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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15
    hknepal radio
    kabita & anju
  2. 2005/06/14
    ^^mbc drama (공회국)^^
    kabita & anju
  3. 2005/06/14
    <^^노동의 소리^^>
    kabita & anju
  4. 2005/06/14
    ^^노동자 미주주의^^
    kabita & anju
  5. 2005/06/13
    바라
    kabita & anju
  6. 2005/06/13
    tv & radio song
    kabita & anju
  7. 2005/06/13
    TOP WORLD NEWS
    kabita & anju
  8. 2005/06/13
    청주 사건
    kabita & anju
  9. 2005/06/12
    카튼
    kabita & anju
  10. 2005/06/12
    제 가슴에 광고 하세요
    kabita & anju

hknepal radio



♪ hknepal.com ♪  http://hknepal.com

 



♪ nepali song ♪ke ramro fulbari  marfaganwaima

 



♪ hindi song ♪

♪ 2005-06.07명동 성당 에서 이주 노동자 기자 회관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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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drama (공회국)^^

“5·18광주 저럴수가…” 시청자 충격

  지난주말 밤 MBC TV에선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내용이라고는

 밑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게다가 이 장면들은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에 더욱 참혹했다.

11, 12일 이틀에 걸쳐 ‘제5공화국’(극본 유정수, 연출 임태우)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10여년 전 ‘모래 시계’에서 5·18 관련 내용이 다뤄진 적은 있으나, 그때의 광주는 엇갈린 세 남녀의 운명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역사적 배경’에 가까웠다. ‘꽃잎’ 등의

영화에서도 5·18은 생존자들의 회상 속에서 은유적으로 다뤄졌다.

 그러므로 영화, 드라마를 막론하고 1980년 광주의 상황을 이렇게

생생히 다룬 것은 ‘제5공화국’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방영분에선 5·18이 발발한 경위와 이 지역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총검으로 시민을 학살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보여졌다.

군인들은 곤봉으로 시민들을 사정없이 때리고, 팬티만 입힌 채

동물처럼 다룬다. 심지어 총검으로 비무장 시민을 찌르기까지 했다.

 전남대 부속 병원엔 코가 깨지고 머리가 터진 시민들이 실려와

전시를 방불케 했다. 카메라는 피칠갑이 된 병원 복도를 훑어가며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제5공화국’은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출동한

 공수부대원의 모습, 사태가 커질 것을 짐작하면서도 상관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을 출동시킬 수밖에 없어 고민하는 하급 지휘관의

모습도 비췄다.

  결국 참극의 책임은 신군부 핵심 인사들에게 있음을 보여줬다.

 반면 광주 시민들이 폭행 당하는 모습에 ‘감정’이 실려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연출자가 ‘냉정한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다

보니, 5·18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시청자 게시판의 송애랑씨는 방영 직후 “너무 참혹해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고통 받은 사람들이 치유돼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시청자들은 전두환정권을 옹호하며 “왜 지나간 일을 문제 삼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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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소리^^>



♪ labor vo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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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미주주의^^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자본가의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다.

    정해놓은 절차에 따라 다수로 결정한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억압할 수도 있다.

'     나는 늘 다수에게 억압당하면서 산다.'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도 자본가의 그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수적 우위로 설득할 수 없는 것은 존중해야 한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절대" 수적 우위로 설득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자본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마찬가지다.

            설득할 수 없는 것을 설득하려 하지 말라.

