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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놀러갔다기 놀다왔는데 왠 호들갑을 그렇게들 떠는지.........
하여튼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찾았네요.
이 사진은 얼마전에 죽은 전해투 고 이광호 동지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김진숙 살리러 가더니 지는 죽어버렸습니다. 허허허
날밤 꼬박세우고 뭐 할일이 없나 어슬렁 거리다가 산책이나 한답시고 크레인 밑으로 해서 도크로 돌아보려고 슬슬 걸었는데 크레인에 김진숙동지가 나와 있더군요.
한 아침 6시나 됐을라나...........
그래서 멀리서 고함으로 인사하고 다시 농성하는 동지들에게 왔는데 이젠 뭐할까 생각하다가 제눈이 훤한 화장실벽에 꽂혔습니다.
노조사무실에 가서 검정매직 있느냐고 했더니 두말않고 주데요.
그 매직갖고 그린겁니다.
.
민주버스조직은 아는 동지는 알고 모르는 동지는 모르겠지만 박사훈 전 본부장과 이정훈 초대 위원장이 20년을 현장에서 발로 뛰며 만들어낸 조직이다.
이들의 활동비는 어떻게 조달됐는가하면 한달은 이 사람이 일해서 반으로 나누고 다음달은 저 사람이 일해서 반으로 나누고 하는 방식이었다.
현장에서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하는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과 여건속에서 땀과 피와 눈물로 민주버스를 일구어 낸것이다.
맨 처음 노조사무실은 지하실 이었다
그 후에 지상으로 올라왔다. 얼마나 표정이 기쁘던지 나조차 기뻤다.
그리고 대림동 공공운수노조에 합류하면서 지금의 민주버스본부가 건설된 것이다.
이런 일조차 기뻐하고 동지들과 막걸리 한잔하는 그런 소소한 기쁨들이 민주버스 내부에는 깔려있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한국노총에서 무더기로 민주버스로 조직변경을 하면서 여기서기 싸음이 벌어지는제 박사훈 전 본부장과 홍정순 총무부장은 온갖 잔업과 철야도 마다않고 이 싸움들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많은 한국노총 소속 동지들이 민주노총으로 이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난 선거기간동안 최종선거본부에서 저질른 온갖 마타도어와 유언비어 살포는 문제삼지 않겠다.
다만 문제는 이런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구어낸 민주노조 내부에서 부당해고가 발생한 것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안이 아닐뿐더러 그런 사소한 일로 해고를 자행하는것은 자본가와 별 다를바 없다는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이일로 부당해고를 거부하는 버스동지들이 공공운수노조앞에서 집회를 한다면 아마 굉장히 보기 좋을 것이다.
거기다가 점거까지 들어가고 본부장 집기 따 빼버리고 업무정지를 시킨다면 이건 그야말로 기가막힌 그림이 될 것이다.
한 술 더떠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로 관할 노동부에 제소가 들어간다면 적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민주노조는 이런게 아니다.
제발 최종본부장 정신좀 차리시게나
미국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본떠
최근 보리출판사가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이 틀을 깼다.
이 회사의 임직원은 지난 3월1일부터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점심 시간 한 시간을 빼면 일하는 시간은 6시간이다.
주 5일제 근무는 오래전부터 지켜왔기 때문에 주당 근무 시간도 기존 40시간에서 30시간으로 줄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외국에는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회사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사례이다.
6시간 노동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여러 기업이 도입했다.
대표적인 곳이 1930년대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 켈로그라는 회사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1985년 중단되었지만, 이를 기록한 책( < 8시간 VS 6시간-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 )이 계기가 되었다.
보리출판사의 전 직원이 지난해 5월부터 이 책을 읽었다. 이후 토론회를 열고 6시간 근무제를 마련했다.
지난 1988년 설립된 이 출판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어린이 책, 생물 세밀화 그림책 등 3백여 권을 펴냈다.
살림살이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데다 대표를 포함한 직원 수도 32명이다. 대기업의 일개 부서에도 못 미치는 규모이다.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을 일해도 부족할 판에 근무 시간을 2시간이나 뚝 잘라냈다.
퇴근 시간 이후에 일을 더 하면 그 시간만큼 적립해두었다가 휴가로 쓸 수 있다. 연장 근무를 너무 오래 하면 6시간 근무제의 의미가 없으니 연장 근무 시간도 월 18시간 이내로 묶어두었다.
