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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경제학] 제2회 [노동의 분담]과 [생산물의 교환], 그 동일성과 차이(2)

 


제2회 [노동의 분담]과 [생산물의 교환], 그 동일성과 차이(2)



분업이 있기 때문에, 교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교환을 성립시키는 분업]이라고 했지, 분업이 있으면 교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에, 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하고, 할머니는 옹달샘에서 빨래를 하고, 아버지는 밭일을 하고, 어머니는 베를 짜는 등의 성별이나 세대에 따른 분업을 하는 자급자족의 공동체 가족이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고매를 먹기 위해서 산에서 베어 온 나무와 교환할까요? 그렇지는 않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베어 온 나무도, 아버지가 가져 온 고매도, 어머니가 베를 짠 옷감 등은 모두 다 가족의 것이기에, 할아버지는 교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라는 자격으로 고매를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빈슨이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 얻어진 여러 가지들을 자신과 교환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족 각자의 노동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주체의 노동의 일부로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로빈슨이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가족의 이야기로는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현대의 대기업이라는 삼성이나 현대 등을 생각해 봅시다.

공룡과 같은 이런 기업에서는 몇 만, 몇 십만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직종, 직장에서 분업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공정에서 B공정으로 물건을 보낼 때에 [교환해야할 무엇인가가 있어야지 넘기겠다] 등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현대라고 하면 현대라는 회사 안의 반제품도, 원료도, 기계도 모두 다, 그것에 어떠한 노동이 더해지더라도 현대의 것이므로,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교환하는 등의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은 하지 않습니다. 이효리나 성유리가 하던 노동은 개개인의 노동이 아닌 현대라는 주체가 행하는 노동인 것입니다(단지, 가족 공동체의 할아버지 등과는 달리 현대의 노동자들은 현대의 일원이라는 자격으로 노동의 결과를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노동자들의 노동은 현대의 일원으로서 노동한 것이 아니라, 기계나 원료 등과 같이 생산의 수단으로 참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일단, 분업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교환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개인 활동을 열심히 해도 그녀들은 핑클의 멤버이다!!



사회의 내부 분열=사유재산이 분업을 교환으로 바뀌게 한다


그렇다면, 분업 외에도 어떤 조건이 되면 교환이 발생하는 것일까? 생산물이 사적 소유물로서 나타나는 독립된 주체 사이에 분업이 이루어질 때, 생산물은 서로 교환됩니다. 공동체 가족도 다른 공동체 가족과는 생산물을 교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도 자신들이 생산한 자동차를 어떤 [대가]도 없이 삼성이나 이효리에게 줄 리가 없습니다.

위에서 [독립된 주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왠지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별 것 아닙니다. 우리들의 사회라는 것은 서로 이해를 공유하지 않는 등의 관계에 있는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사유재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만,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지배와 피지배 등으로 계급의 분열과 내부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외연적으로 보면, 작은 부족 사회와 같은 것에서부터 근대민족국가 라는 것으로 발전했고, 내부의 구성원들 간에는 분열=적대를 키워 왔습니다. 이 내부분열에 의해서, 부라는 것도, [공동체의 것]이라는 개념에서 각자의 것으로 분열된 부=사유재산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이 분열의 결과로, 생산물은 사회(공동체)의 것이 아닌 사유재산이 된 것입니다.

사유재산제가 발달했다고 해서 사회의 분업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실제로는, 그 반대로 사유재산제 하에 사회의 분업은 고도의 발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의 결과가 사유재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동의 분담은 각자가 하고 있는 노동의 차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유하는 물건의 차이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노동의 분담이 아니라, 물건의 교환을 통해서 분업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효리가 아무리 sexy해도 공짜술은 없다!!



하지만 [자유로운 노동] 아래에서 분업은 가능한가?


직접적인 노동의 분담이던지 물건의 교환이던지, 어느 쪽이던 분업이 성립한다면 문제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의 분담이 물건의 교환이 되는 것이 되면, 노동의 분담을 누가 결정하는 가?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생산물이 사유물로서 나타나므로, 노동도 각자의 사적인 일이고, 사회가 직접적으로 분담을 결정할 수 없어서, 분업의 어느 부분을 누가 얼마나 할 것인가?에 사회적인 의지가 개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동은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의지(이것이 중앙정부의 결정이든, 관습/관례상의 결정이든, 신의 신탁이든, 무엇이든, 각 개인의 위에 서서, 각 개인들을 사회적인 필요에 따르게 하는 힘을 의미)가 노동의 분담을 결정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노동이 허용되고도, 분업이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일까?

무인도의 로빈슨 아찌가 살아가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는 시간을 배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먹을 것을 위해서 몇 시간, 잘 곳을 위해서 몇 시간 등과 같이 자신의 한정된 노동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동 인구와 생산성이 주어진 일정한 사회에서, 일정한 필요물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쌀 생산에 몇 명이 몇 시간, 집 등을 짓는 공사에 몇 명이 몇 시간 등으로 노동 인구와 노동 시간을 각각의 생산부분에 배분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노동과 시간의 배분이 없으면 무인도의 로빈슨 아찌가 살아남기 어렵듯이, 사회도 존속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사회들은 이것을 실시해 왔습니다.

사회가 가족 공동체와 같이 좁은 범위에 한정 되었을 때에는, 세대나 성별 등에 의한 관습적인 노동 분담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좀 더 발전한 봉건사회에서는 노동 분담이 신분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농노는 농노이니까 농노의 일을 하고, 농노의 아들 역시 크면, 당연히 농노가 되는 시대였습니다. 농업 부분에 일정한 노동 인구를 투입해야하고, 또한 그것을 고정적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봉건사회의 생산의 필요성이, 일정 인구를 농노라는 신분에 고정시켰던 것입니다. 신분이 사람을 특정 직업에 고정시킨 것이 아니라, 직업에의 일정한 고정된 인구의 필요가 신분의 고정을 만든 것입니다.


각자 제멋대로인 것같아도 분업이 확실한 미녀삼총사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는 무엇이 이 노동의 배치를 결정하는 것일까?

기업을 들여다보면, 각 기업들은 매우 계획적으로 노동의 분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용직, 계약직, 파트타임이나 파견노동자, 하청 등을 어디에 몇 명을 배치해서 몇 시간을 일하게 할 것인가를 계획적으로 결정해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기업이라는 것도 사회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앞에서 봤듯이 농민이 구두 직공의 노동에 무관심-엄밀히 말하면, 관여할 수 없었듯이, 각 기업도 독립된 사적 생산자이므로, 타사의 노동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즉, 사회 전체로 보면, 노동의 배치가 무정부적이고 각 기업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사회가 성립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고도로 발달한 상품 생산 사회]는 존속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기업(사람)들이 [자유롭게] [마음대로] 노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사회의 노동 배치의 필요에 맞추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가치법칙]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에겐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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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경제학] 제2회 [노동의 분담]과 [생산물의 교환], 그 동일성과 차이(1)



 

(2)[노동의 분담]과 [생산물의 교환], 그 동일성과 차이(1)


[신용론]인가? [화폐/신용론]인가?

