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디로 갈꺼나

작년 12월에 민우회 그만두기 전,

10월이었던가 11월이었던가 꿈을 하나 꿨었다.

원래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마치 내가 주인공인 한 편의 드라마를 찍은 듯 모든 장면이 생생한 꿈이었다.

 

민우회에서 나는 지령을 받았다.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갑부인 할머니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활동가들 모두 짐을 싸서 그 할머니의 집 근처 민박에 짐을 풀고 실행을 위해 움직였다.

그 할머니의 집은 바닷가 옆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우리는 그 집에 들어갔다.

죽일려고 짱을 보고 있는데 우리가 들어갈 때 대문을 안 닫고 왔는지

사람들이 속속 들어와 방에서 다같이 노는 거였다.

할머니는 후덕한 사람이라는 듯 그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놀게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초조해졌다. 빨리 죽여야 되는데 죽여야 되는데...

그것도 반드시 목을 졸라서 죽여야 한다고 했다.

난 두려웠다. 목을 조르면 지문이 남을 꺼고 그러면 또 빵에 가게 될까봐.

다시 빵에 가는 건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싫었다. (너무 싫은 그 느낌이 깨고 나서도 생생했다.)

시계를 보고 3시반이 되면 꼭 죽여야지 다짐했지만 결국 못 죽였다.

동료 중 한 명인 ㄴㄱ이 빠르게 상황판단을 하고 돌아가자고 했다.

다른 동료는 "그럼 빈곤문제는?" 하면서 차갑게 돌아섰다.

학교 후배이자 동료인 ㄴㅇ은

내가 지문이 남을까봐 못 죽였다고 하자 안 그래도 그게 걱정되었다면서

내가 할머니를 잡고 있기만 하면 목은 자신이 조를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결국 미션을 완수하지 못하고 민박집에 와서 짐을 싸서 돌아가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안에서 옷장 안이 떠오르며 옷을 다 싸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게 퍼뜩 생각났다.

다시 돌아가서 짐을 싸는데 옷을 차곡차곡 개지 않고 허둥지둥 쑤셔넣었다.

하우스메이트이자 동료였던 ㅅ이 옆에서 기다려주며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

 

깨고 나서

상담공부를 오래 한 친구와 이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친구가 준 몇가지 힌트는

할머니는 오래된 고민,

조직에서 부여받은 미션은 내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일 수 있다고...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ㄴㅇ과 ㅅ은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내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일 수도 있다고...

특히 꿈에서 숫자가 중요한데 3시반은 나이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친구가 말하는 순간

나는 내가 늘 30대 중반에 굉장히 의미부여를 하면서 그 때부터는  무언가 다르게 살 것이라는, 전환기를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해 왔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요새도 가끔 이 꿈을 떠올리면서 이 꿈은 당시 나의 어떤 상태를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어떤 사인을 나에게 보낸 것일까...생각해보곤 한다.

잘 모르겠다.

꿈은 자신이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에 가장 맞아떨어지는 의미를 발견할 때

'아하 체험'을 한다고.. 아직 '아하 체험'을 하지 못했다.

 

3월말에 성폭력피해자 쉼터 야간활동가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나름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치열하게 산 것 같다.

낮에는 운동도 하고 기타학원도 다니고 밴드도 새로 만들고

한달에 한번씩 불교공부모임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했다.

 

6개월동안 블로그도 거의 안 하고 모닝페이지도 쓰지 않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소중한 치유의 도구인데 써먹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글쓰기를 하면 나의 진짜 욕구가 자꾸 고개를 내밀까봐

그래서 또 활동을 그만두어 버릴까봐 그게 두려워서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즐겁게 살려고는 했지만 나의 정서와 진짜 욕구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괜찮다고, 난 잘 살고 있다고 하면서...

 

운동의 에너지가 자꾸 딸리는 걸 느낀다.

마치 수명이 다한 배터리처럼, 충전을 해도 이제 금방 금방 소진이 되는 게 느껴진다.

아...어디로 가라는 신호인가.

 

마흔다섯에 제주도로 내려가겠다고 공언하면서

그 전까지 뭐도 하고 뭐도 배우고, 공부도 하고 제주도 내려가서 먹고 살 기술도 배우고

운동이라는 의미있는 일도 더 해야 하고... 뭐 이렇게 계획을 쫙 짜놨었지만...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저 그것들이 다 나의 놓지 못하는 욕심들로 느껴진다.

이제 정말 자연 속으로 가야 할 때가 다가오는 걸까. 아님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래 머물러야

다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힘이 비축될 거라는 뜻일까.

모르겠다. 답답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