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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낭만주의의 한가지 배경

레싱, 칸트, 헤르더, 피히테는 모두 아주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었다. 헤겔, 셸링, 실러, 횔더린은 중하류층 출신이었다. 괴테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에게 맞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중략)

 

한편 당대의 프랑스인들, 모든 급진주의자들과 좌파, 전통과 교회, 군주 정치, 현 상태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반대 세력이었던 이들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모두 실로 매우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몽테스키외는 남작이었고, 콩도르세는 후작이었으며, 마블리는 성직자, 콩디야크도 성직자였고, 뷔퐁은 훗날 백작이 되었으며, 볼네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중략) 볼테르조차 한미하긴 했으나 신사 계급에서 태어났다. 오직 디드로와 루소만이 진정한 평민이었다. (중략) 살롱을 출입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긴 이들은 고도로 세련된 몸가짐과 훌륭한 교양을 갖추었고, 장엄한 산문체를 사용하며, 인생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당당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독일인들에게 거슬렸고 굴욕과 좌절을 느끼게 했다. 헤르더가 1770년대 초반에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는 이들 중 어느 누구와도 사귈 수 없었다. 헤르더에게는 그들 모두가 인위적이고 몹시 틀에 박혀 있으며,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한 데다 무미건조하고 활력 없는 살롱의 춤꾼들로 비쳤으며, 인간의 내면적인 삶을 전혀 모르며, 나쁜 사상이나 거짓된 원칙 때문에 지상에서 인간이 이루어야 할 참된 목적과 신으로부터 아낌없이 부여받은 참되고 귀중한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이로 인해 독일인들과 프랑스인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겼으니, 이 폭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들의 반항을 생각하기만 해도, 스스로 로마 교회와 프랑스 국왕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독일인들조차 욕지기와 혐오감, 굴욕과 열등감을 느꼈고, 이것은 독일인들과 프랑스인들 사이에 학자들이 추진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교류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깊은 틈을 만들었다. 아마도 이것이 독일이 프랑스에 반감을 품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며, 낭만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이사야 벌린, <낭만주의의 뿌리>, 강유원 나현영 옮김, 이제이북스, 2005, 한글판 66-68쪽.)

 

실상 칸트 철학의 위대한 스승들에 대한 하이데거의 적대, 특히 카시러에 대한 적대의 뿌리가 바로 아비투스간의 심층적인 적대에 있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명은 운동을 좋아하고 스키를 잘 타며, 에너지가 넘치면서 단호한 용모를 한 거무스름한 작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진지하게 제기한 문제에 혼신을 다해 몰두하는 끈질기고도 완고한 사람이었다. 다른 한 명은 외면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올림포스 신 같아 보이는 백발의 사람이었다. 관대한 마음씨와 해박한 관심, 차분한 용모와 편안한 표정, 생동감과 온화함, 마지막으로 귀족적인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G. Schneeberger) 카시러 부인 자신이 쓴 것도 인용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하이데거의 야릇한 모습에 대해 우리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하이데거가 사회적 관습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도, 신칸트학파 사람들, 특히 코헨을 적대시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중략) 문이 열리면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사람 하나가 거실로 들어선다. 성 안으로 떠밀려 들어온 작은 농부처럼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략) 오스트리아 남부 출신 혹은 바바리아 출신의 장인을 연상케 했다. 그 사람이 쓰는 방언은 이러한 인상을 굳혀 주었다. 그 사람은 유행이 지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렇게 덧붙인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치명적인 진지함과 유머의 결핍이었다.” (피에르 부르디외, <하이데거의 정치 존재론(나는 철학자다)>, 김문수 옮김, 이매진, 2005, 한글판 89-91쪽.)

 

영국에서 활동한 라트비아 출신 보수주의자 이사야 벌린과 프랑스 좌파의 좌파 피에르 부르디외가 각각 거론한 독일 낭만주의와 하이데거의 특징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어떤 필연적 연관성이 있을까?

2005/10/04 18:41 2005/10/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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