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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사진 이야기^^

  ^^저 번쩨 이야기^^


부평공장 출근저지투쟁에서 만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분노
 (Click)

 

^^두번째 이야기^^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정리해고 반대투쟁  (Click)

2001년 2월 16일, 1700여명의 정리해고 통지에 뒤이은 야만적인 공권력 투입. 살기 위해 일어선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과 어깨를 같이 하는 사람들... 지금 부평은 싸우고 있습니다.

 

 

^^ 세번째 이야기 ^^

쇼 밀레니엄의 뒤안  (Click)

Millenium을 맞이하기에 모두들 분주했다.
Show는 성대하고 화려했다. 지나칠 정도로...
한해가 끝날 무렵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가 쓴 글을 보았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노벨 평화상에는 평화가 없다.
 먼저가신 열사들이 무덤에서 어이없어 웃겠다.' 라고..

지난 6년간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이 작업을 했다.
우울했다.
그때의 사진들이 지금도 유효한 것을 보면서 6년 전부터 작년,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요구는 변하지 않았고 우리의 현실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았다.
최루탄 자욱하던 거리와 깨진 돌맹이들. 우리는 지금도 원직복직을 향한 투쟁을 하고 있으며 철거촌의 빈민들은 그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거리엔 노숙자들이 더 늘어가고 미군들은 여전히 우리의 땅을 짓밟고 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위대한 자(?)들은 일하지 않고서도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우리의 함성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더 멀리 퍼져 마침내 해방의 그날이 오게 만들 것이다. "The Perfect day"를 위하여... 


 


^^네 이야기^^

마침내 신새벽은 오리라!
- 2000 한국통신 총파업  -->  (Click)  *재편집판

오랜만에 밤 하늘의 별을 보며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힘들지 않다던 한 여성 조합원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통신 조합원들은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비닐 하나 덮고 꿋꿋이 농성장을 지키며 열심히 투쟁하였습니다. 이번 명동성당에서의 4박 5일간의 총파업투쟁은 정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정책과 공기업의 민영화, 해외매각방침에 조합원들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전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척박하고 어려운 우리 노동현실에 투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총파업투쟁이 끝났지만 많은 아쉬움도 남겼습니다.
이제 각자의 작업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얼어붙은 땅 위에서 열심히 투쟁하는 한통계약직 동지들 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의 동지들과 연대할 것을 믿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따듯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동지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함께 하는 한 마침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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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건설^^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정치 조류들 간의 연합체(공동전선)를 건설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은 광범한 연합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연합체의 장점은 단일한 또는 제한된 대의를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광범하게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다. 반전운동은 평화운동가, 종교운동가, NGO 활동가, 좌파민족주의자, 노조원, 청년·학생, 환경운동가, 여성주의자, 이주노동자, 사회주의자 등등을 결속시키고 있다.

대안세계화운동도 비슷하다.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6월항쟁 등 반독재 운동과 1996년 말∼1997년 초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등에는 광범하고 상이한 정치세력들이 단일한 요구를 내놓고 참가해 연합했다.
   광범한 운동의 강점은 이러한 다양성이다. 운동의 이러한 다양성을 상징하는 사람들, 가령 평화주의자, 민족주의자, 비(非)노동자, 노무현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 등과 함께하지 못하겠다며 반전운동에 종파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대중이 그 운동의 결속을 염원하는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단결 염원이 강력할 때 일부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정치조직이 운동에 대해 진정한 관심도 없으면서 운동을 지배하고는 자신의 의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실제로 그런 단체들이 있다. 개량주의자들도 흔히 운동의 급진적 에너지를 약화시키곤 한다. 그런 사람들, 그런 정치조직들에 대해 많은 활동가들과 많은 참여자들이 건강한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전술·전략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초기에 단결을 이룬 일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운동은 전개돼 감에 따라 특정 국면마다 고비를 맞게 된다. 더구나 운동이 권력자들의 이익에 위협이 될 만큼 발전하면 우익과 국가의 세력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고비 고비마다 주요 활동가들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음 스텝은 무엇일지,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법은 무엇일지 등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안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이 그랬다. 2001년 7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반대 시위 참가자 카를로 줄리아니가 경찰 발포로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맞선 항쟁에서 이탈리아 재건공산당(리폰다치오네)이 한 구실은 결정적이었다. 리폰다치오네의 호소에 응답해 30만 명이 제노바로 운집했고 전국적인 하루 총파업도 벌어졌다.

