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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할 의지가 있는 자, 반성을 요구만 하는 자 혹은 반성할 생각은 여전히 없는 자

순전히 장작을 땔감으로 때서 가는, 나무로 만든 기차가 있었다. 산길 물길을 지나는 장거리를 가다 연료가 떨어져가자 이 기차의 운행자들은 선택을 했다. 어렵고 힘들게 산과 들판을 헤매어 도끼질을 해서 장작을 구해 때기보다 나무기차의 몸통을 맨 뒤부터 한 칸씩을 잘라서 그걸 때서 가는 길을 택했다.
 
연료가 모자란다 싶을 때 계속 한 칸 한 칸씩 잘라 가는 것은 참 편리하고도 쉬었다. 외딴 산길에서 장작을 구하다 누군가 다치지도, 죽지도 않았고, 단지 잠깐의 정차만이 필요했다. 지위가 낮은 이들 몇몇이 기차 몸통을 부술 동안 지휘자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면 되었다.
 
마침내 그 기차는 먼 길을 끝내고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제 종착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기차'가 아닌 그 무엇, 차마 ‘기차’...라고 부를 수 없는 그 무엇, 맨 앞 칸... 한 칸만이 남아 있는, 자동차도, 기차도 아닌 그 무엇, 괴물이 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에 나오는 얘기다. 영화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변혁의 가치를 하나하나 희생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과거 '전투적 민주노조운동' 이 활성화되어 있던 멕시코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격 이후 부패하고 관료주의화된 노동조합 지도부가 보여준 모습에 대한 묘사 중에 나오는 얘기다. 민중의 항쟁에 함께 하다가, 민중에 기반한 공교육을 사수하기 위해 싸우다가 100명이 넘는 평교원노동자가 실종되서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바로 그와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부가 역사의 반동들과 손을 잡고 썩어간 역사에 대한 얘기다.
 
"배타적 지지 철회를 포함한 가장 강력한... 조치..."
만일 단지 하나, 아른바 경선부정이 없었다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그 '강력한' 조치.
이른바 '반성'은 통진당 내에만 필요한가. 대중조직은?

 
여론조사라는 게 대체로 그렇지만, 비례대표 후보 '배타적 지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던 '노동자참가단' 이란 이름의 총연맹의 기막혔던 여론조사도, 시간을 다 흘려보내놓고 이루어진 임시대대 소집도 아직은 그다지 반성 아니 환기되지도 않아 보인다. 현장토론보다, 대의원대회보다도 더 앞세웠던,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표본을 이루고 그 표본들의 의사를 민주노총 전 조합원의 의사로 공식화한, 여론왜곡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과정은...
 
2009년 쌍차투쟁이 시작할 즈음, 노무현이 죽었을 때 애도의 뜻을 담아 평화적으로 투쟁하라던 총연맹의 공지 문자는 반성되지 않는다. 조직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러 가던 그 모습은 반성되지 않는다.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충실하게 투쟁하자고 단 몇 차례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이기적 노동자주의'로, '생디칼리스트'로 왜곡, 치부당할 때, 이제 '투쟁으로는 백날 해야 안된다'며 의회주의에 대한 경계와 거부의 목소리에도 안타까운 톤으로 혀를 차는 이들이 당당해질 때 '대화와 소통'은 쉬운 일이 이미 아니다. '그랬던' 사람들은 다른 의미의 ‘반성’은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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