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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의지가 없으시다면 그냥 갈 길 가시기 바랍니다

에밀리오님의 [열린공간과 자기검열] 에 달린 댓글에 대한 이야기

 

#1.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귀찮은 걸 참 싫어한다. 그리고 직업상의 이유 등으로 내 일은 하루 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텍스트를 확인하고, 분석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타이핑하는 일이다.

 

딱히 그래서는 아니지만 그게 나 스스로를 많이 갉아 먹는 역활을 하기 때문에, 일과시간 이후에 글을 적는 행위, 텍스트를 보는 행위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 이유로 현 직장을 다니면서 블로그 포스팅이 많이 줄어 들었다.

 

#2.

 

진보넷에 터를 잡은(?)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무언가를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일신상의 이유로 넷상에 뭔가 의견을 표시하고 싶어도 상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이 부분은 후술하겠지만, 그러다 넷상을 비교적 안전하게 (감시로부터?) 도망다니면서 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됐는데, 그곳이 여기였다. 그리고 이 때 쯤 내 정체성은 아마도 애국학생과 거기서 탈각한 어느 사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3.

 

요즘은 뜸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내 생각에도 과거보다 북적거리지 않는 느낌이다. 여하튼 진보넷 블로그를 이용하고, 또 포스팅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활동가들이다. 각기 정파와 입장이 다른 활동가들이 이야기 하는 소소한 일상부터 정세에 대한 견해, 주장들은 물리적 공간을 확장해 주는 좋은 매개체가 됐다.

 

#4.

 

소통 공간의 확장 속에서 가끔 논쟁이 발생할 때도 있었다. 전술했듯 정파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주장을 하다보면 그런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나 또한 가끔 논쟁에 참여한 적이 있고, 그렇게 해서 배우기도 하고, 상대를 설득하기도 했다.

 

#5.

 

물리적 공간이 가지는 제약을 넘어 내가 운동하던 공간으로 돌아가 있을 때, 대추리 혹은 그 이외의 공간에서 (내가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 대부분의 대추리 지킴이들은 진보넷에서 블로깅 중이었다) 넷상에서 소통하던 이들을 대면할 수 있다는게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다만, 진보넷 블로그 특성상 특정 정파의 사람들은 속해 있지 않거나 혹은 동조하지 않는 주장을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진보넷 블로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걸 (나는 인사하기 위해서 자기 소개를 할 때 그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알렸고, 나와 같은 운동진영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여줬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나는 소위 말하는 애국학생(!) 중 한 명이었고, 정체성은 그 사이 어디쯤에 걸쳐 있었다.

 

#6.

 

그 당시 내 고민에 대한 선배들의 정의는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오더니 일종의 병이 생겼다' 였다. 그래서 조직적 관점을 가지고 내 '병든' 사상을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일년 내내 이 부분에서 불협화음을 겪었다.

 

#7.

 

내 개인사에 대한 주관적인 이야기는 언젠가 두루뭉술하게 포스팅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도 나는 내 선배들, 후배들과 사이가 안 좋다고 알고 있다.

 

오늘도 SNS를 하다가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서 지금 현재 상당히 우울해 있는 상태이다.

 

#8.

 

이제 본론인데.

 

진보넷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며 지내는 활동가들 대부분은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의 주장이나 신념, 사상에 배치되는 의견들을 접했을 때 격렬하게 논쟁을 전개할 때가 많다. (이 부분은 #4에서 언급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활동가로서의 자기 신념, 사상, 혹은 견해에 대한 이야기에 한정된다.

 

서로의 견해나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때문에 논의를 치열하게 하는 건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오늘 특정 포스팅에 대해 댓글이 달렸고, "나는 당신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고 댓글을 달자 내게 돌아온 건 내 인성에 대한 품평? 쯤 되는 글이었다.

 

#9.

 

아는 분은 아는 이야기지만, 진보넷 블로그 내에서 내 포지션은 유명한 '행인 빠' 이다.

 

내 인성에 대해 품평을 남기신 분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행인님 포스팅에 계속 '악의적으로 보이는 댓글'을 남긴 분이다.