세상에는 [신용론 입문]이란 제목의 책이 많이 있습니다만,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크게 2종류가 있습니다. [금융론] 또는 [신용론]이란 것과 [화폐/신용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도 [금융론에 대해 써달라]는 부탁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금융론에 들어가기 전에 좀 지루하지만 화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금융현상이란 것은 직접적인 돈의 貸借이기 때문에 화폐현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화폐는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금융론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용현상은 이자를 낳는 자본의 운동이다. 신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화폐론부터 시작하는 것은, 화폐와 화폐형태로 있는 자본을 구분하지 않고, 화폐에서 신용을 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의 근거는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에 있습니다. [금융자본론]은 마르크스 경제학파의 신용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화폐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신용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라면서 화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폐론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신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화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화폐와 화폐형태로 존재하는 자본을 구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앞으로 말하겠지만,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신용을 설명하기 전에 화폐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의외로 간단한 문제입니다. 올바른 화폐론이 필요할 뿐인 것입니다.

 


돈, 돈 무슨 돈?


 



 

우선 화폐를 잊고 교환을 생각해 보자


화폐란, 그것으로 상품을 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상품이란, 그것을 팔면 화폐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즉, 화폐 없이는 상품도 없고, 상품 없이는 화폐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선 화폐를 잊고 상품에 대해서만 생각해 봅시다. [화폐에 대해서 말한다면서, 화폐를 잊자는 것과 화폐 없이 상품을 생각자]는 것에 의문을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폐 없이 상품만을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폐가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단 화폐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이 이야기를 읽어 주십시오.

상품이란,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명이 불필요한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 당연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태여 설명을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구두를 만드는 직공은 구두만을 만들지만, 구두를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팔아서 화폐를 얻고, 그 화폐로 음식이나 옷 등을 구입합니다. 구두와 화폐와의 교환은 중간 경유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구두가 화폐로 교환되더라도, 화폐 역시 그것만으로 먹거나 입거나 할 수 없습니다. 구두 직공이 구두를 만든 이유는, 그것으로 음식이나 옷 등을 교환하기 위해서입니다. 상품이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된다는 것이 단순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맥주로 잊자 잊자 화폐를 ...


상품의 [목적]을 안보이게 시키는 사정(?)


그렇다면 기업은 어떠할까? 기업=자본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이윤=화폐라고 생각합니다. 상품이 팔리면 되는 것으로, 팔아서 생긴 화폐로 다른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품을 생산해서 팔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구두 직공이 그런 것처럼 화폐 자체를 먹거나 입거나 할 수 없듯이 현대의 기업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상품이 생산된 진짜 목적은, 그것을 다른 상품과 교환하는 것입니다.

한편, 노동자에게 있어서의 화폐는 [일해서 받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은 상품과 상품의 교환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들 잘 알고 계시듯이 노동자도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팔아서 화폐를 받으므로, 노동자가 화폐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결국에는 노동력이라는 상품과 다른 상품의 교환인 것입니다.

상품을 그 교환 과정에 개입하는 화폐를 제외시켜서, 그 생산의 목적인 교환에 대해 연구할 수가 있습니다.


안보이게 하는 게 있다!? 모자이크


교환의 배후에는 분업=노동의 분담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등장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로빈슨 아찌. 로빈슨은 혼자서 무인도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의식주 등을 자신의 노동으로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빈슨과 같은 이야기는 무인도와 같은 곳에서만 가능할 뿐, 현실의 사회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전부터 혼자가 아니라 집단-사회라는 것을 만들어, 그 곳에서 분업을 실시해 왔습니다. 농민은 먹을 것을, 구두직공은 구두를 이와 같은 분업의 결과가 상품의 교환이었습니다.

로비슨은 먹을 것을 얻거나 잘 곳을 만들거나 생활을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노동을 합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목적물은 달라도 그의 노동의 결과인 것입니다. 로빈슨이 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서 하는 것이 분업입니다. 분업이란, 결과물이나 내용이 다른 노동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필요한 노동의 각 부분을 분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교환은 물건과 물건의 교환이라고 했습니다. 구두직공은 구두라는 물건을, 농민은 쌀과 같은 먹을 것을 분담해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농민은 그가 교환으로 얻은 구두가, 구두직공이 만들었던, 아니면 외계인이 만들었던 상관이 없습니다. 즉, 농민은 타인의 노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타인의 노동에 그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환을 성립시키는 분업에서는, 교환이란 분업이고, 분업은 노동의 분담이란 것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긴 것 같아서, 임의로 (1), (2)로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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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경제학] 제1회 신용제도의 본질,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모순



제1회 신용제도의 본질,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모순



자본가는 부의 공동 사용을 실천하고 있다



글을 쓰다가 보면, 누구나 귀차니즘에 빠지기 때문에, 언제라도 끝낼 수 있도록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은행과 증권회사, 생명보험, 우체국 저금, 또는 금융/증권시장 등의 신용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본가적 사회주의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은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자본가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인데 무슨 소리냐?]고 속으로 별 미친 넘 다 보겠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당연히 [자본가적과 사회주의]는 모순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좀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자본가들이 서로 돈을 융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자산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자본이란 속성은 빌리거나 가진 돈을 금고 속에 감추어 두거나 땅에 파묻어 두어서는 별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원료나 기계 등의 생산수단을 구비해서 상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이 서로의 돈을 빌려 준다고 하는 것은, 돈의 공동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노동력이나 생산의 제수단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자본가들은 이러한 공동 사용을 하는 가는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전제는 사유재산제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공장이나 발전소, 공항, 항만시설, 도로 등을 사유재산제도에 의해 [네 꺼니까, 만지지도 말고 들어오지도 마] 등으로 제한을 가해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휴지가 되어 버립니다. 즉, 단순히 [너의 것은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라는 수준의 사유재산제도에 머물러 버리면, 현대의 거대한 생산제력들은 나타나지 못 했을 것이고, 또한 자본의 방대한 이윤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본가적 사회주의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공동 사용이더라도, 공동 소유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딴지를 거는 분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본간의 금융의 관계는 매일 매일 일상적, 항상적, 전면적으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 항상적, 전면적인 공동 사용은 이제 거의 공동 소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소유? car? man?



