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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거리대와 갯벌의 여전사

  • 등록일
    2005/11/23 16:49
  • 수정일
    2005/11/23 16:49

지난 여름 부안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부안에 갔다.

방폐장을 반대하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시내를 꽉 매운

촛불시위의 인파로 들떠 있던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풍경이었다.

부안성당 안에서 영화제가 조용히 치뤄지는 가운데,

나는 피자매연대 친구들과 함께 대안달거리대를 홍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던 터라 달거리대를 만들며 수다를 떨다가,

몸이 뻐근해지면 옆 공터에서 그 좋다는 천연염색을 했다.

다라이에 황토와 숯 물을 퍼다 T셔츠를 치대고 또 치대기를 반복,

20분정도를 치대고 빨랫줄에 널어 햇빛에 바짝 말린다. 

다 마르면 또 다라이에 넣어 치대기를 반복했다.


천연염색과 피자매 홍보가 끝나고

부안영화제 준비팀의 짱돌씨를 따라 계화도엘 갔다.

주민들의 힘으로 방폐장 건설이 성공적으로 무산되었지만, 

새만금 반대는 눈물이 날 정도로 절박해진 상황이다.

"4공구를 터라!" "생명의 숨통을 터라!"

계화도는 새만금 반대 투쟁의 오랜 근거지이자,

이제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마지막 투쟁의 보루와 같았다.

 



계화도에서도 갯벌체험 학교 '그레'는

활동가들이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기 위해 모이는 집합소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레에 도착한 것은 저녁 어스름 무렵.

짱돌씨가 힘들게 만든 갯벌 영화제 무대를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갯벌로 인솔했다.

갯모기들이 사정없이 달려드는 가운데 바라본 바다,

물을 따라 수평선으로 달려 나가던 시선이 우뚝 선 무언가에 가로막힌다. 

갯벌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새만금 방조제.

그 위로 한 웅큼 달무리를 가득 머금은 노란 달이 떠 있다.

영화제 무대는 만조가 되어 밀려든 물속에

아름다운 누각이 되어 달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었다. 

무대로 가기위해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보드랍고 폭신한 뻘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자 보세요. 이 아름다운 갯벌이 곧 사라져 버릴거에요.” 하는 짱돌의 말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갯벌에서 그레로 돌아오니 사람들은 삶은 닭과 막걸리를 펼쳐놓고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 넉살 좋게 어울리지 못한 채,

구석에서 낮에 만들다 만 달거리대를 꺼내서 혼자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인 듯 얼굴이 검게 그을린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이게 뭐에요?"

면으로 만든 생리대라고 대답하자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아주머니는 생리대 뭘로 쓰세요?"

내 질문에 조금은 쑥스러운 듯,

"난 그냥 휴지로 대충 대. 우리 애는 그 뭐시냐, 사다가 쓰는거, 그거 쓰는데,

나는 기냥 휴지 한장이면 돼. 양두 얼마 없구."

"사다가 쓰는 일회용 생리대는 우리 몸에도 안 좋고 환경도 엄청 파괴한대요.

휴지도 좋지 않고요. 저랑 같이 이거 만들어서 써 보세요.

양도 별로 안 많으시다면 천으로 이렇게 만들어서 쓰는 게 좋아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귀찮아. 그냥 휴지로 써도 되는데...”하며 손을 저으신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려 하자 아주머니는 바쁜 듯 냉큼 부엌으로 내빼신다.

작업은 대략 실패한 듯,

새만금사업 반대를 하는 주민분이니 생태적인 면생리대 더욱 공감하리라는 나의 기대가

살짝 무너지는 순간.


다음날 영화제는 전날의 무대 앞에서 조촐한 마을 잔치처럼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무대에서 떨어진 갯바위 위에 삼삼오오 물새 떼처럼 앉았다.

스피커가 무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바람에

반주와 가수의 노래가 엇갈리고, 노래와 관객의 박수 소리가 엇갈리는

난장판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달빛 아래, 갯벌 위에, 유쾌하기만 했다.

바야흐로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다리던 영화 "갯벌의 여전사" 상영시간이 돌아왔다.

"갯벌"에 "여성"이 붙었다. 거기에서  "전사"라면 얼마나 래디컬하랴!

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껴안은 인도의 여성들의 운동,

다국적 기업들의 상업작물인 커피나무 사이사이에 온갖 곡식과 채소들을 심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자급 실천 투쟁.

