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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30
    어바웃슈미트(2)
    피린
  2. 2006/03/30
    아이들의 적응전쟁!!(3)
    피린
  3. 2006/03/30
    분노(3)
    피린

어바웃슈미트

글쎄! 어제 두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9시에 잠이 들었다... 세상에 이럴수 도 있다니?

 

갑자기 생긴 시간이 약간의 당황스러움으로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도 가물한 책을 집어 들었으나

역시 작은 글이 잘 들어 오지 않았다.

 

뉴스나 볼까하고 tv를 켰다가

<어바웃슈미트>영화가 나오는 거 봤다.

 

보험계리사로 정년퇴직한 슈미트는 생활은 건조한 짠돌이 할아버지이다

어느날 우편물을 정리하다가 결연후원 홍보물을 보고

제3국에 사는 6살난 아이에게 후원금과 안부 편지를 쓰게된다.

 

수양아버지로 멋진게 안부인사를 시작한 슈미트는

한두절 쓰다보니  본인의 생활에 대해 구구절절 쓰게 된다.

 

전반적으로 아이에게 쓰는 편지 내용으로 이 영화는 진행된다.

 

42년을 함께산 부인에 대해 슈미트는 이렇게 쓴다.

 

"왜 이 늙은 노인이 내 집에 있는지 모르겠어.

몸무게도, 냄새도 너무 싫어"

 

그리고 어느날 편지를 붙이고 돌아온 슈미트는 거실바닥을

청소하다 사망한 육중한 몸의 부인을 발견한다.

그리고 싸구려 관을 쓰고 장례를 마친다.

 

천사같은 딸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딸아이는

맘에 들지 않는 결혼을 진행하고

 

돌봄노동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치도 않았던 슈미트는

부인이 없는 생활을 하는데

푸-하-하-  파리 꼬이고 배고프고, 지져분하고 초라한 독거노인이 된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더 쓰기 힘들다.

머프야 나중에 비디오로 봐라...

 

왠지 난 눈물 나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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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적응전쟁!!

6살 박이 래곤이를 설로 데려오면서

아이의 적응문제로 사실 고민도 좀 하였다.

 

바다가에서 백구를 친구삼아 춤추며 놀던아이를 생각하니

갑갑한 설 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아이는 오히려 "아침을 차려주지 않으면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

며 본인의 요구 사항을 정확이 이야기 하고,

한글 깨치기를 강요하지 않는 나에게, 사탕 사 주지 않는 나에게,돈주지 않는 나에게

적응하며 저축하고 한글을 잊을까   블럭으로 스스로 한글놀이를 하며

잘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런데 태어나 오로지 나하고 만 있었던 15개월 된 작은 아이가 오히려 문제인거 같아.

 

래원이는 아직도 모유수유중인 엄마를 완벽히 차지 하다가

엄마와 대화하며, 힘세고, 날폅한 형의 등장에 적쟎게 당황해 하는 눈치다.

 

블럭을 부수고, 만화를 다른 채널로 돌리고, 조금만 엄마랑 붙어 잇는 형을 보면

잡아 당겨 떨구고, 작은 거절에도 얼굴을 바닥에 대고 참 서럽게도 울어댄다.

어린이 집에서도 작은 일에도 짜증내고, 친구 하고도 잘 싸운다고 한다.

 

큰애와 나름대로 육박전 하고 있는 작은 아이를 안아 둘만은 작은 공간으로

도피라도 하면 아이는 예전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안도감을 표시한다.

 

이제라도 아이들을 같이 키우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다행인지 ...

 

래곤이는 자기 전에 이렇게 나에게 속삭인다.

 

"엄마 나 서울에서 지내기가 힘들어요?"(이런 말을 하다니? 참 당황스러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바닷가에 희둥이(잡종백구다) 내 오랜 친구거든요

 놀아 주고, 밥도 내가 갔다줘야데고, 책도 읽어줘야 하는데..."

 새끼를 낳으면 내가 한마리 키워야 되는데...

 내가 서울에 있어서 어떻게 해요"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보다 본인이 보살피다가 온 희둥이 생각 뿐이다

이래서 내리 사랑인가??? ㅎㅎㅎ

 

래곤 이제 관심을 래원이한테 돌려야 되지 않을 까?

뻣어내린 사랑줄기의 방향이 영 나에게는 시원챤다..어른들의 입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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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30대 중반을 넘어선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과 같이 사는 여자나

남편과 떨어져 사는 여자나

직장이 있는 여자나

직장이 없는 여자나

 

한결같이 남편에 대한 정도차 있는 분노를 품고 산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건데 이건 심각한 아줌마 증후군이다

 

주변에 미혼인 친구들도 많은데 적어도 불안은 하여도 그들의 감정은 분노는 아니었다.

 

계속 생각컨데 이렇게 행복지수의 척도가 <남자>이어야 하는 가?

또 그들은 우리의 이러한 분노에 관심이 있는가?

관심이 있다해도 뭐 그들이 불편하지 않은 이상 속약깐 껄끄러운 묵인으로 점쟎은 남자이고자 하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으로 고민스럽던 말던

 

집에 돌아가면 이야기 할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같이 살며 분노하는 것이 나은지,

혼자 살며 쓸쓸한 것이 나은지

 

근데 난 분노하며 쓸쓸한 것이 문제다...

 

행복을 재점검해야 할 상태다....내 행복의 문제점.....

 

생각이 엉켜서 더 쓰기 힘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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