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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지젝의 엉터리 글쓰기를 혼내주다

이 글의 핵심은 “읽고 쓰기”로 분류했다는 점에 있다. (세상을) 어떻게 읽고,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보자는 차원에서 썼다는 뜻이다.

 

촘스키와 지젝이 설전을 벌였다는 얘기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시발로 해서 회자되고 있다. 유명한 사람 둘이 논쟁을 벌였으니 대단히 심오한 논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핵심은 남의 글을 제대로 읽고, 근거를 갖고 비판하거나 논평하자는, 어찌보면 교과서적인 얘기다. 두 사람은 “사실”을 어떻게 보는지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이 점은 2002년에 지젝이 어떤 인터뷰에서 촘스키를 거론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언론 비판에 얽힌 두가지 태도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지젝은 정확한 사실, 구체적인 내용을 철저히 파헤지는 걸 강조하는 촘스키 같은 사람들에 대해 어리석은 비판을 한다. “촘스키가 미 중앙정보국의 니카라과 개입을 분석한 책을 봅시다. 많은 세부 사항들을 알려주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운 게 있나요? 극적으로 새로운 걸 얻은 게 없습니다.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진정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된 인터뷰 원문

 

...

 

나는 이것만큼 멍청한 생각이 없다고 본다. 진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 그리고 이 사실에서 출발하는 진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언론을 논할 때라면 더욱 그렇다. 미합중국 언론이 이라크 침공을 위해 온갖 거짓말을 퍼뜨린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정부의 나팔수 구실을 한 사실은 철저하고 세세하게 까발리고 분석해야 한다. 이 작업이 첫번째 작업이고 이것이 없이는 그 어떤 '언론 비판'도 유식한 인물들의 냉소적인 자기만족에 그치게 된다.

 

지젝 같은 얼치기 '대중 스타'가 절대로 촘스키를 따라갈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사실'의 힘이다. 촘스키의 현실 비판을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실에 대한 해박함이다. 역사적인 사실부터 현대의 구체적인 국제 분쟁 관련 사실까지 그는 철저히 챙기고 그걸 근거로 삼아 비판하는 인물이다.

 

이것이 중요한 배경이다.

 

사실 촘스키가 이번에 지젝을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실망스럽다.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인데, 아무튼 시작하면 대충 넘어가는 사람은 아니다. 이 할아버지 무서운 사람이다.^^

 

이번 논란은 촘스키의 말로 시작됐다. 그가 2012년의 어떤 인터뷰에서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지젝 같은 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듣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데리다나 라캉에 대한 촘스키의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던 것인데, 이번엔 지젝까지 거론했다. 이론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증하고 말 것도 없는 헛소리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그 이후 진행에 대해서는 어제 트위터에 떠돌아다닌 어떤 글로 대체한다.

 

1. 지젝 왈: 크메르 루즈의 학살 눈감아놓고 사실 검증 운운해? 촘스키 왈: 여전히 넌 팩트를 못챙겨. 우린 동시에 벌어진 크메르 루즈와 동티모르 학살을 상세히 비교해 논하면서 미국의 위선 깐거야! 영어 원문 보기

 

2. 촘스키 왈: 지젝이 팩트 못챙기는 사례? 베를루스코니의 인종차별 발언을 내가 했다고 쓰자 누가 “어디 나와요?”라고 물으니 지젝 왈 “슬로베니아의 어떤 잡지요.” 누가 또 묻자 “촘스키와 얘기 끝났어.” 그런데 내가 언제 너와 얘기했니? 영어 원문 보기

 

3. 촘스키 왈: 지젝이 팩트 못챙기는 사례2. 지젝이 떠들길 “촘스키는 이데올로기 비판 필요없다고 주장해요.” 내가 몇십년동안 한 게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영어 원문 보기(바로 위의 글과 같은 글)

 

4. 촘스키의 가장 최근 비판에 대한 지젝의 답: 인종차별 발언은 이미 사과했고, 크메르루즈에 대해서는 촘스키에 공감하는 바 있고, 촘스키의 작업은 존중하지만, 견해 차이도 있고...(뒷부분은 장황해서 요약 불능) 영어 원문 보기

 

5. 요약 불가능하다는 뒷부분은 결국 대륙계 철학과 경험론적 영미 철학 차이로 가는 얘기. '우리가 심하게 다툴 정도로 이념적 차이가 큰 건 아닌데, 문제는 결국 촘스키가 대륙 철학 싫어하기 때문 아닌가?' 정도로 요약 가능할 듯. 영어 원문 보기(바로 위의 글과 같은 글)

 

근거를 가지고 따지자는 주장에 대해 경험론 대 합리론으로 대응하는 건 내가 보기엔 잔꾀에 불과하다. 경험론만 근거를 따지는 게 아니다. 사실을 따지고 근거를 검증하는 건 인류가 애써 발전시킨, 최상의 인식 방식일 뿐이다. (근거와 검증이라는 게 꼭 숫자와 통계, 실험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사실 촘스키는 경험론자라고 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촘스키의 언어학은 경험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언어학 관점이 고스란히 사회비판에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둘이 완전히 나뉠 수 있겠는가? 내가 보기에 그는 명쾌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합리주의자 또는 계몽주의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번 논쟁(?)과 관련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사실을 엄밀히 따지고 근거를 철저히 검증한 뒤 책임감 있게 주장하는 태도를 촘스키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다. 물론 촘스키도 완벽하지 않고 실수를 하지만, 태도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한국에서라면 강준만 교수가 이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하는 학자가 아닐까 싶다.)

 

2013/07/30 11:27 2013/07/30 11:27
2 댓글
  1. 유치찬란 2013/09/25 21:09

    라캉에 대한 지젝의 신념과 촘스키의 라캉비판을 생각하면 그냥 "님 땜에 라캉 언어학이 죽었어." 하면서 지젝이 땡깡부리는 느낌도 좀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저는 공대쪽이긴 하지만 공대에서도 남이 지기 쪽 연구를 먼저 선행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잘'나오면 내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거 베꼈다는둥 데이터를 조작했을거라는 둥 하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학자를 전방위로 "그 사람의 윤리적 성격적 부분까지" 까는 경우가 의외로 비일비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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