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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를 지나 시르완에 도착

21시간의 버스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 도착하였습니다. 말이 21시간이지 정말 빡센 여행이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앉았더니 엉덩이가 짓무르더군요. ^^*

아메드에서 하룻밤을 자고 어제 아메드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시르완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이 곳 쿠르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상진씨가 시르완에 집을 구하고 있는 중이며, 저는 그 곳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여러곳을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완, 하카리 등지를 돌아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쿠르드 지역의 상황을 먼저 전해드리자면... 터키정부의 보이지 않는 쿠르드 탄압이 외부에서 보았던 것보다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터키정부는 이라크 국경을 넘어 PKK 소탕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외부에는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터키 현지 TV에는 이라크 지역에서 PKK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는 터키군의 활동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향인지 쿠르드 지역 각지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하카리 시에서는 경찰과의 충돌이 심각하게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하카리에 가보질 못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터키 TV에서 주요 뉴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황은 보여지는 것보다 심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대적으로 외국인인 관계로 저는 안전합니다. 하지만 도처에 군의 검문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음엔 더 많은 내용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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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로 떠나기 전 날

이제 내일이면 쿠르디스탄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아메드로 떠납니다.

이 곳 이스탄불에서의 시간은 기본적인 쿠르드어를 배우는 한편 쿠르드 가족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전까지는 한국인 친구였는데 이번 방문부터는 가족이 되었답니다. 쿠르드 이름도 받았지욤. "뷀라드" 와 "웰라트"의 중간 발음입니다. ㅋㅋㅋ

지금까지는 매번 방문시마다 비행기를 타고 아메드에 갔었습니다. 시간문제도 있으려니와 그렇게 비싸지만은 않은 비행기값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실제 비행시간이 30여분정도이면서 6만원이 넘는 비행기값에 비교해 실제 비행시간이 두 시간인 아메드행 비행기값이 63,000원 정도여서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행기는 시간이 빠르다 보니 놓치기 쉬운것들이 매우 많지요. 지나가는 풍경이나 사람들의 생활같은 것은 느끼기 힘든것이 비행으로 하는 여행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버스를 이용해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오후 13:30분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10:00시에 도착하는 표를 구했습니다. 더구나 원래는 50리라(약 37,000원)인데 표를 끊는 직원이 쿠르드인인데다 표 끊으러 같이 간 여동생 미네가 잘 설명을 해줘서 20% 할인을 받아 40리라(약 29000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약 20시간의 여행이 상당히 기대됩니다. 한국에선 기껏해봐야 서울-부산간, 아니면 속초에서 부산가는 버스가 정말 길고 지루한 여행입니다만 20시간이라... 기대가 됩니다.

몇몇 분들이 건강에 대해 염려를 하셔서 건강과 관련한 소식도 알립니다. 매일 먹는 미역국(미역을 여기까지 가져왔답니다 ㅋㅋㅋ), 매일 한 시간 이상 걷거나 뛰기, 푹 자고, 잘 먹고 하는 통에 한국에서보다 몸상태는 나아졌습니다. 더구나 술을 마실 수가 없으니... 울 쿠르드 가족은 무슬림들이어서 술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메드에 가게 되면 할 말이 더욱 많아지겠지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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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법안 상임위 통과를 보면서...

쿠르드지역 방문을 위해 터키에 와 있는 지금 상황에서 함께 투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도살자입니다.

지금도 월 5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최소한의 사회복지 보호망조차 없는 상황에서 개악된 비정규법안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도대체 노동자를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내몰아야만 만족하는 것일까요.

자본주의 경제학으로도 소비가 이루어져야만 자본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고 하는데, 임금을 줄여 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만들고 확대시키려 하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아들딸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네요.

멀리서 투쟁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함께할까 합니다.

비정규직을 없애야만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급한 마음에 짧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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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이야기

홍콩까지 5시간의 비행 그리고 한 시간 정도의 휴식 후 곧바로 프랑크푸르트를 향한 12시간의 비행끝에 이 곳 독일에 도착했다.

