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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언어의 위력과 의회주의 세력의 전선교란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1/06/08 23:21
  • 수정일
    2011/06/09 00:26
  • 글쓴이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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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투쟁양상은 3년전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또는 반 이명박)' 시위와 맞닿아 있다. 투쟁의 장소가 서울 도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으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많은 구경꾼들이 한 순간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떤 노동자들의 파업보다도 정치권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오세훈마저도 '등골이 휠 정도'로 등록금 문제는 노동자와 빈민의 문제만이 아닌 전 계급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2008년 촛불과 같이 계급성을 초월한 투쟁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3년전 임기초부터 크게 데였던 이명박이 긴장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3년전의 촛불이 그랬듯, 이번 반값 등록금 투쟁 또한 지금까지의 양상으로 봐서는 '계급성 초월'이라는 상승기의 장점이 나중에는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집회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세력은 NGO, 시민사회단체 및 야4당이다. 등록금 문제가 조그마한 개량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울도심에 얼굴을 비치는 '정치세력' 중 변혁세력은 없다. 심지어 이 의회주의 세력들은 이명박 정권을 2012년에는 반드시 심판하자는 주장을 드높이며 당장의 현안인 등록금 문제에 대한 투쟁전선을 교란하고 있다. 노동자들 집회든, 대학생들 집회든, 4대강 집회든, 어디서든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심판 타령이다. 죽쒀서 개준다는 말이 이런 데서 나온다. 과연 등록금이 오르고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철거민이 죽은 것에 '민주정권'의 책임은 없는가. 2012년부터는 그들의 손에서 민중들은 행복할까? 이명박과 한나라당만 물러나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도화지에 채색하듯 해결될 것인가 말이다.

 

왜 한국의 어린 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고 중졸이나 고졸로 남으면 대다수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지(심지어는 대학에 대학원까지 나와도 비정규직과 백수가 그토록 많은지), 노동자가 되어도 왜 늘 실직을 생각하고 불안해 해야 하는지, 꿈을 꾸는것이 꿈이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런 문제가 대체 2012년 선거 승리로 다 해결될 문제인가?

 

높은 등록금 그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청년 (예비)노동자들의 미래를 논함에 있어 더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파악이 필요하다. 단순히 대학 적립금이나 학자금 대출문제만 가지고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반값 등록금' 투쟁과 노동해방, 그리고 썩어빠진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과 등록금 투쟁은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처음에는 등록금 문제로 시작했지만 '반값 등록금'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문제로 끌고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참세상에 걸린 진보전략회의 이득재씨의 기고대로, '좌파는 프레임 전쟁에서 지고 있다'. 등록금 문제를 결국 의회주의 세력의 선거 프레임에 가두고 말 것인가, 아니면 투쟁을 통해 민중들이 착취받지 않는 실질적인 해답을 얻을 것인가, 이 보이지 않는 싸움은 좌파의 손에 달려있다.

 

자본주의, 특히 작금의 신자유주의로부터 파생된 대학 등록금 문제와 자본가들의 노동자 탄압, 그리고 그 체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부르주아 정권까지 모두 한 궤로 묶여 있다. 그러나 한대련의 구호는 '이명박 정권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 이다. 이것은 싸우자는 게 아니라 부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반값 등록금', 다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언어가 가져다 주는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보통 시민들의 눈에서 비춰 보면 매우 혁명적인 글자겠지만, 투쟁하는 당사자 특히 대학생과 졸업하고도 졸업하지 못한 학자금 대출자들에게는 이 다섯 글자 자체가 커다란 족쇄나 다름없다. '미친 등록금과 자본가 정권을 뒤집어 엎자'도, 하다못해 '무상교육을 추진하자'도 아닌 '공약을 이행하라'는 정도의 주장으로는 투쟁 동력을 장기간 이어나갈 수 없다. 3년 전 촛불도 미국산 쇠고기수입 재협상을 주장하던 시기에는 동력이 약했으나, 이명박 정권 타도와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순식간에 동력이 늘어났고, 민중들은 정권 퇴진을 원하는데 광우병 대책회의가 이 열망을 묵살하고 '쇠고기에만 관여하겠다'며 투쟁을 접어버리자 끝내 무참한 패배로 끝나지 않았던가? 이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지금 한대련의 주장대로라면 '반값 등록금'까지만 추진해도 목표 달성이고 배가 부른데, 어떻게 거기서 더 나아가 무상교육과 노동유연화 철폐, 신자유주의 타도를 외치겠는가? 어불성설이다.

 

쇠고기 수입문제에만 집중하고 싶어했던 광우병 대책회의의 3년 전 패착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해방의 길을 열어줄 지도력을 갖춰 자본가들과 제대로 된 싸움을 할 것인가?

지금은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전국민 무상교육, 노동유연화 철폐, 신자유주의(자본주의) 타도를 외쳐야 할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