 



 

공동 사용은 사유재산과 모순된 [신용제도]를 출현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사회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가적]이라는 말이 따라 다니는 가짜 사회주의입니다. (게다가, 공동 소유 직전까지 간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들이고, 여기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거래되는 상품 -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는 노동력에 불과한 것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자본가들 사이에서 아무리 공동 사용이 발달하더라도, 사유재산제도라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공동 사용이 진짜 사회주의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신용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용제도는 공동 사용이 공동 소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의 사유권이 남겨진 [貸借]의 범위내에서 형성됩니다.

자본은, 생산제력의 공동 사용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해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사유재산 - 즉, 이윤을 늘려 주기 때문에,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생산력의 공동 사용이 노동력의 착취를 증대시켜서, 그 열매가 금리나 배당 등의 형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신용관계가 맺어 지는 것입니다. [사리사욕]이 신용제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사리사욕]을 원동력으로 한 공동 사용체제의 발전은 확실히 모순된 것이고, 이 모순이 신용제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제도라는 낡은 란닝구를 남기기 위해서는, 공동 사용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건 누구 꺼]라는 소유권에 관한 쓰잘데기 없는 장부를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공동 사용되고 있는 부가 사유재산으로서 누구에게 얼마나 소속되어 있는가를 표기한 장부가 소위 말하는 금융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현실의 부가 아니라, 부의 소유권, 혹은 청구권을 적은 기록으로서, 현실의 부가 나타내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림자이기 때문에, 현실의 부와는 전혀 다른 왜곡된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누구의 것인지 확정지울 수 없는 것도 장부에 열심히 기재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굴절되거나 삐뚠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것이 이중으로 삼중으로 기록되거나 있지도 않은 것이 있는 것으로 표기됩니다. 부가 있기 때문에 기재되는 것인데, 기재되어 있으면 부가 있다는 착각마저 나타나서, 모래위에 자산이 더욱 더 높고 크게 세워지고 있습니다.




 


건설은 장기간, 붕괴는 순간!!



금융자산의 [재고 조사]에 따른 혼란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눈속임이 계속 되지는 않습니다. 장부에 기재된 부가 현실에 진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를 살피는 [재고조사]가 정기적으로 옵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재고자산대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입한 원자재, 생산한 상품 등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가가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월말이나 회계연도 말에 [재고 조사]가 행해져서 장부의 기록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합니다. 점검할 때마다, [누가 어디에서 언제 구입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구석에서 나오거나,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담당자를 미치게 만드는 그 [재고 조사]입니다.)

버블 붕괴라든지, 불황이라든지, 또는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재고 조사]의 명칭은 다양합니다. [재고 조사]가 오는 이유와 원인은 버라이어티쇼이지만, 그 근본에 있는 것은 노동착취의 곤란입니다.

노동의 착취가 순조로워서, [빌려 준 돈]이 탱글탱글한 과실을 추수의 기쁨으로 주는 동안에는, 호기롭게 [뭐, 괜찮다면 언제까지라도 사용해.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라는 등의 말을 지껄이다가, 추수할 과실이 없어지면 [빌려준 돈이 정말 괜찮을까]라는 의심병이 도저서 앞에서 말한 [재고 조사]를 행합니다. 점검해 보면, 장부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거나, 또는 이중 삼중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나오면, 완전히 꼬리에 불 붙은 고양이 꼴이 되어 버립니다. [이거 네 꺼니까, 손도 대지 말고,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마]라는 상태가 되어, 결국 [bank-run(예금이탈)]이나 [대출거부]가 되면서, 마침내 금융공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장부의 기재 내용과 현물이 다른 경우에는, 제대로 된 [재고 조사]라면, 현물에 맞추어서 다시 장부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금융자산의 장부라는 것은, 현물이 아니라 기입된 내용을 신성시합니다. 왜냐하면, 장부에 쓰여진 내용은 헌법도 보증하는 [사유재산]이므로, 현물에 장부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부의 내용에 현물을 맞추어야 하므로, 지랄발광이 벌어집니다. [공적자금]이니 뭐니 해서 다른 곳에서 현물을 가져와서 [보충]하거나, 장부와 현물이 다른 것을 못 본채 하거나 해서 자산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여기서, 문제. 이 개지랄이 끝난 후에는 무엇이 올까요?




 


아~~ 뚫고 싶다!!!



신용제도 자체가 거품과 함께 사라지는 날이 온다



 


공동 사용에 의해서만 탱글탱글한 과실을 맺는 자산이기에, 자본으로서도 언제까지나 그것을 장롱 속에만 둘 수는 없습니다. 공장도 원료도 노동력 등의 생산제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데, [신용기관]만이 마비되어 있을 뿐인데, 생산제력들이 결합되지 않아서 새로운 부가 창출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입니다.

신용기관의 문제가 [불황]이나 노동 대중의 곤란으로 나타나는 가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됩니다. 그러한 논의에 의해서 보다 교묘하게 자본가의 사유재산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나 금융 기술적인 방법들이 궁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시작은 노동 착취의 곤란에서 출발해서, 자신의 자산에 대한 과보호가 나타남에 따라서, [신용기관]이 마비된 것입니다. 신용기관 자체를 아무리 메스를 가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 착취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신용제도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노동 착취의 재건이 필수조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노동 착취가 순조로워 지면, 사유재산제도와 부의 공동 사용에 의한 모순을 잊고 [신용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노동 착취가 재건되지 않으면?

혼란 끝에는 자본주의체제의 몰락이 있다는 식의 예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확실한 것은, 사유재산제도가 없어진다면, 즉 진정한 사회주의가 실현된다면, [자본가적 사회주의]라는 모순되고 어설픈 것은 소리만 요란한 빈깡통같은 [금융자산]과 함께 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이 세상은 돈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잘 굴려서, 즉 금융을 잘 운용하면, 이 세상의 모순을 없애거나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용제도] 자체가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버블에 불과한 것입니다. 신용제도에는 그렇게 세상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신용론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신용제도가 현대에 가지는 거창한 의의 등을 말하면서 [신용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쓰는 편이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상만사는 돈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2회에서는 돈(화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편부터가 이 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긴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하실 것입니다. 맞고라도 한판 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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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경제학-화폐/신용론 입문-] 프롤로그

제목은 거창하게 프롤로그라고 붙였지만,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일단 글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이 글은 飛鷹昭二(Hideka Shoji)라는 분이 쓴 글로 화학계통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령은 47세입니다. 출처는 여러 가지 사정상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글의 전반적인 내용에 이상이 없는 한 제 나름대로 편집했습니다. 글의 내용상 무미건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서 가감을 많이 했습니다.