새벽 5시경에 도착해 잘 모르는 것을 물어봐가며 겨우 시내에 도착했다. 거미줄이란 표현으로는 부족한 지하철때문에 오히려 힘에 겨웠다. 더구나 이런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여행책자를 샀건만, 여행책자에는 '중앙역'이라고 소개된 곳이 지도나 지할철 맵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Central Station"이라는 말만 있어도 금새 알아보겠건만..

더구나 이 곳의 지하철은 표를 구입하긴 해도 검표를 하거나 하질 않아서 한국식 지하철에 익숙(검표하는 곳을 찾으면 어떡하든 지하철을 탈 수 있는)한 나로선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책자에 도보로 25분이라고 하니 얼마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택시미터의 기본요금이 2유로에서 시작하더니 출발해 움직이자 마자 요금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하고 비교해서는 황당하기 그지 이를데 없는 일이었다.

각설 어찌 어찌 여행책자에 나와있는 숙소에 체크인하고 곧장 시내를 돌아다녔다. 오늘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 총회에 참석하러 가기 전까지는 어차피 할일도 없으니 관광이라도 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돌아다니다 여러곳을 구경하게 되었다.

괴테의 생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뢰머 광장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 독일 최초의 국회였던 건물 등을 구경하고서 숙소로 향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너무 먼 비행이었다. 중간에 한 시간정도를 제외하면 17시간의 비행이었던 관계로 푹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곳 시각으로 오후 한 시(한국은 저녁 9시)경에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밤 11시(한국은 아침 7시)경 깨었는데 아직 몸이 한국에 맞춰져 있다는 증거였다. 한국식으로 잠들고 깨었는데, 이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밤 11시에 무얼하란 말인가. 오후 7시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이 곳 독일에서 밤 11시에 깨여 할 일이란 없다. 맥주를 한 잔 하는 것 외엔...

10여분을 걸어간 곳에 맥주집이 있어 맥주를 한 잔 하고 돌아오니 12시가 좀 넘었다. 이제 무엇을 할것인가 고민 고민... 자두기로 했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깨어도 깨어도 창밖은 어두움뿐이었다. 그러길 서너번... 드디어 아침 8시. 꼭두새벽에 아침을 먹고 씻고 체크아웃할 준비를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오전 10시 15 분. 한국시간으로 오후 6시 16분.

결국 몸은 한국시간으로 맞추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들어 버린것 밖에는 없다.

독일 사람들은 약간 차갑다고나 할까? 쿠르드에서 맛 보았던 살가운 맛은 없다. 그저 친절함은 관계에서 나오는 친절함일 뿐이었다. 쿠르드는 거의 한국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니까.

이제 곧 체크아웃 할 시간이다. 체크아웃에 늦으면 벌금이 있을 것이다. 샤워하는데에도 따로 2유로(2500원정도)를 지불해야 했으니까. 한 마디로 비싸다. 어여 독일을 떠나야 한다. 돈이 바닥나기 전에 말이다.

오늘 오후 1시에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 프랑크푸르트분회 사람들을 만나 빌레벨트로 가게 된다. 유럽위원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몇 사진으로 보았을 땐 대단히 친근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들이 소주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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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도착

지금 위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있는 삼성전자 전시관입니다. (이 곳에서 인터넷을 쓸수 있다는... )

일단은 죽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이번주 일요일에 터키로 들어갑니다. 비행스케쥴때문에 며칠이 비게 되었는데요 마침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 총회가 있다고 해서 그것에 갈 생각입니다.

관광하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더 좋으니까요. 그분들을 위해 소주 약간 사왔답니다.

건강히 돌아갈 수 있을때까지 계속 글을 올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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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납니다.

현 위치 용산역 근처에 있는 피씨방입니다.

 

이 곳을 나가면 공항을 향하게 될 것이고, 공항에서 이런저런 수속을 거친 후 떠나갑니다.

 

너무 자주 밖으로 나돌아다녀서인지, 이제는 설레임같은건 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번은 독일쪽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편을 골랐는데 마침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가 총회라고 해서 총회에 놀러갈 생각입니다.

 

유럽위원회 분들은 어찌들 지내시는지...잘 구경하고 오겠습니다.

