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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설악산을 종주하였다. 2010년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1박 2일의 산행이었다. 첫날은 백담사에서 시작하여 영시암, 오세암을 지나 중청 대피소까지 오는 산행이었다.  거리는 약 13km, 시간은 6시간 정도 걸렸다. 둘째 날은 아침에 대청봉에 올라 일출을 보고 희운각 대피소, 공룡능선, 마등령을 지나 설악동 쪽으로 하산하였다. 거리는 약 14km, 시간은 약 일곱시간 정도 걸렸다.

 

화려한 단풍을 기대하고 갔건만 나뭇가지들은 앙상하기만 했다. 고드름과 얼음이 얼었고 마르고 찬 바람이 불었다. 땀과 맑은 콧물이 같이 흘렀다. 옷깃으로 휴지로 손수건으로 콧물을 연신 훔치다가 나중에는 그냥 흐르도록 놔두었다. 맑은 콧물은 코끝에 맺혀 있다 한 방울씩 떨어졌다.

 

처음 사용한 스틱은 손에 익지가 않았다.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렸다. 그래서 스틱을 다시 배낭에 넣었는데, 그러고 조금만 가자 한참 동안의 오르막이 나왔다. 오르막에서는 스틱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스틱을 넣은 것을 후회하였다. 다시 배낭을 풀기가 귀찮아 한참을 그냥 오르다 잠시 쉬는 참에 다시 꺼냈고 이후로는 계속 짚으며 다녔다. 

 

중청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내 옆옆 자리에도 혼자 올라온 남자가 있었다. 깔판과 침낭을 가져온 그는 대피소에서 천원에 빌려주는 담요를 보며 춥지 않나?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자기의 깔판과 침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물론 춥지 않다. 사람들이 다 찬 대피소는 오히려 더울 지경이다. 대피소에서 이천원이면 담요 두개를 빌릴 수 있는데 뭐하러 번거롭고 무겁게 깔판과 침낭을 가지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용구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적당하게'가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용구가 있으면 산행이 편해진다. 때로는 편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용구도 있다. 그런 것은 어느정도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구입하면 좋겠지만 적당한 정도를 넘어서는 성능이라면 낭비가 아닐까. 지난 번 지리산 종주 때 비가 와서 날이 쌀쌀했다. 몸이 빗물과 땀에 젖어 추웠다. 특히 배낭을 맨 등이 젖었는데 잠시 쉬다가 다시 배낭을 맬 때의 그 차가움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등 통풍이 잘 되는 배낭과 방수와 발수가 잘 되는 등산복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을 했고 얼마 전 구입했다. 적당한 가격의 것으로. 근데 여러 등산 애호가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거의 군대용품이나 서바이벌 용품 같은 장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그럴 것 까지 있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놀이 아닌가. 진짜 서바이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 하는 건데 굳이 그런 장비를... 전쟁놀이를 진짜 총을 갖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이다.

 

둘째 날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대청봉에 올랐다. 새벽에 비가 오는지 대피소 창에 번갯불이 비치곤 했다. 대청봉의 바람은 엄청났다. 너무 추워 작은 바위에 기대 몸을 움츠려 바람을 피했다. 바다와 구름이 잘 구분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날은 밝았고 해는 구름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은 여전히 쎘고 나는 추워서 대피소로 서둘러 돌아갔다.

 

키가 작은 소녀를 대청봉에서 보고는 얘는 뭐야 했는데 대피소의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옆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줌마들이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고1이고 학교가 신종플루 때문인지 뭔지로 휴교를 해서 혼자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유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인정도 많은 아줌마들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여러가지 챙겨주셨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라도 무언가 먹을 것을 챙겨줬을 것이다. 에너지바 하나라도... 그러고 싶었다.

 

하산길은 공룡능선과 마등령을 타고 내려왔다. 8시간 걸린다는 길을 5시간 정도에 내려왔다. 그리 무리하지는 않았지만 내려오니 힘이 들었다. 단풍은 산 밑에서 볼 수 있었다. 금강굴에서 바라보는 단풍은 장관이었다.

 

하산한 설악동은 공원이었다. 평일이었지만 단풍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아서 붐볐다. 한적했으면 막걸리나 한 사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식당은 북적거렸고 막걸리 생각도 별로 없었다. 대신 시원한 사이다가 먹고 싶어 사이다를 사 마셨다.

 

서울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데 술 한잔이 무척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경미와 초원에게 연통을 날렸지만 모두 안된다는 대답. 태훈과는 약속을 잡았으나 도착시간이 마땅치 않아 취소하였다. 좀 외로웠다. 

 

다리에 알이 배겨 삼일 동안 걷기가 힘 들었다. 지리산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리산이 더 힘들다고 느꼈는데 하체 운동은 설악산이 더 되었나 보다. 지리산과 설악산을 비하자면 나는 지리산이 더 좋다. 지리산은 숲이 우거졌는데 설악은 그에 비해 척박한 느낌이었다. 대신 설악은 계곡이 많아 여름에 가면 좋을 것 같다. 다음엔 해가 긴 여름에 남교리 코스로 올라봐야겠다. 서북능선을 타리라. 그리고 몇몇이 함께 간다면 하산 후에 대포항에서 술을 한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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