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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5
    살인해고 희생자 분향소를 준비하며.
    먼동
  2. 2012/04/04
    3월의 끝, 또 다시 먼저 가신 동지들에게
    먼동

살인해고 희생자 분향소를 준비하며.

‎2009년 쌍용차 지부가 파업에 돌입하기 전, 가장 먼저 자본의 공격을 받았던 동지들이 비정규직 동지들이었듯이 22명의 생목숨이 매장당하듯 자본에게 간접살인을 당한 지금도 쌍차 안에선 노동강도의 살인적 강화와 더불어 이른바 신규 '사내하청' 을 급속히 들여 사내하청노동자가 다시 75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15년전 IMF 시기의 정리해고반대, 노사정야합 반대투쟁, 아니 혹은 그 이전인 89~91년 자본이 다시 이윤율을 확고히 회복, 제고한 후 93~94년 파견제 도입 등을 통해 늘 비정규직이 넘치는 오늘을 그려내기 위해 신자유주의 총공격을 예비하던 때로부터 저들에게 있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확대' 는 당연히 애초 '자웅동체' 같은 기획이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아직도 현실의 투쟁과 선전 속에서 이 두 부분이 충분히 묶여지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쌍차-상하이치저-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기획되고 밑받침된 회계조작, 기획파산 등의 정리해고까지의 '과정'과 함께... 이 살인해고의 '결과'로서 오늘 일어나고 있는 쌍용차 안에서의 상황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의 생산의 대체, 비정규직 짜내기와 극단의 노동강도 강화'라는 자본의 '기획'을, - 모든 '동기와 목적'을, '결과와 이후'까지를 어느 것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 ) 을 선전의 공간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금새 들리게', 더 확고하게 내용으로 담아낼 지 고민이다.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들씌운 파렴치'함과 '무자비'함, 정리해고-헐값매각, 먹튀 밑받침 등 자본과 정권의 하나같은 패턴과 동시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정규직 확대, 귀결을... 이른바 '죽은자'도, 그 죽은자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자도 하나같이 비정규노동자의 피땀으로 귀결시키는 천편일률적인 시나리오를.
  
'문건'이나 '조합원용' 등 말고 지역분향소 등 대 시민, 대 미조직노동자 선전의 공간에서... 더 구체적으로 주력해서.
 
기아차가, 동희오토자본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 또한 기억하고 있으니까.‎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가 옳은 만큼 '해고는(계약해지는) 다반사다, 일상이다'는 구호 또한 옳다. 결국 '천만 비정규직에게 간접살인으로서의 해고는 일상다반사다.'는 말은 현실을 정확히 표현한다.

 

 시퍼런 가족까지 생명을 버리는 일이 또 누군가에겐 이미 일상다반사인 것이 현실이고, 그 일상다반사에도 죽는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대략 정년 때까지 2년에 한번씩만 볼 땐 평균 15번도 더 반복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22명에 이른 이 살인해고의 의미와 분노는 '일상다반사의 간접살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자행되는 15번의 살인에 맞서기 위해 일어서는 긴 과정에 더 긴밀히 맞닿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준비해야겠다. '이미 살해당한 자'와 '죽지 못해 살아는 있는 자' 모두가 결국 비정규직 확대의 수단, 고강도 착취 강화의 수단과 경로로서 살인해고를 더 뚜렷이 각인하며 내일을 맞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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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 또 다시 먼저 가신 동지들에게

 

‎3월의 마지막 쌍차에서, 또 현대차에서 두 동지가 또 젊은 목숨을 내려놓았다.

한 동지는 77일간의 옥쇄파업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끝까지 희망퇴직을 거부하며 생존과 투쟁을 위해 몸부림쳤고, 또 한 동지는 2004년 노조에 가입하고, 2005~6년 파업 이후 많은 이들이 노조를 떠날 때 끝까지 남아 재작년 25일간의 점거파업투쟁에 함께 했고, 그 후로도 현장위원으로 활동하며 자본의 악랄한 불법파견과 폭력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급성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에게 지워지는 힘겨운 무게도 묵묵히 감당하며 동지들의 곁을 지켰던 동지라 한다.

"함께 살자"는 외침을 일관되게 몸으로 끌어안고 몸부림친 죄로 동지들이 또 먼저 가셨다.

'먼저 가신 동지들, 가족분들 만나 이제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없는 세상'에 편히 계시'라고 보내드릴 수 있는 마음...잘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과 올해의 투쟁과 삶을 생각하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보다 그저 매일 아침 작은 방 배갯녘 둥지에 남아 지켜봐주시라고, 때로 눈물로 원망도 하고 답답해하고 혼내주시라고... 청을 드리고 싶다. 또 다시 먼저 가신 이 시퍼렇게 시리게 젊은 동지들을 편히 가시라고 보내드리기조차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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