일을 적게 하니 월급이 줄어야 마땅한데, 월급을 줄이지도 않았다.
일의 양은 같은데 일할 시간이 줄어들면 일의 강도가 세지기 마련이다.
일의 양은 부서마다 달라서, 오후 4시에 퇴근해도 지장이 없는 부서가 있는가 하면 일에 압박을 받는 부서도 있다. 이 회사는 일 자체를 줄여 일의 강도도 낮추기로 했다.
한 해에 20권의 책을 낸다면 한두 권 덜 출간하는 식이다.
영업 부서도 하루에 5~6곳의 서점을 관리하던 일을 3~4곳으로 줄일 수 있다.
이 출판사만의 콘텐츠에 매력을 느낀 마니아층이 두텁다. 실제로 지금까지 내놓은 책 중에 절판된 책은 2종뿐일 정도로 꾸준히 팔린다.
이들에게 마케팅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 시행하는 제도이니 만큼 처음에는 삐걱거릴 터이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완충 기간을 두었다. 특히 첫 한 달 동안은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막내 사원이 '칼 퇴근'을 해도 눈치를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6시간 일하면서 스스로 체험하는 시간을 둔 셈이다. 6개월 후에 모여 평가하기로 했다.
겨우 보름 남짓 지난 지금, 이미 몇몇 장단점이 생겼다. 일을 줄여도 그날 해야 할 일은 있게 마련이다.
빨라진 퇴근 시간 전에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더 긴장하고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는 직원들이 나타났다.
중간에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인터넷으로 연예인 가십거리도 보지만, 그런 시간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능률이 오른 셈이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연장 근무 시간을 적립하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
연장 근무를 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직원으로 비칠까 우려된다는 소리가 나왔다.
직원에게 압박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6개월 동안, 일을 줄이지 못하거나 연장 근무가 밥 먹듯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고치고 개선하더라도 6시간 근무제를 포기하지는 않을 심산이다.
자기 실현의 시간 찾으면서 삶에 큰 변화
이쯤 되면 다른 직장인들은 부러워한다.
지난 3월13일 오후 4시 퇴근하기 시작하는 이 회사 직원들을 사무실 창문 너머로 쳐다보는 다른 회사원들의 눈빛에 부러움이 묻어났다.
이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다른 회사 근로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
이 출판사도 그 점을 잘 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이유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자기 실현의 시간을 줄여야 할 정도의 노동은 '나쁜 노동'이라는 메시지이다.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야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8시간 근무에 묶인 고정관념을 바꿔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렇다고 8시간 근무제가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고 한다.
주 40시간 노동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예외 규정과 편법 등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말단 사원이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림없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근로 시간을 늘리더라도 임금을 더 받겠다는 근로자와 추가로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도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려는 고용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니 제조업계의 초과 근무나 연차 휴가 수당이 임금 총액의 11.8%를 차지할 정도이다.
또 한국 근로자의 노동 시간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취업자 기준 1인당 노동 시간은 연간 2천1백93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1천7백49시간)보다 4백44시간이나 많다.
자기 실현은 접어두고라도, 많은 근로자가 일과 돈에 얽매여 있으니 삶이 풍요로워질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보리출판사 임직원들은 자기 실현의 장을 연 셈이다.
고작 두 시간 일찍 퇴근하지만 삶에는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 밤에만 밟아보던 집 주변 골목길을 낮에 접하는 기분이 좋다고 한다.
또 어린아이를 저녁도 못 먹이고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던 일도 없어졌다. 가족이 모여 넉넉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직원도 있다.
병원에도 가고, 야간 대학에 다니고, 취미 생활을 즐기려는 직원들이 생겼다.
무엇보다 가족과 회사를 더욱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20여 년 전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출판사이다.
일반 회사처럼 이 출판사에도 경영인이 있고 말단 직원이 있지만 소유자는 없다.
