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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9
    운빨이 다 됐나?(2)
    투덜 투덜
  2. 2008/06/27
    흐어어엉
    투덜 투덜
  3. 2008/06/21
    촛불에 존재하지 않는 운동권들, 뭥미?...(4)
    투덜 투덜
  4. 2008/05/23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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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3/22
    이별 - 오랜 친구여, 안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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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3/07
    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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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1/08
    이런... 펄잼 듣는데 눈물이 글썽거리네
    투덜 투덜
  8. 2006/12/11
    06년 정리를 위한 글쓰기
    투덜 투덜
  9. 2006/12/01
    전경과 폭력투쟁(2)
    투덜 투덜
  10. 2006/11/24
    기분좋은 유년의 기억
    투덜 투덜

운빨이 다 됐나?

아직도 29일 시청 부근에서 맞은 부위가 욱신 욱신...

뻣어서 자고 있었더니

찟어진 데서 난 피가 눈으로 들어가 있더라

아고고

 

지금까지 아무리 격한 집회를 가도

큰 부상 연행 한 번 안 당한 최강 운빨이었데...

 

그날은 처음부터 운빨 정말 안 살더라고.

 

삼청동에서 소화기 직격으로  맞고

뒤에서 전경에게 뿌린 간장에 맞고

사진기 비때문에 전사하시고

방패에 정확하게 얼굴 얻어맞고

 

하이고...

 

최강 운빨이라 자부했었는데

 

근데 맞은 것도 억울한 게

정말 승질나는 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거

 

서울시의회 앞에

사진기가 나밖에 없었다고

누워서 연좌하던 시민들을

전경애들이 찍으면서 전진하는데

그 때 생각난 건 오직 하나

'이거 어떻게 든 찍어야 해'

그러다 무방비로 제대로 맞았지.. 쩝

 

어떻게 든 한 방이라도 찍었어야 하는데

전사하신 사진기가 밉다.

전경도 밉다.

물도 밉다.

 

내 얼굴도 밉다.

흐어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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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어엉

오늘 꿈에서 별 일도 아닌데

콧물까지 흘리면서 펑펑 울었다.

꿈이기는 했지만 펑펑 울고나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진정 울 일이 생겨버렸다.

 

흐어어엉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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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존재하지 않는 운동권들, 뭥미?...

#21일 촛불집회 또 다시 시민들이 연행됐다.
폭력적으로 시민들이 연행되가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분노했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극렬하게 저항한 시민들이 또 다시 연행됐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5월 25일 거리로 촛불들이 거리로 쏟아지자 연행은 곧바로 시작됐고
5월 31일 물대포가 나왔고
6월 7일 마지막 연행 후 잠잠하다가

21일 다시 연행이 시작됐다. 그 사이 경찰의 진압방식은 진화했다.

 

5월 31일까지 경찰은 (방패로 찍어 누르는) 기존 집회 대응방식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충돌이 극점에 다다른 31일 이후 경찰은 비난여론에 휩쌓였고
진압방식을 바꾸었다.

 

잠시 동안 힘빼기 혹은 무대응
그리고 72시간 릴레이집회가 있던 7일 버스로 쳐놓은 경찰의 저지선에
저항하는 시민을 연행했다.

 

그리고 이어진 비폭력 논쟁
10일 이후 이어진 촛불 소강상태
마침내 21일 48시간 비상국민행동이 시작되자 연행이 다시 시작됐다.

 

21일 경찰은 체포조 혹은 직업중대를 정복을 착용시켰다.
(추측이지만 하는 행동과 중대단위로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는 체포조가 확실하다)
그리고 31일 이후 관례(새벽까지 참다가 진압을 시작하는)를 깨고
새벽이 되기 전 판을 정리했다.

 

왜?
21일 낮 추가협상결과 발표를 앞두고
반격 드라이브를 걸기위해서
그리고 맞불집회 등
보수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그래서?
야들한 이미지로 포장된 경찰이
(하이바 쓰고 방패를 든 무장한 전경이 아니라 정복입은 경찰이)
촛불을 요리했다.