 

이제 한국땅을 떠날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군요.(6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조류독감에 대비하여 치료제까지 챙겨가니...넘 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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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

쿠르드지역 방문과 제네바 WTO 반대 원정 준비가 슬슬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뭐 대략의 계획을 은근슬쩍 흘립니다.

 

저는 2월 22일 저녁 7시 45분 홍콩행 캐세이퍼시픽 항공기로 인천을 떠납니다.

홍콩에 밤 10시 40분쯤 도착해서 11시 55분 비행기로 갈아 탄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간답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23일 새벽 5시 50분에 도착예정이라고 합니다. 터키로 바로가는 여정이었는데, 제네바 관련때문에 프랑크푸르트 경유로 여정을 바꾸었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본이라는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요. 뭐 그리 멀지는 않은 듯 합니다. 그 곳에서 2월 26일 밤 10시 45분 비행기로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게 됩니다.

 

이스탄불로 갈때는 게르만 윙이라는 독일의 항공사를 이용하게 되는데요. 이게 소위 저가 항공이라는 항공사입니다. 타 항공에 비해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이용하게 됩니다.(대신에 기내식도 없고 뭐 그런다더군요)

 

어째뜬..2월 27일쯤 이스탄불에 도착한 저는 이스탄불에 있는 친구들과 약 일주일간 생활을 할 것입니다.

 

할일은 주로, 쿠르드어 배우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3월 5일쯤 디아르바크르(터키 거주 쿠르드인들의 중심도시)로 떠날 예정입니다.

 

3월 21일은 네브르스라는 쿠르드인들의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네브르스 축제는 쿠르인 거주 지역 전역에서 이루어지는데요, 특히 중심도시인 디아르바크르에는 약 백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이 축제를 보낸다고 합니다.

 

네브르스 축제는 큰 불을 피워놓고 춤과 노래로 채워지는데요. 이것은 조로아스터교의 관습이 남아 있어서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로 불을 숭배하고 유일신을 믿던 종교라고 합니다. 종말론, 구원론 등도 있었구요.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의 구원론, 종말론 등은 모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것이라고들 합니다.

 

또 짜라투스투라의 영어명이 조로아스터라고도 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라는 신을 숭배하였기에 조로아스터는 창시자의 이름일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마을이 있다고 전해지는 쿠르드 지역입니다. 하여 이번에는 조로아스터교 마을을 꼭 방문해 보고 싶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네브르스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경찰에 체포되고 감옥에 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네브르스 축제 자체가 몇 십년 간 명맥이 끊어졌다 쿠르드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의미에서 재재되었던 점이 탄압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략 2000년경부터는 경찰이나 군의 제지가 거의 없이 치러졌다고 하는데요. 올해는 어떻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지난 1999년 터키의 무장독립운동 세력인 PKK(쿠르드 사회주의 노동자당) 당수 오잘란이 체포된 후 터키정부는 그 동안 쿠르드족에 대해 유화정책을 해왔는데요. 작년 10월 이후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그로 인해 죽어간 쿠르드족 시위대가 꽤 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언론이 통제되고 있어서 정확한 숫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터키정부의 정책이 쿠르드족 탄압으로 바뀐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그러했는지 여부는 아직 파악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덴마크의 한 신문사에서 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를 풍자한 만평으로 인해 이슬람지역 전역이 들끓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하메드가 폭탄으로 된 터번을 쓰고 있는 모하메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만평이랍니다. 이로 인해 일부 이슬람국가들은 이미 덴마크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는가 하면 각국의 덴마크 대사관 앞에서는 덴마크 국기를 태우고 덴마크 제품의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의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교적 단결이 중요시되는 이슬람권인 터키에서 이슬람의 단결을 요구하는 이러한 시기에 비이슬람적 행사인 네브르스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터키정부 입장에서는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보여질 뿐입니다. 조류독감 발생에 이어 이번 사태로 인해 EU는 터키를 비롯한 무슬림 국가지역에 대해 높은 ‘수준의 위험지역’으로 분류한 상황으로 관광이 주요 산업인 터키로서는 관광 예약 취소율이 45%에 달하는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터키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불만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2월 5일에 Andrea Satore 신부가 피살된 바 있습니다. Andrea Satore신부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16살의 10대 소년에게 총격으로 피살되었으며, 이 소년은 모하메드 만평에 자극받았다고 진술하였다고 합니다. 터키지역은 다른 이슬람국가에 비해 이슬람의 영향력이 낮은 곳이며 매우 개방적 이슬람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단순히 모하메드 만평만으로 가톨릭의 신부가 살해당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Andrea Satore신부는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고, 성매매를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성매매와 연계된 마피아의 개입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터키의 국내정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리는 판단이기에 신뢰도가 아주 낮지만 유사사건이 발생할 우려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암튼 이렇게 네브르스를 함께 한 후 쿠르드 지역으로 여행을 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은 친구들 위주로 쿠르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다 보니 그나마 중산층들을 만나왔던 것 같습니다. 지난 방문에서 아주 잠깐 만났던, 민족의 정체성이나 이런 것에 아무런 관심조차 가지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도시빈민이지요.
그리고, 대도시지역이 아닌 지역을 주로 방문해 보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게 쿠르드지역을 방문한 뒤, 제네바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4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제네바에서 WTO 각료회담이 열릴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5월 1일경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해서 5월 3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홍콩을 경유해 5월 4일 오전 9시 5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머 대략의 계획입니다. 얼마든지 변경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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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 자락

