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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5월 프랑스. 모 국내선 여객기를 탈취한 납치범은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의
관철을 주장하여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교황은 파티마 제3의 비밀을
공개하라!'가 그것.그러나 며칠 후, 교황은 난데없이 터키 출신 테러범의 총격을
받고 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파티마의 비밀은 1917년 포르투갈의 산타렘주 빌라노바데오렘에서 시작된다.
이 지역에 사는 3명의 어린 목동들이 그 해 5월부터 10월까지 천사들과 정기적인
대화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3명의 어린 주인공은 9살 하진타, 11살 마르토,
그리고 이들의 사촌누나 루치아 소녀였다. 이들 어린 목동들에게 성모마리아의
현시가 보여져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에 관한 메시지가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천사들과의 접촉 이야기가 곳곳에 퍼지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고,
그 해 10. 13일에는 7만 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3명의 어린 목동들에게 하늘로부터
3가지의 비밀이 전해진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린 목동들의 행동과
하늘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모든 장면을 숨죽인 채 지켜보게 된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가운데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커다란
빛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빛 덩어리(UFO)에 집중되자
그것은 떨어질 듯 요동치며 움직였다. 이 신비스러운 광경에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고 무릎을 꿇는가 하면 어떤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곳을 방문한 사람 중에는 특히 기적을 믿는 병자들이 많았는데,
그 날 그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병증에 차도를 느낀 듯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참작한 교황청은 오늘날 파티마 사건을 기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적 : 우리 시대에는 아직 탄생하지 않은 과학기술* 즉, 기적은 없다!)
한편, 이때 전해진 2개의 메시지는 이미 공개된바 있으나, 나머지 하나의
비밀은 비 공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파티마는 현재 순례지가 되었으며
대성당이 건립되었고 그 탑의 높이는 65m에 이른다. 한때 포르투갈 정부는
이곳에 대한 순례를 금지시키기 위해 파티마의 주인공들을 감금하기도 했으나,
1930년 레이리아 주교에 의해 파티마의 비밀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에게 전해진 메시지는 하진타와 마르토는 단명하고, 루치아는
장수한다고 말한다. 그 메시지는 그대로 적중되었다. 하진타와 마르토는
2년 후 독감으로 숨을 거두었고, 루치아 수녀는 1948년 수녀의 길을 선택한 후
지금까지 파티마 성당에서 일하고 있다. 파티마 제3의 비밀은 1944년 루치아 수녀가
교황에게 비밀이 담긴 편지를 전달하면서 의혹을 가중시켰다. 그 비밀 편지는
후임 교황에게만 인계되는 극비문서가 되었다. 오늘날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현재(2000년)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루치아 수녀 단 둘뿐이다.