             노동자들에게는 단 한 사람이 남아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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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야릇한 선택의 괴로움
양철모의 ‘이등병’에 부쳐

김 우 룡 / 의미의 경쟁, 사진의 문법 역자

나는 우리 이름들이 가진 항렬이라는 근엄한 습속을 안다. 하지만 양철모는 양철도 되고 철모도 되는 약간 희한한 이름이다. 그렇기는 하나 서양 이름 부시(Bush)나 부쳐(Butcher)처럼의 희한함이나 타나카(田中)나 키노시타(木下)같은 일본 이름들의 희한함보다는 양철모의 희한함은 함의적이다. 세상에 양철로 된 철모야 장난감 아니고야 있으리요마는 양철모에는 재료와 제품이 함께 들어있다. 좀 어렵게 말하면 질료와 형상이 함께 섞인 이름이다. 섞인 것에는 또 다른 것도 있다. 서양말에서 주제는 subject이다. 어떤 작업이나 생각의 축약된 줄거리 혹은 표현하고자 하는 요점을 이를 때 이 말이 쓰인다. 그러나 종종 이 말은 작업의 질료가 되는 대상을 지시하기도 하는데, 소위 object와 같은 뜻으로 씌어져서 까다로운 독해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생짜의 대상이 object라면 작가의 선택이 가미된 대상을 subject라 변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양철모라는 이름에는 이런 약간은 깊고, 야릇하고, 헷갈리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 무슨 야릇한 시대의 야릇한 군대란 말인가. 한 쪽에선 인민을 굶어 죽이는 사회주의가 있고 다른 한 쪽은 민족과는 무관한 중립의 세계화가 있다(여기서의 중립은 방탕과 통한다). 선군(先軍) 정치의 이상한 사회주의는 민족을 내세우면서 그 민족을 볼모로 자신의 독재를 연명하고, 이제 좀 살게 되었다는 다른 한 쪽 자본주의는 감질나게 주머니 돈만 보여주면서 목적지 없는 유혹을 계속하고 있다. 단재 선생이 인용하던 ‘콩대를 태워 콩을 볶는다’는 옛 중국의 싯귀는 오늘도 이 땅에서 현실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군대와 군인의 일상은 우리에게 예술적 중립이나 탐미적 미학으로 들여다보는 행위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 하기사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어느 일인들 그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요는 생짜가 아닌 것을 생짜의 대상만이라고 우김에서 아름다움이 핀다고 믿는 우리 무연한 예술적 아취의 고고함에는 물질과 자본이 무한 성장하리라는 장밋빛 기대가 최면의 난향처럼 서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군대의 일을 대상으로 카메라를 들이댈 때, 적어도 이 땅의 경우, 이 땅의 군대가 가지는 야릇함에 대한 ‘선택’임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겁먹은 신병들의 모습이 젤라틴을 입힌 은가루에 고정되어 있다. 하루아침에 개인에서 부분품으로 전환된 젊은이들은 강철같은 이 땅의 야릇함에 대해 군소리를 할 수 없다. 유예된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거대하고 동일한 체념이 개인의 상상력을 평균화하는 익명성으로 체화되는 시간들이다. 그 초입에 선 이등병들을 이제는 고참이 되어 출구에 서있는사람이 카메라라는 도구로 고정시키고 있다. 하잘 것 없는 시간에서의 허무한 서열은 권력이 되어 사람들을 얼어 붙이고 있다. 대상들의 얼굴은 한결같다. 한결같음에는 언제나 파시즘의 냄새가 묻어난다. 위압 때문에 상상력을 팔아치워야 하는 세상은 생각하기에도 끔찍하다. 열아홉 장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선택’에서 우리는 이런 끔찍함을 읽어낼 수도 있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내장을 쏙 뽑아내고 생짜 그대로의 대상을 미라처럼 고정시킬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가혹한 요구일 것이다. 무연해지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어찌 보면 작가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은 선(禪)과 닮았을지 모른다. 마르셀 뒤샹에서 이미 그 전조가 보여진 작가의 부재 증명은 대상 자체에 대한 명징한 이해를 통해 인간 조건에 대한 이해에 보다 근접할 때 유의하다. 그것은 자아의 끈을 놓음으로 궁극에 도달하려는 선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없을지 모른다. 짐짓 없어진 듯한 작가의 존재는 사냥감을 노리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 오히려 더 큰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있기 전의 사진이야말로 그 작업의 대상인 제재(題材, subject matter)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시, 사진에 있어 포스트모던을 연 것처럼 여겨지는 에드워드 루샤의 말처럼, ‘사진은 그 자체로는 내게 아무 의미도 없고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주유소들’인지도 모른다. 유형학 역시 같은 궤에 있다. 사진이 그것 자체로서 무화(無化)될 때, 사진의 의미가 생겨난다는 이 역설은 지금의 우리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가. 드물고 고담한 선의 경지처럼 어렵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이 작업에 서양의 유형학을 끌어들여야 하는 인용적 해석의 괴로움은 이 작업 뿐 아니라 우리 사진의 뿌리 깊은 염병과 잇대어있다. 베끼기 만에도 바쁘고 베끼기 만에도 야무지지 못하다. 만약 저들의 원안적 실천을 있게 한 동기에 대한 학습마저 부실하다면, 그리하여 드러난 표면의 모사에만 그친다면, 우리의 이 이상한 전용 작업(appropriation)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변명될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병장이 되어 제대를 앞둔 작가는 이제 갓 입대한 이등병들을 자신 앞에 세우고 카메라를 견준다.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짐승들 같다. 슬프고 또 겁에 질린 눈들이다. 삶의 긴 시간에서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썩둑 잘려진 한 토막을 이들은 번호 매긴 벽돌로 다시 나누어 낡은 막사 앞 무채색의 그늘에 가지런히 쌓아두었다. 어둠과 어리석음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조금도 앞으로 나갈 줄 모르고 제 자리에서 맴도는 세상의 이쪽 바깥. 그러나 눈감고 입 막고, 갇힌 짐승의 습관을 익히기만 하면 가장 착실히 흐르는 세월이 있는 곳. 가학과 피학이 대물림되는 곳. 논리가 허락되지 않는 복종만의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전형(archetype)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에 우리는 선뜻 이 사진들을 건넬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이 작가는 이 작업의 분깃만큼 성공한 것이다. 이제 이렇게 맺어보자. 관객인 당신은 이 작업에 어떤 반응으로 참여할 것인가고. 당신은 어떤 선택으로 우리의 이 야릇함을 되받아칠 것인가고.