모든 임직원이 주인인 셈이다.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조혜원 보리출판사 기획부장 인터뷰
일을 많이 해야 매출도 늘고 직원의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한국이 외국보다 일을 많이 해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졌는가? 그렇지 않다. 경쟁적으로 살다 보니 일과 돈에 묶인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기업인과 정책 책임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싶었다. 6시간 근무제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대다수 사람은 8시간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바꾸니 주변에서 관심이 많다. 연봉이 많은 회사를 보면 부러워하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근무 시간을 줄이면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금을 줄이지 않은 점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시간과 돈에 묶여 살아왔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 시간과 일을 줄이면 삶은 행복해진다. 6시간 근무제로 과연 삶이 행복해질까?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일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 강도가 세져서 오히려 삶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이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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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보리출판사 직원들이 퇴근 시각을 알리는 시계를 들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조혜원 보리출판사 기획부장 인터뷰
일을 많이 해야 매출도 늘고 직원의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한국이 외국보다 일을 많이 해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졌는가? 그렇지 않다. 경쟁적으로 살다 보니 일과 돈에 묶인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8시간 근무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 기업인과 정책 책임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싶었다. 6시간 근무제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대다수 사람은 8시간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바꾸니 주변에서 관심이 많다. 연봉이 많은 회사를 보면 부러워하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근무 시간을 줄이면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금을 줄이지 않은 점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시간과 돈에 묶여 살아왔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 시간과 일을 줄이면 삶은 행복해진다. 6시간 근무제로 과연 삶이 행복해질까? 일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일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 강도가 세져서 오히려 삶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이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할 생각이다. |
아버지 영혼의 올가미, 그리고 가족, 동지
[칼럼]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받는 고통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필자
지난 2008년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용인기업 30여명의 노동자가 해고기간 5년 3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판결에 따른 조속한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를 비롯한 15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함께 연대했습니다.
4개월이나 지속된 연대투쟁은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전원 정규직 복직 합의로 종결됐습니다. 하지만 투쟁 과정에서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대투쟁을 벌였던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 15명의 대표였던 저희 아버지(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께서 현대중공업 경비대에 집단 심야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도저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9년 1월17일 오후 11시 30분경, 오토바이 헬멧으로 복면한 약 50~60명의 현대중공업 경비대는 소화기와 쇠파이프, 각목으로 무장하고 현대중공업 소유의 소각장 옆 인도에 설치된 농성장에 쳐들어와 소화기를 뿌려 앞을 볼 수 없도록 만든 후 아버지를 지목해 집중적으로 테러를 가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고, 경비대는 농성물품과 수대의 차량을 부수고, 농성장 주변 물품 모두를 불태우고 도주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희 가족의 참혹한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약 1년간 상해치료를 받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저희 가족에게는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거대권력 앞에서 일개 노동자가 아무리 힘없고 약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여태껏 보아왔던 그 어떤 탄압보다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농성장 주변에는 전경차 1대와 30여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불법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경비대를 저지하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하지도 않았으며 심야테러 후 몇 시간이 지나서 경비대는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승용차 20여대를 나눠 타고 유유히 공장 문을 빠져 나갔습니다.
탄압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경비대와 경찰 권력을 능가하는 정신적인 탄압은 현대중공업과는 관련이 없는 제3의 인물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원이 저희 아버지에게 명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으로 인해 제3의 인물들의 소속을 이 글에서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저희 가족들을 위협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자택감시를 하고 외출 시 미행을 하고, 아버지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설치하는 등 그들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수많은 악행들을 자행했습니다. 인권이 중시되는 오늘날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악행을 공공연히 자행해 온 것입니다.
위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서는 2009년에 국회 진상조사와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고, 2010년에는 울산지방경찰청 국정감사와 2011년에는 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사회적 고발과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지만 가해자인 현대중공업은 현재까지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경찰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2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 정몽준 의원에게 보내는 항의서한을 접수한 후 일인시위에 나선 필자.
저와 저희 가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향한 거대자본의 말도 안 되는 탄압이 유효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그 무엇보다 엄정하고 공정해야 할 공권력인 법과 경찰의 도덕의식 부재와 나태함, 권력에의 동조를 보고 겪으며 엄청난 좌절과 실망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현대중공업 심야테러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고 현대중공업과 경찰청에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몇 년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 사건으로 인해 저희 아버지는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시며 최근에는 장기적으로 지속된 경찰, 검찰, 법원 조사와 재판, 벌금, 징계, 상해치료, 정신과치료로 인해 취업치료가 불가능해 병가휴직을 내고 병원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저희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함께 투쟁하시다 모 노무관리자에 의해 상해치상을 당해 병원치료를 받는 등 저희 가족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법원에 의해 저희 어머니에게 상해치상을 가한 노무관리자가 벌금형을 받은 바도 있습니다.