                                             구성

        제1회 신용제도의 본질,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모순
        제2회 [노동의 분담]과 [생산물의 교환], 그 동일성과 차이
        제3회 상품이 사회적 속성을 가진다는 의미
        제4회 추상적인 인간노동 및 일반적인 인간노동
        제5회 왜 어째서 화폐는 상품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인가?
        제6회 화폐라는 [재앙]의 탄생
        제7회 화폐의 제기능(1)
        제8회 화폐의 제기능(2)
        제9회 화폐의 제기능(3)
        제10회 화폐의 제기능(4)
        제11회 자본주의적 소유법칙(1)
        제12회 자본주의적 소유법칙(2)
        제13회 자본주의적 소유법칙(3)
        제14회 자본주의적 소유법칙(4)
        제15회 자본주의적 소유법칙(5)
        제16회 이자를 낳는 자본(1)
        제17회 이자를 낳는 자본(2)
        제18회 이자를 낳는 자본(3)
        제19회 상업신용과 은행신용(1)
        제20회 상업신용과 은행신용(2)
        제21회 은행신용과 모조자본(1)
        제22회 은행신용과 모조자본(2)
        제23회 신용제도와 현대통화(1)
        제24회 신용제도와 현대통화(2)
        제25회 신용제도와 현대통화(3)
        제26회 신용의 역사적 운명


구성에서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이 글들의 기본적인 시각은 소위 말하는 마르크스경제학, 그 중의 한 정파의 시각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내용과 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혹시 제가 쓰거나 번역한 글을 보고 저의 생각이 그럴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전혀 저는 이와 같은 시각에 동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많은 분들이 자본주의의 미래, 또는 지금의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들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의 근본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 화폐/신용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 용어라던지, 착취라던지 타도 등과 같은 과격한 단어들도 여기에서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용어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시지 마시고, 글의 흐름을 파악해서 나름대로 자신에게 뼈와 살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국내, 그것도 아직은 자주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는 나라에서 국제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세계의 흐름, 그것의 이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의 흐름과 상태, 경제부분에 대한 이해와 파악입니다.

이성적이고 인간다운 새로운 시스템을 꿈꾸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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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일본에서의 연도별 성적

백인천 연도별 개인 타격성적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사사구 삼진 타율
63 토에이 20 19 0 3 0 1 0 5 0 0 0 4 .158
64 토에이 92 250 25 63 12 1 6 95 23 9 11 34 .252
65 토에이 116 356 43 95 14 2 14 155 44 9 15 28 .267
66 토에이 126 363 42 95 13 1 4 122 23 18 16 30 .262
67 토에이 128 396 43 111 17 4 10 166 51 13 20 24 .280
68 토에이 117 382 52 113 13 3 15 177 51 9 12 21 .296
69 토에이 109 454 68 132 17 9 12 203 46 13 16 31 .291
70 토에이 127 496 67 137 30 2 18 225 64 28 38 39 .276
71 토에이 107 421 47 100 11 4 11 152 38 17 27 37 .238
72 토에이 126 486 67 153 33 3 19 249 80 20 37 32 .315
73 닛타쿠 96 291 27 72 13 0 6 103 20 8 18 22 .247
74 니혼햄 114 418 63 109 20 1 15 176 42 24 31 19 .261
75 타이헤요우 102 379 57 121 18 2 16 191 53 13 19 18 .319
76 타이헤요우 121 469 54 135 17 2 17 207 59 15 24 33 .288
77 롯데 126 452 50 127 11 2 16 190 56 6 33 33 .281
78 롯데 58 171 19 44 7 0 3 60 11 5 8 12 .257
79 롯데 124 415 47 141 25 4 18 228 71 3 26 25 .340
80 롯데 76 167 11 36 1 2 5 56 21 0 10 17 .216
81 킨테츠 84 194 19 44 11 0 4 67 23 2 18 12 .227
1969 6579 801 1831 283 43 209 2827 776 212 379 471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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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분석(5)

   
유일한 패자는 자민당 - 절대 득표율이 나타내는 것
 



어떤 분으로부터 분석(4)의 표에서 비교된 각선거는 유권자수와 투표율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지적이 맞지만, 그래도 득표수의 증감은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분석(4)의 표를 통한 분석에 의한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지적이 타당하기 때문에, 유권자의 지지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를 대유권자수에 대한 득표율의 추이를 통해서 다시 한번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故이시카와 이즈미씨가 [절대득표율]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분석(4)의 표에서 거론된 득표율은 득표총수에 대한 비율이기 때문에, 투표율에 따라 증감이 있지만, 이것은 투표율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대]득표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표 주요정당의 대유권자수 득표율(절대득표율)의 추이(%)
 
                  98년 참의원선거    00년 중의원선거    01년 참의원선거    03년 중의원선거    04년 참의원 선거
 자민당              14.3                             16.9                             20.8                             20.1                              16.4
 민주당              12.3                             15.0                               8.9                             21.5                              20.6
 자유당                5.3                               6.6                               4.2                                -                                    -
 공명당                7.8                               7.7                               8.1                               8.5                                8.4
 공산당                8.3                               6.7                               4.3                               4.5                                4.3
 사민당                4.4                               5.6                               3.6                               3.9                                2.9
 
 
 
이 표를 분석해 봐도 분석(4)에서 거론한 득표수의 추이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분석(4)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정정할 필요는 없지만, 몇 가지 보충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1)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모리내각 아래에 38석을 잃으면서 참패한 2000년 총선거보다 더 하락했다는 것입니다. 분석(4)에서는 [거의 2000년 중의원 선거 정도로 후퇴]했다고 했지만, 유권자에 대한 득표비율은 0.5% 하락한 것입니다.
2000년 총선거에서의 자민당은 자민 공명 보수 3당연립정권이었지만, 이번처럼 공명당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선거구 등에서 공명당으로부터 전명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만, 그런데도 절대득표율에서 2000년 총선거보다 낮았습니다. 자민당의 실질적인 기반이 98년 참의원 선거 정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이즈미붐]이 없어진 것은 확실하고, [역풍에 견디어 냈다] 등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2) 민주당에 대해서 분석(4)에서는 [득표수와 득표율 모두 약간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 말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득표수는 100만표 정도 줄었지만, 분석(4)의 상대득표율에서는 1%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펴보는 절대득표율에서는 민주당은 03년 중의원 선거 때보다 1%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작년 총선거보다 득표수와 절대득표율은 줄었지만, 상대특표율은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이번 선거의 투표율 56.6%가 작년의 중의원 선거 투표율 59.8%보다 3.2% 낮았기 때문입니다.
 
