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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얼마전까지 사업자 단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놀라운 일이 드러난 이후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단순하게 분류하자면 대략 두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태생적 한계부터 따지는 것이고 두번째는 지도부의 대응 방식과 향후 민주노총 진로 문제를 따지는 시각이다.

 

첫번째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로는 어느 쪽도 운동의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김승호, 이 글을 꼽을 수 있다. 두번째 시각은 민주노총의 현 사태에 대한 비상시국 토론회 참가자 결의문에 집약되어 있다.

 

웬만하면 나는 이번 일을 거론하지 않으려고 했다.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듯 힘든 상황에 처한 많은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민주노총 조합원이긴 하되 제대로 투쟁 한번 해본적 없는 한가한 처지의 나 같은 사람은 조용히 있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승호라는 분의 글을 읽고는 참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꼈다. 인격 수양이 덜된 탓인지 더는 참지 못하겠다.

 

글의 내용은 제목에 잘 요약되어 있다. 비리로 궁지에 몰린 쪽이나 비판하는 쪽이나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또 민주노총은 출범 때부터 전노협의 전투적, 변혁적 운동 정신을 배반하고 관료적, 개량주의적 운동을 취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지금 좌파니 해방이니 하는 표현을 쓰는 정파나 활동가들도, 첫 단추를 잘못 낀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낡은 사고와 실천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일상적 삶과 활동에서부터 “자본가와 질적으로 다른 새 인간으로의 노동자의 자기변혁” 곧 인간해방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기 국면일수록 과격하거나 관념적이거나 회의적인 주장들이 난무하기 마련인데, 이 글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순혈주의' 낌새가 있지만 이건 그냥 넘어가더라도, 관념론적 과격성과 극단적인 환원주의, 게다가 대중의 잠재력에 대한 무시는 그냥 넘기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시작부터 개량주의적이었다고 하자. (나는 자세한 사정을 모른다.) 하지만 1996년, 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선 대투쟁이 개량주의적 투쟁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이 투쟁의 끝은 지도부의 개량주의 때문에 흐지부지 됐지만, 그것과 투쟁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없었다면, 이 투쟁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 없었다. 민주노총의 문제를 정파의 문제, 지도부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한, 이토록 쉽게 민주노총은 어쩔 수 없다고 결론짓는 건 비관주의를 넘어서 오만한 태도다. 민주노총 깃발 아래 벌어진 많은 투쟁들은 결코 개량주의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지도부의 개량주의다.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모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느 쪽도 운동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도, 정파를 이끄는 일부 운동가들만 눈에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중에 대한 무시 또는 무지, 관념성은 대안에서도 드러난다. “자본가와 질적으로 다른 새 인간으로의 노동자의 자기변혁”이라니... 최저 임금보다 10원 더 받는다는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모르긴 몰라도 매일 매일 자신들이 '자본자와 질적으로 다른 인간'임을 절감할 것이다. 어디 그들 뿐이랴. 그들이 원하는 건 '질적으로 다른 새 인간'이 아니라 '질적으로 같은 인간 대접'일 것이다. 글줄이나 읽었다는 놈이 어떻게 글자 그대로 저급하게 해석하느냐고 혀를 찰지 모르겠으나, 모르긴 몰라고 이 글이 그렇게 '해방'시켜주고 싶어하는 바로 그 노동자들은 훨씬 더 황당해할 것이다. 왜 그런 반응이 나오겠는가? 구호만 있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어떻게 자기변혁을 이룰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이 자기변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 최저 임금보다 10원 더 받는 사람들, 아니 최저 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일상적 삶과 활동에서부터” 무엇을 해야 이 자기변혁이 관철되는가?

 

진짜 문제는 “잘난 노동운동가들”이 바로 이런 구체적인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는 정파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민주노총이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그래서 문제는 운동가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 속에 매몰되어 다툼이나 벌이는 데 있지, 민주노총이 애초 한계가 분명했다는 데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운동가들이 있었다면 민주노총의 태생적 한계는 벌써 극복되었을 것이다. 약간의 희망만 있어도 대중은 들고 일어날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더 버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2005/10/17 19:23 2005/10/1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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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트랙 팩 17 : 민주노조운동 어디로가나 먼 댓글 보내온 곳 2005/10/17 19:31

    (트랙팩에 참여도가 너무 떨어져서 제가 수동으로 관련글을 찾아서 반대로 트랙백을 보내봅니다. 트랙백해주세요) 지난 10월 7일 강승규 민주노총수석부위원장이 금품수수혐의로 긴급체포된데

  2. Subject: 동감합니다. 먼 댓글 보내온 곳 2005/10/18 02:46

    marishin님의 [민주노총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에 관련된 글. "약간의 희망만 있어도 대중은 들고 일어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제외하고는 marishin님의 글에 대부분 동의한다. 저 문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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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