또한, 9·11 이후 대안세계화운동은 반전운동으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했다. 2002년 11월 유럽사회포럼 직후 대안세계화운동의 우파 베르나르 카쌍은 <신좌파평론> 지에서 영국인 참가자들과 이탈리아인 참가자들이 너무 반전을 강조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반전운동으로의 전환이 옳았음은 2003년 이라크 공격 반대 2·15세계행동 이후 전개된 상황이 입증했다.
  그러나 대안세계화운동 안에서 좌우 양극화 현상이 전보다 훨씬 첨예하게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 아탁(ATTAC;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이 운동 내부의 개량주의 경향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떠올랐다. 아탁의 지도자인 베르나르 카쌍 등 우파쪽 주장의 요지는 좌파가 운동보다 당(정당)을 우선시하며 당의 이익을 위해 운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율주의 경향은 우파를 거들고 있다).
  하지만 아탁이나 디소베디엔티(대표적인 자율주의자들) 같은 단체들도 당이다. ‘당’ 하면 뭔가 거창한 것,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적 정당, 즉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같은 선출된 기구를 갖추고 명확한 구조를 갖춘 조직을 생각하는데, 맑스주의적 의미로는 꼭 그렇지 않다. 사회 변화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모인 일단의 사람들이면 그게 바로 당이다.
  그 규모가 매우 작다면 적어도 당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병아리가 참새나 독수리가 아니라 닭인 것처럼, 당의 맹아와 당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당은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생겨나게 마련인, 운동의 결과물이다. 운동이 전개돼 감에 따라 특정 쟁점들, 특정 문제들도 함께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놓고 상이한 분파들이 형성되고, 이러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다 보면 비슷한 고비가 닥칠 때 해결책이 무엇일지를 놓고 대강 큰 구도가 형성된다. 이렇게 해서 당이 형성된다.
  (이 당들은 자신들이 참조할 만한 역사적 선례와 대강의 이론적 전범 같은 게 있음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준거로 하기 시작한다. 가령 일찍이 1980년대 후반에 친북 공산당이라 할 만한 조류와 친소 공산당이라 할 만한 조류로 남한 좌파 운동은 양분됐다. 후자는 오늘날 세분화해, 자율주의를 포함한 매우 다기한 경향을 띠고 있다.)
  당이 운동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당 조직 문제와 운동의 발전 문제를 서로 대립시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운동이 내부 위기를 극복하고 진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결정적 순간에는 당이 필요하다.
   운동 탄생기에는 단결이 자생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계속해서 단결이 자생적일 수는 없다. 단결은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고, 투쟁해서 얻는 것이다. 단결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단결은 운동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모종의 당이, 모종의 정치적 입장이 운동의 주요 쟁점들과 대결해 해결책을 내놓음으로써 운동의 미래 결속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은 불일치와 실패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사회 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당이라면 운동을 찬탈하거나 운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사회 변혁을 향해 나아가도록 운동과 연계를 갖고 끊임없이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과 운동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당이라면 말이다.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당을 건설하는 것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러므로 단지 광범한 운동들의 건설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운동 건설에만 매몰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사례는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으로 줄임)이다. 전에 말했듯이, 박성인 등 이 단체의 창립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탁월한 활동가들이다. 그들이 거의 20년에 걸쳐 내린 노동조합 뿌리 더하기 친(親)노힘 맑스주의 지식인들의 존재는 노힘이 노동계급 내에서 민주노동당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게 해주었다.
  노힘 회원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는 다함께의 민주노총 조합원 수의 갑절은 좋이 넘을 것이다. 더구나 그 노조원들의 활동가로서 의 비중을 비교하면 노힘이 다함께보다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더 중요한 세력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회변혁적 선전·선동에서 시작해 노동조합 속으로 뿌리를 내려간다는 전략을 추구하는 다함께와 달리, 노힘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당을 건설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덕분에 노힘은 사회적 기반이 비교적 안정돼 있지만, 그 기반의 정치적 소극성과 회피성의 영향을 받아 이데올로기가 모호하다.(다함께는 이데올로기가 예각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기반은 조직노동자보다 청년·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더 많아 불안정하고 들뜬 상태라 할 수 있다.)