몇 년전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영감을 얻었었는데, 오늘 여러분께 이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자알 들어 보시고...

가사도 한 번쯤 음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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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살 맛 안나도
그래! 참고 한 번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찌 될 것 같진 않지만

요즘 정치인들 줄대기 하면서 머리 속이 빙글빙글(빙글빙글)
요즘 신문들 자기 편 챙기면서 뱃가죽이 디글디글(디글디글)
아저씨는 리스트라 스트레스에 죽어가고
아줌마는 치맛바람에 성형 수술까지 도데체 이렇게 가다간
이나라 끝장 나버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지있지(있지있지)
그런 사람들이 이런 세상 보고 참고 있을리 없지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올거야
그럼~그럼! 반드시 오고 말고
이런 바보같은 시대가 계속될 리가 없지

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우릴 우습게 보지마~! 하고 외쳐봐
언제까지 착하고 순하다고 생각지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살 맛 안나도
그래! 참고 한 번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찌 될 것 같진 않지만

착하게 사는게 좌우명이라 말하면 등돌리고 키득키득(키득키득)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담기조차 쑥스러워 얼굴이 울긋불긋(울긋불긋)
꿈과 희망을 말하기 부끄러운 세상
그러니 이나라가 이모양 이꼴이지
도데체 이런 바보같은 나라 누가 만들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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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맡은 일 열심히 하는 사람 바보같다 게걸게걸(게걸게걸)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돈에 이용당해 중심은 간데없고
아마도 모두들 그런 인생들이 허무할거야!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물러서면 안되지
자~!
이 시점에서 혁명 한 번 일으켜 볼까~

