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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놀이, 축구의 역사와 자본 : 그리고 축구 민주화를 위해 이번 월드컵에 대해 우리가 표명해야 할 입장은?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0/06/08 02:17
  • 수정일
    2010/06/08 02:17
  • 글쓴이
    Liberation
  • 응답 RSS

 

2002년에 거리에서 한 번이라도 응원해보신 분이라면 그 광장이 주는 해방감을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곳에는 구조조정도 양극화도 자본도 광고도 독재도 폭력도 없는 민중들의 세상이었지요. 이것이 정치적 해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월드컵에만 국한된 게 아쉽습니다. 어쨌든 민중들에게는 너무 숨막히던 IMF와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잠시나마' 해방공간을 누릴 수 있었으나, 2006년부터는 이러한 해방구를 자본이 악용하여 이윤을 얻고자 SK 등이 거리응원을 왜곡시킵니다. 뭐 기업들이 아예 점령한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요. SBS가 중계는 독점하고, 서울광장은 현대자동차가 점령하고, 게다가 이런 기사도 있는데(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52611451933713&outlink=1) 독점중계권을 딴 SBS가 FIFA와 함께 기업들에게 퍼블릭 뷰잉권이라는 해괴모호한 것을 팔아서 막대한 이윤을 착취하겠다는 내용이지요.

 

여기서 FIFA에 대해 다시 보자면 FIFA는 아벨란제 회장의 장기집권기간(1974-1998)에 월드컵 등의 대회를 악용하여 축구를 초국적자본의 복마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미 마라도나가 1986년에 지적한 바가 있는데 그 이후 마라도나는 FIFA로부터 이단아로 낙인찍히며 1994년 월드컵에서는 퇴출당하기에 이르지요. 당시 피파가 도핑을 마라도나를 위해 행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 복마전은 블래터가 취임하고 나서도 계속되었고 축구의 가치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울광장은 현대자동차가 '점령'해버렸습니다.

 

 

이쯤에서 축구의 역사와 자본화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축구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할 때 동네 사람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는 마을잔치였고 경기 규칙이 제정되어 Association Football (줄임말 Soccer)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조는 변하지 않았지요. 물론 Soccer가 시작되면서 축구판에서도 선수, 감독, 관중, 심판이라는 계급이 생겼습니다. 관중들은 하루아침에 선수 신분에서 관람자 계급으로 하락했으나 자신들이 축구의 주인이고 선수들은 단지 자신들의 대리자일 뿐이라는 직접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합니다. 그러한 관중들의 계급의식이 오랜 세월동안 뿌리박힌 곳이 유럽이고 남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포터들의 맨유인수나 집단적 정치행동(Against the modern football 등)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나, 유럽 축구팬들의 직접민주주의적 관점도 피파와 유럽축구연맹이 자본주의적 기조를 들여온 뒤에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축구의 초국적 자본화에 불을 부은 사건이 있었으니 헤이젤 참사와 힐스보로 참사지요. 이후 유럽축구연맹(UEFA)에서는 G14론을 들고나오며 이러한 축구의 전자본화를 가속시키려 합니다. G14라는게 뭐냐면, 잘나가는 유럽의 14개클럽이 만든 거대협의체인데(즉 선진국들의 모임이라는 G20과 비슷. 참조 : http://blog.naver.com/jupark88?Redirect=Log&logNo=150002885674) 이들을 자국리그가 아닌 G14 리그로 묶어서 챔피언스리그 식으로 개편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유럽의 축구팬과 미디어 노출, 자본유입을 이들이 독점하고 복마전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물론 G14 리그를 당장 창설하는 '혁명적인' 조치는 중소 클럽들의 반발이 심하므로 당장 하지는 못합니다만, 위험은 상존한다고 봐야겠지요.


