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축구팬들의 투쟁에서 잃을 것은 몇 시즌의 티켓 뿐이요, 얻을 것은 축구 그 자체다. 만국의 축구팬들이여, 단결하라!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1/09/30 22:26
  • 수정일
    2011/09/30 22:34
  • 글쓴이
    Liberation
  • 응답 RSS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을 건 사람은 생각없고 유치한 짓을 했으니 도덕적 지탄을 받는 건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이것이 징계대상인가? 경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야 하고 10년동안 경기장 출입을 금지(http://goo.gl/p9A8J)해야 할 사안인가?

 

그저 현수막 하나로 개인의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현수막 게재 정도로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데 축구장에서 유치한 표현 하나 가지고 출입금지를 때린다? 지금이 5공 독재 시절인가? 축구장은 구단이 자신들에게 조금만 피해가 간다든지 이미지가 깎인다는 이유로 팬들을 맘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공간인가? 축구의 원래 주인이었던 민중들을 배재한 채 자본가들로 인해 시작된 한국프로축구이니, 팬들은 그저 스탠드 채우고 유치원생처럼 얌전히 앉아서 쇼나 보는 그런 존재들인가?

 

팬에 대한 구단의 홈구장 출입금지 사태의 근원적인 것을 봐야 한다. 벌금이 얼마네 일본애들이 욱일승천기를 쓰네 마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현재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2009년 7월 김형범 부상당시 팬들의 원정팀 버스 감금사건이나 2011년 7월 북패륜과의 홈 경기 이후 발생한 충돌로 인해 구단이 팬들에 대해 적대적이고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으며 이번 걸개사건에서는 마침내 구단이 팬들의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하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을 축하한다는 메시지 자체는 도덕적 지탄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지 실효적인 징계나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약 전북 구단의 10년 출입금지 처분이 옳다면, 지금 이 시각에도 각종 포털에 달리는 일본에 대한 수 많은 악의적 댓글, 혹은 정부나 재벌에 대한 악의적 댓글들은 모두 포털사이트의 규제를 받아 10년 동안 아이디가 정지되어 로그인할 수 없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 된다면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들끓을 것이다. 그런데 축구팬들은 왜 이리 조용한가? 아니, 왜 출입금지 조처에 되려 찬성하고 나서는가? 그대들은 구단의 가무단인가? 구단의 꼭두각시인가? 축구장의 주인은 구단인가? 한국은 예의바르고 착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졌으니 어느 누구라도 그 물을 흐리면 안되는 것인가? 당신은 전체주의자인가? 특정인의 바보같은 행동으로 전체가 욕 먹을 만큼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줄 아는가? 세계에서 가장 비이성적인 자들은 그대들이다!

 

축구공의 주인은 어느 특정인도 아니요, 특정구단도 아니다. 남녀노소 어느 누구나 축구공의 주인이다. A매치 선수입장 음악은 노동자 연대와 평등의 노래인 '인터내셔널가'의 옛버전이고 FIFA가 주장하고 있는 노 라시즘(No Racism) 또한 평등의 이념이다. 축구공에 계급은 없다! 모든 이가 평등하고 모든 이가 손을 쓸 수 없다. 축구가 가질 수 있는 이념은 평등과 인간 해방에 대한 의지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곳이 경기장이고 관중석이고 그라운드다. 이러한 평등구조를 깨고 누군가가 특권을 가지려 한다면 축구는 붕괴된다.

 

오늘 벌어진 전북 구단의 팬 출입금지 처분은 변곡점이 되어 향후 한국 축구 문화 전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일본의 대지진을 축하한다'는, 무슨 의도를 갖고 한 것도 아니고 걸개 제작자의 사과문에 따르면 '너무 열받아서 우발적으로' 내건 메시지로도 10년동안 관중석에 있을 수가 없는데, 구단에게 '문제있는 사람'으로 찍힌 팬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관중석을 떠나야 할 지도 모른다. 이제 관중석은 구단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서서히 채워질 것이다. 한국에서 축구팬은 축구의 주인이 아니라 구단의 관리 대상일 뿐이며, 구단을 실제 좌지우지하고 있는 재벌과 자본가들의 꼭두각시, 호두까기 인형일 뿐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축구장엔 계급이 없다. 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자본가에 의해 억눌려온 축구장의 인민(팬)들이 축구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공은 더럽혀질 것이다. 전북 구단의 관중 출입금지 처분은 취소되어야 마땅하며, 향후에도 구단이 팬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시도는 팬들 스스로의 힘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본과 권력에 의해 조작된 민중의 놀이 축구를 팬들의 품에 돌려놓는 투쟁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축구팬들의 투쟁에서 잃을 것은 몇 시즌의 티켓 뿐이요, 얻을 것은 축구 그 자체다. 만국의 축구팬들이여,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