 

혹 모르겠다. 그냥 내가 '빠짓'을 하기 때문에 그냥 심통이 나신 걸지도 모르겠다.

 

#10.

 

댓글로 그 분이 대화 중단을 이야기 한 마당에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생각은 없다.

 

진보넷 블로그 메인 표기 방식상, 연속되는 포스팅은 최근 포스팅만 표시되지만, 댓글은 제한이 없다. 해서 연속되는 댓글로 다른 분들의 소통을 방해한 점에 대해서 사과 드린 바 있다. (앞으로는 따로 포스팅하거나 언급하지 않겠지만, 계속 그럴 가능성도 있으므로 거듭 사과 드린다.)

 

그리고 따로 그 분 밑에 댓글 다신 분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만, 해당 포스팅에 댓글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만두는게 좋을 것 같다.

 

#마무리.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의 머리를 철퇴로 내려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괴물로 규정하고 함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방식으로 내 머리에 철퇴를 내리 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답례로 나 또한 상대를 철퇴로 한 방 내리쳤지만 이런 방식으로 계속 대응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있는 공간인데)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대응한 점에 있어 내 스스로 아직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므로 눈쌀 찌푸리신 분에게는 사과 드립니다.)

 

 어쨌든 나도 철퇴로 한 방 갈겼으니 이건에 대해서 더 이상 공방이 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소통 할 의사가 있다면 몰라도 아니면 그냥 갈 길 가시길 바란다.

 

덧) 지금 우울한 상태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풀려고 포스팅 해버렸습니다. 다시금 다른 분들께는 사과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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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공간과 자기검열

앙겔부처님의 [북한을 왜 찬양하냐고] 에 관련된 글.

 

요즘 여차저차 SNS를 활발히... 까지는 아니고 그냥 심심할 때 주저리 주저리 하고 있다.

 

블로그질은 보통 심각한 이야기만 쓰게 되는데다가(?), 것보다 요새 컨디션도 별로고 하는 일도 정신이 없어서 자주 쓰지도 못하고 그러는 터라 잘 안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정보노출 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됐다.

 

정보노출 문제는 그렇다치고 심각한 건 트위터와 마찬가지로 자기검열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애당초 진보넷에 터를 잡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정부의 감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고 (하지만 사실 내가 한다는 보안이라는 것도 상당히 허술해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조합해서 나를 찾아 낼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또 지인 모 씨의 말을 빌리면, 내가 그렇게 넷 상에서 도망다니고 있을 때에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고... 사실이라면 좀 신기한 일이지만 여튼...)

 

특히 페이스북은 처음엔 그냥 상황 알리는 용도로 적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트위터와 마찬가지로 주로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내 기분이나, 감정상태, 주장  등을 적기 시작하는데 아차... 이게 한국사회만의 특징이라고는 알고 있는데 좀 걸리는게 있다.

 

그게 뭐냐면 여튼저튼 나랑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내가 민족주의 문제나, 국가주의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일례로 한미FTA 문제를 거론하며, FTA 자체를 반대해야하는데 애국주의로 수렴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나이브하게 쓴 적이 있는데... 5초도 안 지나서 내 출신학교의 출신단위 선배들이 댓글을... 달더라.

 

혹자 말하길 안 하면 되는거 아니냐? 라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고민인데, 주로 SNS에는 내가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 + 출퇴근간 열받는 이야기나 상황에 대한 넉두리 + 정치적인 이슈에 관한 내 견해 가 대부분이다.

 

앞의 두 가지는 상관없지만,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중립도 아니고 아예 반대인 경우의 (혹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비교적 최근에 관계를 맺기 시작한) 친구들이 있다.

 

그 쪽 사람들 일반에 대한 내가 가진 편견들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고, 여하튼 관계 맺는 것 자체는 즐거운 일이라고 보고 있긴 하지만 정치적 이슈를 나누기에는 서로 정체(?)를 모르니까 부담도 되고 해서 숨기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친구가 말하길," 페이스북 친구 신청하려다가 안 했다. 왜냐면 업무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놓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 말 마따나 그렇게 선별해서 SNS 상에서 (트위터도 아니고 페이스북은 지인 중심으로 소통하는데) 관계 맺는 방식은 지극히 나에 대한 자기 검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와 견해가 다르거나 부딪칠 것 같은 사람을 차단하는 것도 자기검열이라고 보니까 좀 복잡하다.

