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남기고 싶은 부분들'에 해당되는 글 32건

  1.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2007/11/03
  2. 기다림 (2) 2007/10/24

<아래는 위 책에 대한 내용 5%와 나머지 사적인 주절거림으로 나열됨>

 

문학평론?

 거의 0에 수렴하는 관심분야다.

 

어쩌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이 책을 도서관에 빌려다 드리고,

오늘 돌려받았다.

 

이명원의 한국문학탐사라는 부재가 붙은

근현대 작가들에 대한 짤막한 비평글 모음이다.

 

그중 세편을 골라 읽었다.

공선옥, 전경린, 한지혜

 

책을 돌려주며 공선옥과 전경린 부분을 읽어보라 했던 그 분의 말씀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이전 시기의 작가들에 대해 무관심한 탓도 있다.

 

몇달전 공선옥의 소설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공선옥 소설은 불편해요. 예전의 나라면 어찌 읽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지금은 너무 불편하고, 읽기 싫고 숨이 막혀요.

소설에서까지 무거운 세상을 대면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안 팔리는 작가이지 않겠냐고 나 스스로를 애매한 위치에 놓은 채

비판이라기보다 투정을 했었다.

 

공선옥을 그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무심한 우리 사회의 고통불감증을 규탄에 가까운 어조로 비판했다 한다.

절바간 생의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왜 불감증에 빠져 있냐고...

 

사실 그렇다.

내가 느낀 불편함의 실체 중 하나는 나 자신의 불감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소설을 읽으며 다만 불편했을 뿐 더이상 나는 그들의 편이라고 약자의 편이라고

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편함의 진짜 원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 편인가.

편가르기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계급성을 상실했다.

그것이 어쩌면 학생의 조건... 이라고 나는 속으로 또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노력한다고 될 일 아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나의 물질적 조건은

겉만 번지르르한 한달 수입 0의 건달일 뿐이다.

공장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 그곳에서 20대 절반을 놓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보다 다른 것도 놓고 나왔다.

 

그리고 계속 나는 희미하다.

무엇으로도 규정하고 싶지않지만

사실 규정되어진 수많은 a일 뿐임을 순간순간 자각하는 희미한 나일 뿐이다.

나는 버렸다고 생각한 것들도 여전히 어딘가에는 붙어있고,

갖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은 나의 기표가 아니다.

 

그래서 어떠한 계급성을 원하냐고 다시 묻는다.

그것이 원한다고 들러붙는 것이냐고 또 묻는다.

이미 불감증의 수준에 닿아있으니 어쩔 것이냐고 또 묻는다.

 

얼마전 누구와 술을 마시며 얘기했더라...

공부를 죽도록 했는데, 그 결과가 내가 원치 않던 결과가 나오면 어쩔 것이냐고

그럼 무엇을 지향할 것이냐고 했다.

아... 어쩌면 바보같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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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3 14:42 2007/11/03 14:42

기다림

from in the book 2007/10/24 16:33

하진, 기다림

 

 

부모의 뜻에 따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린. 가족을 고향에 두고 군의관으로 일하던 그는 같은 육군병원에서 일하는 세련된 현대 여성 만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가려면 린이 아내 수위와 이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린은 딸과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대한 걱정으로 매년 만나와 약속한 이혼에 실패한 채 고향에서 돌아온다. 아내와 별거한 지 17년. 마침내 그녀의 동의 없이 법률적으로 이혼이 가능한 시기가 되고, 린과 만나의 끝없는 기다림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 알라딘 책 소개 중

 

 

특별한 감흥이 없다.

쿵린이 이혼을 하러 아내 수위와 인민법정에 갈 때마다

늘 번번히 실패하고... 시골 마을 사람들은 쿵린을 비난한다.

조강지처를 버리는 놈....

18년을 별거 중일 경우에 합법적 이혼이 가능한 육군병원의 규정덕에

이혼에 성공하긴 하지만,

이혼과 뒤이은 결혼은 행복하지 않다.

 

이걸 어찌 보면 조강지처를 버리더니 그럼 그렇지..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역시 사랑은 때가 있다는... 타이밍론(?)을 꺼내들 수 도 있겠다.

뒤에 그려지는 따뜻한 가족의 모습, 편안함, 되돌아갈 마음의 고향... 이런 거

비난을 하기에 앞서 사실 공감이 간다.

하지만,.....

 

 

"수위는 마치 린이 오랜 여행에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p.467

"이제 분명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만약 사랑과 마음의 평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그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평화로운 집이 더 좋았다" -p.468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빠. 우리는 언제까지라도 아빠를 기다릴거예요"-p.476

 

 

집 나간 아들을 받아들이듯 수위와 딸 화는 린을 받아들인다.

만나의 입장에 선다면 가슴을 쥐어짜도록 억울할 일이다.

제도와 관습, 인식은 연인의 결합을 지연시켰고, 그들에게 불행은 안겨다주었지만,

그러나 남자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다.

이해는 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뭐가 문제인 걸까. 개혁의 고달픔과 보수의 달콤함?

 

전처라는 안식처... 그녀의 무한 돌봄노동....

난 점점 이런 현실에서 가치판단을 하지 못한다.

대체 무엇이 그 남자 린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지?

그가 어쩔 수 없었다는 현실?

전처 소위야 말로 전족을 한 보수적인 중국의 상징이기 때문에?

 

남성에 있어 전통적인 여성이 안식처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당연한' 돌봄노동을 더이상 받지 못하고, 도리어 몸이 아픈

만나를 돌보아야 했던 린은 사랑이고 뭐고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고야 마는 것이다.

사랑은 안온함을 이기지 못한다.

남성으로 하여금 돌봄노동을 분담하게 하는 것은 사랑일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데올로기일 뿐

린이 돌봄노동을 분담하게 된 것도 만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그녀가 직장을 갖고 있는 현대적 여성, 즉 커리어우먼이기 때문이다.

 

 

몰라... 더 생각 안 할래.

대체 작가는 뭔 생각으로 이런 소설을 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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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16:33 2007/10/24 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