  노힘의 범좌파 전략이 지닌 문제점도 있다. 범좌파 결집을 통한 좌파 노조 지도부 세우기가 핵심인 이 전략은 1997년까지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다. 1998년 이후 주로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때문에 노조 상근간부층의 일부인 좌파 집행부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이 전략은 개량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함이 드러나고 있다.
  노힘이 노조 운동과 노조 내 좌파 네트워크 건설에 주력해 오는 동안 노힘의 이데올로기는 온갖 정치적 전통들의 무정형의 합성물이 돼 있다. 그 전통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힘에게 가해진 다양한 압력들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둘째 사례는 프랑스의 LCR(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이다. LCR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부의 운동 침체기 동안 특정 작업장이나 노조 또는 캠페인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의 연합체로서 살아남았다. 이는 일반적 맑스주의 정치에 기초한 선전을 일상 활동으로 삼음으로써 침체기를 살아남은 영국 SWP(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전략과는 매우 다른 생존 전략이었다.

LCR은 각 부문에 튼튼히 뿌리내린 활동가들을 많이 확보하게 됐다. 그 덕분에 LCR은 더 큰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형성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 이후 운동의 고양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예컨대 LCR은 아탁의 부상에도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러나 LCR은 연합체이기 때문에 정치적 결속력이 약하고 정치조직으로서 개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컨대 LCR은 대선후보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프랑스 청년들의 반자본주의 정서를 훌륭하게 대변함으로써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매우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당시 사회당 총리 조스팽이 탈락하고 2차 투표에서 주류 우파인 시라크와 파시스트인 르펜이 맞붙게 되자 LCR의 광범한 지도부는 시라크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함으로써 개량주의의 압력에 굴복했다.
  아탁은 원래 1988년에 창립했는데, 아탁에서 활동하고 있는 LCR 멤버들은 2002년 가을이 돼서야 처음으로 총회를 열었다. 이토록 결속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LCR은 아탁 내 우파가 점점 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때마다 그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LCR은 시라크의 우파 정부가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머리 스카프) 착용을 금지했을 때도 개량주의자들의 압력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길을 택했다.
  셋째 사례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이다. 재건공산당은 199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분리해 나온 당으로서 처음에는 약간 스탈린주의적 경향을 띠었었다. 공식적인 당 강령만 놓고 본다면 재건공산당은 소규모 좌파개량주의 정당이다. 이탈리아 전국에서 당의 득표율은 5퍼센트 정도이다.
  하지만 1998년부터 재건공산당은 명백히 좌경해 왔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노바에서 재건공산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또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재건공산당의 입장은 매우 단호했고 반전 시위에도 많은 사람을 참가시켰다.
  재건공산당 지도자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당을 운동에 개방해야 하고 당이 운동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게다가 그는 매우 급진적으로 말한다. 그는 체 게바라와 레닌을 인용하곤 하는데, 이는 결코 오늘날 서유럽의 중도좌파 정치인들이 통상 쓰는 언어가 아니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베르티노티 당 개념의 결정적 문제점은 당과 운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이 곧 운동이며 운동이 곧 당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당 개념인 동시에, 자율주의의 당 개념이기도 하다. 카우츠키와 스탈린,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모두 당과 계급을 동일시했다. 그들에게 “당은 계급을 대표한다.”(1903년 레닌이 멘셰비키의 당 개념을 비판적으로 요약한 말)