(3) 이처럼 자민 민주 양당 모두 득표수가 줄었지만, 절대득표율에서는 자민당이 3.8%나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공명 공산 사민 3당의 유권자 내에서의 지지도 증가하지 앟았기 때문에, 자민당에서 줄어든 %는 주요정당 이외의 군소정당에게 투표되었거나 기권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4) 분석(4)의 표에서 본대로 공명 공산 사민 3당의 지지상황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절대득표율에서의 변화는 공명당이 마이너스 0.1%, 공산당이 마이너스 0.2%, 사민당이 마이너스 0.1%가 됩니다. 결국, 유권자의 지지라는 점에서만 보면, 3당은 민주당의 약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작년 총선거에서 얻은 자신들의 기반을 나름대로 지켜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분석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이번 참의원 선거의 극적인 드라마를 만든 것은 작년 총선거에서는 투표를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를 하지 않은 자민당 지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작년 총선거와 비교해 보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유일한 패배자는 자민당이고, 그것은 의석수 이상의 심각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은 유일한 패자로서 자민당을 이야기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숫자 이상으로 패배한 것은 공산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민당은 바닥에서 탈출한 경험도 있고, 또한 불안정한 민주당을 생각하면 지지자의 이탈, 혹은 자민당에 대한 무관심은 생각외로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다음 총선거에서도 지금과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면 자민당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직은 섣부른 예측일 확률일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 공산당이 진정한 패자인가? 먼저 전에도 말했지만, 공산당이 3당 협력에 대한 주도적인 - 캐스팅보드를 쥔 3당 연합 혹은 3당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당의 오자와가 과연 - 공산당이 이번 선거 결과 등에 의해서 또 한번의 당강령의 변화가 있겠지만 - 공산당과의 연합, 혹은 협력에 동참하거나 방관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의 민주당에서 오자와 세력의 이탈은 다음 총선거에서 3당 협력이 실현된다고 해도 자민 공명 연립정권의 붕괴를 가지고 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산당으로서는 사민당과의 연립, 혹은 협력의 카드밖에 없습니다. 사민당과의 통합은 한국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일부의 소위 진보세력의 통합만큼 그 차이가 분명합니다. 양당의 공조는 가능하겠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 급격한 [양당제]의 흐름 속에서 공산 사민 양당의 연합이 현실화되어도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지는 회의적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앞으로의 일본정국의 키는 다시 한번 오자와에게 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리고 칸삿갓(^^;;)과 오자와라는 양대 거목 속에서 오카다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도 ... ... 다음에 시간이 나면 오자와 이치로우에 대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자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지금까지의 일본 정국의 변화를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를 벤치마케팅한 인물들이 있었고, 지금도 시도하는 상황 속에서 의미있을 것 같지만 ... 역시 시간이 문제인듯 합니다. 헤~~ 어쨋든 보잘 것 없는 번역을 관심있게 지켜 봐 주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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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분석(4)

중기적인 흐름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자민당은 이긴 것일까 아니면 패배한 것일까, 평가가 제각각인 것은 매우 미묘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선거전 의석수가 50석인 것을 생각하면, 자민당이 실제로 잃은 의석은 단 1석에 불과합니다. 공명당은 선거전 의석수보다 1석이 늘었기 때문에, 여당 전체로 보면 의석수의 변화는 플러스 마이너스 0가 됩니다. 게다가, 참의원 정수가 5석 줄어든 것을 생각하면, 여당의 비율은 높아진 것이 됩니다. 선거 후, 코이즈미수상이 [역풍 속에서도 선전해서 안정 다수석을 만들었다]고 강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자민당의 획득의석수는 49석이고 공명당은 11석입니다. 양당 합쳐서 60석으로, 선거가 행해진 121석의 과반수는 61석으로 1석 부족합니다. 다음 참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자민 공명 양당을 합쳐도 참의원에서 다수를 유지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여당으로서는 도저히 [이겼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인 2001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획득한 의석수는 64석으로, 당초 모리 전수상은 60석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 직전에 목표 의석을 51석으로 내렸는데도 달성하지 못 했습니다. [코이즈미 효과]가 이제는 소멸해서, 원래의 자민당으로 회귀한 것은 확실합니다.
 
어쨋든,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를 좀 더 중기적인 흐름 속에서 검토해 보겠습니다. 사용되는 숫자는 득표수와 (상대) 득표율입니다. 득표수는 각각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증감했는가를 나타내고, 득표율은 각정당의 비중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나타냅니다. 이번에 선거가 있었던 참의원들이 당선되었던 1998년 참의원 선거부터 추이를 검토하겠습니다. 참의원과 중의원은 성격도 의미도 다르고, 각각의 선거가 실시된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한 상황으로 생각해서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례대표구라는 비슷한 제도도 있기 때문에 득표수와 득표율의 비교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정당의 득표수및 득표율 추이 (만표, %)
 
                 98년 참의원선거    00년 중의원선거     01년 참의원선거    03년 중의원선거    04년 참의원선거
자민당           1413 (25)                   1694 (28)                      2111 (39)                   2066 (35)                  1680 (30)
민주당           1221 (22)                   1508 (25)                       899 (16)                    2210 (37)                  2114 (38)
자유당             521 (9)                      659 (11)                         423 (8)                           -                                 -
공명당            775 (14)                     776 (13)                         819 (15)                    873 (15)                    862 (15)
공산당             820 (5)                      672 (11)                         433 (8)                        459 (8)                     436 (8)
사민당             437 (8)                       560 (9)                          363 (7)                        303 (5)                     299 (5)
 
 
 
이 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1) 자민당은 01년 참의원 선거와 03년 중의원 선거에서 확실히 [코이즈미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붐]의 영향은 01년 참의원 선거가 03년 중의원 선거보다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작년의 중의원 선거보다 약 400만표가 줄었고, 98년 참의원 선거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2000년 중의원 선거 정도로 후퇴한 것입니다.
 
(2) 민주당은 [코이즈미붐]의 영향을 받은 01년 참의원 선거에서 크게 후퇴했지만, 03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과의 합당 효과가 1+1=2 이상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03년 선거 결과를 기본적으로 유지한 것으로, 득표수와 득표율 모두 약간 감소했습니다.
 
(3) 자민당과 민주당은 03년 중의원 선거에서 득표수와 득표율 모두 역전되었고, 이번 선거에서는 그 차이가 확대되었습니다. 이렇게 양당의 차이가 커진 것은 자민당의 득표수가 줄었기 때문이지, 민주당의 득표수가 증대된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도 100만표 정도가 줄었습니다.
 
