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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6/25
    지난 3개월(1)
    나랑
  2. 2011/06/25
    밤하늘의 별이 반짝,(2)
    나랑
  3. 2011/06/12
    김빠진 인생
    나랑
  4. 2011/06/12
    꿈에(1)
    나랑

지난 3개월

상반기 평가회의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지난 3개월간의 다이어리를 넘겨 보았다.

 

열림터 야간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열심히 싸돌아다니며 빡센 일정을 소화해 냈고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았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만났고

다이어리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깨알같은 고민들을 적어 넣었었다.

 

그것들을 넘겨보며

하나도 뿌듯하지 않았다.

 

그건 열정과 신명이 아니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상실을 살아내기 위해

 

삶의 밑바닥, 허무를 보아버린

한 인간의

그저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구차하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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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이 반짝,

그거 아니?

 

더이상 사랑이 아닌

달리 무어라 이름붙이지도 못한

해묵은 감정으로 스스로를 할퀴던 내게

 

"언제 끝나?" 웃으며 네가 물었던 순간

 

꽃봉오리에 갇힌 벌처럼

내 안에 갇혀 윙윙 대던 낮들과

 

어느 포구, 세찬 바닷바람에 덜컹대는 민박집 창문처럼

애끓던 밤들이

 

달이 되어 가볍게 우리의 머리위로

떠올랐던 거.

 

달과 함께

둥실 내 마음도 떠오르며

조금 가벼워진 거.

 

우리는 달을 보며 함께 걸었다.

 

너의 어깨에 내 어깨가 부딪치지 않아도

더 서럽지 않았다.

 

그 길

너와 나 사이에 놓여있던 것은

보름달처럼 동그란 정겨움 맞지, 그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주섬주섬 나를 챙기며

달과 함께 잠시 휘청였지만

 

뒤돌아 보지 않았다.

 

너의 익살에 까르르 숨 넘어가던,

자주 서럽고 자주 기뻤던 날들과

 

그보다 더 오래,

자주 원망하고 자주 아파했던 날들을

 

힘껏 던져

밤하늘에 별을 박았다.

 

너의 심연에 가 닿지 못한

나의 패배를 인정한다.

 

이제

너와 나의 미래는 기약이 없고

우리는 미지의 지평 속으로 걸어들어갈 때

 

저 멀리

밤하늘의 별이 반짝,

찰나의 빛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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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빠진 인생

10년 만난 애인의 주검을 보고 온 너는

애인의 얼굴이 평온해보였다고, 다행이라고 했다.

 

다음 날 너는

입관할 때 다시 본 애인의 얼굴은

아니라고,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했다.

 

장례식장 계단에 우리는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나는 또 너마저 가버릴까봐

불쌍한 놈, 불쌍한 놈 한없이 등짝을 쓰다듬었지만

 

저승사자의 두루마기 자락에 잡아먹힐 것만 같아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아있고 싶어

몰래 장례식장을 빠져나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정처없이 거리를 쏘다녔다는 얘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어떤 것에도 애착이 생기질 않았다.

젠장, 인생에 김이 빠져 버렸다.

 

저물녘,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소년들의 장딴지에도

쭈글쭈글한 몸으로 매일 수영을 하는 할머니들의 온탕 속 수다에도 

어떤 곳에도 삶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없었다.

 

딱 한번

제주도 송악산 자락 어느 벤치에서 파도소리를 자장가삼아

오후의 낮잠을 즐길 때 

살아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던가.

그러나 같은 찰나, 죽어서 이것을 못 본다한들 뭐가 그리 한스러우랴

그리 생각했던가.

 

이제 다시 너는  

그때 애인의 얼굴은 고통도 평화도 아니었다고,

그건 그저 의미없음 이었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의 의미없음.

 

"누나, 우주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는

종교가 없는 인간이야"

-"그건 우리가 의심많은 인간들이어서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를

나는 여전히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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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꿈에 네가 나를 찾아왔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너는 결혼하지 않았다 한다.

꿈 속에서도 나는 두려웠다, 네가 결혼하자고 할까봐.

난 여전히 결혼할 마음이 없는데.

 

저 멀리 다리 밑을 걸어가는 너의 종아리는

내가 사랑했던 탄탄한 근육이 아니었다.

뼈만 남은 앙상한 흰색 종아리.

 

너와 내가 같이 살았다면

동지의 출소날,

교도소 앞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출소하는 동지를 기다렸겠다.

교도소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너의 어깨에 폭 기댔겠다.

 

이제 너는 내가 사랑했던 너가 아닌데

우리가 함께 쌓아올린

불가침의 탑 안에 나 혼자 갇혀 길을 잃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남은 인생은 까마득하고.

 

사랑으로 찰랑거려야 할 맨 밑바닥 마음이

초여름 햇볕에 목이 타 쩍쩍 갈라진다.

 

삼켜도 삼켜도 끝나지 않는 상실의 슬픔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나를 뒤집어 놓고 가는

 

출소한 동지를 만나고 온 날 밤

시인 것을, 시도 아닌 것을 찌끄리며

한바탕 울음으로 옛 사랑의 독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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