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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파피용이라는 베르나르의 책을본다..
지구가 영 개판이라 14만명이 지구를 탈출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내용인데
결국은 이 14만명의착한 사람들도 지구와똑같은 운명을 겪는다는것이다..
같이 있으면 싸우고 혼자있으면 외롭고,,이게 참 아이러니한 인간 운명인가보다..
우리나라 정치문제를 봐도 그렇고
환경문제는 완전 개판이고
교육은 점점 돈가진자만이 전유한다..
그리고 경제도 체질적으로 다같이 잘사는걸 싫어하는 우익들이 워낙에 드세서리
전에 울엄마말처럼 한국을진작에 떠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든다..
나 솔직히 한국에 미련없다..
아니 말그대로 사회지도층이라는작자들도 원정출산이니 조기유학이니하는데 나같은 도시피티계급이 뭐가 미련이 남아있겠는가
암만봐도 우리나라는 망하거나 아니면 슬럼화된다..
이거 거의 90%확률이다.
문제는 내생전에 되는냐 아님..그이후냐인데,.
어쨋거나 좀 편한데가서 살고싶다..
이제 온나화도 오니까 미국 북동부나 유럽스칸다나비아쪽 가서
책이나 읽으며 운동,산책,,이웃과의 담소.몸관리 등이나 하다가 죽고싶다..
이런거보면 난지독히도 사실주의자같다..
리얼리즘이별건가?
이렇게 욕망에 충실하면 리얼이지..
아니 에로인가?
암튼..
격자형도로니 로스쿨이니 반값골프장이니
하느 쉰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 요즘
그냥 쉰생각이든다..
기본적인 초급 불어 표현 중 Qu'est-ce que vous faites dans la vie?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말인데, 우리 말로 “직업이 무엇인가요?”에 정확히 표현하는 표현이다. 노동이 분화된 세상에서 사람이 사회 속에서 멀고 사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는 해야하는데, 이 삶을 위해서, 즉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이 표현은 상당히 시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이다.
이 말이 딛고 있는 기본 전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무위도식 귀족층이 사회에 없다는 것 하나와 사람이 하는 일, 즉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또 다른 사회적 합의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하는 일들 즉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하는 일들은 모두 고귀한 일이며,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깔보거나 얕잡아보면 안된다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 위에 근대를 만든 시대정신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결혼을 할 때 여성의 집에 남성이 먼저 방문하는 것으로 절차가 시작된다. 불어 표현과 약간 유사하지만 맥락은 전혀 다른 “그래, 아버님은 뭘 하시고?”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 당당하기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결혼부터 새로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이 질문은 짧지만 까다롭고 편견 투성이의 질문이다. 사업, 고급공무원, 은행원 같은 질문이 준비되어 있어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그 외의 경우에는 어깨가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거나, “뭐, 그럼 자네 벌이는 괜찮고?”라는 날카롭지만 잔인한 후속 질문을 받게 된다.
현대 한국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외국에서 도입된 윤리책에만 있는 말이다. 모든 직업은 평균 보수,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 그리고 작업장의 소재지의 함수에 의해서 정확히 귀천이 나뉘어진다. 서울에 있는 작업장은 그렇지 않은 작업장에 비해서 언제나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최근에 정규직 여부가 보조함수로 들어갔다. 도대체 귀천이 없다는 것은 어디에 들어가있는 말인가?
프랑스에서 얘기하는 직업의 귀천에는 ‘인간의 자유’ 혹은 ‘영혼에 대한 존중’이라는 매우 특별한 근대적 인권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직업이 끝까지 가면 인간이 자유로와질 수 있고, 그러한 일 속에서 영혼이 고귀해진다는, 도저히 돈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 있을 때에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표현이 성립될 수 있다.
직업의 귀천을 사위감을 처음 만났을 때 강조하는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다음 세대에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모두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해지는 한국 사회,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월급액수로 대답해야 하는 사회,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천박한 성궁에 불과하다.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그 안에서 모두가 불안하며 임시적인 위안거리로만 삶을 생각하게 된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인생이라 하지만, 사람이 날 때부터 귀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할 때, 직업의 귀천을 빠지는 사회는 자본주의 원칙에서도 아름다운 사회는 아니다. 위태하다. 우리는 모두 위태하다.
2007.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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