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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부엌에서부터

  • 등록일
    2005/08/07 21:57
  • 수정일
    2005/08/07 21:57

 

 

나에겐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가끔은 새까만 33개의 해를 지나도록

배운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지나온 시절이 허망해진다.

남들이 보면,

그리고 내가 33해 동안 그렇게 생각해왔듯이,

하찮고 귀찮고 사소한 것들...

바로 '일상'이다.

 

그 목록들을 한번 적어보면

 

깨끗하게 빨래하기

자주 청소하기

밥 남기지 않고 음식 버리지 않기

김치 담그기

간장, 고추장, 된장 담그기

각종 밑반찬 만들기

화분가꾸기

 

적어놓고 보니,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저절로 나이가 되면 알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밥을 잘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매일 청소를 잘 하기 보다는 수학문제 하나를 더 푸는 것이

내 미래를 위해, 내 입신출세를 위해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각박한 경쟁의 시스템과 학교를 거치면서

내머리에 찬 것은 전혀 내 삶과 연결되지 않는 지식의 파편들과 허영,

엘리트 의식, 생활에 대한 멸시, 어머니에 대한 비하, 그리고

권위에 순응하는 방식이다.

 

내가 책을 파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김치 담그고, 도시락을 쌌다.

그래서 모더니티와 현대의 지식은 식민지 우리 어머니를

착취한 물적 토대위에서 병든 꽃처럼 피어나나 보다.

 

혁명은 부엌에서부터

혁명은 재생산에서부터

혁명은 어머니를 닮아가며

 

그렇게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삶과 재생산의 영역을 "사회화" (달리 말해, 계량화, 수량화, 시장 가치화)하는 것을

진보라고들 말한다. 부불노동이란 개념은 지불노동을 전제하는 개념인 것처럼,

숨겨졌던 노동을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사회적으로 노동의 가치가 인정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전세계 글로벌 경제의 스펙트럼에서

하나의 부불노동이 지불노동의로 전환되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부불 노동이 생겨난다.

빙산의 더 많은 부분이 물 위에 뜨면  더 많은 부분이 가라앉아야 한다.

 

이런 사회화의 방식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야 말로 혁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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