   베르티노티의 경우 스탈린주의적 가정에 따라, 즉 당이 운동을 지배해야 한다는 뜻에서 당과 운동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그는 공산당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당과 운동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재건공산당은 운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이 없다. 자율주의도 당과 운동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전략이 없다.
  이렇게 전략이 없다 보니 올해 초 리폰다치오네는 DS(민주좌파당 또는 좌파민주당) 주도의 ‘올리브나무 연립’ 정부에 들어간다는 전략을 새로 세웠다.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DS는 옛 공산당의 후신으로, 지난 10년 동안 ‘제3의 길’을 추구해 왔다.
  리폰다치오네의 유턴이 최종 결정되던 지난 3월 초 당대회에는 자율주의 그룹 디소베디엔티의 리더인 프란체스코 카루조도 참석했다. 전날 그는 리폰다치오네의 중도좌파 정부 입각 계획에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려면 먼저 당과 운동을 구별해야 한다.
  당과 운동의 구별이 당과 운동의 분리를 뜻하는 건 아니다. 둘의 관계는 명령이 아닌 대화이다. 비유하자면, 공장 직반장과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라 파업위원회 동지들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하기를, 군사 전략·전술은 전선에서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사병들이 처음 창안한 것으로, 훌륭한 지휘관은 그것을 채택해 전 부대로, 전군으로 보편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이 없다면 이렇게 운동 속에서 상호 학습과 상호 교육을 포함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 소수가 다수를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것, 사람들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 주고 투쟁성을 고양하는 것은 중요하다.
  운동과 공동전선들을 건설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운동 내부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야 한다. 추상적이고 종파적인 방식으로 투쟁해서는 안 된다. 투쟁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쟁점들을 수렴해야 한다.
  당을 건설하는 것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긴밀히 연관돼 있다. 당을 건설하려면 운동에 무조건 뛰어들어야 하며, 운동 안에서 맑스주의 사상을 자신 있게 주장하기 위해 우리 대열을 정비해야 한다.
   요컨대 노동계급의 해방은 그 자신의 일이라는 것, 당이 계급을 대행하지 않는다는 것, 당은 그것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일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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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통으로 만든 장난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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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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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nepal radio



♪ hknepal.com ♪  http://hknepal.com

 



♪ nepali song ♪ke ramro fulbari  marfaganwaima

 



♪ hindi song ♪

♪ 2005-06.07명동 성당 에서 이주 노동자 기자 회관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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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drama (공회국)^^

“5·18광주 저럴수가…” 시청자 충격

  지난주말 밤 MBC TV에선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내용이라고는

 밑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게다가 이 장면들은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에 더욱 참혹했다.

11, 12일 이틀에 걸쳐 ‘제5공화국’(극본 유정수, 연출 임태우)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을 방영했다. 10여년 전 ‘모래 시계’에서 5·18 관련 내용이 다뤄진 적은 있으나, 그때의 광주는 엇갈린 세 남녀의 운명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역사적 배경’에 가까웠다. ‘꽃잎’ 등의

영화에서도 5·18은 생존자들의 회상 속에서 은유적으로 다뤄졌다.

 그러므로 영화, 드라마를 막론하고 1980년 광주의 상황을 이렇게

생생히 다룬 것은 ‘제5공화국’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방영분에선 5·18이 발발한 경위와 이 지역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총검으로 시민을 학살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보여졌다.

군인들은 곤봉으로 시민들을 사정없이 때리고, 팬티만 입힌 채

동물처럼 다룬다. 심지어 총검으로 비무장 시민을 찌르기까지 했다.