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나를 위해서도 노래해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대한민국 불러보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살 맛 안나도
그래! 참고 한 번 살아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찌 될 것 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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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나를 위해서도 노래해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대한민국 불러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너를 위해 노래할께
자~자! 손에 손을 잡고 대한민국 불러보자
대한민국 부기우기 우리 모두를 위해 노래하자
자~자! 손에 손을 잡고 신명나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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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 가족은 쿠르디스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친구로 맞아 들였다. 10년 전, 터키군에 의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이스탄불로 이주한 그들 가족과의 만남은 내가 쿠르드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가족 가운데 막내인 로나이는 10년 전 엄마의 뱃속에 있었다. 터키군은 마을을 소개시키는 과정에서 수류탄과 비슷한 종류의 폭탄을 던져 넣었고 그것 때문에 집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로나이는 그 영향 때문인지 읽고 쓰기가 잘 안된다고 한다. 이제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미네는 10년 전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떠오른다고 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 가족은 십년 전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벨긴과의 대화 도중에 내가 시비를 걸었다. 말보로를 피우는 밸긴에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런 미국의 정부를 뒤에서 돕고 있는 회사가운데 말보로도 있다고. 그리고, 쿠르드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것 때문에 시작된 몇 시간의 토론은 참 힘들었다. 영어-터키어, 터키어-한글, 터키어-영어 사전을 다 꺼내 펼쳐놓고 한 마디 때문에 몇 분씩 확인해가며 이루어진 토론에서 스스로 한국인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벨긴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하는데 미국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이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른 뒤 자치주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미국이 싫지만, 현재 터키 내의 쿠르드족 문제에 있어서는 쿠르드족이 존재하는 것을 터키 정부가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힘들다고 한다. 나는 이라크에서의 전쟁에 쿠르드족이 자치를 얻어냈지만, 그 댓가가 전쟁의 동맹으로서 참전하는 것이었고 그로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중이 죽어간 것을 지적했지만, 벨긴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라크에서도 사담의 통치아래 얼마나 많은 쿠르드인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쿠르드 지역에 화학가스를 살포해 수만 명을 몰살하는가 하면 끊임없는 학살이 이어졌었다. 에르빌을 비롯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키르쿠크, 모술 등의 지역이 모두 쿠르디스탄 지역이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이루어졌던 쿠르드족 학살, 소개 작전 역시 터키 석유 매장량의 60% 이상이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석유 때문에 학살과 점령에 시달렸고, 앞으로도 계속 억압될 예정이다. 전 세계에 석유가 없어진다 해도 쿠르족의 앞날은 순탄치가 않다. 중동지역은 앞으로 석유보다 물로 인한 분쟁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라크 지역 등은 석유보다 물이 비싼 형편이다. 이미 석유 고갈에 대비하여 대체에너지 개발 등 여러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지만, 물은 대체 자체가 불가능하고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므로 중동지역은 물로 인한 분쟁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물의 통제권과 관련한 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동의 젖줄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며 지금의 쿠르디스탄 지역이다. 몇 해 전 터키가 수많은 메소포타미아 유적을 수장시키며 티그리스 강에 댐을 건설했으며 그로 인해 티그리스 강의 통제가 가능해졌다. 그것 때문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정부는 터키에 강하게 항의했고 터키 정부는 매일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하산 케이프 지역에 다시 거대한 댐을 만드는 일을 진행 중에 있다. 이 댐이 완성되면 수많은 유적들이 한순간에 수장될 뿐만 아니라 터키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으로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 터키 정부가 완벽에 가까운 친미정권이며, 이란과 시리아가 반미정권임을 생각하면 앞으로 물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 지 불보듯 뻔한것 같다.

불행히도 쿠르디스탄은 중동지역의 젖줄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의 발원점이며 그 상류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매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만약 쿠르디스탄이 독립한다면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동안 지배 받은 역사의 영향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터키 쿠르디스탄 저항의 핵심인 PKK는 반미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이라크 전쟁과 관련 미국의 참전 요청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쿠르드 민족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그들은 쿠르디스탄의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 교환한 e-mail 주소에는 “amed”라는 단어와 “21”이라는 숫자가 중복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나에게 그들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Amed”는 쿠르디스탄의 수도라고 불리는 디야르바크르의 쿠르드식 명칭이며, “21”은 자동차 번호판의 Amed 지역번호라고...
그들은 지금 쿠르디스탄에서 밀려나 이스탄불에서 살아가지만, 집안에서는 항상 쿠르드어를 사용(내가 방문했을 때만 쿠르드어를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터키어를 사용해 주었다)하고 e-mail 주소하나에도 쿠르드인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들 자신 가운데 희망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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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을 가두지 말라

오르한 파묵을 가두지 말라

터키의 쿠르드·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비판한 뒤 기소되자 세계적 작가들 구명운동…유럽연합 가입 위해 헌법 개정했지만 독소조항 추가돼 표현의 자유는 제자리걸음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지난 12월1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오르한 파묵의 재판은 전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네 명의 의원단을 비롯해 수많은 유럽의 문인들이 그를 지지하기 위해 재판정의 방청석을 채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터키 정부가 재판 진행 문제에 대해 결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을 내년 2월6일로 연기했다.

