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좋은 이별

 

김형경의 애도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을 읽으면서

여전히 난 애도 기간 중임을 깨닫는다.

또 지난 1년, 열심히 애도 작업을 했던 만큼

조금 더 성숙했다는 것도.

 

2007년 수배생활을 할 때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고

왜 내가 그동안 그토록 어두웠었는지

그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압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지,

그래서 만성적인 우울증 상태였다는 것도...

그 억압의 에너지가 바닥나서

가면이 벗겨진 나의 모습을 하루에도 몇번씩 마주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난

내 내면의 목소리, 꽁꽁 숨겨놓았던 나의 진짜 욕구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후에 김형경의 소설과 에세이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었다.

누가 나한테 '내 인생의 책'을 몇 권 고르라고 한다면

김형경의 책이 한 권은 꼭 들어갈 것 같다.

 

 

P.19

'애도'는 슬픔의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애도 작업'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뿐 아니라 슬픔과 관련된 감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틀어 이른다.

 

P.28

이별 후에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 당사자에게 필요하고 정당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

사람마다 애도 반응이 다른 것은 그의 내면에 이미 이별에 대응하는 저마다 다른 정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러나 애도하지 못한 이별의 경험이 내면에 들어있는 사람은 새롭게 만나는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한다. 당면한 이별이 묵은 상실의 감정들을 솟구쳐 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

이별할 때면,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모든 감정이 일시에 솟구쳐 오른다. 평소와는 다른, 어둡고 혼란스러운 내면으로 들어가 저 위에 열거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자기 모습과 만나게 된다. 바로 그것을 마주 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이별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P.33

애도 과정은 다섯 가지나 열 가지 감정을 차례로 경험하고 넘어가는 일회성 과정이 아니며, 각 감정의 단계들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

오히려 애도란 '도식화할 수 없는 감정 모음, 혼란스러운 감정 덩어리'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애도 작업은 나아갔다가 되돌아오고, 막다른 곳에 도달해 우회하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여러 감정들이 나선 계단처럼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그리하여 나선 계단을 오르듯 어느새 빛이 들어오는 출구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이다.

 

P.36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는 지금 이곳에서 불편을 겪는 문제의 원인을 내면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어 해석해주고, 상처입은 곳으로 돌아가 그때 충분히 슬퍼하며 울지 못한 울음을 다시 우는 작업이다. ... 생을 그르치게 하는 문제와 맞닥뜨릴 때 그 문제의 핵심에는 늘 제대로 해결하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한 과거의 상처가 존재한다. ...

현재 느끼는 상실감 속에 섞여 있는 과거의 상실감을 알아차리고, 현재의 애도 작업을 잘 진행함으로써 그 결과 생애 초기의 묵은 상실감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하면 애도 작업이 궁극적으로 정신적 성장과 발달의 도구가 된다.

 

P.43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가 목표로 하는 지점은 내면에 의존하고 있는 부모 이미지를 떠나보내고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개인으로 서는 것이다.

 

P.45

애도작업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상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혼자 힘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감과 자율성이 강화된다. 그리하여 애도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결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새로운 자기, 새로운 비전, 새로운 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P.66

상실을 부정하면서 떠나보내지 못한 것들은 마음의 지하 창고에서 악취를 풍기며 지금 이곳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P.67

우리 사회는 슬픔을 드러내거나 자기 연민을 보이면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우리가 점점 공격적이 되어가고 있음을 이해한다. 자기 연민을 느껴본 사람만이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P.77

분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화가 날 때는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린다.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 그것이 격노로 폭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틀워쥐는 효과가 있다. 또한 분노가 더 복잡한 감정들의 모음임을 알아차린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손상된 자기애, 무력감과 죄의식, 그런 것들을 세밀히 나누어 느껴본다.

 

 

P.85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뿐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 결핍되었을 때, 사랑을 기대한 사람으로부터 폭력이나 학대를 당했을 때도 애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P.87

내면의 부분 상실임을 이해하기

이별이든 사별이든 한 사람을 잃는 일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잃는 일은 아니다. 특정 대상과 맺고 있던 관계를 잃는 일이며, 그 관계에 투자하던 내면의 일부분을 잃는 일이다. 상실감 이외에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의 존엄성, 용기, 지혜, 공감 능력 등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건강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갈 것임을 믿는다.

 

상실의 목록 적어보기

... 삶이 상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P.98

그리움과 함께 살아가기

... 그리움과 함께 밥 먹고, 그리움 곁에 누워 잠들고, 그리움을 업고 산책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혼돈스러운 순간이 온다. 그 시점에서 더 오래된 사랑의 대상, 생애 초기의 대상까지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P.107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이별이나 상실 앞에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묻지 않는다. 사건의 내막이나 헤어진 이유를 낱낱이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픈 마음을 다스리며 현실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일다.

 

P.184

상실의 경험이 자주 섭식 장애로 표현되는 이유는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이 먹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기 때 우리는 젖을 주고 안아주는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우리의 내면에는 사랑은 먹는 것이라는 무의식적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P.187

표현할 언어가 있어도 상실에 따른 감정을 표현할 만큼 안전하다고 믿지 못하는 이들도 상실의 고통을 몸의 증상으로 체험한다.

 

P.199

우울증은 억압하거나 회피해온 슬픔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수용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외면해두었던 고통을 받아들여 정서의 일부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외면해둔 고통 속에는 내면의 분노, 불안, 시기, 질투 등 인정할 수 없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어려움도 포함된다.

 

P.217

내면을 표현할 때마다 학생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우리가 내면에 쌓아둔 경험들이 대체로 슬픔이나 분노 같은,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내면에 깃든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P.218

자기표현은 고통, 슬픔, 상실, 외로움 등의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하고 소화시키는 방법이다.

 

P.251

안다고 느끼는 것이 또 하나의 교만일지 모르겠지만, 심리 내면의 그런 미세한 차이들을 구분하여 감지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내면의 평온이 흔들리지 않을 때 내가 괜찮아졌다고 느낀다.

 

P.253

이별이 삶의 일부분임을 기억하기

이별은 평생 지속되는 삶의 한 요소이며 사는 동안 반복되는 일임을 받아들인다. 이별이나 죽음을 파괴자, 침입자, 도둑처럼 느끼는 시간들에서 벗어난다.  ...삶이란 흘러가는 순간을 단호히 놓아주는 과정임을 마음에 새긴다.

 

P.258

아버지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 왜곡된 환상을 벗어내면서 아버지의 참모습을 자신의 내면으로 통합해나간다. 그 결과 자기 자신도 똑바로 보는 눈을 갖게 된다.

그가 아버지의 존재와 추억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함께 수용하는 것은 애도 반응으로서 경험하는 슬픔, 죄스러움, 절망감이다. 동시에 모든 유년기의 서운함과 분노, 생에서 만난 실패의 경험들을 자기 안으로 받아 안는다. 그것들을 회피해온 비겁한 자신도 인격의 일부로 받아 안는다.

 

P.261

성장이란 내면이 극단적이지 않은 상태, 새로운 균형 감각이 생겨난 상태를 의미한다. 성장은 삶의 소명을 개척하는 일을 의미한다. 성장은 우리의 잠재력을 더 잘 활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성장을 통해 우리 내면은 관대하고, 강하고, 아름다워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