 

21일이 기존과 다른 것은 전면적 도발을 경찰이 했다는 것이다.
촛불이 저지선을 뚫고 진격하려는 시도도 없었고
또한 (돌발적 상황에 의한 진압이 아닌) 완전 진압작전이
0시에서 3시 사이에 이뤄졌다는 것때문이다.

 

경찰의 대응은 진화하고 있다.
그러면 촛불의 대응은?
풍자(노래해, 온수, 물총 등)로 진화하다가
비폭력 논쟁이 유발된 7일 이후 주춤하고 있다.

 

#연행된 시민 중에 소위 선수들은 거의 없다.
선수들은 그 때 뭐하고 있었을까?

 

대부분이 자리를 떳고 있어도 판을 읽으며 뒤로 빠진거다.

 

시민들이 연행된 과정을 보면
강제진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연행이 이뤄진다.

 

뭘까?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경찰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동지애'가 발생해 격렬하게 저항하다 연행되는 거다.
'동지애'때문에

 

그나마 있던 선수들은 판을 읽으며 뒤로 빠졌고
소위 '쌩대중'은 '동지애'때문에 경찰에 밟혔다.

 

#'깃발'과 '조끼'를 허용하면서
쌩대중은 선수들에게 조금씩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장갑차 살인사건 때처럼 깃발논쟁은 있지도 않았다.)

 

선수들은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어쩔줄 몰라하거나 뒤에만 앉아있다.
시민권을 획득한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제외하고.
(민노당의 강기갑과 진보신당의 진중권이 대표적이 예일 듯)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은 뭘하고 있지?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지금 당장 시민권을 획득한 선수들처럼
쌩대중들에게 직접적 언어로 정치활동을 하기 어렵다.
그러면 그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거리에서 다져진 전투실력!

 

그런데 그 동안 촛불전투할 때 어디있었니?

 

#경찰은 진화하고 있다.
쌩대중은 조금씩 선수들에게 시민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선수들은 시민권 획득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왜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거리 정치에서
즉 길거리 전투에서조차 빠지는거냐

 

정말 비폭력이 좋은거냐?
그럼 할 말 없다.
정말 전투능력조차 상실한 거냐?
그럼 할 말 없다.
정말 시민권을 획득한 선수들처럼 당장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지랄한다.

 

그 선수들이 잘 하는 말

 

발은 진흙탕에 딛고 눈은 하늘을 향하라.
그런데 지금 정세에서 길거리 정치가 어디에 있는가?

 

단결과 연대는 투쟁의 핵심이다.
그 투쟁이 현장의 파업(투쟁)에 있고, 길거리는 촛불이 점령했다.
현장의 파업이 촛불과 연대하는 것은
파업 대오가 촛불에 앉아서 구경하고 때되면 빠진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 방법은 머리수채우기에 바쁜 민주노총 어르신들이나 하는거다.

 

지금 진흙탕은 파업(투쟁)현장과 촛불이고

연대의 연결 고리는
비폭력 논쟁과 경찰의 공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전경차 앞이다.

이것을 그나마 그 선수들의 현재 실력에서 실현할 수 있는 곳 말이다.

 

#다함께, 초기에 행진대오 지도하다 오나전 욕먹었다.
왜?
거리로 나가려는 대중을 제한했고
대중이 말은 안듣자 조직적으로 그들이 사라지자
경찰의 연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함께가 대중들에게 욕먹은 가장 큰 이유는
거리로 못나가게 한 것보다
그 후 사라진 것때문이다.
그들이 사라지고 경찰의 연행이 되자
초기에 대중은 그들을 쁘락치로 오인했고
곧이어 네티즌수사대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쁘락치일뻔 한 다함께는 오나전 욕먹었다.
어설프게 선동하다가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거리행진을 제한했어도
끝까지 남아있다가 대중들과 함께 연행됐다면
쁘락치 논쟁도 심하지 않았을테고
지금처럼 욕먹지 않았을 꺼다.