(4) 공명당은 성격과 상황이 다른 선거에서도, 득표수로는 700~800만표, 득표율로는 13~15%라는 놀랄만큼 안정된 느낌으로, [양당제]의 흐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양당제]가 현저하게 나타난 03년 중의원 선거부터 득표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비례대표구에서 자민당 표의 지원이 있었다고 말해지지만, 실제로는 03년 중의원 선거보다 11만표가 줄었습니다. 무당파층의 표가 빠져나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선거 지원 요청의 댓가로 선거구는 자민당, 비례구는 공명당이라는 전술이 취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득표수와 득표율보다 실제 자민당 지지표는 좀 더 많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당연히 공명당의 지지표는 조금 더 적을 것입니다. 역시 선거의 공명당이라는 말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공산당은 98년 참의원 선거에서 800만표를 넘어서 공명당을 제쳤지만, 01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400만표대가지 거의 반정도 줄었고, 그 후로는 비슷한 표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참패]는 아닙니다만, 참패로 느껴지는 것은 98년의 참의원 선거에서 유례가 없는 호성적을 올렸지만, 그 후의 지지표 이탈이 컸기 때문입니다. 지지표 이탈은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 01년 참의원 선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공산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이탈한 것이 아니라,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 과거 6번의 국정선거에서 공명당의 기반은 770만표, 공산당은 430만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쪽 다 800만표가 거대한 벽입니다만, 공산당에 대한 지지가 신축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당파층에 대한 어필과 의존도가 커다는 것입니다.
 
(7) 사민당은 2000년 중의원 선거 이후, 지지표 이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당의 기반인 300만표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민당도 이번 선거에서 지지표 이탈이 격심했던 것이 아니라 01년 중의원 선거 이후의 완만한 하락세를 역전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03년 중의원 선거와 비교하면 4만표의 지지표 이탈밖에 없기 때문에, 일단은 하락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8) 공산당의 기반(430만표)와 사민당의 기반(300만표)를 합치면, 공명당의 기반(770만표)에 거의 필적할 수 있는 숫자가 됩니다. [단일화효과]를 생각하면, 양당의 협력 여하에 따라서 공명당을 이기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9) 공산 사민 양당의 합계는 1527만표(98년), 1232만표(00년), 796만표(01년), 762만표(03년), 735만표(04년)로,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 양당이 [호헌], 혹은 [혁신]세력을 대표한다고 하면, 이들 세력의 감소 경향이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결과도 이러한 경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 이번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은 아닙니다.
 
(10) 이번 선거에서 자민 공명 양당의 합계는 2542만표(45%)로, 민주당과 428만표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민당의 299만표를 민주당에 합쳐도 자민 공면 양당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공산당의 436만표가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의 결과 등을 가지고 예상해 보면, 다음 총선거에서 자민 공명 양당이 협력한다면 민주당은 양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민주 사민 공산 3당의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결과에서, 야당간의 협력이 가능하게 되면, 자민 공명 양당의 연립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 3당의 협력이 현실화되지 못할 경우에는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산 사민 양당의 경우에는 지금의 선거제도 하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계속되는 지지표이탈 현상을 막으면서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선거협력과 [평화 호헌 신당]의 결성 등, 무당파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기사회생의 대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양당제]의 흐름 속에서 지리멸멸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명당에 대해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공명당에 대한 연구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필자가 주장한 공산당의 전지역구 출마가 아닌 공명당처럼 전략지구의 선택적 출마에 대한 논의와 요구는 강단에서도 현장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12월에 있었던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후와 테츠조우의장은 소수의 소선거구를 제외한 모든 소선거구를 포기하고 비례대표선거에만 집중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공산당 내부에서도 공명당의 선거전략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끝난 상태입니다. 사실 후와의장의 주장보다도 소설가 타쿠키 요시미츠씨의 분석에 의해서 지금의 정당체제-양당제의 흐름과 자민 공명의 안정적인 정권획득 구조를 바꾸기 위한 공산당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공산당은 전지역구와 비례구로 힘의 분산을 초래했고, 대전환은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민주당의 선전은 놀랄만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가 있기 전인 중의원 보궐선거 -4월 25일 선거에서 3석을 모두 공명당이 추천한 자민당이 모두 차지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 때도 국민연금보험문제와 이라크파병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이번 참의원 선거도 지지도의 변화는 있지만 자민 공명 양당의 연립정권의 기반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결과는 민주당의 대약진으로 끝났습니다. 당시 보궐선거에서도 야3당의 선거협력이 있었다면, 혹은 공산당의 전략의 변화가 있었다면 아마도 2석은 민주당의 차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민주당의 단독 힘으로 자민 공명에 대항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함으로서 어쩌면 다음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자진해서 - 큰 정치적 변화가 없는 한 - 양 3당의 협력을 요청하는 형태는 물 건너간 느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양3당의 협력이 실현되더라도 공산당의 캐스팅보드로서의 역할은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일본 공산당의 인식은 예전과 차이 없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적 변화-지금의 오카다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변화나 오자와의 변신이 없는 한 양당제 속에서 공산당은 지리멸멸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고 양자 선택에 따른 그 넘이나 저 넘이나의 선택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민주당의 대약진으로 일본의 보수화와 군국주의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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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분석(3)

공산당은 제3세력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이상으로 큰 패배를 한 것은 공산당입니다. 사민당의 침체와 더불어 호헌세력의 쇠퇴를 상징하는 것이어서, 참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선거제도의 문제와 [야당 제1당 효과]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민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민주당과 같이 자민당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술적 투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인터넷상에서 의식적으로 이와 같은 투표가 권장되었습니다. 원래 민주당 지지자 이외에도, 이번에는 민주당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또한, 여기에서 지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이번 비례구에서 민주당이 득표한 2114만표는 작년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비례구에서 득표한 2210만표보다 96만표나 적다는 사실입니다. 비례구만을 비교하면, 민주당의 득표는 늘어난 것이 아니라 줄어든 것입니다.
 
