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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만 한다. 영화는 반드시 핵심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카메라와 카메라의 스타일이 그것이 기록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철저히 현실적인 내용, 말하자면, '노동자계급의 교훈적 패배의 역사' 그 자체이다. 지금껏 몇몇(왜냐하면, 스스로 좌파라 자칭하는 이들은 많지만, 엄밀히 따져서 '영화적으로' 좌파인 감독은 별로 없다.) 좌파 감독들이 영화로 투쟁하려했지만 켄 로치처럼 '투쟁'다운 투쟁을 하고 있는 감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위의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의도적이었던 것일까? 그들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허허.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촬영중인 켄 로치와 촬영 staff들.)
투쟁하는 작가주의의 최전선 켄 로치에 바친다 ④ | ||
[필름 2.0 2006-11-09 18:50] | ||
현재의 감독 중 가장 실천적인 사회주의 감독 켄 로치는 역사적 거울을 통해 지금 노동계급의 우울과 좌절을 토로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구의 편에 서는가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역사가의 태도! 1995년, 켄 로치가 <랜드 앤 프리덤>을 완성했을 때 세계는 논쟁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둘러싼 미학적, 문화적 담론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1939년 실패로 각인된 스페인 내전에 관한 배반과 분노에 대한 기록이었고, 영화가 개봉되자 스페인 극장가에서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토론이 형성되는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려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스페인의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부터 깨어나고 있었다. 한 평자가 켄 로치에게 왜 당신의 관심이 영국 노동계급으로부터 스페인으로 이전되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답은 명료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역사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그것을 민중들에게로, 본연의 그들 것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 대답처럼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그가 이미 <랜드 앤 프리덤>에서 보여줬던 역사가의 시선과 태도로 다시 한 번 무심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역사적 무대는 1920년 아일랜드다. 학살과 고문, 죽음과 고통으로 넘쳐나는 그곳에서 켄 로치는 스페인 내전의 전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총을 들고 게릴라 투쟁의 한 전장으로 돌진한다. 그런 점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랜드 앤 프리덤>의 거울처럼 보인다. 전문 배우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한 순간들은 마치 뉴스릴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해 숨이 막히고, 조바심 쳐진다. 켄 로치의 태도와 방법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게릴라 전투의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지나가면, 역시나 예의 기나긴 토론들이 벌어진다.
비극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즉 영국의 대처리즘 그리고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주도된 레이거노믹스 등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은 전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실업과 구조조정이라는 작업장의 첨예한 생존권 싸움을 넘어 우리의 일상으로 표면화되고, 문화와 가치들로 회귀한다. 이에 저항하는 문화적 표상들의 싸움은 몹시 고립되고 외로워 보인다. 거의 모든 영화들이 폭력과 쾌락과 상품가치의 스펙터클에 포획돼 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작가주의이자 좌파적 노선에 선 이들은 극히 적었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삶을 드러내는 로랑 캉테나 알랭 기로디, 그리고 유럽의 변방 벨기에에서 역시 희망 없는 노동계급의 심리적 갈등과 윤리적 고뇌를 포착하는 다르덴 형제들처럼 그들은 매우 제한적인 이름들이다. 그나마 ‘세계 영화제’라는 특수한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들의 영화를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 내부로 들어갔을 때조차도 켄 로치의 이름은 독보적이다. 물론 마이크 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노동계급의 보다 깊은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건조함과 해방구 없는 절망 그 자체를 소묘한다.
단순함의 미학! 켄 로치를 폄하하는 평자들의 주요 논지는 그가 형식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허한 비판은 어느 누구보다도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자의식과 철학을 가진 그의 응답 아래 무가치해진다.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만 한다. 영화는 반드시 핵심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카메라와 카메라의 스타일이 그것이 기록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결국 그는 1969년 <케스>를 연출하며 만난 촬영감독 크리스 멩게스와 제작자 토니 가렛 등과 더불어 ‘꾸밈없고 소박하고 진지해지기 위한 가장 단순한 프레이밍’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설정한다.
사회주의자임과 동시에 원칙주의자인 켄 로치의 이러한 실천은 일회적인 작품들로만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통해서도 하나의 실천적 궤적을 형성한다. 60년대 프리시네마 세대와 더불어 등장한 그는 지금껏 여전히 노동계급의 일상을 소묘하면서도 그 안에 배태된 사회구조의 모순과 폭력을 성찰한다. 그러한 여정이 변별점을 경유하게 되는 지점은 1995년에 연출한 <랜드 앤 프리덤>으로부터 <칼라 송> <빵과 장미> 등을 통하면서다. 영국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노동계급의 현실을 다루던 그의 카메라는 이제 스페인 내전의 역사로부터 식민지 니카라구아의 상흔으로, 그리고 첨단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의 심장부 미국으로 넘어가 외국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참여로 이어졌다. 이른바 새로운 인터내셔널리즘의 이러한 실천은 그러나 2000년대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블레어 정권의 영국에서 좌초되는 것처럼 보였다. “블레어 정권은 친미적이고 친자본적인 새로운 보수주의자”라는 그의 단언처럼,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행하는 살육을 영국이 여전히 아일랜드에 행하는 폭력으로 비유한다. 1990년에 연출한 <히든 아젠다>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일랜드 문제를 전면화한 이번 작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그는 다시금 역사가 현재를 돌파하는 유일한 열쇠임을 상기한다. 그러나 돌파구 역시 단순하지 않음을 그는 안다. 그는 아마 이 영화를 연출하며 이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혁명에서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더욱 힘겨운 문제는 혁명의 성공 그 이후에 닥쳐올 것이다.” 그가 베스트 영화로 손꼽는 질로 폰테코르보의 <알제리 전투>에 나오는 한 혁명가의 말이다. 적은 거대한 괴물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에 익숙해지고 닮아가는 우리들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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