 

그렇다고 SNS에서는 소소한 이야기만 하기에는 내 심정이 그렇지도 않고, 것보다 그것도 자기검열의 일종이니까.

 

덩야핑이 포스팅 하신 글을 보고서, 끄적일 말이 있어서 페이스북에 썼다가 또 자기검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 이럴 때 이런 말 할 곳이 여기 밖에 없구나하고 넉두리 해보고 간다

 

덧) 그래서 중요한 건 애국자가 없는게 좋은거라는거... + 이건희는 안 된다면서 왜 북은 된다는거지; 신념체계가 참... 그래 신념을 가지는 건 자유니까 뭐... 상관없지만... 그래도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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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FTA, 이명박의 FTA

에밀리오님의 [외통위 국회 경위 투입은 위법이다] 에 관련된 글.

 

근래 들은 최고의 개드립 중 하나가 바로 "노무현의 FTA는 국익을 생각했고, 이명박의 FTA는 노예의 길"이라는 얘기였다.

 

최근 프레시안에 민변 모 변호사의 기고문을 시작으로 해서, 정부의 FTA 광고에서 '노무현이 시작한 FTA 이명박이 끝내겠습니다'에 대한 반발까지 그 수위는 다양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조문을 뒤져봤지만 (일하느라 아직 다 본 건 아니다) 현재까지 내가 발견한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 FTA의 차이는, 단지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의 입김으로!) 동아시아 금융 허브를 구상에 포하미켰고, 이명박의 FTA는 그딴게 없다는 것 정도의 차이이다.

 

두 가지는 다르다고 하는데 얼마나 다른지도 잘 모르겠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반대 목소리의 민족/애국주의 담론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여정부 당시부터 한미 FTA를 반대했던 많은 시민사회진영은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가 다르다' 라는 담론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민변의 예처럼!)

 

물론 이유야 알겠지만 (아시지 않는가? 적전 분열 드립!) 과연 그런지는 곱씹어 볼 내용이다.

 

어제 밤에 잠시 끄적거렸지만, 사실 상임위에서의 내부경찰권(=경위)을 통한 갈등 (강제) 해소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일단 차떼고 포떼고 이야기하면, 무려 참여정부 때인 17대 국회에서도 한미FTA 비준안 심사 과정에서 질서유지권 발동과 경위를 통한 물리적 강제를 행한 전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별 차이가 없는 정당이라고 본다.

 

물론 과정에서 반성과 속죄의 의미에서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진정성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 전체가, 다르다는 생각은 그리 크게 들지 않는다.

 

한미FTA 강행처리가 예상되는 오늘 (혹은 10일?), 아침께에 본청 출입을 통제했다는 언론기사를 접하고 그냥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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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위 국회 경위 투입은 위법이다

한미 FTA 처리를 놓고 여야 대치가 한창이다.

 

어제(11/2, 수)도 한미FTA 처리를 놓고 외교통상위원회(이하 '외통위')에서 여야간 공방이 오갔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강기갑, 김선동 의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무소속(!) 조승수 의원 등이 한미FTA 강행처리에 반대하며 외통위 회의장을 점거했고, 소회의실에서 예산심사를 마친 남경필 외통위 위원장은 2시 7분 경 구두로 한미FTA 비준안을 상정시켰다.

 

그 과정에서 여야간 공방이 오가며 남경필 위원장은 무려 '질서유지권'을 발동시켰다. 논란이 생기자 남경필 위원장은 자신이 발동시킨 질서유지권에 대해서 명확하게 선을 그어 두 번이나 정의를 내렸다.

