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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

 

 

 

 

 

 

  ‘전력보다는 능력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경제)만 잘 잡으면 그만’
  ‘경쟁과 실용, 능력의 강조’
  ‘과거를 묻지 마세요. ‘올드 보이들의 귀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묻지마 과거’ 인사가 연일 화제다. ‘묻지마 과거’는 인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는 지난 1월 4일, 과거사 관련 14개의 위원회를 대폭적으로 손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그 대상이다. 인수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의 발표 직후 한 정당의 대변인은 “과거사 위원회가 자기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차기 정부가 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랐는데 역시 이명박 당선자는 역사에 있어서도 ‘과거는 묻지 마세요’인 것 같다”며 한탄했다. 현재 인수위 결정에 따라 과거사 관련 9개 위원회 통폐합(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과거불문’을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이명박 당선자의 이 지향을 대세로 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이다. 과연 이 책은 어리석을까?

 

“이 책은 새로운 정부의 대통령과 과거사 청산운동 주체들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과거사 청산운동 주체들 내부의 갈등을 예상하면서 썼다. …… 많은 사람들이 국가 중심의 과거사 정리정책이 집행되고 있는 상황에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저자를 나무라곤 했지만, 이제는 과거사 청산운동의 쓰디쓴 약을 제조해서 아픈 곳은 치료하고 과거사 청산을 통한 미래사회의 새로운 청사진을 함께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 <책머리에> 가운데

 

저자는 2001년부터 과거사 청산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만 7년만의 그 고민의 편린을 정리하게 됐다. 그동안 변방에서 홀로 울부짖는 외로움을 희생자들의 정신에 의지해 견뎌왔던 저자는 국가중심의 과거사 정리정책 및 희생자들의 신원伸寃에만 머물렀던 한계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잣대로 재단했던 ‘청산’의 질곡을 넘어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 과거사 청산운동을 국가가 알아서 수행하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몫, 과제로 삼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과거사 청산운동을 직접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있는 수많은 단체들, 과거사 청산운동을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역시 희생자들의 문제를 그저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고통받고 있는 희생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방관의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발등에 폭력이 떨어졌을 때는 이미 그러한 폭력에 대처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 본문 238쪽

 

저자는 한국에서 과거사 정리정책이 국가 주도로 진행되면서,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함께 수립ㆍ복원되거나 좌절ㆍ소멸되는 ‘전리품’의 성격”을 띠어왔다고 평가하며, 과거사 청산이 “권력의 차별화된 정통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왔음을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자ㆍ민중들에 대한 또 다른 국가 폭력으로 미래에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거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노동자ㆍ민중들에 대한 과거의 국가 폭력을 정리하려 하면서도, 현재의 국가권력은 노동자ㆍ민중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사 속의 과거사를 만들어 냈던 국가권력과 미래의 과거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국가권력의 속성과 성격은 유사하다. …… 국가 중심의 과거사 정리 정책이 드러내는 역사적 현실이다.”

 

《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는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 민주화의 한 과제로 추진되어 온 과거사 정리정책이 한계를, 이제 ‘민주화’라는 관점을 넘어 ‘사회화’의 관점에서 극복해 나갈 것을 주장한다. 과거사 청산 기구가 국가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고, 과거사 청산 활동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통제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과거사에 대한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열사’를 ‘사회적 희생자’라는 개념으로 재규정하고, 국가 범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 그리고 보상 중심의 명예회복운동을 벗어나 ‘사회적 희생자’들의 정신과 이념을 현실의 운동 역량으로 전화시켜 나가는 것이 과거사 청산을 ‘사회화’의 단계로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라 본다. 

 

총 4부로 구성된 《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는 일관되게 과거사 청산운동이 사회운동의 주요한 과제여만 하는 점, 그 사회운동의 주체인 사회구성원들의 과제로 삼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1부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왜 해야 하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누가 하는지의 의문을 풀어낸다. 2부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의 과거사 정리정책ㆍ청산운동을 역사적으로 평가한다. 3부에서는 과거사 청산이 민주화의 단계를 넘어 사회화로 진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과 방향 등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4부에서는 세계적으로 존재했던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서의 과거사 청산운동과 국가 중심의 과거사 정리정책과 유형과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그나마 국가 중심으로라도 진행해 온 한국의 과거사 정리정책조차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해체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세계 각 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과거사 정리가 역사에 대한 망각 정책이 아닌 새로운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회운동이 되기 위한 저자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과거사 청산을 신원伸寃에 머무르게 하지 말자.
살아 있는 사람의 잣대로 희생자를 재단하지 말자.
희생자가 진정 원했던 것을 왜곡하지 말자.
이제는 희생자의 정신을 헤아리자.
이제는 희생자의 명예가 무엇인지를 헤아리자.
이제는 과거사 정리를 넘어 새로운 과거사 청산을 시작하자.

기나긴 여정의 고민과 그 흔적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내면서도 ‘또 다른 과거사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는 저자의 모습에 ‘어리석음’은 전혀 없어 보인다.

 

 

* 《과거사 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 김영수 지음, 244쪽,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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