<파티마 성당의 모습>

가. 교황의 선택
파티마 제3의 비밀! 그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1981년 납치범의 이상한 요구사항이 세계 여론의 이슈로 떠오르려 하자
교황은 참담한 심정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전 세계 언론이 납치범의 희한한
요구사항에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그 불길이 교황 자신에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밝혀야하는 두려움은 교황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런 공개요구에 당황한 교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 글의 후반부까지 읽는 독자라면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당시 교황의 선택은 3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루치아 수녀가 전한 파티마 제3의 비밀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다.
둘째, 제3의 비밀에 필적할 만한 거짓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앞으로 수 년 내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종말이 다가온다 등등.
셋째, 납치범의 요구사항을 잠재울만한 중대한 쇼를 벌이는 것이다.
교황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했을까?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를 밝히기 위해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우선 짚고 넘어가 보자.
나. 폴란드 사태
폴란드는 '79, '80년에 걸쳐 마이너스 성장 등 불안한 경제여건에 처해 있었다.
특히,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것은 지도층의 분열과 부패였다. 80년 7월 육류 가격인상은
노동자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 여파의 기폭제는 2개월 동안 1천만 명을 파업에
동참시키는 최악의 사태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연대노조의 불씨를 당긴
바웬사가 있었다. 파업 이후 정부의 유화책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악화 일로의
경제사정은 다시 전국 규모의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계엄령까지
선포됨으로써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 후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지도자·반체제 지식인 등
5,000여 명이 체포됨으로써 노조활동은 지하로 잠적하게 된다. 그러나 82년 5월과 8월
계엄령 하에서도 반정부 시위는 계속되었고, 주요 인사들의 망명사태가 속출했다.
78년, 교황으로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 바도비체 태생으로서 당시 폴란드
인권문제에 깊이 관여해 왔다. 바오로 2세는 낙태금지, 여성의 聖職임명 금지,
결혼식 성약의 영속성 주장, 피임금지 등등 구 시대적 주장 외에도 폴란드 출신으로서의
애국심까지 내세웠다. 그는 소련이 폴란드를 무력 침공한다면 자신은 즉시 모국
폴란드로 달려가 소련 탱크 앞에 엎드리겠노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구 소련은 폴란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최대 걸림돌인 교황의 경고에 대해 고민에 빠진다.
다. 마호멧 아그카의 출현
당시 상황은 이렇게 유추될 수 있다.
소련의 KGB는 교황청과 비교적 가까운 불가리아 정보국과 긴밀히 협조하여
교황을 제거하기 위한 모종의 음모를 모색한다. 그리고 그 대상자로 터키 출신
마호멧 아그카를 선택한다. 이는 추후 밝혀진 사실로서 마호멧 아그카가 당시
터키 민족행동당 NAP의 극우 테러 단체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는 불가리아 정보국의 지령을 받았던 것으로 언론에 추적된 데 근거한다.
교황을 저격한 이유에 대해 마호멧 아그카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소 제국주의자가 엘살바도르,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량 살육행위를
자행하고 있는데 항의, 교황을 죽이려 했다.'
마호멧 아그카는 터키 출신의 유명 언론인(아브디 이펙치)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었으나 탈옥하여, 이스탄불의 언론에 '교황을 살해하겠다, 감옥을 탈옥한
이유는 그를 살해하기 위함이었다.'는 경고장을 보내기도 했다. 1979년 11월 교황은
7억 카톨릭 교도와 1억 5천만 정교회의 재결합을 촉구하기 위해 터키에 간다.
그렇지만 터키는 회교국가로서 카톨릭의 접근은 일종의 공격 행위로 간주,
국민의 98%가 교황의 방문을 반대했다. 그러나 교황의 방문은 큰 말썽 없이
성사되었으며, 마호멧 아그카는 족적을 감추었다. 그러던 중 돌연
그가 81년 5월 13일 교황을 저격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서 의문점은 그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이스탄불에서 바티칸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배경과 그 경위이다. 당시 그에게는 발견즉시 총살하라는
경찰수뇌부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탈옥, 여권의 조작,
무기소지 등이 배후 없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폴란드 사태와 교황 그리고 마호멧 아그카와 KGB가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폴란드 사태에 관여하려는
소련의 무력행위에 제동을 건 교황과 별다른 이유 없이 그를 죽이고 싶어하는
마호멧 아그카의 출현은, 모종?의 정치적 계약관계를 성립시킨 것. 만일 교황의
암살문제에 대해 KGB가 직접 나설 경우 전 세계적인 비난의 목소리는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교황을 죽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나선 마호멧
아그카의 명분이라면, 그리고 그를 기용한다면 그런 우려 쯤은 말끔히
벗어 던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경찰청은 교황 암살정보를 입수하고 교황의 대외행사 참여를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은 제3의 비밀을 영원한 미궁으로 빠뜨릴
결심을 하고,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삼는 중대한 결정을 한다. 암살자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과감히 노출시킴으로써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교황은 피격 일주일전 81/5/6일 자신의 신변 경호를 위해 신규 채용된 20명의
근위대원들에게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미래를 위해 모든 각본을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던 셈인지도 모른다.


<81/5/14일자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부산일보>
81/5/13일 교황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 베드로 성당의 미사에 참여,
1만 5천명의 순례자들을 접견했고 암살자 마호멧 아그카(터키인)는 그 기회를 포착,
3m전방에서 교황에게 6발의 권총세례를 퍼부었다.
교황은 쓰려졌고, 전 세계 여론의 관심사는 교황의 암살기도 소식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편, 이 사건의 비중이 워낙 컸던 탓인지 비행기 납치범의 요구사항은 소리소문 없이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사라지고 만다. 전 세계 기독*카톨릭교인들을 감안할 때
교황의 저격사건이 세계적 빅 뉴스로 급부상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영향력이 비행기
납치범의 요구사항을 온데 간데 없이 덮어버린 것이다.
당시 프랑스 국내선 여객기 납치사건은 국내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은 듯하다.
필자가 1981년도 5월분 조선일보, 한국일보, 부산일보 등 마이크로 필름을
검색해 보았으나 관련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언론 검열이
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내용이 당시 일본
언론에는 비교적 크게 보도되었다고 한다. 교황 저격범의 배후 세력에 관해서도
국내 언론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불가리아 정보당국과 깊이
연루되어 있음이 일본에서는 보도된 바 있다.
어쨌든, 교황의 묘수는 적중했고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영원한
미스터리는 없는 법! 시대가 많이 흘렀고 정보와 이해력의 수준이 향상된 지금,
우리들은 거짓을 너무 쉽게 눈치채 버렸다.