세계적 대기업인 현대중공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 심야테러를 가하고 이에 책임을 묻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제3의 인물들이 나서서 아버지에게 온갖 정신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연장선으로 개인에 대한 참혹한 탄압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같은 일이 노동현장에서 절대 되풀이돼서는 안 됩니다.
투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최근 12월 울산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중공업경비대 심야테러 문제 해결을 위한 울산시민대책위원회'를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책위원회가 구성되면 3년간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외롭게 싸워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저희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이며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노동현장은 점점 더 암흑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제는 단결한 노동자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주체적이고 당당하게 불의 앞에서 맞서는 노동자야말로 진정한 노동자의 모습일 것이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전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울산지역과 전국에 계시는 많은 노동자분들의 연대와 지지를 호소합니다.
[울산노동뉴스] 김소연(성공회대 학생) / 2011-12-22 오후 8: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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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과 지척의 거리에서 207일째 아침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가까이서 볼 순 없었지만 두 번째만큼 참담하진 않았습니다.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자리에서 만날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207일전 이 크레인에 오를 땐 몹시 추웠습니다. 한겨울의 새벽 세시 그 캄캄한 어둠속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삶에 대한 의지보단 죽음에 대한 결의가 더 비장했습니다. 207일. 유서를 세 번 썼던 주익씨, 우서조차 쓸 수 없었던 재규형. 그 마음들을 다 알 것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2003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면 주익씨를 지킬 수 있었겠죠. 그때도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재규형마저 잃진 않았겠죠. 저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한건 사람 목숨보다 돈이 훨씬 중요한 조남호였지만 저를 여기서 내려가게 하는건 여러분들 일겁니다. 207일전 그 캄캄한 새벽 여길 오를 때 저는 혼자였습니다. 배낭을 몇 번이나 쌌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숱한 시간을 번민했습니다. 52년을 살았는데 처분해야 할 것도 정리해야 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게 다행이면서도 서러웠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전선에 섭니다. 매일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KTX여승무원 동지들이 3년을 싸울때도, 기륭전자 동지들이 6년을 싸우는 동안에도 애처롭긴 했으나 그 싸움이 우리들의 것이 되진 못했습니다. 쌍용차에서 15명이 죽어나가는 동안에도 안타깝긴 했으나 우리 모두의 전선이 되진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대가 어떤 힘을 만들어 내는질 보았습니다. 나약하고 소심한 개인들이 모여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 내는지를 놀랍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짓밟는 야만과 광기에 대해서도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잊지맙시다. 그래야 우리가 그려갈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제 여러분들이 띄워 보내신 풍등이 이 크레인 위 다섯 사람의 머리 위를 거쳐 강정으로, 전북 버스로, 유성으로, 그리고 수많은 전선으로 날아갔을 거라 저는 믿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왜 울어야 했는지, 왜 패배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했는지, 희망버스는 뼈저리게 가르쳐줬습니다. 그 처절한 절망의 댓가로 이제야 비로소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먼 길 달려와 주신 여러분들. 2차 때 다친 다리로 3차 때도 기꺼이 앞장서 주신 백기완 선생님. 먼저 내려오셔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땡볕에 앉아계셨던 박창수 동지 아버님, 여러 어르신들, 실무를 책임지고 계셨던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앞으로 얼만가 될지 모를 크레인의 날들. 건강히 잘 견뎌나가겠습니다. 훨씬 단단해진 우리 조합원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꼭 이겨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놓아주신 견고한 계단을 네명의 동지와 함께 밟고 내려가는 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의 버스’ 참여 제안서 수신 : 제 사회단체 및 개인 발신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2차 희망의 버스 ‘깔깔깔’ 기획단 문서번호 : 2011-6-15 연락처 : 송경동(010-8278-3097)
1.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일하시는 귀 단체에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 6.11일 ‘1차 희망의 버스’는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57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님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들이 싹트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지난 십수년간 진행되어 온 정리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화에 대한 사회적 저항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3. 과정에 피치못하게 탄압의 벽을 넘어야 했지만 ‘희망의 버스’ 참가단은 너무도 평화로운 시민들의 행진이었습니다.