 전남대 부속 병원엔 코가 깨지고 머리가 터진 시민들이 실려와

전시를 방불케 했다. 카메라는 피칠갑이 된 병원 복도를 훑어가며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제5공화국’은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출동한

 공수부대원의 모습, 사태가 커질 것을 짐작하면서도 상관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을 출동시킬 수밖에 없어 고민하는 하급 지휘관의

모습도 비췄다.

  결국 참극의 책임은 신군부 핵심 인사들에게 있음을 보여줬다.

 반면 광주 시민들이 폭행 당하는 모습에 ‘감정’이 실려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연출자가 ‘냉정한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다

보니, 5·18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시청자 게시판의 송애랑씨는 방영 직후 “너무 참혹해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고통 받은 사람들이 치유돼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시청자들은 전두환정권을 옹호하며 “왜 지나간 일을 문제 삼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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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소리^^>



♪ labor vo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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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미주주의^^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는 자본가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자본가의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다.

    정해놓은 절차에 따라 다수로 결정한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억압할 수도 있다.

'     나는 늘 다수에게 억압당하면서 산다.'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도 자본가의 그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수적 우위로 설득할 수 없는 것은 존중해야 한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절대" 수적 우위로 설득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자본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마찬가지다.

            설득할 수 없는 것을 설득하려 하지 말라.

             노동자들에게는 단 한 사람이 남아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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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야릇한 선택의 괴로움
양철모의 ‘이등병’에 부쳐