전세계 문인들이 분노한다

지난 2월6일 스위스의 일간지 <타게스 안차이거>와의 인터뷰에서 오르한 파묵은 “3만 명의 쿠르드인과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터키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가 나오자마자 터키 정부는 즉각 그를 기소했다. 담당검사 펙메지는 “파묵은 터키의 정체성과 터키 군대, 나아가 터키 전체를 적대시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렸다”고 기소 사유를 밝혔다. 터키의 전신인 오토만제국이 1915~23년에 저지른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쿠르드 민족에 대한 박해를 비판하는 건 터키 사회에서 금기시된 사항이다.

오르한 파묵의 재판 연기가 결정된 뒤, 그리스 최대의 문학조직인 그리스문인협회의 발티모스 회장이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먼저 “터키가 유럽에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밝히면서 오르한 파묵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치가 떨리는 듯한 강경한 목소리가 전화상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그는 흥분해 있었다.

“세상에,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사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작가의 표현에 대한 자유는 더욱 존중돼왔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절대적인 자유이다. 이런 일이 21세기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분노했다.

그리스문인협회는 오르한 파묵의 기소에 대한 항의서한을 지난 11월 터키 정부에 전달했다. 이와 더불어 오르한 파묵에 대한 기소가 취하될 때까지 유럽연합의 문인조직들과 연대해 터키 정부를 압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티모스 회장은 밝혔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문인들도 오르한 파묵의 기소에 분노했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인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마르케스, 귄터 그라스는 오르한 파묵을 지지하는 서한을 터키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움베르토 에코, 카를로스 푸엔테스, 후안 고이티솔로, 존 업다이크, 마리오 리오사 등도 오르한 파묵의 기소를 철회하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터키 정부에 전달했다.


△ 오르한 파묵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유럽연합 감시단의 의장인 카미엘 외를링스(가운데)가 기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재판은 내년 2월로 연기되었다. (사진/ EPA)

재판이 연기된 직후 국제펜클럽은 즉각 성명을 내어 재판 연기가 오르한 파묵이나 다른 작가들에게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한다고 밝히고 기소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재판 연기 결정은 파묵의 사건과 같은 유형에 자주 등장한다. 보통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재판을 연기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작가가 패소하면 감옥에 가고 승소하더라도 유야무야 끝나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작가는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집필 활동에 상당한 위축을 받을 수밖에 없고 다른 작가들에게도 심리적인 위협이 된다.

터키의 정체성, 형법 301조의 비극

오르한 파묵에 대한 재판이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이유는 단연 그의 유명세에 있다. 그는 올해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고 그동안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문학상들을 모두 휩쓸어왔다. <침묵의 집>은 프랑스에서 유럽문학상을 받았고 <하얀 성>은 영어로 번역된 뒤 국제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1994년에 출판된 소설 <새로운 인생>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터키에서는 독보적인 인기작가로 자리를 굳히게 됐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두 소설 <눈>과 <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어로 쓰인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전세계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출판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오르한 파묵이 기소되고 나서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터키의 상황이 전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라는 정치 일정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표현의 자유 문제에 부딪혀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그동안 협상을 벌여온 터키 정부는 각 부문에서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한 개혁을 추진해왔다. 특히 인권 문제의 개선에서 유럽연합의 끈질긴 압력을 받아온 터키 정부는 지난 6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법률을 개혁했다. 하지만 유럽의 인권단체들은 터키 정부가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이전의 법률을 전시용으로 형식적인 개정만 했을 뿐, 다른 독소조항을 추가하면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오르한 파묵을 전격적으로 재판에 회부시킨 법률은 개정된 형법 301조로 인권단체에 의해 독소조항이라는 강력한 비판과 더불어 폐지의 압력을 받아왔다. 301조는 터키의 정체성과 터키 의회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은 6개월 내지 3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터키 정부와 사법부, 군부와 보안조직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행위는 6개월 내지 2년, 이 밖에도 터키 국민이 외국에서 이를 행했을 때는 1년이 추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의 표현이 비판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모호한 규정을 마지막에 넣어두었다. 이 규정을 해석하는 주체는 검사나 판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비극이다. 301조에 의해 기소된 오르한 파묵은 재판을 거쳐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투옥될 처지에 있다.             
 