이점에서, [양당제]로의 흐름에 매몰되어 버린 공산당의 선거전략의 실패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작년의 총선거와 비교해 보면, 공산당의 비례구 득표는 23만표 줄었습니다만, 자민당과 민주당의 득표도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산당의 득표 감소는 작년의 총선거만이 아니라, 그 전인 01년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또한 2000년 중의원 선거부터 계속되어왔습니다. 이번의 436만표는 01년의 433만표와 거의 같은 상태가 된 것 뿐입니다.
게다가, [양당제]를 향한 흐름은 작년 총선거 종료와 함께 확실해 진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8개월이나 지난 이번 선거에서도 [양당제]라는 흐름에 매몰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민당과 민주당의 대결구도와 함께, 양자의 공통점도 매우 분명해졌습니다. 연금문제에서 일단은 [3당합의]가 맺어졌고, 이라크문제에서도 민주당은 자위대파병 자체에 대한 반대는 없었습니다.
소비세와 헌법문제에서도 이 양당과 공산당의 차이는 명백했습니다. 자민, 민주 양당과는 다른 [제2세력] 혹은, [제3세력]은 객관적으로 확실히 존재했습니다.
차이가 불명확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차이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엇는가를 앞으로 규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 더 검토해야만 하는 것은 공명당의 존재입니다. [양당제]로의 흐름 속에서 공명당은 존재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에서는 1석을 더 획득했습니다. 왜 공명당만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존재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공명당의 배후에는 창가학회가 존재하고, 학회원들은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서 선거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이것 뿐일까? 정당으로서 살아 남기 위해서 공명당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공명당은 선거구에서는 입후보를 중점구로 한정하고, 거기에 온 힘을 집중시키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비례대표에서는 기피감이 강한 당명을 피해서 개인명으로 투표하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공산당의 선거방침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차이가 공명당과 공산당의 선거 결과의 차이를 부른 것은 아닐까? 공명당이 주장한 [실현력]이라는 슬로건도 간단명료하고 임팩트가 있습니다. 공산당의 포스터는 지나치게 말이 많아서 임팩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공산당은 자신들이 주장한 내용은 옳았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전혀 (국민들에게는) 와닿지 않았는데도 ... ... 시간이 있었다면 (국민들이) 동감했을까? 내용의 적확함과 시간의 유무라는 문제와 함께, 호소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는 한국의 민주노동당 당사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표어만이 적힌 포스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1050항목에 이르는 방대한 선거공약집을 작성하는 한편으로, 간결한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워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일본공산당도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연금을], [군비확장이 아닌 군축을] 등과 같은 간결하고 간단명료한 표어를 주장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총선거가 있기 전에 저는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지금과 같은 결과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오키나와 선거구에서 야당 단일후보로서 이토카즈씨를 옹립한 것 외에는, 거의 [이제까지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전과 변함 없는 퇴조경향이 계속되었습니다.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선거구에서 싸우기 위해서 사민당 등과 선거협력을 검토해야만 합니다. 모든 선거구에 단독후보를 내세우는 방식은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까도 중요하지만, [제3세력]의 형성을 위해 공산당은 진정으로 변화하려고 한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전환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민주당이 정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다음 총선거는, 한층 더 [2대정당]의 대결이 전면에 부각될 것입니다. [양당제] 아래에서, 매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얼마나 행해질 것인가, 지금부터 실천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지금의 연장선상에서의 운동량과 활동량을 증대시키는 것으로는,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담한 전환 없이 공산당이 [제3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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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분석(2)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민주당
 



예전의 아사히신문 사설 중에 [마지막의 시작인가]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의 시작은 자민당의 [최종병기]인 코이즈미가 수상으로 등장했을 때입니다. 이번의 선거 결과는 이 [최종병기]의 총알이 소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마지막의 시작]은 아닙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일 뿐입니다.
산 송장이 된 코이즈미정권은 서서히 [마지막]이라는 최종단계로 진입했습니다. 다음 총선거에서 중의원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모진 목숨의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 자민당에게 최후를 선언을 한 것은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작년 총선거가 걷기였다면, 이번 참의원선거는 달리기였고, 그리고 다음 총선거는 정권을 향한 점프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민주당은 1956년에 당시 사회당이 획득한 49석을 뛰어 넘어서 야당 제1당의 최다 의석수를 갱신했습니다. 비례구에서의 득표율은 37.79%로, 1989년 사회당이 기록한 35.05%도 추월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직전에 민주당은 큰 암초에 직면했습니다. 이 암초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지금과 같은 대약진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암초는 연금문제로 자민, 공명 양당과 합의한 것입니다. 장래의 일원화를 위해서 새로운 협의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상대의 룰에 동의한 것입니다. 상대의 룰에 동의하는 한 연금문제를 선거 쟁점화하기는 곤란했습니다. 설령 쟁점화한다고 해도, 자민, 공명 양당을 막다른 궁지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두 번째 암초는 인사에서의 혼란이었습니다. 선거 직전, 칸 나오토 전대표의 연금미가입이 발각되었습니다. [미납 3각료]를 몰아붙이던 칼날이 칸대표 자신에게 향한 것입니다. 게다가, 연금문제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것에서도, 코이즈미내각의 2인자였던 후쿠다 관방장관에게 선수를 빼앗긴 꼴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은 완전히 수세적인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칸 사임 후에 후임으로 선정된 오자와도, 미납, 미가입 문제가 있었던 것이 밝혀져서, 대표선임은 백지상태가 되었습니다. 대표 없이 선거를 치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암초를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 오카다 간사장의 등장입니다. 연금문제에서 [3당합의]의 당사자였던 오카다는 대표 취임과 동시에 [강행채결에 의해서 합의의 전제가 사라졌다]면서 합의를 파기하고, 성립된 연금개혁법의 백지철회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약진을 이끌어 낸 [기사회생]의 생명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의해서 민주당은 자민당과의 대결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민주당은 연금개혁문제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불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선거 결과를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출범한 오카다 민주당은 세 번째 암초도 없애버렸습니다. 야당임에도 여당과 같은 행동을 하고 여당에 동조하는 민주당 특유의 [여당병]이라는 암초였습니다.
연금개혁문제에서 여당과의 대결 자세를 선명하게 취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의 다국적군 참가문제에서도 민주당은 정부를 강력하게 공격했습니다. 이전부터 저는 야당은 야당답게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확실한 대결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고 말해왔던 것이 신임 오카다의 민주당에서는 기본적으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일찍부터 이러한 자세를 보였다면, 이전의 선거에서도 좀 더 좋은 성적을 남겼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야당다움을 잃지 않고, 안이하게 여당과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일관되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만든 후에, [원리주의자]라고 불려질만큼의 오카다 신임대표의 [고지식함]을 강조한 것은 선거전술로서 대성공을 이루어냈습니다. 그것이 오카다의 정직함과 참신함을 띄워서, 고이즈미와의 좋은 대조가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전술면에서 말하자면, 비례대표와 1인구와 농촌으로 목표를 좁힌 선거전술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술을 취한 배경에는 작년 총선거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총선거에서 민주당은 비례대표에서 자민당을 이기고, 1인구라는 소선거구에서도 선전을 했습니다. 이 총선거를 통해서 민주당은 자민당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작년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자민당에게 대등한 승부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총선거에서 민주당은 자민당을 대체할 정치세력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다음 총선거가 민주당에게는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대회전이 되는 것입니다.
 