여기에서 우주인들이 지구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우주인의 메시지(www.rael.org)'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주인의 메시지에 따르면 종말이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고 종교적 사명과 이의 붕괴에 관한 것임을 밝혀준다. 우주인 엘로힘
(하늘에서 온 사람들)의 메시지가 전해진지 27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과학의 혜택에
의해 신의 존재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 하나 둘 벗겨지고, 생명복제 및 창조행위가 가능해 지면서
인간과 신의 영역은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 지기 시작한 것.
바로 이런 시점에서 교황이 가장 섭섭했던 것은, 자신이 평생을 받쳐온 카톨릭의 몰락을
스스로 인정하고 또 이를 거둬드려야 될 입장에 처했다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의 교회가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는 것이 그에게 참을 수 없는 허탈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에 따라 뭔가 큰 결단의 시기가 되었음을 깨달은 교황은 2000. 5. 13일 한가지 대안을 낸다.
1981년 자신의 암살 미수사건을 파티마 제3의 비밀과 논리적으로 연관시키고 이를 대 내·외에
공개한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신의 반열에 이미 입성한 인간은 신과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고,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은 수 천년의 역사를 지배해 온 종교 교리들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은 왜! 마지막 진실까지 숨긴 채, 파티마 제3의 비밀을
'자신의 저격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과오를 선택했을까?
전 세계 인구의 반수 이상을 차지한다는 종교인들! 이들에게 어느 날 '신에 대한
모든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신을 믿지 말라!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하는 삶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다만, 다른 혹성에 살고 있는 고도 문명을 지향하는 우주인이 있을 뿐이다.'
라고 발표한다면, 종교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신에 의지한 삶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제거되는 순간, 그들은 극도의 허탈감을 감내해야 한다.
권력, 명예, 탐욕, 검은색의 자가용, 높은 탑의 붉은 십자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떠받들어 주던 수억 명의 무리까지- 특히 고위층 종교지도자들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황의 고민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는 최고 책임자로서 종교의 현실을 통감하고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빼들 수밖에 없었다.

제3의 비밀이 적힌 편지가 교황 앞에 개봉되었을 때, 이를 읽어 본 교황은 숨이
멎는 것 같은 일시적인 쇼크상태에 휩싸였다고 한다. 대체 무슨 내용이었기에 그가
뒤로 나자빠질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파티마 비밀에 대해 매우 주의 깊게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 전 세계 수많은 기독*카톨릭교인들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인의 메시지'라는 책에는 종교의 모든 근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모세,석가,
예수, 마호멧은 자신들이 보낸 메신저들이라고..., 필자와 같이 이런 의문에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우주인의 메시지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만일 '파티마 제3의 비밀'이
교황의 언급대로 종교와 명확히 관련된다면 '우주인의 메시지'는 종교의 현실과 미래를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 우주인의 메시지는 인류의 과학적 기원과 미래에 관한
창조자들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우주인의 메시지'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우주인 엘로힘에 의해 과학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책으로써, 지구보다 2만 5천년 앞선 우주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싣고 있다.


<파티마 제3의 비밀에 관해 언급하는 교황의 모습>
하지만 제3의 비밀이 과연 제3차 세계대전과 결부될 수 있을까?
전쟁과 공포와 관련된-즉, 인류 멸망에 대한 예언들은 수도 없이 많다.
만일 파티마 제3의 비밀이 인류의 멸망과 관련된다면, 그동안 수없이 제기된 종말론,
하늘에서 공포의 마왕이 출현한다거나 미국과 일본 영토의 침몰 등등 듣기에도
거북하고 식상한 예언들이 어느 정도는 적용될 법도 했다.
그러나 인류의 멸망과 관련된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세기말의 진상은 이미 밝혀진지 오래이기 때문. 그 진상은 '종말은 없다' 는 것으로 결론 났다.
교황청도 이런 점을 십분 이해한 듯 이번에는 한발 물러서 종말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을 골라, 제3의 비밀과 연관시켰다.
파티마 제3의 비밀을 푸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교황이 제3의 비밀이 적힌
편지를 보는 순간, 일시적인 쇼크 상태를 경험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교황은 요한 묵시록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요한 묵시록에나
등재될 법한 제3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을 미리 보았다고 한들 그가 그만한 충격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예견된 예언의 실현에 그토록 심한 충격을 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황이 접한 제3의 비밀은, 제3차 세계대전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파티마 제3의 비밀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식을 깨는 매우 흥미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 잠시 종교의 미래에 관해 살펴보자. 사람들은 점차 신에 의지한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다. 교황의 측근들은 간간히 '시련이 우리 앞에 닥친다. 기도하라' 등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곁에서 머물기를 종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교황청이 소유한 수많은 재산들, 전 세계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동산을 팔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들은 변명거리를 만들지 못한다. 교황은 최근 최 극빈국과
선진국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모두가 잘 살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제시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하기에 앞서 교황청은 모범을 보였어야 했다.
특히, 교황청 주변의 땅을 가난한 세입자들에게 선뜻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속시원한 답변을 제시해야 했다.
좋은 점만 부각되고 그 내면의 부패는 온실의 보호에 갇혀 있는
교황청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주인의 메시지 1,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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