 

그럼 다른 선수들은?
침묵
문서 혹은 글로 논쟁 중
현장이 킹왕짱이야

이러고 있다.

 

욕먹었어도 다함께는 촛불초기부터 결합했고
지금도 열심히 신문팔고 있다.

 

다른 선수들, 뭥미?

 

#'그 선수들'
그 동안 다져진 전투'실력'을 '쌩대중들'과
나눠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쌩대중이 그나마 허용해 준 시민권은 잊혀진다.

 

촛불이 꺼지고 나서
또 평가하고
시민권 얻은 선수들 욕하고
또 현장이 킹왕짱이야
이러고 있을래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나? 실력없어서 이 지랄한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오나전 피곤하다.

 

#전경차 앞에서 만난 어떤 쌩대중 왈
'열흘 연속으로 나와서 밤낮이 없어졌어요.
회사에서 맨날 졸아요.
하지만 억울해서 안 나올 수 없어요'

 

그 좋아하는 '지도'

전경차 앞에서부터 시작하지.

그래야

왕비호가 되더라도

'다함께'처럼 잊혀지지나 않는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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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가출하고 4년만에 집에 돌아온 지 한 달하고 닷세정도 지났다.

집에 올 때 가장 맘에 걸린 게 엄마였다.

엄마에게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하기로 한 것이

 

아침에 뭐라도 먹고 나가기

나갈 때 이불정리하고 나가기

내 빨래 내가 알아서 하기

밥 먹고 설겆이하기

요 네 가지다.

 

근데 일주일정도 완죤 꽝 나고 있다.

어제는 암것도 안 먹고 나가는 나를 엄마가 쳐다보고 있었다.

 

켁...

 

엄마 미안해.

이제 다시 요거라도 할께.

 

# 내가 엄마랑 닮은 게

맘이 약한 거랑, 궁시렁거리기다.

근데 요기에 아비라 불리는 사람의 묵뚝뚝한 데 갑자기 폭주하는 성격이 포게져서

성격의 그림새가 그닥 좋지 않다.

 

엄마가 말을 걸어도 말도 안 한다.

사실 엄마랑 얘기하기 싫다기 보다는

옆에 있는 아비라 불리는 사람이 거슬려 말이 하기 싫은거다.

 

엄마랑 둘이 있으면 그래도 말을 잘 하는 데

두 내우가 집에서 노는터라 그럴 시간이 정말 없다.

 

엄마 미안해.

잘 살아 볼께.

 

# 어버이날 뷔폐식 샤브집을 갔는 데

엄마가 별로 맛 안나게 보이는 스파게티를 가져다 드셨다.

엄마가 양놈 음식을 맛나게 먹을 줄 몰랐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잘 모른다.

서울 오기 전 엄마한테 맛난 음식 한 번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 데 못했다.

 

엄마 미안해.

담 주말에 내가 스파게티 해줄께.

 

#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혼자서 화투짝을 만지고 노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운세 맞추기를 하는 것 같다.

 

몇일 전 화투를 가지고 노는 엄마 옆에 가서

맞고나 치자고 했다.

근데 엄마가 맞고하는 법을 모른단다.

 

그것도 몰랐다.

 

또 근데 엄마한테 맞고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은데 나도 잘 모른다.

 

엄마 미안해.

맞고 마스터해서 엄마 가르쳐 줄께.

 

# 일주일 전 전기밥솥을 사러 나가는 데

엄마가 같이 가잔다.

 

무거운 몸으로 낑낑 거리면서 걸어가는 데 엄마가 자꾸 말을 건다.

그날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조퇴한 날이 었다. 

 

'여자친구는 뭐해?'

'누나들이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해'

'여자친구 언니는 봤어?'

거는 말이 대부분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은 '여자친구 보자'였을 꺼다.

소심한 엄마.

 

하긴 내가 집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

언제 말거나 싶어서 얘기했겠지만

그날 내가 오만상을 찌뿌리고 있었으니깐 말을 더 빙빙 돌렸겠지.

 

엄마 미안해.

내가 잘 놀아줄께.