김 우 룡 / 의미의 경쟁, 사진의 문법 역자

나는 우리 이름들이 가진 항렬이라는 근엄한 습속을 안다. 하지만 양철모는 양철도 되고 철모도 되는 약간 희한한 이름이다. 그렇기는 하나 서양 이름 부시(Bush)나 부쳐(Butcher)처럼의 희한함이나 타나카(田中)나 키노시타(木下)같은 일본 이름들의 희한함보다는 양철모의 희한함은 함의적이다. 세상에 양철로 된 철모야 장난감 아니고야 있으리요마는 양철모에는 재료와 제품이 함께 들어있다. 좀 어렵게 말하면 질료와 형상이 함께 섞인 이름이다. 섞인 것에는 또 다른 것도 있다. 서양말에서 주제는 subject이다. 어떤 작업이나 생각의 축약된 줄거리 혹은 표현하고자 하는 요점을 이를 때 이 말이 쓰인다. 그러나 종종 이 말은 작업의 질료가 되는 대상을 지시하기도 하는데, 소위 object와 같은 뜻으로 씌어져서 까다로운 독해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생짜의 대상이 object라면 작가의 선택이 가미된 대상을 subject라 변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양철모라는 이름에는 이런 약간은 깊고, 야릇하고, 헷갈리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 무슨 야릇한 시대의 야릇한 군대란 말인가. 한 쪽에선 인민을 굶어 죽이는 사회주의가 있고 다른 한 쪽은 민족과는 무관한 중립의 세계화가 있다(여기서의 중립은 방탕과 통한다). 선군(先軍) 정치의 이상한 사회주의는 민족을 내세우면서 그 민족을 볼모로 자신의 독재를 연명하고, 이제 좀 살게 되었다는 다른 한 쪽 자본주의는 감질나게 주머니 돈만 보여주면서 목적지 없는 유혹을 계속하고 있다. 단재 선생이 인용하던 ‘콩대를 태워 콩을 볶는다’는 옛 중국의 싯귀는 오늘도 이 땅에서 현실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군대와 군인의 일상은 우리에게 예술적 중립이나 탐미적 미학으로 들여다보는 행위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 하기사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어느 일인들 그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요는 생짜가 아닌 것을 생짜의 대상만이라고 우김에서 아름다움이 핀다고 믿는 우리 무연한 예술적 아취의 고고함에는 물질과 자본이 무한 성장하리라는 장밋빛 기대가 최면의 난향처럼 서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군대의 일을 대상으로 카메라를 들이댈 때, 적어도 이 땅의 경우, 이 땅의 군대가 가지는 야릇함에 대한 ‘선택’임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겁먹은 신병들의 모습이 젤라틴을 입힌 은가루에 고정되어 있다. 하루아침에 개인에서 부분품으로 전환된 젊은이들은 강철같은 이 땅의 야릇함에 대해 군소리를 할 수 없다. 유예된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거대하고 동일한 체념이 개인의 상상력을 평균화하는 익명성으로 체화되는 시간들이다. 그 초입에 선 이등병들을 이제는 고참이 되어 출구에 서있는사람이 카메라라는 도구로 고정시키고 있다. 하잘 것 없는 시간에서의 허무한 서열은 권력이 되어 사람들을 얼어 붙이고 있다. 대상들의 얼굴은 한결같다. 한결같음에는 언제나 파시즘의 냄새가 묻어난다. 위압 때문에 상상력을 팔아치워야 하는 세상은 생각하기에도 끔찍하다. 열아홉 장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선택’에서 우리는 이런 끔찍함을 읽어낼 수도 있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내장을 쏙 뽑아내고 생짜 그대로의 대상을 미라처럼 고정시킬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가혹한 요구일 것이다. 무연해지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어찌 보면 작가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은 선(禪)과 닮았을지 모른다. 마르셀 뒤샹에서 이미 그 전조가 보여진 작가의 부재 증명은 대상 자체에 대한 명징한 이해를 통해 인간 조건에 대한 이해에 보다 근접할 때 유의하다. 그것은 자아의 끈을 놓음으로 궁극에 도달하려는 선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없을지 모른다. 짐짓 없어진 듯한 작가의 존재는 사냥감을 노리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 오히려 더 큰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있기 전의 사진이야말로 그 작업의 대상인 제재(題材, subject matter)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시, 사진에 있어 포스트모던을 연 것처럼 여겨지는 에드워드 루샤의 말처럼, ‘사진은 그 자체로는 내게 아무 의미도 없고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주유소들’인지도 모른다. 유형학 역시 같은 궤에 있다. 사진이 그것 자체로서 무화(無化)될 때, 사진의 의미가 생겨난다는 이 역설은 지금의 우리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가. 드물고 고담한 선의 경지처럼 어렵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이 작업에 서양의 유형학을 끌어들여야 하는 인용적 해석의 괴로움은 이 작업 뿐 아니라 우리 사진의 뿌리 깊은 염병과 잇대어있다. 베끼기 만에도 바쁘고 베끼기 만에도 야무지지 못하다. 만약 저들의 원안적 실천을 있게 한 동기에 대한 학습마저 부실하다면, 그리하여 드러난 표면의 모사에만 그친다면, 우리의 이 이상한 전용 작업(appropriation)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변명될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병장이 되어 제대를 앞둔 작가는 이제 갓 입대한 이등병들을 자신 앞에 세우고 카메라를 견준다.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짐승들 같다. 슬프고 또 겁에 질린 눈들이다. 삶의 긴 시간에서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썩둑 잘려진 한 토막을 이들은 번호 매긴 벽돌로 다시 나누어 낡은 막사 앞 무채색의 그늘에 가지런히 쌓아두었다. 어둠과 어리석음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조금도 앞으로 나갈 줄 모르고 제 자리에서 맴도는 세상의 이쪽 바깥. 그러나 눈감고 입 막고, 갇힌 짐승의 습관을 익히기만 하면 가장 착실히 흐르는 세월이 있는 곳. 가학과 피학이 대물림되는 곳. 논리가 허락되지 않는 복종만의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전형(archetype)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에 우리는 선뜻 이 사진들을 건넬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이 작가는 이 작업의 분깃만큼 성공한 것이다. 이제 이렇게 맺어보자. 관객인 당신은 이 작업에 어떤 반응으로 참여할 것인가고. 당신은 어떤 선택으로 우리의 이 야릇함을 되받아칠 것인가고.

양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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