이렇듯 유럽에서도 축구의 초국적 자본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는 축구팬들은 서포터스 연합들을 중심으로 Against the modern football, 맨유 직접인수 등을 조직했지요. 물론 축구팬들의 이러한 정치적 의사표시가 과거에 비해 퇴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축구판에서 팬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지속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구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축구의 시작은 1882년 인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민중의 놀이로서 축구가 행해졌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일제시대때 축구는 일제에 수탈당했던 민중들의 놀이로 지속되었고 그것이 경평전 등으로 발전되기에 이릅니다만, 축구를 통해 민중들이 결집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일제가 한반도에서 축구를 수차례 금지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금지령에도 아랑곳 않고 민중들은 이제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의사표시로 축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분단되면서 남북한의 축구는 민중의 놀이가 아닌, 냉전시대의 국가대리전, 국가홍보의 수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극단적인 예가 1966년 북한 천리마군단의 기적에 충격받아 박정희정권이 인위적으로 만든 '양지'라는 클럽팀이고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모두 이곳에 소속되어 훈련받고 해외원정다니면서 경기했습니다. 자본주의와 반공주의가 합쳐진 남한에서는 이렇듯 양지라는 기형적인 '국가대표클럽'팀이 있었고 그 뒤를 은행권 팀들이 실업선수들을 양성하는 구조로 축구판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마찬가지로 주체사상 유지와 대외홍보를 목적으로 1960년에 4.25축구단을 창단한 게 지금까지도 존재하지요. (요번에 북한의 월드컵 출전선수 가운데 상당수가 4.25축구단 소속) 이렇듯 남북한에서는 각자의 체제유지와 국가대리전 등에 활용하기 위해 축구가 상당히 왜곡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PL에서 뛰는 박지성이 프로축구 K-리그보다 왜 인기있는지는 이러한 역사가 반증한다고 보아야 겠지요.


그 후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뒤 이른바 3S정책으로 축구, 야구, 씨름의 프로화가 추진됩니다. 그 여파로 1983년에 창설된 것이 슈퍼리그입니다. 당시 참가팀이 국민은행, 주택은행 등의 금융팀과 할렐루야, 유공, 포항제철(현 포항스틸러스), 대우로얄즈(현 부산아이파크) 등이었는데 이 팀들의 면모를 보시면 전부 기업들이 기업 홍보수단으로 만들었든지 아니면 금융계 팀이었지요. 정권에서 3S정책으로 급조하다보니 민중들은 프로리그에서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였지만 영호남 대립이 극심했던 탓에 사람들이 지역연고에 따라 해태와 롯데, 삼성에 감정이입을 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

 

이렇게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을 거쳐 축구에서도 민중들은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K-리그도 그 모태가 슈퍼리그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민중들이 배제된 공간일 뿐입니다. 그나마 기업들의 놀이터였던 축구판에 팬들의 조직이 미약하게나마 나타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입니다.

 

당시 하이텔 축구동호회는 이러한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유럽이나 가까운 일본 J-리그의 사례를 분석하며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얻어진 결론은 프로축구에서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고 처음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유공팀에 대해 응원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것이 전 구단으로 확대되고 그것이 결집되어 '칸타타 선언'이 채택되면서 붉은악마가 탄생됩니다. 전문에 보면 '일체의 영리적 행동은 배격한다'는 내용이 있지요. (전문 : http://naramoksu.springnote.com/pages/17015?print=1)

 

물론 붉은악마와 프로축구 클럽 서포터스 또한 민중들의 축구를 만들지 못하고 축구팀의 응원단(이하 '가무단')으로 전락해 버린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이 독식하던 축구계에 팬들의 자주적인 단체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 붉은악마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원정응원과 4년여간의 응원 경험이 축적되어 2002년의 '해방구'를 열어제낀 주체로 성장하니까요.

 

2002년의 해방구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축구팬으로 유입되고, 2003년은 그러한 해방의 연장선을 꿈꾸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가능성을 일말이라도 보이던 한국 축구판이 절망의 복마전으로 변한 것은 2003년 말부터 2004년 3월까지 진행된 안양 LG의 연고지 이전 테러입니다. (연고지 이전 테러의 진행과정 : http://soccer1.ktdom.com/bbs/zboard.php?id=soccer4u2&no=37811)

 

