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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여행을 떠나며

 

 “세상은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어디 잘 해보세요.” 사장은 마지막 순간에도 악담을 잊지 않았다. 평소 내 기사를 눈여겨봤다며 ‘장래’를 운운하던 상무는 나의 퇴사 결심이 그저 황당하다는 눈치였다. 본부장이나 보도국장도 마뜩찮은 내색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로또’나 다름없는 직장을 제발로 나가겠다니. 그들에겐 그저 철부지같은 행동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대졸 초임치고는 드문 고액연봉에다 지역사회를 주무르는 유무형의 권력까지 계산하자면 과연 ‘경제적 동물’의 선택으로는 한참 빗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월급 꼬박꼬박 챙기는 회사원 따위가 되려고 방송국에 들어간 건 아니었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더구나 회사가 제공하는 물질적 보상은 그것이 크면 클수록 반드시 쓰라린 대가가 따라온다는 것이 짧은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겠다던 다짐은 전쟁같은 일상 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눈앞의 불의와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던 원칙 역시 강고한 현실의 벽 앞에서 차례로 무너져갔다. 바꾸겠다던 세상은 그대로였고 기성언론의 관성과 조직논리에 맞춰 변해가는 건 바로 나였다. 한 번 어긋난 흐름은 무서운 속도로 나를 몰아댔다. 멈춰야만 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종내 되돌릴 수 없으리라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살인사건 현장에서부터 국제기구의 회의장까지, 안 가 본 곳이 없다.
 

 

 

 다행인 건 주변의 선배와 동료, 친구들이 나의 선택을 신뢰하고 지지해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따뜻한 위로와 응원 덕분에 백수로 내딛는 새걸음이 한결 홀가분했다. 무적 신분이 되는 순간 나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는 그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은 흘러넘쳤다. 기자로서의 내 삶이 방송편성표에 입력된 뉴스 시간표에 따라 직조되는 노예의 시간들이었다면, 이제 나는 비로소 내 시간의 주인으로 행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될 때까지의 여유시간들이 나에겐 인생의 보너스처럼 여겨졌다. 곧바로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인만큼 멀리 떠나고 싶었다. 기간도 두 달 이상으로 잡았다. 얼마 후, 여행은 집으로 배달된 멕시코행 비행기 티켓으로 구체화됐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애정을 바탕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관찰자/전달자라는 점에서 기자와 PD의 노동은 본질적으로 같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보상의 성격이 강했지만, 여행은 동시에 PD로 방송국에 재입성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했다. 냉철한 관찰자, 진지한 전달자로서의 자세를 여행지에서도 고수할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목적지였다. 오랜 식민지배에 이은 군사정권의 독재, 그리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수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하지만 중첩된 모순들을 풀어가는 사회적 방식과 개인들의 의식은 또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바로 그 ‘차이’에 주목했다. 흔히 겪듯이 우파가 차이에서 차별로 직행한다면, 좌파는 차이에서 가능성을 엿봐야하지 않을까. ‘다름’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끌어내는 긍정적 사고야말로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의 진보에 기여하고픈 PD지망생으로서 라틴 아메리카 여행은 ‘차이’를 화두로 한 해외취재에 다름 아니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 브라질에서 끝나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계획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인 해외취재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지 이제와 헤아리자니 부끄럽기도 하다. 직접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느꼈던 차이를 통해 어떤 구체적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미지수다. 때로는 그들과 우리 사이의 현상적 차이를 넘어 인간으로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본질을 체험하기도 했다.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장황하게 늘어놓은 여행의 변은 앞으로 연재될 여행기를 통해 그 실체와 허구가 백일하에 드러날 터다. 앙상한 내면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여행에서 돌아온 게 3월 중순이니 두 달 만에야 보따리를 푸는 셈이다. 언제나 시작은 힘들고 출발에는 우여곡절이 따른다. 이 정리 작업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도록 언제나 힘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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