4. 1차 희망의 버스 참가단들은 이런 연대의 버스 운동이 김진숙 씨를 살아 내려오게 하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의 올바른 사회적 해결을 위해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2차 희망의 버스를 운행할 것을 범사회적으로 제안드립니다. 이 운동은 비단 부산과 한진중공업에 국한되지 않고, 15분이 죽어간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등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소중한 운동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5. 이에 귀 단체에서 ‘2차 희망의 버스 185대’ 사업에 적극 함께 연대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부디 우리 모두의 연대의 힘으로 조금은 더 평범한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2차 희망의 버스 진행(가안) 및 요청 사항
1. 개요
○ 출발 : 2011년 7월 9일 오후 1시(부산 6시 30분 도착 기준) ○ 출발 장소 : 전국 동시 다발(서울 / 시청광장 앞 재능교육비정규직 농성장) ○ 참가비 : 30.000원(각 지역별로 다르게 잡으실 수 있습니다.) ○ 참가 및 연대 게시판 : 다음 까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검색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 참가비 및 후원금 입금계좌 : 박래군(농협 351-0199-8560-53) ○ 문의 및 연락처 : 010-8278-3097(송경동 시인)
2. 구체 요청 사항
- 각 단체 별로 ‘2차 희망의 버스’ 참가를 조직적으로 결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지역 내 사회단체 및 양심적 개인들과 긴급히 소통해서 ‘2차 지역 희망의 버스’ 조직을 결의해 주십시오. - 타 지역이라도 소통이 가능하신 분들께 ‘2차 희망의 버스’ 지역 조직을 부탁해 주십시오. - 해당 사이트, 메일링, 기고 활동 등을 통해 ‘2차 희망의 버스’를 홍보해 주십시오. - 각 단체나 커뮤니티 별로 별도로 참가자를 모아 일괄 신청해 주시면 좋습니다. - ‘깔깔깔’ 기획단에 일꾼을 파견해 주시길 바랍니다. - 정리된 내용을 전체 진행팀(깔깔깔 기획팀)에게 빠른 시일 내 전달해 주십시오.
3. 참가자 관련
- 1박 2일 노숙을 기본으로 하는 연대 활동입니다. 텐트 등을 준비해 주시면 좋습니다. - 먹거리 등은 이후 연대 과정에서 자발적인 나눔과 참여 등을 통해 해결해 나갈 계획입니다. - 각 지역 참가단은 가능한 자발적 공연단, 참여 프로그램 등을 준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각 단체 및 지역 참가단은 희망의 버스 한 대당 2분의 ‘깔깔깔’을 선정해 버스 운행과, 전체 진행요원으로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 버스는 희망을 노래하려는 버스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별첨] ‘2차 희망의 버스’ 공개 제안문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의 버스> ‘깔깔깔’ 기획단
[별첨] 공개 제안문 - 송경동 시인
‘2차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지난 6월 11일 밤 12시 머나먼 부산 영도에서 촛불을 들었던, 가난한 우리는 다시 2차 ‘희망의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한국근현대사의 아픔과 절망의 상징인 저 85호 크레인 위에 있는 한 여성노동자를 구하러 갑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라고 적혀진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며, 우리가 떠난 뒤 다가 올 탄압과 고요가 두려워 서럽게 울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구하러 갑니다. 십수년간 목 잘려나간 수백만 노동자들, 900만에 이른 이 참혹한 비정규직 시대를 구하러 갑니다. 그 아픔의 현장에서 두 어깨가 축 늘어진 우리들의 ‘소금꽃’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구하러 갑니다. 다시는 누구도 함부로 잘려 생의 벼랑에 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구하러 갑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돈만이 최고인 이 살벌한 착취와 경쟁의 시대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런 세상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갑니다.
이 버스는 모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반대하고, 그 누구의 삶이던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만들자는 연대의 버스, 실천의 버스입니다. 왜 모두가 연대해서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가 소수 자본가들의 금고로만 들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고자 하는 버스입니다. 그래서 이 버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희망의 버스이기도 합니다. 누가 얼굴 내밀자고 가는 버스도 아니고, 누굴 또 시대는 변하지 않은 채 영웅으로 만들자고 가는 버스가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들이 맑고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버스입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버스이고, 너무나 소박한 버스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버스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차 희망의 버스 185대가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인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동지의 손을 잡고 출발하는 2011년 7월 9일은, 아마도 한국사회 운동의 역사상 중요한 날로, 우리가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역사의 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은 80년 광주의 5.18과 87년 6월과 7,8,9를 잇는, 2008년 촛불광장을 잇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런 희망으로 다시 2차 희망의 버스 185대의 출발을 전 사회적으로 제안합니다. 6.11일 그 눈물겹고도 신나던 밤을 함께 했던 모든 날라리들께 제안합니다. 모든 지역의 숨은 양심들께 제안합니다. 광주에서, 순천에서, 전주에서, 수원에서, 평택에서, 하남에서 또 어디에서 1차 희망의 버스를 타주신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모아 제안합니다. 다른 세상으로 이제 우리 출발합시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저 소통부재의 낮은 담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소수들을 위해 평범한 다수가 고통의 바다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 잘못된 장벽을 넘읍시다.