 

남경필 위원장이 정의한 질서유지권의 범위는, '최소한의 언론과 외통위 의원, 관련 부처 및 보좌진이며 외통위에 소속되지 않은 의원 등에 대해서는 내보내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들어오지 못 하도록 하겠다" 라는 것이었다. 언론, SNS 등에 따르면 이와 같은 언급을 최소한 두 번 이상 진행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국회 경위들이 언론과 야당 보좌진 등을 퇴장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하자, 남경필 위원장은 "국회 경위는 질서유지를 위해서 내가 부른 것이다. 질서유지를 경위들이 하는건데, 경위들보고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국회의 질서유지제도는 1) 질서유지권, 2) 경호권, 3) 가택권 으로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1) 질서유지권의 경우, 국회의장과 각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고유 권한이며, 이는 회의장 질서를 문란케하는 의원에 대해 경고 또는 발언제재 등을 할 수 있는 권한(국회법 제145조 제1, 2항)과 질서유지를 위한 정회 및 산회(국회법 제145조 제3항)이다.

 

반면, 2) 경호권은 질서유지권과 달리 국회의장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권한(국회법 제143조)이며, 국회 고유의 내부경찰권=국회 경위의 물리적 방법을 통해 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가택권의 경우, 국회의 의사에 반해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권한이지만 논의와는 별개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앞서 밝혔듯이 국회 경위라는 내부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경호권 뿐이며, 경호권의 경우에도 본회의가 열렸을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경필 위원장은 '국회 경위를 통한 상임위원장으로서의 질서유지권 사용을 적법'하다고 언론 앞에서 강조했으며, 전임 국회의장 출신인 김형오 의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리 의회가 정치가 법보다 우선하는 공간이지만, Lawmaker와 그래서 그들이 만든 (혹은 다루는) 법 앞에서 초법적인가?는 완전히 범주가 다른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쟁점 현안을 처리하는 상임위원회의 위원장과 전임 국회의장은 자신들의 월권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몇 번이고 못을 박았다.

 

설령 법률이 인정한 남경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의 권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남경필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는 (이하 나열하는 모든 내용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회의장 출입자에 대한 제한 및 통제, 의원 발언 등에 대한 경고/제재/ 퇴장조치, 정회 및 산회 선포가 전부이다.

 

방금 언술한 내용은 (당연히) 국회법을 뒤져보면 나오는 조문들이다. 또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입법부에 설치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2009년 2월 <국회 및 주요국 의회의 질서유지제도>에도 해설되어 있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당시 여야간 충돌을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질서유지제도에 대한 개정 논의)(소위 말하는 국회선진화?)가 진행된데에 따른다. 그리고 이같은 논의진행과 보고서가 제작된 2009년은 김형오 의장이 국회를 대표하고 있던 때이다. (이 논의의 시작도 일정부분 김형오 의원을 통해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김형오 의원은 잘 모르시는 듯?

 

(하긴 한나라당 의원들 대부분은 FTA가 왜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러니 한나라당 외통위 위원들이 한미 FTA가 체결되면 청년백수가 줄어든다고 그러지... 아 청년백수는 내 표현이 아니고, 한나라당 의원들 워딩이라고 함)

 

그러고보니 MBC에서 "구태정치 청산하자" 국회선진화 합의 어디로?  라는 보도를 냈던데... 물론 언론의 생리상 인화성 짙은 내용을 만들어서 까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사실은 물타기에 가깝다고 본다. 본질은 사라지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인화성 짙게 기사화 한 거니까. 그리고 이걸 통해 정치불신을 조장하니까)

 

(심지어 언론들 자신들조차 경위들에 의해 퇴거 당하고서) 뭐가 문제인지 찾아볼 생각도 안 한다는 건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검색 되라고 태그에 실명 써놓을테니 기자 분은 고민 좀 해주시길 바란다.

 

한미 FTA가 뭔지, 왜 문제인지, 통과시키면 미래가 어찌 될런지 아무런 공부도, 고민도 않고 무턱대고 잘 될 것이라고 이야기만 늘어놓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건 (현 국회의장의 표현을 빌리면)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국회부터 불법자행하는 나라, 이래놓고 다른 이들에게 법 지키라고 할 수 있는걸까?

