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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와 일할 권리

우울한 마음으로 긴 긴 글을 썼다가 날렸다. 그래서 짧게 다시 쓴다.

 

  #1. 알권리

 

  오늘 금연교육을  마치면서 이따가 작업장 순회점검할 때 작업환경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이야기 하라고 했더니 어떤 남자가 손짓을 한다. 



자신이 본드작업을 하면 머리가 아프고 졸리는데 본드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특수건강진단때는 도대체 뭘 하는 거냐, 소변받는 거 외에는 다른 게 없던데'라고 한다.  확인해보니 물질안전보건자료는 게시되어 있지 않았고, 작업환경측정은 꼬박 꼬박하는 데 그 결과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고 국소배기시설의 위치가 좀 잘못되었고 방독마스크가 지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 작업을 한 지 2년이나 되었다는데......

보건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미안하고 부끄럽다. 

우여곡절끝에 확인한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본드 구성성분의 50%가 영업비밀이라고 쓰여 있는지라, 납품업체에 연락해서 다시 받도록하고, 현재까지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하여  건강영향과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추가로 정보가 확인되는 대로 회사측에서 알려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작업자가 바라는 것은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라도 심각한 건강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 이 작업자를 만나서 대화할 때까지만 해도 우울하진 않았다. 우리가 잘못하긴 했지만 고칠 수 있으니까.

 

* 참고 : 산안법에 규정된 노동자의 알권리에 관한 사항 일부

 - 물질안전보건자료 : 사용하는 모든 화학물질의 성분과 건강영향, 대책 등이 담긴 자료로 작업장에 비치, 게시, 교육해야 함(위반시 과태료 500만원이던가?)

 - 작업환경측정결과 : 근로자 대표요구시 설명회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으나 개별 노동자에 대한 결과통보의 의무는 규정되지 않음

 - 특수건강진단 : 유해물질별로 실시, 유기용제는 일년에 한번 실시하며 추가되는 검사항목은 체내에 들어온 유기용제 대사물 검사외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항목.

 

#2. 일할 권리

 

  오늘도 제품을 장비에 꽂아 성능을 테스트 하고 외관을 검사하는 아주머니들은 아프다. 어제는 진통제먹고 연장작업했다고 울상짓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그래도 무엇인가 도움이 될만한 조치가 없는가에 대해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사업장의 아주머니들은 회사측에서 제공하는 물리치료같은 거 바라지 않는다. 지난 번 방문때 한달간 근무중 치료를 했던 일잘하고 성실한 한 아주머니가 재계약이 안되는 것을 눈으로 본 뒤로 아무도 아프다고 안한다. 담당자말로는 어차피 이 라인은 죽은 라인(더이상 주문이 없어 생산중단예정)이라 는데 아주머니들은 혹시 하는 마음에 아픈 것을 참으면서 14시간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준답시고 했던 일들의 결과로 아주머니의 일할 권리가 침해받았다는 거다. 이건 정말 우울한 일이다.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문제이니.

 

  어떻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  산재로 갔으면 재계약은 되었을까? 정규직은 못 짜른다는 게 확실한데 재계약을 꼭 해야한다는 규정같은 게 있는지 찾아보아야겠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중 노무사가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

 

  우리는 아주머니들의 일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물량이 없어서 휘청휘청하는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 앞 공정과 순환작업을 하도록 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그 공정의 총각들(정규직)이 반대한다는 것. 당사자들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알겠지만 이런 이야기 들으면 진짜 섭하다.

 

 이 회사 담당자는 현장에서 일도 많이 해보고 마음도 착한 기독교인이라 그런지 금속노조의 정치투쟁은 싫어해도 개별현장 노동자, 계약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 따뜻한 편이다. 오늘 보건교육도 비정규직도 모두 다 듣도록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회사 노조조직률은 25%.

조직률이 낮은 만큼 노조도 애로사항이 많긴 하겠지만 계약직 아주머니들, 사내하청 아저씨, 아주머니들한테도 신경을 좀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합이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그래도 최소한 마음착한 회사 담당자 보다는 노동조합이 비정규직노동자들과 더 가까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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