글고 조만간 여자친구 보여 줄께.

 

# 엄마는 가끔

'아들, 엄마가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으베베베' 거리고 만다.

 

엄마 미안해.

담엔 '응' 요러케라도 똑바로 얘기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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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 오랜 친구여, 안녕!!!

10년을 넘게 함께 한 너와 이별을 하고 있어.

내가 힘들어도 즐거워도 기운없어도 신나도

언제나 내곁에 있던 너란 친구

참 소중했는데 말야.

 

가끔은 얼굴이 발게지며 수줍어 하고

가끔은 시뻘게지며 화도 내고

가끔은 갑자기 사라지는

너의 모습은 참 예쁘고 아름다웠지.

 

너를 처음 만난 게 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은 시기때문인지 너를 소개시켜주지 않았지.

자기들은 다 만나고 있으면서 말야.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너를 만났을 때

활홀감에 취해 어쩔줄 몰라했어.

자주 만나다보니

익숙함을 넘어 중독으로 가더라고.

 

이제 질긴 너와의 인연을

끊으려 해.

너와의 인연이 달콤하기는 했지만

나를 많이 괴롭히기도 했어.

 

너와 멀리한 지금 조금은 힘들다.

수시로 네 생각이 나서 말야.

 

인생의 절반정도를 함께 했는데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더는 유혹하지 말아줘.

 

이제 난 네가 없는 다른 인생을 살거란 말야.

 

 

 

 

금연 6일 째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태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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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

오늘(3월 7일) 해고된 울산과학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농성장이 털렸다.

나이먹은 청소아줌마들이 알몸으로 저항했지만

구사대나 다름없는 교직원노조원들이 아랑곳없이 밀어버렸다.

 

저녁 지역 규탄집회에 200명정도가 모였다.

참가자들 모두 울분에 차있었다.

과학대 지부장동지가 울면서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눈이 빨게졌다.

 

집회 끝나고

한 아줌마가 농성장에 찾아온 자식을 부둥켜 안으며 운다.

주변의 사람들은 담배를 피거나 고개를 들지 못한다.

 

집회가 끝나고 잠시 후

나, 지역본부 상근자, 미디어 활동가가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기위해 가까운 사무실로 갔다.

 

방금 전 찍은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세명 모두 다시 훌쩍인다.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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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펄잼 듣는데 눈물이 글썽거리네

정말 간만에 펄잼 앨범을 듣는데

급 눈물 글썽거림......

 

후아

 

it's my blood~~~~~~

 

크하학~~~

rock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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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정리를 위한 글쓰기

2004년 3월부터 시작한 상근생활이 올해로 막을 내린다.

3년동안 버텨온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낸다.

지금은 시원한 마음이 더 크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가 바뀌는 것에 별 감흥이 없는 편인데,

06년이 3년의 생활이 마감되는 해인지 그 끝이 새롭기만 하다.

 

이런저런 자잘한 글쓰기로 올해를 정리해야 겠다.

3년 평가 이런 것을 쓰면 좋겠지만, 나의 상태가 그런 것을 정리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그런 글은 워낙 꼬여있는 것이 많아 어렵기만 하다.

 

뭐 두서없고 별 내용없는 것들일지라도,

일단 목록을 정리하고 글쓰기를 천천히 내년 초까지 해야 겠다.

 

 

 

 

나의 생활주기에 대한 이야기

- 휴일을 집에서 쉬지 못했을 때와 쉬었을 때는 그 주의 생활이 달랐다. 또 서울을 자주 다녀올 때 그 주의 생활은 뭉게져 있을 때가 많았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할 때 그 힘이 생활을 강제하다가 급저하하는 주기도 일정주기가 있었고, 잠수조차 일정패턴이 있었다.

 

외모(남성성?)

- 좀 생긴 얼국덕에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리고 외양을 가꾸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남자다워졌네' 혹은 '그거 여자꺼 아니야'라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응들.

 

사진

- SLR을 만진 것이 고1때부터니까 햇수로 13년정도다. 사진이 나에게 주었던 쾌감과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변한 것. 나만의 사진과 보도용 사진, 그 중간정도 사진들의 차이와 유사점.