 

덧) 하아... 이런 글 써놔봐야 내일 되면 언론에 또 질서유지권이 발동됐네, 경위들을 동원해서 어쨌네 하는 기사 보게 될 듯... 망조망조...

 

덧) 하도 깝깝해서 입법조사처 홈페이지에서 자료 다운받아서 올린다. (아? 저작권 같은거 있으면 낭패 @_@?)

 

덧) 아놔... 제목 꼬라지 봐라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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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의 함정

박원순 변호사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다고 하더라, 흥행은 성공했고, 과정은 감동이었다고 이야기가 오간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상당수가 살고 있는 +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둔 전초전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나경원  VS. 박원순 변호사 라는 여/야 선택의 구도가 됐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여당과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은 나경원 찍고, 그 반대인 사람은 박원순 찍어라" 이런 식이다.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라고 하고, 큰 그림이나 틀을 어떻게 짜느냐가 선거에 주요하다라는 것에도 (사실상?) 동의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 그 안에서 정책을 검토하고픈 유권자나, 모 아니면 도 식의 답안지에 마킹하기 싫은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최장집 교수의 논의를 빌려 ("백화점에 옷 사러 간 사람이 있어요. 근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요. 헌데 최선을 피해서, 차선을 산다는 건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지요." 라고 백화점의 예를 들어, 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무효표가 더 많았던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이야기하면, 내가 무슨 옷을 선택할지는 일단 나중 문제고 정권을 심판할 의사가 있으면 일단 야권 단일화를 통해 시장에 내 놓은 단일후보옷을 사라는 이야기이다.

 

구조적인 이유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무효표도 승자에게 (보통 이런 경우 승자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부류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현 정권에 대한 심판에 동의하지만 후보를 고를 수 없는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옷 없으니 다음에 살게요"는 해답이 되지도 않는다.

 

이게 선거판에서 프레임 싸움이 가지는 최대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변호사라서 안 되고, 다른 민주당 후보면 되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픈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 누구로 단일화 되었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권 심판/닥치고 반 한나라당의 프레임 싸움은 결국 유권자를 동원기재, 거수기로 만들고, 유권자가 가진 종이짱돌의 위력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느냐? 그런 식으로 하면 다음 정권도 한나라당 세상이다! 조직된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나도 알고 있다.

 

선거전술, 혹은 현실정치에서 이런 방식이 유의미하고, 구도 대결로 갈 경우 얻는 이점들에 대해서 모르는 바 아니다.

 

단지, 그렇게 하기 때문에 놓치는 것들이 아주아주 크니까 이건 완전 함정에 빠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민주주의 하자는 거 아닌가? 이런 구도 대결에 손을 들어주는 순간, 4년에 한 번 투표 시작부터 끝까지만 왕 노릇 하는 시민 노릇을 계속 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말이다.

 

그나마 그 선택이 어떤 것이든, 후보가 누구든 간에 이런 방식으로는 늘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할 뿐이니까. 그게 참 안타깝다.

 

덧) 어쩔 수 없는데, 어쩔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 없을까?

 

덧) 근데 그것도 의회에서 바꿔야 한다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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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연합뉴스 프랑스 여성단체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여성주의 단체에서 "남성은 기혼자든, 미혼자든 '무슈'라는 단일 호칭으로 쓰면서, 여성에게는 미혼자에게 '마드모아젤', 기혼자에게 '마담'이라고 각각 부르는 것은 차별적"이며,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서 여성을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여 프랑스 사회를 상대로 호칭 문제를 정리하자며 주장했다고 한다.

 

(자세한 맥락을 잘 몰라서 삽질하는 거라면, 더 잘 아시는 분이 수정해주시리라 믿으며...) 읽으면서 '아~' 이랬다.

 

언어는 권력관계를 반영한다고 머릿 속에서는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난 이런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이건 같은 맥락의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21세기 현재 이남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와 관련해서 익숙한 단어와 담론으로 '근로자'냐? '노동자'냐? 라는 논쟁이 있다. (노동자가 맞지 뭐 @_@)

 

덧) 더 길게 쓰고 싶지만, 일하는 중이고, 또 할 말 풀어내기 시작하면 소위 말하는 '우리 안의 파시즘' 까지 갈거 같으니까 시즌(?) 끝나고 다시 쓰든, 말든 해야겠다.

