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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왕자병 환자?

누군가 노동운동을 왕자병에 비유한 글을 썼다고 해서, '한 건 했군. 장사되겠네.' 하고 말았다. 이 글 보다는 1면 머리기사로 이 글을 소개한 어떤 일간지에 더 관심이 갔다. 정신없는 신문 같으니라고...

 

한가지 언짢은 것은, 이 글을 실었다는 매체가 당대비평이라는 점이었다. 파시즘 운운하는 게 별로 내키지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잡지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이런 글을 실었나 싶었다. 박승옥이라는 사람은 내가 잘 모르기에 별 감정도 없다.

 

그런데 이 글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었다. 프레시안이 이 글의 전문을 싣고, 민주노동당 황광우씨가 프레시안에 반론을 쓰고, 이에 대해 어떤 분이 재반론을 썼다. 여기에 그친 게 아니라, 피플타임즈를 중심으로 갖가지 글들이 나오고 있다. 이 정도 글이 왜 이리 논란거리가 되는지 이해가 안된다.

 

프레시안이 요약한 내용을 보면(전문은 대강 훑어보고 말았을 뿐이다. 꼼꼼히 읽을 가치가 없기에.) 노동운동내 일부 진영에서 꾸준히 주장하던 내용을 되풀이 했을 뿐이다. 생태운동이라는 참신한 조미료를 얹어서...

 

주장은 대강 이렇다.

1. 노조 조직률이 12%도 안된다. 10명 가운데 1명의 노동자만 노조에 가입해 있다.

2. 노조운동은 '또 다른 가진 자들의 운동'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이 넘쳐 나는데, 대기업 정규직들이 뭉쳐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

3. 애써 임금을 올리지만, 물가 상승과 집값 상승, 사교육비 등으로 곧바로 빼앗기고 있다. 어리석게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4. 끝없이 반복되는 전투로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5. 성장 모델을 폐기하고 생태적 대안을 모색하라.

6. 이주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는 풀뿌리 노동운동, 녹색운동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7.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시민운동을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폭력행동도 중단해야 한다.

 

새로울 게 전혀 없는 상황 분석이고, 대안조차도 너무 뻔하다. 시민과 함께 하는 비폭력, 풀뿌리 녹색운동, 말은 그럴듯하다.

 

왜곡에 가까워 보이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게 노조 조직률이다. 10명 가운데 한명이라고 표현하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이는 수사일 뿐이다. 그는 남한의 노조 조직률이 최고였던 1989년에도 19.8%였다는 건 말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노조운동이 거의 없던 1985년 조직률이 '자그마치' 16.9%에 달했다. 노동법 총파업 전후의 조직율이 95년 13.8%, 97년 12.2%에 불과했고 97년 이후 지금까지 조직률이 약간씩 줄고 있지만 큰 변화가 없다. 물론 조직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걸 부인하는 게 아니다. 대단한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라는 거다. 진짜 문제는 조직률에 있는 게 아니다.

 

노동부가 집계한 노조조직률 변화 추이표

 

연도
조직률(%)
1985
16.9
1987
18.5
1989
19.8
1991
17.2
1993
15.6
1995
13.8
1997
12.2
1998
12.6
2000
12.0
2001
12.0
2002
11.6

 

또 하나의 기득권층이 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나 투쟁 일변도로 나가니 지지를 못 얻는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 너무나 악의적이다. 자본가들의 노조 죽이기와 도대체 뭐가 다른 말인가? 비정규직의 심각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호강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노조가 과거보다 사회적 지지를 못 얻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원인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지금 노동운동의 어려움은, 정부와 자본의 노조 고립전략, 노동자 분할 전략(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이질감 조성, 비정규직을 핑계로 한 정규직의 복지, 임금 삭감 전략 등) 등이 복잡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노조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대안이라는 것으로 가면 더욱 기가 차다. 오랜 전통의 '전투적 노조운동'을 완전히 포기하고 생태운동, 시민운동 단체로 탈바꿈하라는 식의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공허하기만 하다. 노동운동이 뚜렷한 대책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니, 이런 글이 대단한 것인양 취급받는다. 이 점이 가장 답답하다. 과연 우리의 대안은 뭘까? 밑의 관련 글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관련 글들:

1. 박승옥의 '한국 노동운동, 종말인가 재생인가'

2. 황광우의 반론

3. 하이에나새끼의 반론

4. 데이모스의 '노동운동의 두가지 길'

5. 피플타임즈의 관련 게시판

2004/09/08 18:20 2004/09/08 18:20
댓글1 댓글
  1. 당대비평이라 2004/09/09 17:47

    우리 안의 파시즘 어쩌고 저쩌고 할 때부터 싹수가 노랗더니...
    당대출판사와 삼인을 거쳐 돈 많은 생각의 나무로 옮겨갔으니 앞으로 더욱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글들을 쏟아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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