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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류

  식품포장용 비닐을 생산하는 기업의 보건관리자한테 들은 이야기.

3년전 사장이 바뀌고 1년전 노조 집행부가 바뀌었는데 둘 다 '꼴통'이라 사업장 안전보건이 엄청나게 후퇴했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하는 말이, " 사장이 직원을 식구처럼 생각해야 안전보건을 할 수가 있는데 우리 사장은 직원과 기능공을 구분해서 말해요"  여기서 직원이란 사무직, 기능공이란 현장의 생산직을 말하는데 그러니까 사장의 의식속에서 생산직 노동자는 우리'직원'도 아니라는 뜻이다. 한 번은 전체 조회할 때 자기도 모르게 직원과 기능공이라는 말을 써서 현장 노동자들을 서운하게 해놓고 주워담느라 쩔쩔 매기도 했단다. 직원과 기능공으로 분류되는 현실에 대해서 한참 성토를 하던 그는 "기능공밑에 또 있지요"한다.



계약직 노동자.

다행히 사내 하청은 없는데 조만간 이를 도입할 모양이라고 개탄하면서 마지막으로 "앗 계약직밑에 또 있네"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가장 밑에 있는 사람은 '일용직 아줌마' 란다.

 

  이 사업장은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하는 지 다 알고 있고 보건관리자가 기안도 다 올렸지만 그 이상 일이 진행이 안된다고 한다.  직원에게 대접으로 소주를 먹이는 전근대적인 사장은 안전보건문제에 대한 기안을 올리면 막 야단을 친단다.  보건관리자는 사장하고 한판 붙고 개겨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자기도 힘들어서 매번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 올해는 40Kg의 중량물을 직접 드는 작업의 개선에 대한 예산을 땄다며 은근히 자랑을 한다. 이런 대목에서 감동을 할 수 밖에 없다.  노사의 무관심속에서 전문가의 헌신에 의해 꾸준한 작업장 개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 때문이다.

 

  이 사업장에서 내가 해야 할 주요 역할의 하나는 경영진의 의식을 바꾸는 데에 있다고 판단했다.  현장의 가득한 흄(금속연기)을 제어하는 데 10억원쯤 드는데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10명이라 그런 투자는 할 수 없다는 게 사장의 생각이다. 외부에서 온 전문가가 함께 '숙원사업'을 노래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내년 일월에 내가 사장이 참석하는 화상회의에서 05년 보건관리 방향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기로 했다. 물론 그런다고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의사가 와서 이런 문제들이 어떤 건강장애를 초래하는가를 설명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해야 해야 할 사업주의 의무를 환기시키고, 이런 문제를 방치했을 때 기업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가를 알려주면 회사내 보건관리자의 입지는 조금 강화되지 않을까, 그러면 안전보건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업주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법과 노동자의 투쟁.

 

* 사족

 

  이 회사 보건관리자는 87년 6월 초에 경찰의 감시를 피해가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그 때 엄청나게 고생을 해서 조금만 더 늦게 만들껄 하고 엄청 후회했단다.  6.29 이후 노조 설립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 뒤에 그 지역사회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어찌 저찌 해서 그 동네를 떠서 이 회사에 들어왔다고 한다. 

   다니다 보면 한 때 운동을 했었던 사람들이 더 지독하게 구는 모습도 보지만 적어도 인간적인 작업장을 만드는데 있어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난히 마음이 따뜻하고 작업자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담당자가 알고 보니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말을 듣고 내심 흐뭇하기도 했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획득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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