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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제도, 국가가 나서야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

개인회생제도, 국가가 나서야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이영순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쩐의 전쟁’은 보통사람들이 사채업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빚더미를 떠안게 되는지, 또 한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줘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또한 책 ‘단 하루라도 빚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빚과 함께 고통받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빚을 지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 하였다. 이 책은 채무자들이 원래 무모한 낭비자나 빚을 떼먹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신용불량자 400만시대라 하지만 아직 정부의 입장이나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채무불이행자=도덕적 해이자’로 몰아가고 있어 드라마나 책에서 보여주는 금융피해자로서의 채무자 이미지는 반짝 효과를 낼 뿐이다.

신용회복위원회 접수된 신청자통계를 보면 월수익 15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이 전체의 82.1%를 차지, 3000만원이상 고액부채건도 56.9%, 5000만원초과도 26.4%이다. 
신용회복위원회 자료(2006.6)에 의하면  평균적인 채무불이행자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원이하, 부채는 2393만원을 지닌 30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곧 소득이 없는 사람들 대다수가 채무조정을 신청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감안하면, 연체의 늪에 빠진 사람들 중에서 적어도 50%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실망실업자로서 대부분 생계형 부채에 허덕이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이들 사회적 취약계층들의 채무변제 능력은 미약하거나 거의 전무하며,  따라서 이들 대다수는 개인회생제도나 또는 민간금융기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만으로는 경제적-사회적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조사·발표한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제도의 기능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석에 의하면 개인회생제를 이용한 채무자 중 70%가 적자가계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개인파산 신청자의 가계 역시 흑자 전환하거나 적자폭이 줄었다.

법원의 개인파산·회생제가 이용건수의 폭증과 더불어 과중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위해 혁혁한 기여를 하는 셈이다. 사회적으로도 과중채무자들이 공적 채무조정제를 이용해 빚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건전한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날 수 있게 됐다.

재정경제부는 그동안 수차례 과중채무자 관련 대책을 발표하면서, 채권 금융기관의 배드뱅크와 신용회복위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데만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신용대란 사태와 무관한 법원이 개인회생제와 개인파산제를 운영해 채무자의 빚을 적극 탕감하고 있지만, 정부는 법원의 공적 채무조정제도를 외면하는 데 급급했다. 정부의 이같은 소극적인 태도는 나머지 과중채무자의 신속한 재기를 가로막은 것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신용불량자 사태의 핵심 주범인 정부가 금융기관 연합체인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의 권한을 맡기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부실한 카드 부양정책의 책임을 모면하는 대신 신용회복위원회의 영업행위를 채무조정 프로그램인양 왜곡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정부의 태도에 따라 대다수 신용불량자들은 법원의 개인파산·회생제도를 모른 채 개인워크아웃제 등 금융권의 일방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정부 대책인양 오인하며 가혹한 변제요건을 강요당하게 된다.

특히 총 채무가 5억원인 신용불량자가 신용회복위원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지급불능 상황에서 도리어 8년 동안 월 600만원~700만원을 내야 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정상적인 신용을 가진 일반 봉급생활자에게도 가혹한 조건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면책을 받아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며 ‘개인파산 무용론’을 외치거나, 변호사를 수임해야 면책 이후에 채권추심을 받지 않는다는 등의 오해로 개인파산의 효과에 회의를 품는 여론이 일고 있기도 하다.

면책을 받았음에도 금융기관 이용이 사실상 봉쇄, 가족까지 대출제한까지 당하고 있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서 개인회생, 파산신청자는 효과를 의심받으며, 전체 400만으로 추정되는 채무자의 일부만 참여하여 활성화되지 못한 실정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대한민국 법원이 운영하는 개인파산·회생제 이용자를 ‘도덕적 해이자’로 매도하지 말고, 제도 홍보와 실무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개인워크아웃제 등 민간 채권기관의 제도 홍보에 급급하거나, 대부업체 선전에 앞장서는 금융당국의 행태는 속히 바뀌어야 한다.

무절제한 낭비나 도덕적 해이와 무관한 대다수 사회적 취약계층들의 채무변제와 회생을 위해서는 금융피해자로 인정하고 그에 맞게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할 것이다.

현재 대법원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모․부자복지법에 의한 모자가정 및 부자가정 △70세 이상인 자 등 저소득층 서민이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 신청을 할 경우 변호사 비용을 법원이 부담해 주는 '개인파산·회생 소송구조 지정 변호사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으나 대다수 채무자들이 파산상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정된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 대상자의 확대와 송달료․예납금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 외에 정부주도의 개인파산, 회생제도의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개인파산제, 개인회생제 등 법원 중심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활성화·간소화하고 실무 지원기구를 마련 ▶ 파산선고 등에 따른 신분상의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한 파산자 경제활동제한 조항 삭제 79개 직종 관련 개정법안 통과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소외된 서민들을 위해 사회연대은행 등 서민금융기관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 마련에 앞장설 것 ▶미성년자·저소득층 등 정부와 채권기관의 명백한 귀책사유로 카드를 발급받은 뒤 채무상환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해 연체채권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특별법을 제정 ▶법률구조공단을 통한 법률적 지원확대 등 제도적 조치가 시급히 추가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앞장서서 ‘채무불이행자=도덕적 해이자’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금융피해자로서 개인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할 대상임과 이에 따른 제도적 보완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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