 

몸짓

- 몸짓을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었고, 요즘 다시 시작하고 있다.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선동과 몸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몸짓(춤).

 

3년동안 함께 한 그들

- 그들과 호흡했던 느낌들

 

나의 가장 큰 힘인 그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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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과 폭력투쟁

에밀리오님의 [소모적인 시위를 왜 하냐구요?] 에 관련된 글.


12월 1일 전국에서 비정규악법 규탄집회가 있었을 것이고

울산에서도 역시 진행되었다.

 

오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시청 타격투쟁이 있었다.

 

 

이것이 폭력시위대의 흔적이다.

우리의 말로 하면 '성난 노동자들의 실천투쟁'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넌센스였다.

(물리적 역량과 당시 붙은 인간들의 열기를 보아)

필히 열린우리당사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안 들어가고 정리하고 가더라.

지도부는 그 자리를 정리했고,

흥분한 몇몇 사람의 '광기'만 남았을 뿐이었다.

 

끝까지 밀고 들어가 열린우리당에 격렬하게 복수를 하던지,

걍 걷기대회를 하던지

 

오늘 전경의 대오는 수비대형이었다.

(시청은 완전 전투대형이라 전경들과 직접적으로 붙지 않았다)

이럴때는 아무리 우리편이지만,

전경만 건드리고 가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폭력적 난동'이라 표현하고 싶다.

 

당시 열심히 싸운 사람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를 '퍼포먼스'로 정리를 시도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전경만 건드리는 '퍼포먼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경이 막고 있는 우리의 타격장소를 제대로 폭파시킬 폭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폭력 투쟁이 진정 정당화될 수 있다.

 

 

 

 

 

물리적 폭력이 수반된 투쟁이 진행될 때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 그 현장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괴롭다)

 

오늘 전경대오에서 이탈된 전경놈이 우리 편에게 다구리 당하는 것을 보고 구출했다.

(웬만하면 안 그러는데, 고놈 몸이 지대로 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리

그리고 무력화된 전경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반대입장이도 하고

그놈들은 일종의 포로라고. 포로에게는 비폭력으로)

 

상황정리하니, 그 놈이 하는 말

'내가 뭔 잘못을 했는데, 왜 맞아야 하는거죠?'

 

할 말이 없었다.

'비정규법이 개악이 되고, 그러면 노동자민중은 다 죽는다.

그 주범이 열린우리당인데, 그 놈들을 공격하는데 느그들이 있었다.

맞아서 아프겠지만, 그놈들을 공격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안나오더라.

 

왜?

전경애들만 건드리고 나오는 '퍼포먼스'였으니까.

 

그리고 나서 격렬한 투쟁이 진행되는 곳에서

'열우당으로 들어갑시다! 이곳에서 뭐합니까! 뚫고 가자고요! 갈 수 있어요!'라고 짓거렸다.

그 말에 호응한 사람은 정확히 열명이 넘지 않았다.

그나마도 대오지도자(?)들에게 정리되고 말았다.

 

퍼포먼스는 그만하자.

처절한 폭력을 행사하던지

처절하게 깨지던지.

 

 

 

 

피에쑤

에밀리오님의 글을 반론하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닙니다.

님의 글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글을 읽고 오늘 있었던 투쟁의 무기력함이 생각나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연관성이 적은 것같아서) 트랙백을 걸까 말까 하다

요래 사족을 달고 걸어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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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유년의 기억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수능 몇일전 아파서 조퇴한 것외에는

만년개근을 해서 개근상이 세장이나 있는

나에게

기분좋은 기억은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느끼는 늦은 아침의 햇살과

그 햇살을 느끼며 잠이 들깬 상태에서 보는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

 

일요 아침드라마와 시시껄렁한 프로그램을 보던 그 여유

누나들과 함께 먹던 식사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집에서 놀면서 보냈던 그 나른했던 시간들

 

시간이 흘러감에

다시는 누릴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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