이번엔 185대입니다. 그날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7월 9일을 두고,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벌써 누구는 일주일마다 희망의 봉고,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날 김치 한 조각이 없어 맨밥을 먹던 설움을 없애고자 한 차 분량의 쌀과 김치를 보내겠다는 촛불 시민들이 계십니다. 사진가들은 부산 지역 작가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한진의 절망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합니다. 백기완 선생님과 박창수 열사 아버님 등 유가협 어르신들이 맨 첫 차를 타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연대의 마음들이, 공동체의 마음들이 잡혀 갈 일이라면 1번으로 자신들을 내세워주시라고 합니다.
7월 9일 전까지 우리 모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손을 내고, 발을 냅시다. 7월 9일 전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고, 저 눈물겨운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살아 내려올 수 있게 합시다. 매일 계단을 내려가는 훈련을 한다는 저 눈에 피눈물이 아니라 환한 웃음을 돌려줍시다.
그가 정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떠도는 혼들을 고이 안고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 올 수 있게 합시다. 6월 12일 우리를 배웅해주며 그 누구랄 것도 없이 펑펑 울던 그 가족들과 아이들의 눈물을 딱아 줍시다. 그렇게 모두가 눈물바람을 하며 떠나온 뒷날, 김진숙 선배가 트위터에 썼더군요.
“희망의 버스 한번만 더 와주면 저도 살아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울지 맙시다. 더 이상 우리만 피눈물을 흘리지 맙시다. 더 이상 절망하지 맙시다. 그 시간에 조직합시다. 그 시간에 단 한 대의 버스라도 더 만듭시다. 누가 말을 걸어 올 거라고 기다리지 말고, 김진숙이 열 여덟 시절 했던 화진여객 버스 안내양처럼 내가 이 희망의 버스의 안내원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주십시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소풍을 가는 길이라고 말해 주시고, 저들의 모든 비방과 왜곡을 넘어 진정한 평화마음의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 어두운 시대 절망의 벽을 넘으려면 내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그 열린 마음들이 전혀 다른 열린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 믿어 봅니다.
* 이 공개 제안문은, 6월 15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전체회의(민주노총, 인권단체, 종교단체, 문화단체, 사회단체, 학술단체 등 50여개 사회단체 참여) 결정과, 당일 오후 2시 기자회견 시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사회원로 선생님들, 그리고, 6.11일 함께 해주었던 서울과 지역의 희망버스 참가자 분들의 마음을 모아 작성되었습니다. |
신유아 SHIN YOUA
문화연대 조직운영센터
82-2-773-7707/010-9270-0830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하고 듣게 된다.
나는 이 말에서 두 가지를 읽는다.
하나는 귀신도 관(官)을 무서워했듯, 우리 조상들 이하 우리는 무법천지보다는 촘촘하고도 세밀한 법의 다스림에 더 익숙했다는 것 하나, 그리고 그 법이란 사람을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골탕 먹이고 짜내고 뒤통수 때리는 데에 더 수완을 발휘해 왔다는 것. 오죽하면 말도 나오지 않을 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 '법'을 갖다 대겠는가.
"짐이 국가다."라기보다는 "법이 짐이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그 법이 아둔한 혼군이 되었을 때, 또는 사악한 폭군이 되었을 때 죽어나는 것은 결국 백성들일 수 밖에 없고 법은 호랑이보다도 무서울 수 밖에 없다.
하물며 나랏님 말끝마다 묻어나는 것이 공정한 사회요, 경찰서 현관마다 붙어 있는 것이 준법의 질서인 나라다.
법을 배우지 않고는 출세의 대열에 끼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우며, 몇 회 졸업생 아무개 사법고시 패스했다면 모교 담장이 축 합격 플래카드로 가려지는 땅이다.
이런 곳에서 어찌 법이 감히 어두울 수 있으며 설마 간교할 수 있으랴. 행여나 그렇다면 그 위에서 살아가는 별 볼 일 없는 이들은 죽었다고 복창하는 것 외에는 수가 없을 것이다.