연고지 이전을 몇 문단으로 요약하면, 당시 서울시장 이명박은 서울연고 프로축구단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프로팀 창단이나 유치(타지역팀 연고지 이전)를 획책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울시청 실업팀을 공문 하나로 해체하기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뛰던 선수들은 졸지에 실직자가 됨) 그리고 신규 창단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그 비용을 감당할 대기업이 없다는 이유로 타지역 팀의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때 서울로 들어가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려 온 LG그룹은 이명박과의 커넥션을 통해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조건으로 기존의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축구팬들의 유례없는 저항이 있었고 안양에서는 7000여명이 반대시위를 벌였습니다만 (저도 수많은 저항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자본의 개 이명박의 서울시와 수전노 LG그룹은 팬들에 대해 폭력으로 일관하며 연고지를 이전하지요. 그렇게 이전한 팀이 지금의 FC 서울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연고이전이 아닌 '연고복귀'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신 '럭키금성'의 최초 연고지는 충청북도(당시는 광역연고권)였고 1990년에 LG 치타스로 개명과 동시에 서울로 연고지를 낼름 이전해 버립니다. 서울에서 6년간 해먹다가 대한축구협회가 프로축구의 지역연고 활성화를 위해 당시 서울연고 3팀(일화, 유공, LG)을 타지역으로 쫓아냅니다.('서울공동화') 다시 돌아오려면 권리금 150억원을 내라는 조건과 함께. 그리하여 LG는 안양에 자리를 잡고 2003년까지 안양 LG 치타스라는 팀명과 함께 했지요.

 

1996년의 일명 '서울공동화' 또한 대한축구협회가 부당한 짓거리를 해서 쫓아낸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FC 서울은 그 핑계를 대고 억울한 소리를 징징대지만, 정작 본인들이 팬들에게 대했던 더 큰 폭력은 생각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작 축구의 원래 주인인 민중들은 축구협회와 거대 자본 그리고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꼴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 사태에 환멸을 느껴 축구판을 떠난 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게다가 2006년에는 부천 SK(전신 유공)가 제주도로 연고지를 옮겨 '제주 유나이티드'로 팀명을 바꾼 2차 테러를 자행했고 이에 붉은악마는 그 해 삼일절 앙골라전에 검은 상복을 입고 응원을 보이콧합니다.

 

어쨌든 두 차례의 무자비한 폭력과 전세계 축구판의 전자본화에 휩쓸려 2006년 월드컵부터는 거리응원조차도 자본이 통제하고 거리응원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업 이윤의 노리개가 되어버렸습니다. 2010년은 말할 것도 없지요. 지금 K-리그는? 일부 '시민', '도민' 구단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지역 토호와 자본들의 연합체에 불과한 자본주의적 연합인 주식회사일 뿐이므로 그러한 구조에서 민중들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할 공간은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시청팀과 중소기업들이 이끄는 2부리그격 '내셔널리그'도 마찬가지고, 3부리그격인 'K3-리그'에서는 '시민'구단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하긴 합니다만 대다수가 시청과 지역 자본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들의 이념 또한 개량주의인 것은 마찬가지.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하여, 서울광장은 현대자동차에게 점령당하고 SBS는 중계를 독식했으며 대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거리응원이나 CF, 광고 등을 통하여 어떻게든 이윤을 벌어들이려 합니다. 그 속에서 축구는 자본들의 복마전으로 전락했고, 민중들의 적절한 정치적 행동과 입장표명이 없으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지속되고 강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최종적인 목표는 (정치에서든 축구에서든) 민중들이 직접 권력을 잡고 생산수단을 소유, 통제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쟁취이므로, 이번 월드컵이 자본들의 복마전으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해야 합니다. 붉은악마는 이미 이러한 복마전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하고 서울광장 응원을 보이콧, 봉은사 앞에서 응원을 펼친다는 보도자료를 돌렸습니다. 평소에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할 지라도 이러한 전자본적인 현상은 분명 우리가 바라는 '신자유주의 타도'와 '청년, 노동자 해방'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입장 표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월드컵에 머무르지 않고 축구판에서의 자본주의 철폐 운동과 국내 축구리그 민주화투쟁이 병행된다면 더욱 좋겠지요. 물론 일차적으로 그것은 노동조합보다는 축구클럽 서포터스 연합에서 벌여야 할 일이겠으나, 팀 성적에 매몰되어 가무단으로 전락하면서 진짜 해야 할 일들을 놓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유니온 (http://cafe.daum.net/alabor) 자게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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