 

덧덧) 그나저나 왜 난 진짜 이런 생각 한 번도 못 했지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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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일 끝나고 빈소에 찾아 갔었더랍니다.

 

빈소로 향하는 길에 전태일 열사께서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그림을 봤더랍니다. 이소선 선생님의 상주라고 써 있는데 아... 묘한 기분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거는 그거고.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노동자의 어머니 등 관계로 호명되는 분 말고,

 

노동운동가, 활동가 이소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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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담배 이야기 말고,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 보아요

깰뱅이님의 [담배가 문제는 문제야!!!] 에 관련된 글.

 

담배 이야기는 말씀하신 바와 일치하는 면도 있고,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담배 외 이야기만 이야기 하자면,

 

과거의 급진적, 전투적 노조운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운동)과 최근 운동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고, 이에 대해 현재 운동의 장점에 급진적, 전투적 운동성을 접목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문제의 포스팅을 쓰신 노동자혁명당의 당원 분께서는 댓글을 통해서 하시고자 했던 말씀의 핵심은 용역 깡패 등에 의해서 저항조차 힘든 상황에서 이에 대항할 대오를 조직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뉘앙스로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단절하는 방식 등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집회 참가자들의 자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만, 마찬가지로 폐해들도 여럿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민인 건, 전투적/비타협적 운동성이라는 것이 소위 말하는 철의 규율을 가진 노동자의 군대라든지, 블랙코드 등을 뜻하는 거라면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흔히 아는 예로 노동해방포 등을 사용했던 예만 보더라도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공권력을 상대로 물리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이 정당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대항력을 갖추려고 해도 결국 물리력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점이 맹점이지 않는가? 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리력을 통한 투쟁의 우위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말씀하신 바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87년 체제 성립 전후에 갖추어졌던 급진적인 분위기와 조직력을 이야기 하시는 거라면 (실제로 통계? 등에 따르면 87년 이후 노조 조직력이 강해진 건 3년 정도라는 연구자료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서도...) 그 또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전투적 현장성을 보존한채로 권위주의적인 속성을 해체하고 보다 민주적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하셨습니다만, 그 전투적 현장성이 바로 적과 싸우기 위한 강고한 노동자 군대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직적 구조를 가진 유사군대의 형태를 벗어나면 실현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은 보다 다른 방식들, 보다 다양한 시도들, 다른 논의들과의 조화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혁명당 당원께서 댓글로 말씀하신 방식이나, 깔뱅이 님께서 말씀하시는 전투적 현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가부장적, 혹은 비민주적 80년대식 운동방식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고의 회로판이 가져다주는 운동방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혁명당 당원께서 쓰신 글이 내포하는 가부장성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남사회의 운동세력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과는 달리 (선배 세대의 노력과 투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국의 전투적 운동성은 그렇게 전투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외국의 경우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이 태반입니다.
 
노조운동이 강성이었다는 시기에도, 또 학생대오가 전투조직을 운영하는 시기에도 우리 믿음과는 달리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방식이라는 것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았고, 그 유산은 21세기 운동세력이 많은 부분 여전히 떠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말씀하신 바대로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려고 하는가?" 라는 말씀은, 노동자혁명당의 당원께서 올리신 포스팅에 댓글을 단 많은 분들과, 트랙백을 날렸던 분들 또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전투적 운동성의 계승 및 구현'이 아니라 '전투적 운동성이라는 개념은 문제가 없는 개념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바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제가 특별히 "지랄하거나 낙인 찍으려고 하거나 빈정거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표현하기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큰 따옴표로 인용한 말씀이 문제제기를 했던 많은 분들이 소통의 의사는 없고, 지랄하거나, 낙인 찍는다고 보시거나, 빈정거리는 것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받아들이시고 논지를 이어가시는 거라면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 번 고민을 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드시 목표를 향해 통일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적 다원주의에 의해서 (소위 말하는 주요모순/부차모순의 구분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향을 고민해볼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소통과 고민을 모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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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담배가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모 블로그 에 올라온 글이 논란이 되어 본문에도 이미 몇 차례의 댓글이 올라왔고, 몇몇 분들이 트랙백과 포스팅으로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담배가 화두가 되어 있는 것 같다.