양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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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radio song



♪ nepali s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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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사건



♪ 살린사건 ♪http://playlist.yahoo.co.kr/makeplaylist.php?cp=sbs&id=2005061014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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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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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슴에 광고 하세요


  한 미국여성이 자신의 가슴을 경매에 내놓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더 썬紙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화제의 주인공은 미국 버지니아주

출신의 캣 캠프(25)씨로 조만간 영국 서머싯주(州)의 글래스턴베리에서

열릴 음악 축제에서 자신의 가슴을 광고판으로 쓰게 해주겠다며

세계 최대의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 자신의 가슴을 경매로 내놓았다.
   현재 영국 북서부 랭커셔주(州)에 있는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사진술을 공부중인 그녀는 "작년 연말 파티에서 상의는 입지

않고 분홍색 치마만을 입은 채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남자친구가

 내 가슴에 꽃을 그려주고 등에는 재미있는 문구를 써 주었었다"며 "이번

 아이디어는 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실시한 유방암검사에서 혹이 발견돼 한동안 암 공포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어 유방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가슴을 경매에 내놓은 이유다.
  하지만 그녀가 경매를 하게 된 주된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 때문이다.

 금년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현재 생활비가 다 떨어져 용돈이 필요한

상태였던 것.
  그러나 경매에서 얻은 낙찰금의 10%는 유방암 캠페인협회에 기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계속 진행 중인 경매에서 가구점을 비롯한 수많은 입찰자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 중 한 남성은 캣의 가슴 광고판을 통해 자신의 여자친구

에게 프로포즈 하고 싶어 입찰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캣의 약혼자인 조(37)씨도 캣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경매사이트에

내놓았지만 겨우 한명의 입찰자가 나타나 약혼녀인 캣과는 상반되는 웃지

못할 결과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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