△ 파묵(왼쪽)의 기소 사실은 터키의 인권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파묵은 터키와 유럽의 화해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독일출판산업조합으로부터 '평화상'을 받았다. (사진/ EPA)

오르한 파묵만이 아니라 지난 10월7일에는 흐란트 딘크가 형법 301조를 어겼다는 이유로 6개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흐란트 딘크는 아르메니아어 주간지인 <아고스>의 편집자이자 기자로 터키의 국가 정체성을 모욕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다. 지난 3월에는 터키의 한 대규모 일간신문의 시사만화가인 무사 카트가 에르도간 터키 총리를 실로 만든 공 안에 갇힌 고양이로 비유한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총리에게 고소를 당해 350만원 상당의 벌금을 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에도 한 시사만화가가 에르도간 총리를 자문위원들에 의해 끌려다니는 말로 그렸다가 고소를 당한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필화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사들은 이를 정부의 경고장으로 받아들여 알아서 자체 검열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살 인정은 유럽연합 가입 조건

오르한 파묵의 인터뷰 사건은 터키 언론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오르한 파묵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미 정권에 길들여진 터키의 대언론사들은 오르한 파묵을 연일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비이성적 테러행위를 부추겼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오르한 파묵의 재판정에 몰려와서는 폭력적인 추태를 보이는 사태를 연출했다.

터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유는 과거사를 부정하고 덮어두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사가 터키의 의도대로 덮이거나 부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르한 파묵을 구속해 그의 입을 막는다 해도 과거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이미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승인한 바 있다. 이 국가들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인정을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예술가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2005년 들어서만 50여명의 언론인과 작가들이 기소당한 터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터키 정부의 탄압은 그동안 터키와의 군사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미국과 영국의 의도적인 외면으로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안이었다. 특히 언론인들에 대한 터키 정부의 검열과 탄압은 잔인하게 자행돼왔다. 국제펜클럽은 터키에서 2005년 들어서만 50여 명의 언론인과 작가, 출판인들이 기소당했고 지금도 오르한 파묵 외에도 13명의 작가들이 재판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터키에서는 수많은 언론인과 작가들이 장기수로 투옥되거나 암살당하는 사건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에게 가장 위험한 국가로 악명을 떨쳐왔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인과 작가들이 터키 정부의 공격 목표가 돼왔다.

터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 나짐 히크메트는 공산당의 비밀당원으로 구속돼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의 출판물 또한 금서로 지정됐는데 그가 죽고 난 2년 뒤인 1965년까지 금서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터키의 저명한 작가 오르한 케말도 1939년에 그의 정치적 의견 때문에 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나짐 히크메트를 감옥에서 만나 그를 사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1993년 7월1일에 일어난 사건은 터키 국민들과 세계를 경악시켰다. 당시 터키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 조직된 한 무리는 좌파적 성향을 지닌 콩트작가인 아지즈 네신을 공격하기 위해 그가 참가한 축제 장소를 공격했다. 이로 인해 36명의 예술가가 죽고 24명이 중상을 입었다. 아지즈 네신은 탈출하지 못하고 경찰관과 소방관들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했다.

어릴 때부터 장님으로서 극작가이자 시인, 변호사로 명성을 떨친 에스베르 약무르데렐리의 사례는 터키의 표현의 자유 억압을 잘 드러내준다. 터키 정부의 쿠르드 민족 탄압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1978년부터 1991년까지 13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석방된 뒤 반정부적 저작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98년에 다시 투옥됐지만 국제사면위원회의 지속적인 항의로 2001년에 석방됐다. 그가 감옥에서 보낸 햇수를 모두 합하면 17년이 된다.

최근 들어서는 출판인인 파티 타스가 1990년대 쿠르드 활동가들을 겨냥한 터키 정보부원들의 불법적인 살인행각이 포함된 책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라집 자라쿨루는 2005년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다룬 도라 사카얀의 <아르메니아 의사의 경험>을 터키어로 번역한 책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재판이 내년 2월15일로 미뤄졌지만 여전히 6년 징역형에 처해질 운명에 처해 있다. 작가이자 출판인인 자라콜루는 이미 1971년 반정부적인 저작활동으로 3년 징역형을 겪었던 전력이 있고, 1995년에는 그의 출판사 건물이 이슬람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완전히 불에 타 잿더미가 되는 공격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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