하다 잡혀 부부는 영등포 구치소 감방 동기가 됐다. 많은 지역에서 철거민들은 전철연식의 극단적 투쟁 전술에 혀를 내두른다. 안암동 재개발지구 철대위원장을 지낸 이영철씨는 “전철연의 의사결정 방식이 지나치게 폐쇄적이어서 불만을 품는 철거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골리앗 만드는 비용만도 1천만원 넘어 “전철연 지도부가 지역 철거대책위원회(이하 철대위)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하는 말이 뭐냐면, 평생 살 집을 만들어줄 테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라고 한다고. 그럼 사람들이 생계가 막막해지니까 절반 정도 떨어져나가. 남은 사람들에게는 여기저기 다른 지역 집회에 쫓아다니라고 하거든. 그럼 사람들이 ‘내가 뭐하는 건가’ 싶어 또 절반 정도 떨어져나간다고. 그 과정을 거치면 철대위에 남는 사람들은 5~10가구밖에 안 돼. 거기서 이제 골리앗을 만들어야 하니까 돈을 걷자고 한다고.” 골리앗은 만드는 데 드는 비용만도 1천만원을 훌쩍 넘긴다. 철거민들이 카드빚을 내 그 비용을 댄다. 그가 속한 안암동에서도 2002년 2월 철대위가 꾸려질 때 50명이었던 주민들이 3개월 만에 20명대로 줄어들었다. 전철연의 투쟁 방침을 성실하게 따르다 보면, 생계를 포기한 주민들은 수천만원씩 빚이 쌓이고 곳곳에서 휘두른 폭력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투쟁에 더 매몰될 수밖에 없고, 점점 전철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금 경기 오산에서 ‘골리앗’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벼랑으로 몰린 철거민들에게 전철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제명’이다. 취재 중에 만난 철거민들은 “철거민에게 ‘제명’은 곧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특히 아직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의 경우, ‘제명’을 당하면 철거민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협상이 잘 끝나면 살 집과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민사상의 고소·고발 사건이 모두 유야무야된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얻어낸 게 없는 상황에서 철대위에서 쫓겨나면, 철거민들은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은 채 범죄자로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 그 와중에 사람이 죽기도 한다. 2001년께 최덕자(45·사망 당시)씨 등 경기 의왕 오전동 재개발 지역에 남은 철거민 3가구가 싸움이 붙었다. 주민들이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모아둔 운영자금 700여만원을 전철연 중앙에서 “간부 도피자금으로 사용한다”며 가져갔기 때문이다. 지친 주민들은 전철연이 요구하는 연대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3가구 가운데 최씨네 가족을 뺀 나머지 2가구는 지역을 떠났다. 전철연은 이 지역 철대위원장이던 최씨를 ‘제명’했다. 최씨는 아파트 숲으로 뒤덮인 마을에서 움막을 지어놓고 3년 넘게 생활했다. 남편과 말다툼이 잦아졌고, 2003년 11월 최씨는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가 죽을 때 그의 집은 300만원, 보증금 20만원짜리였다. 전철연은 이미 비민주적인 전위 조직으로 퇴화해 서철협 시절의 활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현재 전국 35개 철대위와 공동 투쟁을 하고 있다지만, 적극적으로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100명 안팎에 불과하다. 경기 안양 유진상가 세입자대책위원장으로 전철연과 6년 동안 같이 활동해온 정동열(62)씨는 “운동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운동의 순수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철대위원장이 중앙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철저하게 배제를 합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빨리 투쟁을 끝내고 생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큰데, 주민들이 직접 상대쪽과 협상을 못하게 하거든요. 철거 현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장 주민이고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데, 비타협 투쟁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습니다.” 철거민 단체는 다 복마전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저마다 확인 불가능한 전철연 간부들의 비리를 제보해왔다. 그렇지만 전철연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도 대부분 이들의 결벽성만큼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왜 전철연을 둘러싼 추문은 끊이지 않을까. 어렵게 수소문해 만난 옛 철거단체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철거민 단체는 다 복마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운동을 진행하다 보면, 건설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는 건설자본들이 돈을 미끼로 협상을 제안해옵니다. 여기에 굴복하면 운동이 끝나는 거고, 이겨내더라도 주민들 사이에 분란이 생깁니다. 전철연도 중앙에서 나온 2~3명의 핵심간부가 건설회사나 재건축 조합과 밀실협상을 합니다. 돈과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을 수 없는데, 은밀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밝혀내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비판에도 전철연은 아직 변화를 모색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변화를 이끌 내부 역량이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4월24일 밤 어렵게 만난 남경남 의장(그는 지금 수배 중이다)은 “사람을 죽이는 정부의 철거민 대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흡사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반복해 듣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들었다. 200만 철거민 투쟁에 앞장서 피흘려온 전철연.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 전농 SK아파트 201동 뒤. 박순덕씨 추모비에 한가롭게 내리쬐는 4월 봄 햇살이 무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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