두 팔을 벌리고 물기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를 되뇌는 것 말고는 외나무다릿길도 없을 것이다.
5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이창형 부장판사)는 장례식장 주변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사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 김모씨 등 4명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벌금 70만원을, 이모 씨 등 2명에게 벌금 5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일렬로 장례식장 앞에서 병원 정문까지 함께 걸어간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은 목적을 갖고 일반인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장소에서 행진해 불특정 다수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행위이므로 집시법이 정한 시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집시법상 신고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이지 `시위'가 아니"라고 한다.
멀쩡히 한 회사를 다니던 젊은이들 수십 명이 백혈병으로 떼죽음을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회사 측은 전혀 책임이 없다고 우기는 판에,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왜 그 사람들만 그러냐?"는 어이없는 질문만 무성한 터에, 꽃에 비유하기도 아까운 나이에 죽어간 사람의 장례식에서 울부짖으며 누구를 욕한 것도 아니고, 그 관짝을 끌고 이태원의 회장네에 쳐들어간 것도 아니고, '장례식장에서 병원 정문'까지 아무 소리 않고 걸어가기만 했는데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유죄라는 것이다.
그래도 법은 법이다.
법이 그렇다면 그렇다고 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억울하고 아파도 그 법의 서슬은 나 뿐 아니라 모두에게 공통으로 푸르리라는 믿음이라도 있어야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법이지만 감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날 한 나라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야윌 대로 야위고 허할 대로 허한 법에 대한 신뢰의 허리를 꺾는다.
19일 새벽. 회사의 직장 폐쇄에 항의하던 유성기업 노조원들에게 회사측 용역이 몰던 차가 돌진했다.
술 취해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을 친 게 아니다.
아차 주의를 놓쳐 갑자기 튀어나온 누군가를 들이받은 게 아니다.
회사가 부른 용역이 대포차를 가지고 노조원들의 대열을 덮쳤다. 다친 사람만 13명이다.
이건 한 곳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 차량이 돌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뼈와 살로 이뤄진, 그리고 목청 돋워 뭔가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쇳덩이를 맹렬하게 갖다 부딪친 사실을 액면 그대로 전달할 뿐이다.
명동 길거리를 막고 물어 보자. 요즘 외국인도 많던데 상관없이 물어 보자. 이 상황이 '교통 사고'인가. 외국인이라면 그 나라에서는 이걸 교통사고라고 치는가.
사측은 용역 한 명을 자수시켰다.
대치 중에 차량을 돌진시켜 사람을 깔아뭉갠 혐의에 경찰은 놀랍게도 '교통사고 특례법'을 적용하여 '뺑소니'로 처리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문제의 용역의 죄는 정상적인 주행 중에 전방 주시 태만으로 13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차로 치고는 피해 보상과 피해자 구완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냥 집에 가 버린 것 뿐이다.
이게 법인가. 이걸 우리는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 법이 다스린다는 미명으로 우리는 이 나라를 법치국가라 칭할 수 있는가.
이렇게 해 놓고도 회사측은 '불법파업'을 이유로 빨리 공권력을 동원하라고 아우성이며, 전경련은 '현대자동차가 멈추고 있다."며 어서 밟아 달라고 안달을 하고 있다.
쌍용 자동차 진압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는 경찰청장 휘하의 기동대는 이미 공장 밖에 진을 치고 있다.
그들은 합법인가. 정히 그렇다면, 헌법이 보장하고 노동법에 명기된 파업의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자는 어떻게 불법인가. 현대자동차를 멈추게 하면 불법인가.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경제에 손실을 끼칠 수 없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면 다 사람이 아니고 사람 같아야 사람이듯이, 법도 법 같아야 법인 법이다.
이런 판국에 법을 가르치는 것은 강한 자에게는 오만을, 약한 자에게는 굴욕을 깨우치는 격일 뿐이다.
이런 형국에 그래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따르지 않으면 죽음 뿐이라는 폭군의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
다리가 돌아가고 얼굴이 터지고 귀가 찢어진 채 아스팔트에 내팽개쳐진 '산업역군'들이 묻는다. 파업 후 시간당 손실이 엄청나다는데, 그만큼 돈을 벌어 주던 유능한 일꾼들이 악을 쓰며 질문한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그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대답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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