 

해당 포스팅 에 대한 반응에 대해 지인이신 한 분이 포스팅을 두 차례 쓰셨는데 관련해서 잠깐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담배와 흡연이 화두가 되고 있는 사안이니 잠시만 내 경우의 이야기를 하겠다. 지지난주 희망시국대회와 4차희망버스 과정에서 두 차례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죄송하지만 담배 꺼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개인에게 부탁한 거였고, 두 번째는 독립문 방면으로 진입하기 직전 서대문 부근에 대오 전체가 잠시 멈추었을 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담배 피우실 분들은 대오 밖으로 나가서 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이야기 한 거였다.

 

"끽연자가 니코틴 작용으로 얻을 심리적 위안을 위해서, 타르 등의 유독성물질이 섞인 담배연기가 내 폐포꽈리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건강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반대한다" 라고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끽연을 취향의 문제로 보기엔 담배는 명백히 유해물질이고, 원치 않는 사람들이 끽연자로 인해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출의 자유나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 등과 비교하기엔 범주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사족이지만, 과태료 물도록 고발을 하라시는데 그럼 희망시국대회 과정에서 시청광장 안에서 담배피시던 참가자 분들 사진을 다 찍어서 고발하라는 말인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담배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정말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해당 포스팅을 쓰신 분과 지인 분께서는 지금 많은 블로거들이 (아마 포스팅 하신 당사자와 지인 분, 그리고 문제제기를 하는 많은 분들은 내 생각에는 다들 활동가 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라고 추측한다.) 담배를 피우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이 논의의 핵심은 명백히 해당 포스팅 의 논지와 사유방식에 대해 "문제가 있지 않는가?"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해당 포스팅 에서 가부장적 사고의 회로판으로 운동(방향)에 대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본다. 위 포스팅 에서 전개된 (물론 나는 직접적으로 제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행간을 통해서라도 제기된) 가치판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나의 생각이고, 혹시 해당 포스팅을 쓰신 분과 지인 분께서 여전히 집회시위 현장에서 담배를 피는 문제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트랙백에, 댓글에 며칠 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 해당 블로그는  특정조직의 공식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곳 으로 (아마도 다수가) 추정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조금 더 공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여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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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답은 없는겁니까?

가칭)노동자혁명당(추)님의 [요즘 집회문화에 대한 소감] 에 관련된 글.

 

(가칭) 노동자혁명당 추진위원회에서 일전에 블로그에 올린 집회문화에 대한 견해에 대해 나를 비롯해서 일단의 블로거들이 트랙백과 댓글로 우려와 문제제기를 표현했다.

 

지난 4차 희망버스에서 역시 노동자혁명당 추진위원회에서 나눠준 유인물을 받아서 읽었는데, 유인물 내용보다도 조직 이름을 보자 또 그 포스팅이 생각나서 지인들과 함께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댓글과 트랙백으로 의견을 표현하고 있으니까 더 이상 이야기 하는 건 그만두겠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은, (가칭) 노동자혁명당은 문제의 [요즘 집회문화에 대한 소감] 포스팅 이후에도 계속 다른 포스팅을 올리는데 왜 댓글이든, 해명 or 반박 포스팅이든 리액션이 없는가?

 

하다못해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라면, 글쓴이에게 작성한 포스팅에 이런 문제제기들이 있는데 어찌 생각하냐? 하고 의견이라도 좀 전해주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5차 희망버스가 없길 바라지만, 혹여나 그 안에 (가칭)노동자혁명당의 리액션이 없으면 이 문제에 대해 내 견해를 찍어서 유인물 돌릴까 생각중이다.

 

덧) 이런 문제나 의견이 제시될 때 마다 쉬쉬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댓글을 접해서 고민하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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