오카다 신임대표의 탄생은, 칸 나오토가 사임하고 오자와 이치로우가 사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오카다 자신도 이렇게 빨리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수와 당수후보가 연속해서 쓰러져 가는 [실패]를, 민주당은 오카다 신대표라는 카드를 통해서 기사회생의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획득한 51석은 최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오카다효과]가 다음 총선거 때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껏 부풀어 오른 국민들의 기대감을 언제까지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참신함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선거용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고,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높여갈 수 있는 것일까? 오카다 신대표의 진가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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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분석(1)

이번에도 일전에 M블로그에 올렸던 ... 것 ... 일본 참의원선거가 끝났을 때에 ... 몇몇 부분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어서 구태여 번역했던 것임 ... 지금 올리는 이유는 번역한 것이 아깝다는 이유로 ... --;;;

 

 

일본 참의원선거 결과에 대한 호세대학교의 교수인 이가라시 진씨의 견해를 소개합니다.
전체적으로 5부작입니다.


       1. 코이즈미[구조개혁]은 불신임되었다.
       2.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민주당
       3. 공산당은 제3세력이 될 수 있을까?
       4. 중기적인 흐름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5. 유일한 패배자는 자민당 – 절대 득표율이 나타내는 것


 
 


코이즈미[구조개혁]은 불신임되었다.
 



관심을 모았던 참의원선거가 끝났습니다. 자민당 49석, 민주당 50석, 공명당 11석, 공산당 4석, 사민당 2석으로, 자민당 패배, 민주당 대약진, 공명당 건투, 공산당 참패, 사민당 현상유지라는 결과입니다. 예상대로 [태풍]이 나가카쵸우(국회의사당과 수상관저 등이 있는 곳. 한국에서는 여의도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됨)에 상륙하기는 했습니다. 단지, 그 규모가 당초의 예상되었던 [대형]이 아닌 [중형]이었기에 자민당을 뿌리채 뽑아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역풍에 밀린 자민당은 49석에 그쳐서, 목표로 한 51석을 채우지 못했으므로, 확실히 패배한 것입니다. 이전의 선거에서는 코이즈미를 내세운 자민당은 65석을 차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16석이나 줄어든 것입니다. 이 16석의 차이는 코이즈미[구조개혁]이 집행된 3년간의 실적에 대한 명확한 불신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회복이라는 순풍이 있었는데도, 이렇게까지 패배했다는 것은 얼마나 역풍이 강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민당의 패배는 당초 예상되었던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출구조사를 근거로 한 투표종료직후의 예측에서 46(텔레비 아사히), 47(니혼텔레비), 48(tbs) 43~52(nhk)로 결과보다 더 낮은 의석이 예상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민당은 당초 예상되었던 결정적인 패배를 조금은 만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회는 선거종반에 있었던 코이즈미 깜짝쇼에 의한 것으로, 이것도 사실은 예상되었던 것입니다. 코이즈미는 소가 히토미 일가의 재회 등을 북한의 협력 속에서 대대적인 선전전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도, 만회한 것이 이정도에 불구하였다는 것에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도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거전에 자민당의 고전이 예상되었는데, 그 대로 선거결과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사전 예상에 의한 표솔림 현상 등의 [아나운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약자를 동정하고 강자를 견제하려는 심리와 강자에게 몰표를 몰아주는 현상이 동시에 벌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는 투표율이 56.57%라는 이전 선거 정도로 낮았는데도, 자민당이 패하고 민주당이 승리한 것입니다. 투표율이 낮으면 자민/공명이 유리하고, 높으면 민주유리라는 일반의 견해가 이번 선거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공명당은 별개이지만 ……
자민당 지지자 중에서 투표를 하지 않거나 민주당에 투표(20%가 민주당에 투표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도 있다)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동층 중에서도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 사람도 꽤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자민당에 대한 공명당의 지원도 큰 효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거 막바지에 자민당은 10선거구에 대해 지원을 요청했고, 그 중 1인구였던 8선거구의 성적은 3승 5패였습니다. 그다지 높지 않은 투표율 아래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자민당의 기반 붕괴는 공명당에 의해서 유지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거 패배 예상에 쫓긴 자민당은 이러한 협조요청을 공명당이 아닌 직접적으로 창가학회에 했습니다. 이것은 정교분리원칙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큰 문제가 될 소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민당은 예상대로 선거에서 패배를 했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렇게 큰 역풍이 불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역풍이 경기의 호전, 납치문제의 진전, 자민당 패배가 예상된 사전예측, 공명당에 의한 지원 등에도 불구하고, 완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그 이유의 첫째는, 확실한 정책적 쟁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스컴 등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연금문제와 이라크 파병 문제입니다. 연금문제는 생활과 밀착된 [작은 정치]이고, 이라크 파병 문제는 일본의 미래를 좌우하는 [큰 정치]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자민당은 선거직전인데도 비판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취했습니다.
연금문제에서는 미납과 미가입 문제, 강행채결이고,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는 자세한 설명 없이 부시정권의 개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유권자들이 코이즈미정권을 심판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을) 지나치게 바보 취급하면 짱난다]는 감각이라고 할지 …


둘째는 코이즈미[구조개혁]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이전의 참의원 선거에서는 이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이것에 대한 [절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자민당을 근본부터 바꾸겠다], [구조개혁 없이는 경기회복도 없다]고 코이즈미는 항상 말해왔지만, 그 [실적]은 구체적인 사실로서 유권자들 앞에 있었습니다. 자민당은 여전하고, 확실히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치상일 뿐, 국민들이 실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욱 클 수 밖에 없습니다. 3년간에 걸친 [고통]에 인내력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코이즈미 자신의 캐릭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단순 명쾌한 어투와 [한 줄 답변]은 국민적인 인기를 낳은 코이즈미수상의 개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가 [인생은 여러 가지 (회사도 여러 가지)] 발언입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이러한 말도 수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연금의혹에 대한 국회에서의 답변이었습니다. 국회를 경시하고 국민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일 줄은 아마도 코이즈미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 매스컴들은 약세를 타는 정치인에게는 물고 늘어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집요하게 이 발언을 보도하면서 코이즈미를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자민당이 매스컴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불성실]한 코이즈미를 상대로 선거 직전에 등장한 것이 [성실함]을 내세운 민주당의 오카다대표였습니다. 상대적인 두 인물의 1Vs1 승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불성실]한 녀석보다는 [성실]한 쪽을 선택한 결과가 이번 선거에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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