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남기고 싶은 부분들'에 해당되는 글 32건

  1. 알리와 니노 2007/11/21
  2. 티셔츠 경제학, 피에트라 리볼리 2007/11/03

알리와 니노

from in the book 2007/11/21 21:40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내게는 넘어야할 벽같은 것이다.
강한 반여성적 전통을 가진 세계
알려고 다가가면 날 밀어내는 세계

코란을 조금 읽었다
성경의 배치에 따라 재배열하여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쓰여진 책으로 읽었다
물론 성경을 한번도 읽지 않았지만
거의 들어본 얘기였다.
코란과 성경이 거의 같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알리와 니노라는 소설을 읽었다
작가명이 있지만 작가 미상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유럽와 아시아의 경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가 있는
카프카스지역을 배경으로
무슬림 청년과 그리스도교 여성의 사랑을 그려낸 소설이다.

종교적 차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어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꽤  재미있는 꺼리가 되지만,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17년 즈음의 상황이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경제적 배경, 그리고
유럽과 러시아의 팽창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한다.

바쿠라는 도시에서 사는 유서깊은 무슬림 집안의 청년 알리는
러시아의 영향으로 현대식 교육을 받고
그루지야 여성 니노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할때 히잡을 쓰게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무슬림 전통과 교리와 무엇보다 자신이 나고 자란 바쿠와 조국을 사랑하고
아시아를 사랑하는 그는 그의 아버지에 의하면 이미 절반은 유럽인이다.

"아시아는 죽지 않았다. 다만 아시아의 경계가 영원히 바뀌어 버렸을 뿐이야.
바쿠는 이제 유럽이다. 그건 우연도 아냐. 바쿠에는 더이상 아시아적인 것이 남지 않았거든"

"아버지, 사흘 동안 저는 기관총과 총검, 단검으로 아시아를 지켰습니다."

"너는 용감한 사나이다. 알리칸. 하지만 용기란 무엇이냐? 유럽인들 또한 용감하다.
너도, 너와 함께 싸운 전사들도 더 이상 아시아인들은 아니다. 나는 유럽을 미워하지 않는다.
무관심할 뿐이지. 네가 유럽을 미워하는 건 네 안에 유럽적인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너는 러시아 학교를 다녔고, 라틴어를 배웠고, 유럽인 아내를 맞았다.
네가 아시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네가 이겼다면 너 스스로 바쿠에 유럽을 들여왔을 것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새로운 공장이나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냐 러시아인이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세상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대로 유지될 수 없다. 가능한 한 적을 많이 죽이고 그 피를 취한다고 해서
훌륭한 아시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훌륭한 아시아인이 되는 거지요?"

"너는 이미 절반은 유럽인이다. 알리.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하는거야. 네게 설명할 수 가 없구나.
그건 인생이 네게 보여줄 수밖에 없는거야. 네 얼굴은 대지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패배가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 고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지."


아버지의 이야기대로 그는 스스로 바쿠를 '유럽화'하고
또 조국을 위해 싸운다.

여기서 아시아라는 것은... 대체 뭘까?
결국 작가가 누구며 얼마나 소설의 내용(특히 아시아적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는 페르시아에 대한)
이 진실에 근접하여 있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는걸까.
작가가 유럽인이었다면 그저 이건 오리엔탈리즘일 뿐이야 라고 말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대체 오리엔탈리즘은 뭐지... 혼란이 온다.
그저 문화의 충돌이라고 하기엔 페르시아가 심하게 상태 안좋게 그려지고 있고,
물론 그것이 역사적 진실이자 현재진행형인 사실일 수도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그리고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보다 나았을거라고도 절대 얘기할 수 없다.
어쨌든 지금은 나의 가치라는 것이 서구에서 태어난 '보편적' 가치인 것이니까
나의 가치에 기대어 판단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동일시해버리는 거겠지?

결론.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였던 카프카스 지역에 가보고 싶어졌다. ^^;
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공기를 느껴보러
그런데,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나라 남한과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란이
혹은 예전에는 아시아에 속했던 아제르바이잔이 '아시아'라는 공통이름으로 호명될만한
무언가가 있는건가?
대륙이라는 것. 그거야말로 그저 지역적 경계일 뿐인 거 아닌가. 국경보다 더 모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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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1 21:40 2007/11/21 21:40

반세계화, 세계화에 대한 논란에 일종의 답이 될 수도 있는 책

 

 

사실 모르겠다.

필자의 글쓰기 방식이 가진 모호함 때문에...

이게 비꼬는 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한참을 읽다보면 헤깔려 진다.

 

그 속에 적도 아도 존재하지 않고

가장 가난한 노동자에서부터

가장 부유한 사장들에까지 똑같은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거 참...

 

 

어쨌거나 좀 거칠게 정리하자면

 

전 세계는 시장의 질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단 한번도 완전한 자유무역을 실현한 적은 없다.

미국의 보호무역은 1차 생산물인 목화를 자국의 비교우위로 만들었고,

수많은 나라들을 쿼터로 옭죄여 왔다.

특히 중국을... 오히려 쿼터제로 인해 가난한 국가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섬유, 의류를 판매할 기회를 얻었다는 장점도 있다.

쿼터제가 없어진 2005년 이후 급격히 중국의 독점,

바닥을 향한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늘 자유무역의 이상을 주장하면서

섬유업은 예외로 대우해주었다. 업계의 결속력, 정치력이 그것을 가능케하였다.

 

시장의 논리는 가난한 국가에만 적용되었을 뿐이다.

미국의 목화 생산자들을 비롯한 일부 생산자들은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국가의 생산자들은 그들의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그 나라의 제도는 대부분 자국 생산자들을 착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무역이 이상적이냐는 사실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 하는 것은 모두 부유한 혹은 힘있는 국가들의

혹은 선택할 수 있는 자의 특권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자국 노동자 보호를 외치는 것이 어디까지 유의미한 행위일까 하는

의문을 잠시 가져보았지만,

역시 어떠한 제도도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어떻게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며 작동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그리하며 더이상 안티 Free Trade 라는 것이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보호무역은 누군가에게만 이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는 생명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일지도..

 

모든 제도 밑에 그러나 '바닥을 향한 경쟁'이 있다.

또한 '바닥을 향한 경쟁'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함과 동시에 해방시킨다.

 

아이러니....

 

 

 

 

 

 

ps. 책을 읽고 거칠게나마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자! :)

어차피 거칠게 남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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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3 16:08 2007/11/03 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