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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시트회사 검진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피곤한 곳이었다. 새벽 6시반에 병원에서 출발해야 하니 더 가기 싫은 곳이다. 노조에서 우리 병원에서 검진하겠다 해서 3년전부터인가 시작했는데 무슨 법대를 나왔다는 담당 과장은 엄청나게 신경질적이고, 노동조합도 도대체 관심이 있는 건 지 아닌지 오리무중... 그 곳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이 딱 하나뿐이다.  참 어려운 상황에서 운동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던 예쁘장한 사무국장에 대한 추억.



살도 쪘고 혈압도 올랐고 무엇보다 해맑던 얼굴이 어찌나 상했던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리라.

 

  이 곳은 근골격계 검진을 멀리 남쪽 지역 대학병원에서 했는데 당시 보건관리대행 때문에 드나들던 나로서는 참으로 답답했었다. 무슨 조사 해 놓고 일년이 지나도록 보고서도 주지 않는 교수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는 모습을 보자니, 여력도 안 되는 일을 맡아서 고생하는 그 양반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뭔가 해결되었겠거니 했는데, 오늘 근골 환자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진이 빠진다.

 

  사람들이 작업을 수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야 권위있는 의사들을 찾고 산재하고 다시 개선되지 않은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3년전 여러 곳에서 진행된 근골격계 사업들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가에 의존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진하는 시간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TDI가 10-20%가 있고 나머지는 내가 잘 모르는 이소시아네이트류로 구성된 화학물질에 하루 2시간씩 2번 고농도로 노출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 8시간 평균 노출을 평가하고 요중 마뇨산을 측정하는 것의 문제점은 알겠는데,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지 한숨이 나온다.

 

  발포공정의 로보트를 밀폐하고 나서 바로 옆 작업자한테 화학물질 노출이 더 심해졌다고 대안을 강구해보자고 한 게 이년전인데 아직도 그대로이고, 호흡보호구가 꼭 필요해서 권고했던 사람들도 바뀐 게 없다. 이런 곳에선 일하기 싫어진다.  짜증나서 마담선생한테 문자보내서 하소연까지 했으니..... 그래도 가끔은 지난 번 검진이후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사람도 있으니 중간 중간에 감정조절에 도움이 된다.

 

  천식끼가 있는 사람 2명이 있었는데 둘 다 TDI 취급자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한 명은 보전부서로 장비수리만 하면 기침때문에 잠을 못 자고, 하나는 다른 이들보다 사이즈가 큰 가죽제품을 취급하는데 그 (소독약같은) 냄새과 먼지때문에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자는 TDI에 의한 천식인 것 같고 후자는 아마도 가죽제품을 가공할 때 사용했을 포름알데히드에 의한 증상인 듯 하다. 기도유발검사를 내고 회사 간호사한테 설명했다.

 

  끝내고 나오는데 눈에 들어오는 포스터. 오호, 가운데 여성 노동자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 비조합원일, 사내하청소속이거나 파견노동자일 여성 노동자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진을 보니 어쨌든 세상이 조금씩은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금속노조가 출범하는구나.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기를 빌며 한 주 시작 포스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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