그만큼 여기 계화도의 "갯벌의 여전사"도 내 입맛만큼 에코페미적이고 래디컬한 장면을

연출해주리라는 기대. 몇 시간을 버스를 타고 일부러 내려온 부안이 아니더냐!

내 관념을 치장하고 있는 온갖 "에코"들이 메아리치고 있는 가운데,

영화 속에서 낯익은 한 여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장면은 멀리 수평선과 섬들이 보이는 해창 갯벌 어디쯤일까?

갯바람 속에 한 여성이 생합을 캐기 위해 열심히 그레질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전날 밤 달거리대를 보며 뭐냐고 물어보던 그 아주머니가 아닌가!


그의 이름은 유 기 화.

평화로운 삶을 위해 갯벌로 들어와

생합을 잡으며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자랑으로 내보인 대안달거리대가 무색하리만큼

도시의 “대안” 그 너머에 갯벌과 이미 하나가 된 삶을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갯벌과 하나 된 삶을 지키기 위한 계화도의 주민들과 함께

도시인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가는 새만금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

찬 바람부는 청화대 앞에 일인시위를 하며 열심히 투쟁중이다.

그런 그에게 알량한 지식과 대안생리대를 들이대며,

그의 생태감수성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려 들었다.


마리아 미즈가 말했던가,

“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쟁과 착취의 구조 속에서

지역의 자치와 자립이란 자본주의의 개발체제와 대량생산소비체제에 대한 저항 없이는 불가능하고, 또 반대로 이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 가능해지려면

바로 “우리의 것을 우리가 길러 먹고사는” 서브시스턴스, 그 위에 선

자립과 자치가 토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레질하던 그녀의 모습 위에 오버랩 되는 그녀의 일인시위 기사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서브시스턴스와 저항이 하나 되는 것이라는 엄연하고 절박한 진실 앞에

숙연해진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대안생리대 운동이 과연 어디까지 근본적일 수 있을까?

어디까지 “래디컬”해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내려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비와 생산이 분리되고, 개인과 개인이 찢어져 있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대안생리대는 또 하나의 웰빙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대안생리대를 직접 내손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자급이고 자치인가?

그 재료인 면은 목화 한 송이 이 땅에서 생산되는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제초제와 농약을 필요로 하는 헐값의 유전자 조작 목화이기에,

이미 그 목화 자체가 환경파괴와 농민들의 자치적 삶의 파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또, 대안달거리대가 이 사회의 진정한 대안이 되려면,

재료 자체가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생산, 유통, 소비와 폐기, 모든 것을 포함해서

다 대안적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면화를 길러내는 손, 그것을 면으로 짜는 손,

그것을 달거리대로 만드는 손, 그것을 사용하는 손, 그것을 버리고 처리하는 손,

이 모든 손들의 관계, 다시 ‘사회관계’라고 하는 우리들의 모든 관계망들도

모두 대안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동안 대안달거리대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석연치 않은 마음의 실마리가

어느 정도 잡히는 듯하다.

모든 것이 물신화되고 상품화된 도시의 때를 버리지 못한 채 “대안”을 논하다 보니,

“대안”의 의미마저 물신화되고 관념화되어

시장의 교환가치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무엇쯤으로 여겼었나 보다.

육체와 삶은 상품과 소비의 홍수 속에 갈갈이 찢어지더라도

마음은 한 가닥 행복과 안정의 주술 속에 놓이고 싶은 나머지

이렇게 살아도 충분히 생태적일 수 있고 대안적이라며 속으로 거짓말 치고 있었나 보다.

어서 빨리 이놈의 정신분열에서 벗어야 한다.

그래서 천성산의 땅에 몸을 낮추어 뭇 생명들의 신음소리를 들은 지율스님처럼

그레질하는 갯벌의 여전사들처럼, 세 번 걷고 한번 땅에 귀 기울이는 삼배일보처럼

몸을 낮추어 땅과 가까워져야 한다.

그래야 환경과 생태의 의미가 분절된 지식이나 교환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닌

삶이자 저항 그 자체로 다가올 것이다.

유기화씨에게 달거리대를 가르쳐주기보다

내가 그녀로부터 그레질을 배우는 것이 옳다.


(흠... 쓰다 보니 좀 준엄한 어투의 글이 되고 말았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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